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난이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배고프고, 굶주리고, 또 가난하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현실에서도 그러한 부당한 경험들을 겪고 있다면 또 물을 수 밖에는 없다. 생존 위기를 심화하고. 같은 지경까지 모는 무고한 죽음을 두고 희생으로만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냐고.
권리는 경제 앞에 또 무너지고는 말았다. 권리는 배 부른 사람들을 위한 특권만 됐다. 사람들은 가난을 알아도.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 대해 말하고 또 듣고자 하는 사람들도 드물어졌다. 가난을 느끼고 참으로 겪는 사람들로는 말할 수 없이 괴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말해 자본주의에서 불황기로부터 생겨나는 기아와 빈궁에 대한 현실 문제와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지 정작 자본주의를 지적하지도 말하지도 않는. 가진 사람들이 입버릇으로 말하는 경제적 불평등으로만 치부하기 때문에서도 아니다. 그들은 경제 문제를 호황기로만 말해왔으므로, 거짓말만 또 해댄다. 자본주의 체제들로부터 추락하는 계속되는 불황기 앞에서는 더욱 솟아날 방도가 없다는 점을 받아들일 줄 안다면.
그러한 문제들이 닥치고 또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또 지겹도록 똑같은 자본주의를 더욱 깊게 연구하고 또 지적할 수밖에는 없다. 또한 가난에 대해 나눌 수 없는 사회는 넉넉한 세상도, 그저 꿈만 꾸는 환상 세계도 아니고, 바로 처절하게 느끼고, 괴로운 삶이라고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이론과 연구들은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와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같은 문제들이 여전하고 또 엄연하게 있어왔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하고, 또 여러 모순을 해결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필요한 이유다.
우리로는 넉넉한 삶에 대해 묻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또 당연하게도 그래서 가난에 대해 다시 또 묻는다. 단지 지겹도록, 굶주리고 싶어서도 아니고 모두는 고루 가난할 수 있는 삶으로 반드시 나눠줘야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