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즐겁고, 보람 있는 일.


힘겨운 입시 제도를 끝내고, 졸업을 앞둔 사람들로는 늘 축하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는 싶다. 청소년이라는 울타리를 끝마쳤다. 그리고 사회로 힘겹게 들어온 셈이다. 보람을 잘 느끼지 못했다면, 억지로 좋아하는 일만 해왔을 수도 있다. 어른도 때로는 아이보다 더 어릴 때도 있기 때문에, 이른바 철든 어른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둔다는 건, 그리고 자신에게도 성장하는 데 더욱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난다는 건 뜻 밖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사람들이 없다는 건 매우 독립을 준비하는 사람들로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체로는 자신에게 즐거운 일이라는 동기보다는 의무감, 책임감이라는 반복되고, 따분한 동기를 자발적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가정 형편이나 생계라는 문제마저 관련된다면, 자신은 무엇을 잘 할 수 있거나, 또는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고민해볼 시간마저 부족해진다. 일에서 늦은 건 없음에도, 사회는 세월을 생각하다가, 사람들을 쉽게 해고하고는 만다. 그리고 해고된 사람들 가운데로는, 정작 해고하지 말았어야만 하는 사람들도 섞여있었다. 부당 해고라고 불리는 직장 생활에서는 그러한 경험을 겪어봤다면, 앞날에 대한 불안이나 막막함은 묻어 나온다. 그리고 정작 해고를 한 당사자는 자신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거나, 인식하지는 못한다. 직장에서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착각이나, 각종 질투, 오만이라는 감정들에 빠져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적된 습관, 도덕적인 의무마저 우리를 얼마나 옥죄던가. 


사회 생활에 대해서 우리 공산당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늘 여러분들, 모두 체제 속에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저마다 삶을 만들어가고자 애쓴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단지 돈 때문이라는 이유이거나, 그저 좋아하기 때문도 아니고. 일이란 참으로 많기도 하고, 누구나 그리고 저마다 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한 가지라도 있다.  


골고루 가난한 삶.


마르크스도 청년 시절, <직업 선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졌다. 스스로 삶을 만들고자, 그리고 더욱 매진했다. <자본론>만큼이나, 직장을 잃거나 맞는 취업 및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하고, 해고된 사람들을 보노라면, 겉으로도 보인 직장이라고 해서 꼭 안정적이지도 않고, 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꼭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는 듯 하다. 우리는 각자 선택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일과 함께 보람을 찾고, 쟁취하는 사람들이다. 사익을 내세우고는 엄격한 조건만 따지던 다른 정당들과는 달리 우리 공산당은 늘 이와 같은 사람들을 지지해왔고, 가난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더욱 아낌없이 지원해주고는 싶다. 그러나 힘도 뭣도 없는 우리들로는 참 힘든 일이다. 심지어 꾸준한 동지들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부디 개인적인 자유로부터 혼자만의 생각에만 꿍하게 갇혀 있던 오래된 지난 날에서, 해방된 자유로부터 고된 부담과 시름을 덜어내고자 노력하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도 지난 해부터 되돌아보자. 검찰 수사로부터 매진한 나머지. 

정작 실행하고 옮긴 정책들이 얼마나 있던가. 미안하지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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