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인혁, <사상 논쟁>이라는 자료를 모두 정리했다. 그러나 사상 투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 투쟁을 간과하기 쉽다. 민주화 운동이란 학생 운동에서 주로 주도했다는 한계를 지녔고,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한계를 보이고는 말았다. 그러한 역사는 현재까지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사실 운동권 역사로는 북한이 아니라, 매우 드문 중심으로는 ML파들도 있었다. 실제로는 공산주의 운동사는 독립 운동사보다도 매우 오래된 역사를 지닌다. 따라서 비단 학생 운동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공산주의 운동은 제법 많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본 당국의 치밀한 수사와 협조로부터 힘 입어서,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북한으로는 김일성으로부터 파벌 투쟁을 마친 끝에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을 수립하고자 했지만, 정작 인민 공화국이라는 건설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바로 김일성이 스탈린주의를 매우 잘 수용했기 때문이고, 여운형, 박헌영을 비롯한 여러 공산주의 운동가들마저 저버리고, 민족주의 운동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숙청 당한 이들이 벌였고, 6.25를 일으켰다는 북한 전체에 대한 오명으로도, 다시 한 번 말하고, 역사라는 작은 교훈으로도, 내전에 대한 지배 각축전을 끝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 가지,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로버트 스칼라피노, 이정식,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이다. 매우 거대한 분량으로 정리된 글이지만, 여전히 문맥, 내용으로도 자유 논거를 바탕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아닌, 학술적인 부르주아 비판이라는 시각으로만 머문다. 따라서 운동사로는, 일본 경찰과 밀정들에 대한 수사를 중심으로부터 자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를 보인다. 왜냐하면 부족한 파벌 문제, 자료에 대한 소각으로부터도, 증거를 찾기란 매우 어려웠고, 또한 극악무도했던, 탄압을 받던 한국 독립 운동가들 가운데로는, 특히 공산주의 운동가들에 대한 이견들은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민족주의 운동으로 부상해왔고, 잘 알려진, 김구 선생과 같은 '분들마저' 부르주아 운동이라는 시각 아래로 갇혔지만, 실제로는 북한에서도 다루지 못했던, 과거 공산주의 운동가들은 전투적인 민족주의 운동가들만큼 더욱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힘든 고문을 겪었다고 한다. 자료를 찾을 수 있는 한, 부족한 강령마저 이행할 수 없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공산당 건설 요인들을 살펴보고, 민족 운동과 어떠한 점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왜 방향마저 달랐는지를 여기서는 서술한다.      

   

그리고 레닌 사후로부터도, 스탈린 집권 뒤로는 한국 공산당 건설에서는, 운동가들은 어떠한 분열을 겪었고, 심지어는 마오가 부상한 뒤로는 소련 분열에도 일조했는지를 대외국으로부터 낀 상태로 처한, 소련과 국적을 버린 공산당들이라는, 프롤레타리아트로는 아픈 역사를 더욱 들춰내고자 한다. 


우리는 과거로도, 현재로도, 그리고 닿는 한 앞으로도, 단지 역사에 대한 성과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밖으로는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또한 안으로도 여러 투쟁을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를 잘 아는 공산주의 운동가들이라면 더욱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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