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얼핏 보자면, 보수주의로 내세우는 가치관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성범죄 처벌에 대한 정도와 부조리는 개인 간 만이 아니라, 어느 조직 내에서도 쉽게 이뤄진다. 자본주의 체제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소수 약자나 노동 계급을 괴롭히거나, 협박하는 일을 쉽고, 자주 볼 수 있는 데, 현상으로는 단선적인 문화나 방송에서도 잘 보여 준 대목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매체로는 성범죄 처벌에 대한 부문을 허락하는 한 일부만 보여준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기치 아래로는 성적인 거래를 승인하거나, 가벼운 신체 접촉들도 허락하도록 했었다. 그리고 불편하거나, 폭력적인 복수로부터도 해결할 수 있다는 처벌주의를 드러내거나, 부르주아를 핑계로는, 고위층들이 사는 모습이나, 외형, 사치, 향락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같은 예시를 들어보자면, 운동 경기로는 시각적으로 집중하고자 몸매를 돋보이는 옷들을 입거나, 단지 음란물을 시청했다고 해서 단속하거나, 담배를 피웠다고 해서 모두 죄로 처벌해버린다면, 무고했던 모든 사람들은 감옥으로 들어가거나, 죽어 마땅할 것이다. 또는 잘못된 사회일 뿐이라고만 보고 문제를 깨닫지만, 해결할 의사를 보이지도 못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작 문제 삼아야 할, 자본 간 유통 과정을 지적하지도, 잘 단속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단지 욕구를 부정하기만 하고, 또한 그들로부터도 얻을 수 있는 건 무엇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간 노예적인 매매로부터 이윤을 얻고자 하는 부르주아지들도 내세우는 자유란 모순이다. 


같은 현상으로는 마약 단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부르주아지들은 많은 노동 여성들을 사유 재산으로 보고 소유화하거나, 심지어는 거래 대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수동적인가, 자동적인가 하는 문제가 논의로도, 논쟁으로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점도 여러 소식들로도 증명한다. 특히 마르크스주의는 결정적으로는 여성주의 시각으로만 갇혀진 성범죄에 대한 시각들이 얼마나 보수주의 가치관에서도, 색채로도 똑같이 기초했는지를 잘 안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이 차별을 재생산하거나,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주로 가부장제 탓이라고 시각을 돌리거나, 성별 구분에 따라 처벌을 강화해야한다고 내세우기도 한다. 대체로 급진주의 운동은 겉보기로는 매우 성 평등이나 성 문제를 철폐하도록 하는 움직임으로 보이도록 만들거나, 심지어는 정당하다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성범죄를 확대 재상산하는 데 오히려 기능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철학적인 논의는 들어갈 여지란 없겠다.  


결혼. 


결혼 관계에서도 성범죄는 일어날 수 있다. 먼저 서구식으로 소부르주아로부터 만들어진 자유로운 연애란 그저 보여 준 식이라는 전제를 먼저 하고자 한다. 사람으로도, 사생활로도, 도덕에 대한 태도(침을 아무대나 뱉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비속어를 쓰는 습관적인 행위 등)로도, 그러한 활동이라도, 물 한 잔보다도 깔끔해야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다 무르익은 혁명가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지하는 일부겠지만, 여성 활동가들로부터도 투쟁을 함께할 수 있고, 또한 더 나아가 부르주아 결혼 제도에 대한 문제점마저 매우 잘 파악하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프롤레타리아트 가정을 이루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춘다. 물론 사랑이란 추상적이라 복잡하다고는 하지만, 대체로는 결혼이란 소시민으로부터 주로 계약의 일부로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결혼을 두고는 구속 여부를 둔 계약의 일부일지라도, 경제적인 문제로도, 특히 계급적인 관점에서 입각하여 볼 줄 알기 때문에 다를 수는 있겠다. 내부 생활이나 삶에서도 얼마나 다른지는, 자녀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얼핏 보면 경제적인 대물림으로만 그저 보거나,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점도 하나 있다. 이르자면, 이분법으로는 동성애 결혼을 두고 단지 보호받을 수 있거나, 충분한 지위와 사유 재산을 가졌거나, 법적인 제도를 옹호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박수를 치거나, 지지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바로 성별, 인종, 차별과는 무관한 프롤레타리아트 결혼을 지지한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들만의 독점적이고, 사유제로부터 기초한 오래된 결혼 제도를 먼저 폐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단지 출산율, 가부장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소유 재산을 두고 여전하게 보여지는 다툼들과 지배하고 또 보호받는 법적인 계약들이라는 의무로 비칠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로는 성매매로부터도, 성범죄로부터도, 안전하지도 못하고, 조직 내 부조리, 차별, 착취마저 늘리거나, '소외', '노동'으로만 재생산할 뿐이다. 타국이지만, 매우 화려하게만 보이는 저 이해할 수 없는 서구식 문화를 일찍 받아들이고 만 일본에서도 그러한 의식으로는 성매매와 결혼 제도에서도 보이는 이면으로도 눈 뜰 필요는 있다고 본다. 오죽하면 19세기 혁명가들마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진정한, 지저분한 거지로는 '부랑자', '창녀'가 또 만들어진다고 말했을까.  


추신. 


비단 부르주아지들을 위한 노동 조합뿐만이 아니다. 기존 당에서도 잔존하는 문제인 데, 더듬어 민주당만이 아니라, 겉으로는 모르지만, 보여줘 국민당이라는 별명들도 많다고들 한다. 세계적으로도 왜 고위층들은 심지어 자본가들마저 불손하고, 겸손하지 못한가를 더욱 실감한다. 공산주의 연구가들에게도 연구 대상이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문란하다라는 명제를 실제로 증명해버리고는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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