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이지만, 언어란 지배 수단으로는 매우 효과적이다. 국내에서도 문자에 대한 연구는 많아도,
정작 계급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고 지적한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우리말 연구는 많아졌다.
바깥에서는 외래어가 아닌 우리말 쓰자는 움직임들도 더 세졌다. 그러면서 세종 한글이나 창제했다고 기원이나 떠들고는 초기 집현전, 근대 말모이 같은 여러 언어 운동들은 정작 빼버린다. 언어로도 선구적인 사람을 강조하지, 모여서 조직한 집단을 잘 기리지는 않는다.
주로 한자어로 풀이해보자면, 한자어나 영문 표기를 쓰지 말자고 내세워도, 표기를 대체할 언어는 부족하다. 그러나 쉽게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자주 드는 예시로는 페미니즘이 있다. 여성주의로 바꾸기만 한다면 끝날 언어일까. 다음으로는 우리말로 새롭게 바꿔야만 하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者), 곧 놈이라는 말은 주로 사내에게 쓰이는 말이기도 하고, 여성주의자라고 한다면, 뜻을 퇴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도 같다. 성전환이라는 표기가 그대로 있음에도, 용어를 잘 쓰지는 않는다. 주로 외래 언어를 더 많이 쓰는 형국인지라, 주로 용어들이 생겨난 원인을 두고 딸을 위한, 딸에 대한 말이기 때문이라는 배짱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리고 언어를 영문과 한문으로만 고치고는 난해한 언어만 골라 쓰는 아주 '괴랄한' 철학자들도 있다. 번역에 대한 언어를 계급 수단으로 특히 지배계급도 쓸 수 있다고 못 보거나, 그저 손 맞잡는 연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추종하는 일부 여성주의 운동가들도 타협주의와 지배계급적인 시각도 밝혀지겠지만,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 까닭이다. 비슷한 예시로는 공산주의 운동을 공산주의'자' 운동으로 표기하는 경우다.
쓰는 말에서도, 우리말을 강조하는 다른 글들을 읽어봐도 말바꿈들은 나름대로 참신하긴 하다. 그러나 모든 교과목으로는 학습이 아닌 단지 시험을 위한 용도로만 제작했고, 어려운 말들을 풀어내지도 못한다. 도대체 시험을 수단으로 사교육 시장은 넓어지는데, 정작 혁명에 대한 흥미는 잃어가는 모순은 어디에서 기인하던가. 바로 언어를 만들어봐도, 지배계급들은 언어를 자본화된 생산 수단으로 이용하고는 꾀를 부리고, 사람들에게 쉽게 타협하기만 하고, 혀만 나불거리는 언어를 홍보하거나 팔도록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라는 말 대신에 일꾼이라는 말도 있음에도 잘 쓰지는 않는다. 아직은 우리말로 바꾸는 번역들이나 움직임은 매우 어색하거나 적다. 그리고 국어가 바로 우리말이라고 예찬하는 국문학자, 문학가들은 한자어만 골라 쓴 행태를 부려왔음에도, 정작 글에 대해서는 거리낌마저 없다. 심지어 외래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중들은 얼마나 더할까.
우리말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는 노동자를 들고 싶다. 세상에는 남성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도 있다. 그러나 모두 일꾼으로 나온다면 좋겠지만, 현실이란 또 다른 싸워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노동자도 노동자지만, 노동계급, 노동가로 주로 표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저 주어진 일을 하는 노동자들보다는, 더욱 무산 독재를 요구하고, 계급으로 싸워낼 줄 아는 노동가들도 더욱 많아져야만 한다.
두서 없겠지만, 노동자든, 노동가든, 노동계급이든, 일꾼이든,
부질 없는 노력이더라도, 자본가들만 판 치는 국내를 보노라면,
그들에게도 맞서 참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트, 무산계급이라는 많은 이름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