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국가론이 강조되는 현 시점에서, 무산계급 통일관을 내세우고자 한다. 

오로지 혁명을 모색하고, 몰두 할 때만이 비로소 쓰여질 수 있겠다. 

빌린 저서 가운데로는, 

김수행, 박승호, <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

방인혁, <한국의 변혁운동, 사상운동>을 읽고 있다. 

윤소영,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도 저자 발언 및 논란도 있었지만, 

아마 다 정리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방인혁, <한국의 변혁운동, 사상운동>은 

1980년대를 중심으로, 국내 마르크스주의 전망에 대한 사상적인 기조만 다뤘다. 

긴 분량에 걸맞게, 어느 정도, 개요를 파악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경제학마저 다뤄야 하기 때문에, 


<현대 마르크스 경제학 쟁점들>, <마르크스와 한국 경제>도 정리해서 읽고는 싶다. 

본인과 관련해서는 대학가에서도, 마르크스주의 토론회들이 일부 보인다는 걸 알고 있다.  

정작 너무나 벗어난 주제들을 보자면, 일반인들은 참석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정리하지도 못하고, 심화하지도 못한, 학문적 유행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더욱 복잡한 논의들이다.  

 

주로 스탈린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 사상에 대한 평가는 주를 이루거나, 역사적이고, 비교 문헌들로 구성했다. 아직은 수입에 의존된 마르크스주의를 기반하거나, 바탕으로 서술했다는 흠이 있다. 또한, 북한과 주체 사상에 대한 이전, 근거 자료 부족도 보인다. 보다 심화된 사상적 서술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대체로는 중복된 내용들도 상당 수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 국내 마르크스주의와 경제학들을 정리한, 저작들은 드물지만, 실천에 기반한 역사적인 의의를 되짚어 볼 기회였다. 그러나, 국내 여러 운동가들에 대한 소개보다, 주로 사상에만 치우친 탓에, 통계나, 분석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은, 산별적이거나, 분산됐다. 


제2인터내셔널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루카치, 코르쉬, 마르쿠제와 같은 비판과 영향력에 비견할 때도, 짙은 수정주의 경향과 경제 결정론, 자연 변증법에 대한 엥겔스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인터내셔널(국제노동협회)에 대한 혁명에 대한 성과들과 뜻을 되새겨보지는 않았고, 그대로 혁명에 대한 패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초기화를 반동화라고 부르고자 한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후기 마르크스주의와도 깊은 이론적 관계를 맺었고, 다름 아닌 상부적 토대와도 지배적으로 교류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단지 소수 견해가 아니라, 통일관에 대한 일부로는 대중들의 선택을 고려하자는 주장들도 있다. 그러나, 꼭 자유 진영에서만 통일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역대 정부들은, 평화적인 통일을 실천하고자 했지만, 북진 통일을 내세워서, 자주적인 통일에 기여하자는 생각들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바로, 북한과의 전쟁으로부터 무력으로 통일을 내세운다. 그러나 대체로 무력을 내세우거나, 도발하는 쪽은 늘 남한 쪽이었다. 단지 대중들의 선택을 고려하기에는, 서동독이 분단됐을 때를 생각해봐도 장벽이 무너지고, 아무리 서로의 진영에 대한 우세를 강조하고, 계급적 타협과 통일에 대한 염원들을 지우는게, 곧바로 현실적이라 말한다. 노동계급들은 비참하고, 비루한 삶을 견딘다. 겉으로는 아무리 기적 같이 보여도, 부정된 현실에는 직면하고 도전한 현실도 있기 때문이다. 자국의 편의를 내세우고,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대중만을 위한 그러한 통일이라면 죽는다. 지배자들과 (소)자본가만을 위한 무리 섞인 대중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국내 운동권들도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과 실천에서도 얼마나 무너졌는지는 되도록 돌아가지는 말고, 그대로 가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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