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술사
이원정 지음 / 양양하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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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할 수 없이 괴로운 감정을 느끼면, 이딴 감정은 대체 왜 만들어졌는지 신이 원망스러워진다.
아끼신다더니, 왜 고통을 주시는 걸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는데 날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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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술사 (#이원정 지음 #양양하다 출판)은 피에서 감정을 걸러낼 수 있는 연금술사이자 스스로 신이라 칭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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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의 피를 뽑아내 증류시켜 부(-)의 감정만 걸러내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썩지 않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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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려 하는 존재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이 스스로 목을 꺾는 일이 벌어진다.
괜찮다. 슬픔을 정제하면 된다. 아들의 피를 뽑아 증류를 시도하지만 감정을 걸러내지 못하고, 심지어 증류기마저 파괴되어 버린다.
남김없이 증발되어 버린 피. 아들에게 담겨 있던 깊은 슬픔까지 모든 감정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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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더 이상 신이 아닌 남자는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아이를 데려온다. 달빛에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자꾸만 자신을 남겨두고 집을 나서는 어른에게 표현할 수 없는,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끌어올라 괴로워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그 감정을 덜컥 깨닫는다.
“나는 슬프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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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는다는 것. 그것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
썩는다는 것은 순환이다. 활짝 피어 생생한 것은 당연히 향도 짙고 색도 아름답다. 하지만 시들어 말라버린 것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서로 다른 매력을 즐기다 결국에는 분해되어 또다시 생명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되는 양분이 되고 무언가가 태어나고 생기를 얻고, 시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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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도 마찬가지다.
마냥 행복함만 느낀다면 언제까지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까. 밝다는 것은 어둠이 있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행복도 슬픔이 있어야 행복함을 느끼고, 소중함을 안다.
슬픔의 역할은 이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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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여왔던 것들을 눈물로 내보낼 수 있게 한다. 가득 고이기만 하면 숨 쉴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비워줘야 숨 쉴 수 있고, 비운 만큼 다시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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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행복 슬픔 눈물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사이클로 순환되어야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즐기고 누릴 수 있다.
감정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어야 충만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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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사라진 삶은 단조롭다.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오로지 마침표뿐이다.
쉼표도, 느낌표도, 물음표도, 이모티콘도 아무것도 없는 삶. <감정술사> 마지막에서 아이가 슬픔이라는 것을 깨닫는 장면은 무성영화 마지막에 단 한 마디 대사가 육성으로 들리는 것만큼의 후련함과 쾌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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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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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조금 더 본래의 색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슬픔을 비롯한 모든 감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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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 위해서 반대되는 것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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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ㅣ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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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 포탄으로 인해 생매장된 병사.
그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것은 언제부터 묻혀 있었는지 모를 말 사체의 입으로 올라오는 냄새나는 매캐한 가스를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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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땅속에서 버텨내는 병사를 구해낸 것은 또 다른 병사였다. 하지만 그는 구해내는 와중에 포탄을 맞아 아래턱이 날아가 말 그대로 얼굴에 구멍이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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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로, 본능적으로 달려들었으나 이 잔혹한 참상은 개인 둘을 가족보다 더 가깝게 묶어버렸다. 동등하지만은 않은, 누군가는 누군가를 계속 돌봐야만 하는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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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피에르르메트르 지음 #열린책들 출판)의 시작 배경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전사한 영웅들보다 못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에두아르와 마야르. 마야르는 자신을 지키다 얼굴과 인생을 잃어버린 에두아르를 돌보느라 지쳐버렸다. 이 모든 것을 불구덩이로, 그리고 흙구덩이로 밀어 넣은 프라델 대위 때문이지만 그 앞에서 마야르는 떨기만 할 뿐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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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도 프라델은 부잣집안과 결혼하여 승승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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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아질 기미가 없는 지옥보다 지옥 같은 삶에서 에두아르는 죽은 영웅들을 위해 만들어질 기념탑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대사기극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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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모인 백만 프랑.
마야르와 에두아르는 프랑스를 떠나 새로운 삶을 꿈꾼다.
떠나는 배를 타기로 한 당일.
과연 그 둘은 무사히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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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는 통쾌한 복수극이 맞을까.
과연 누구를 위한, 누구를 향한 복수였나 책을 덮은 지금까지 생각 중이다. 책에서 설정된 원수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악인은 결국 벌을 받는 권선징악 엔딩이라고 하기에는 완벽한 선은 없다. 그저 살기 위해 바둥거리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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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극도 아니고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벌받는 사람도 있고, 구원받는 사람도 있고, 나름의 해피엔딩이라 부를 결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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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을 다 차치하고, 인물들은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살아간다. 그렇다. 그것은 그럼에도 살아가고 살아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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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의 오색찬란한 마스크, 마야르의 말대가리.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이들에게 그것들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이자 숨통이었다. 삶이라는 것은 대부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실패들은 쌓이면서 자신감을 앗아가고 가슴을 당당히 펼 수 없게 해 숨이 막히게 한다. 어떤 실패들은 심지어 회복하지 못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살아있으니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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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인물이 그러했듯 우리에게도 그런 숨통들이 필요하다. 해피엔딩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효과만은 확실한 각자의 숨통을 단단히 움켜쥔 채, 계속 살아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그럼에도 살아내는 것.
그것이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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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의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 2 - 헤라클레스
이우일 지음, 이준석 감수 / 비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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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어린 시절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한 이 신화를 무척 좋아했다. 책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재미로 책을 읽는 행위와 멀어지면서 머릿속에서 신화의 이야기는 듬성듬성 구멍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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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오디세이’도 신화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꾸준히 수많은 버전의 책이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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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인 #이우일의만화그리스로마신화 (#이우일 만화 #비채 출판)은 이우일 작가가 ‘오이디푸스 왕’, ‘오뒷세이아’ 같은 고전을 탐독하다 자신도 모르게 하루에 한두 페이지씩 신화를 그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삼 년의 시간이 흘러 3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비전문가가 그려낸 것이라는 한계도 <오뒷세이아>의 유명한 판본을 완역해낸 것으로 유명한 이준석 교수님의 감수로 완벽하게 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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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에 본 <이우일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두 번째 권으로, 너무나 유명한 영웅,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이다. 현재 오뒷세우스가 가장 핫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아마 모든 영웅의 시초는 헤라클레스가 아닐까.
반인반신, 인간으로 태어나 결국 신이 된 남자의 일대기를 이우일 작가의 산뜻하지만 유치하지 않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따라가면 순식간에 책 한 권이 끝난다.
에우뤼스테우스 왕이 내리는 12개의 과업을 달성하는 순간은 지극히 영웅 같기도, 신 같기도, 인간 같기도 하다.
조각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헤라클레스와 달리, 이 책 속의 헤라클레스는 어딘가 순박하다. 그래서 친근하다. 그가 분노하고 사랑하고, 친구를 잊지 않고, 약속하고, 죄를 짓고, 속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모습들에 쉽게 이입된다. 날 때부터 너무 잘난 가까이할 수 없는 이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난관을 굴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모습이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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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으로, 신으로 지금도 당당하게 이름을 빛내는 헤라클레스이지만 그의 삶은 절대 순조롭지 않다.
물론 자신의 탓도 있지만 불사의 몸을 내던지는 순간도 절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고통들을 넘어 마침내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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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의 재능은 불사의 몸, 엄청난 힘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끈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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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넘어 영웅으로, 신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의 비유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 그것도 어렵지만 그 과정의 어려움을 포기하지 않고 피하지 않고 결국 끝까지 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완전한 인간이며 영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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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직전,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좋은 책이다. 밝은 색감과 그에 비견되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위트,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피하지 않고 이어간 헤라클레스의 모습까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던 일상으로 잘 복귀할 수 있게 기쁨과 결심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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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런 역할일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길을 보여주고 각오를 다지게 하는 것.
<이우일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것을 무겁지 않게 산뜻하게 해낼 수 있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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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신들의 우화’와 3권 ‘오뒷세우스’도 기대된다.
어려운 것을 어렵지 않고 쉽게 보이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진짜 실력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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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입문서로, 오래 곁에 두고 부담 없이 펼칠 수 있는 애독서로 곁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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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건축레시피 1 : 태도 ㅣ 이원재의 건축레시피 1
이원재 지음 / 에피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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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조각, 설치미술, 도자기, 서예, 음악.
이처럼 무수히 많은 예술 종류가 있지만, 그것들이 전시되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건축 그 자체도 하나의 훌륭한 예술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함과 동시에 수학, 과학적 방식으로 안정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예술.
그러한 건축물들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이런 것을 현실화시켰을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이 건물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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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예술을 관람하는 자세 중 하나에 속한다.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를 넘어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알면 더 흥미와 애정이 생긴다. 건축은 완성되면 그곳의 거리, 자연과 상호작용하면서 그곳에 이미 있던 것들을 변형시키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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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건축레시피 (#이원재 씀 #에피케 출판)는 유명한 건축을 만들고 만들어내고 있는 유명 건축가들과 저자(저자 자체도 대단한 건축가이다.)가 나눈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맛집 사장님께 가서 어떻게 하면 이 맛을 낼 수 있는지 레시피를 물어보고 담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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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에 비유했지만 실제라면 맛집은 레시피를 공유해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매출과 직결된 문제이니 말이다. 건축도 자신의 기술이고 노하우이며 매출과 직결되지만, 피터 쿡, 톰 위스컴, 이교석 같은 시대를 이끌고 있는 건축가들이 기꺼이 자신의 레시피를 내놓는 것은 건축이란 건축가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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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건축가와 건축을 의뢰한 사람에게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한번 지어 놓으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몇백 년을 그 주변과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이 건축물이기에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건축가들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까마득한 후배들을 이끈다는 의미로 기꺼이 자신의 레시피를 나눠주는 것이다. 다만 레시피라고 해서 특정 디자인이나 색상, 재료들을 공유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눠주는 것은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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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험을 쌓아라.’, ‘전공 외 다양한 책을 읽어라.’, ‘여행을 떠나라.’ 같은 얼핏 보면 건축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조언들을 후학들에게 권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하게, 지속 가능하고 통합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존재를 인식해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와의 관계를 확장시키려 애쓰는 것과 같은 거장들의 ‘태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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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 건축이라는 학문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 외 경험을 통해 다양하고 독특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어쩌면 건축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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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예술가의 인생이 담겨있으니.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만들어낸 작품에도 담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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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놓고 보면 건축 레시피라고 말하는 이 책은 건축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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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그로 인해 자신만의 시선을 갖추고 그 시선들을 자신의 삶 곳곳에 녹여내는 것.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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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예술이고, 그렇기에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예술가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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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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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21세기까지.
두 세대를 거친 가정사와 분 단위로 촉박하게 돌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병치되어 있다기에는 한쪽이 억울할 만큼 분량이 기울어져 있다.
도합 100년의 역사. 그중 2/3 이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가.
하지만 이런 기울어짐은 결국 2대가 아니라 3대에 걸친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분량이 적은 것이 좋다.
앞으로 써 내려갈 내용이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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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않는노래 (#최진영 지음 #한겨레출판 )의 이야기다. 100년 한 세대를 담고 있는 이야기는 삼 대, 4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다. 태어나자마자 남의 집으로 갈 사람이라며, 장손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면서 그것을 희생이라 자기 자신들조차도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부터 독립, 6.25, 독재정권과 같은 현대사의 굵직한 이야기도 당연히 함께 진행된다.
이런 현대사들을 배우면서 그런 아픔들을 지나면서 지금이 있을 수 있었다라는 교훈을 얻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아름다운 해피엔딩 같은 교훈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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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고 먹고 살기가 좋아졌어도, 구체적인 모습만 조금씩 변할 뿐, 책 속 여성들의 처지는 변하지 않는다.
어떤 부분은 오히려 더 힘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 시대의 분들이 보면 이런 태평성대가 없는데 말이다.
저마다의 사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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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가는 것일까?
행복하려고?
그럼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럼 왜 살고 있는 것일까? 살면서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면서 왜 그렇게 억척같이 살아내는 걸까. 말로 뱉어내지 못할 후회만 가득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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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노래> 속 인물들은 말 그대로 죽을 위기를 넘기며 악착같이 살아남아 행복하지 않다면서도 당연하듯 오늘을 내일을 살아가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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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의 세월을 불행만 했다면 나는 왜 이 이야기를 내 시간을 써가며 읽었던 것일까. 한숨이 저절로 나올 만큼 답답했지만 그럼에도 몰입되었다.
현재보다 20세기 초반이 더 현실감이 없어 SF 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살아있으니까.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것은 거짓이다. 아직 끝을 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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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태어나면서 끝이라는 것은 확정된다.
나의 끝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한 것이다.
그 궁금증은 행복과 불행도 초월한다.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분명 찾아오지만, 그 궁금증은 다시 걸을 수 있게 스스로를 격려하는 노랫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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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100여 년의 역사와 그 속에서 고생만 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그 시절,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아직 이 책에 쓰여지지 않은 그때는 미래였으나 지금은 어제였다 오늘인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바통을 이어받는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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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도 우리 모르게 나지막이 부르는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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