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1 ㅣ 비룡소 클래식 43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제시 윌콕스 스미스 외 그림,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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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
부러움이란 감정은 끝이 있을까.
꼭 여성스러워야 할까.
수많은 질문들이 네 자매의 일상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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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함을 싫어하면서도 힘든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 누군가는 일을 하러 다니고, 놀이에 필요한 것들은 할 수 있는 한 만들고, 진지하게 피아노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지만 덜그럭거리는 누래진 건반의 오랜 피아노를 싫은 기색을 숨기며 연주한다.
‘여자처럼’을 몹시 싫어하지만 언니의 치장을 누구보다 열심히 돕고 파티에 함께 참여한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비록 완벽한 이해는 하지 못한 것 같지만) 반대라서 오히려 끌리는 법이라며 서로의 다름에 기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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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씨들 (#루이자메이올컷 씀 #비룡소 출판)의 두툼한 첫번째 권을 넘기는 내내 동화같다는 생각을 했다.
유치하다는 뜻이 아니라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는 뜻이다. 힐링이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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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옆에 누가 사는지, 살고 있는지 비어있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사회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것 같은 다정한 유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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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여기고 있음에도 이웃이 배를 곯고 있으니 자신들의 크리스마스 기념 식사를 기꺼이 가져다 주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유복한 가정에서 살지만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한다. 이 자매의 다정한 손길은 그 온기를 전해받은 아이들이 그렇게 말했듯 천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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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만이 다정한 온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작은 아씨들>이 다시한번 알려주었다. 다른 이들을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환경만을 불행하다 여기지 않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 그 마음이 다른 이들을 사실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사실 그대로 바라보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도 필요하다. 나의 아픔과 저울질 할 필요없이 다른 이들의 다른 아픔도 똑같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나의 것이 더 뜻깊게 쓰일 수 있다면 기꺼이 나눠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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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후천적으로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인데 그렇기에 가르침이 무척 중요하다. 비룡소의 고전 시리즈가 다 그러하지만 특히 <작은 아씨들>은 아이와 부모 함께 보기에 더 좋은 이유가 이것이다. 전쟁이 났을 때 피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기꺼이 참전한 아버지. 전쟁터에서도 아내의 노고와 아이들의 사랑을 절대 잊지 않고 다정한 편지를 적어 보낸다. 그런 아버지(남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하루종일 일하는 엄마.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항상 다정하면서도 해야할 것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엄격함도 갖추고 있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기쁨을 알려주는 것도 엄마다. 나누어주자 제안하고 직접 준비하게 하고, 직접 베풀게함으로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 기쁨을 맛보고 나서는 당연히 그 기쁨을 다시 맛보기 위해 주위로 눈을 더 자주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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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가치관을 지키면서 그와동시에 수정을 하며 네 자매는 성장해간다. 더이상 아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사춘기가 떠올랐고, 누구보다 중요한 시기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중요한 성장기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아이의 성장을 통해 이제 더이상 아이가 아닌 나도 성장의 여지가 있음을 느끼고 성장하고픈 마음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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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2>에서 이 동화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끝맺음을 할지 기대된다. 책을 덮었을 때 내가 어떤 것을 깨달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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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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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개의 조각. 그 조각들을 조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원래 하나임이 분명해야 조각이라 부를 수 있을텐데. 분명히 각자가 저마다의 색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조각들로 나에게 다가온다.
‘불안’이라는 하나의 감정 때문일까.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하나의 인물, 하나의 삶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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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서 (#페르난두페소아 씀 #봄날의책 출판)은 각자의 크기로 깨어져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양의 부(-)의 감정들이 어둡게 반짝이고 있다. 실패하고, 넘어지고, 부서지고, 절망하고, 자책하고, 비난하고, 숨 쉬기를 그만두고, 끝내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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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이 그런 온갖 부(-)의 감정으로 가득함에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페소아의 침묵의 방식때문이다. 페소아는 침묵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글이라는 조용한 목소리로 자기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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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레스라는 또 다른 자신을 앞세워 자신은 온전한 침묵을 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을 가리는 것도, 드러내는 것도 <불안의 서>에 모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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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이야기가 숫자와 상관없이 자유로운 조합으로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기억한다는 행위와 비슷하다. 각각의 장면, 그 장면 중에서 일부의 것들이 아무런 개연성 없이 연결되어 또 하나의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지않나. 481개의 이야기도 여기저기에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싹틔운다. 그래서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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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으며(덮으며)떠올린 이야깃거리는, 양립할 수 없어보이는 침묵(들)과 사람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담은 <불안의 서>를 쓴 페소아는 이처럼 불안을 비롯한 부(-)의 것들이 가득한 삶을 살았으니 불행한 삶이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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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그리고 온갖 부(-)의 감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러있을 때 생겨나고, 그 힘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않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으려하는 중력과 관성, 그런 것들에 함몰되어 멈추었을 때, 내 내면의 마음과 지금 나의 행동의 어긋난 균열에서 그런 감정들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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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감정들을 물리치는 방법은 하나다. 행동하는 것.
지금의 편안함과 예상가능성을 물리치고 기꺼이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한걸음 내딛는 것. 그것이 기분 좋은 긴장감과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하고 카타르시스에서부터 시작되는 정(+)의 감정들을 느끼게 한다. 그런 미지의 위험을 예찬하고,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것. 페소아가 <불안의 서>를 쓴 것이 나는 그가 그런 위험을 향해 내딛은 족적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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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몇 번의 책이 흥행에 실패하고 몇 살에 죽었는지는 겉으로 보이는 사실일 뿐, 그가 불행해 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는 살아생전 70여개의 이명 (heteronym)을 사용했다고 한다. 가명(pseudonym)이 아닌 이명. 그는 하나의 정립된 자신이 아닌 각각의 서로다른 가능성을 지닌 자아들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자 세상 모든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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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삶의 모습이 수많은 조각들,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불안의 서>와 많이 닮아있다.
그의 삶 그 자체와 같은 책.
모두가 자신의 못난 감정을 대입할 수 있는 책.
이런 책을 써낸 사람이 충만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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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삶과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계속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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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거래소 ㅣ 루프테일 소설선
나희정 지음 / 루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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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소비하고 슬픔은 판매하세요. 감정은 순환되어야 비로소 건강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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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거래소 (#나희정 지음 #루프 출판) 속 감정을 A에서 C등급으로 나누어 판매하고 있는 ‘감정 거래소’의 홍보문구이다. 감정을 사고 판다니. 참으로 참신하다생각하며 펼친 책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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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계급의 차이가 감정에게 까지 확대되었달까. ‘금수저’, ‘은수저’처럼 ‘감정수저’가 생겨있었다.
맛보지 못한 감정은 후천적으로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고, 어떤 것에서 그런 감정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쁨과 같은 A급 감정들은 ‘감정 귀족’이라 불리는 상위 집단이 독점하고 있다. 감정 수업을 받고, 상급의 감정들을 수혈받으면서 자식도 상위 감정을 생성해 낼 수 있도록 교육시킨다. 그런 교육에서 체념, 불안, 분노와 같은 ‘쓸모없는’ C급 감정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바이러스, 균 따위처럼 접촉하지 못하게 ‘예방’하는 것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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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부터 부모에게 버려서 1g에 120만원 짜리 모성조차 맛보지 못한 주인공 ‘도윤’은 분노 생성자다. 그의 하루는 분노 200g, 2000원의 값어치를 가진다. 평범한 경비일 조차도 C등급 감정 생성이 낮아야 가능한 세상에서 도윤이 자신의 삶을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는 감정 거래소의 어두운 이면이자 아무런 감정요건이 없는 감정 폐기장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맛본 A등급 감정 평온 1g, 10만원치. 그는 그 평온 감정을 생성해낸 ’감정 귀족‘ 한지수와 1g 만큼 ’연결‘되는 것을 느낀다. 한지수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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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거래소에서 주고받는 감정은 정말 나의 감정일까?
필요에 의해 자신이 만들어 낸 A급 감정 중 1g도 자신에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일까? 평온도, 분노도 생애 처음으로 1g씩 맛본 이 둘의 변화가 이 이야기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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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귀하고 귀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것을 보고 많응 생각이 들었다. 정말 체념, 불안, 분노는 쓸모 없는 것일까? <감정 거래소>에서 분노는 사회 유지를 위해서 타인에게 팔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비용이라는 명목하게 가격이 책정된다. 아예 하등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실제 삶은 결핍이 수많은 긍정적 결과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사례를 접하고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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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대로 부(-)의 감정들을 동력으로 삼으면 안되겠지만 그런 감정들을 잘 다스리고 곱씹어 자신감이나 희망으로 치환한다면 결국 기쁨에 도달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감정들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무언가로 치환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친다.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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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책의 설정에서 하나 다행이었는 것은 모든 것의 결과와도 같은 감정인 ’기쁨‘, ’자신감‘(B등급)이 원하는 것을 얻기위한 원동력인 ’평온‘, ’열정‘, ’희망‘(A등급)보다 낮은 등급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 잘못된 사회에서도 과정이 더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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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마저 돈으로 환산되는 세계.
휘황찬란한 외관을 자랑하더라도 이곳이 디스토피아가 아니면 무엇일까.
보통의 SF소설에서 디스토피아라 하면 이미 문명이 멸망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것이 배경이었는데 <감정 거래소>는 그 이상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한 ‘눈부신’ 디스토피아의 이야기다.
그 눈부심에 눈이 멀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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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여전히 인간답기 위해서 진짜 집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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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예찬 -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방법
안 뒤푸르망텔 지음, 이세진 옮김 / 사람in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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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이상적인 삶일까.
모든 것이 예상범주에 있는 삶? 평소와 같은 삶을 계속 영위하는 삶? 그렇다는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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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예찬 (#안뒤푸르망텔 지음 #사람IN 출판)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라고, 불확실함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계속해서 도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불안해서 어떻게 살 수 있나. 잘 산다는 것은 익숙해진 것을 누리면서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나아가는 것이 더 맞지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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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위의 말은 유지하고, 지키는 것을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데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유지되고 지켜지고 있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루틴이라 여기는 것들도 지키지 못하면 지키지 못했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고 지켜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이러기를 기대받는’ 나의 모습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다. 심지어 그 모습은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어릴 때 부터 학습받아서 형성된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라면 벗어던져야 잘 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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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가만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당연하다, 괜찮다 여기는 것들 중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되고 있거나, 나의 선택이었으나 잘 맞지 않는 것들이 제법 있다.
그런 것들은 지켜야한다는 강박,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신경증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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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있으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강박에 사로잡힌 똑같은 삶.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가는 위험으로 나아가는 삶.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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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와정신분석가의 상담의 형식으로 낯선 것, 사랑, 변주, 두려움, 슬픔 등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마주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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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강박의 무게가 무거웠던 탓일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편함없는 삶은 어찌보면 포기의 결과들일지도 모른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두려워서, 쥐고 있는 것마저 놓칠까봐 많은 이유들로 포기했고 그 포기를 안전이라는 포장으로 위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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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정된 삶은 마침내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정도면 되었지 않을까 라며 어중간한 중턱에 머물러있다. 중턱은 산 아래도 아니고 정상도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에서 위의 뿌듯함도 아래의 편의성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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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 미지와의 조우. 그 불확실함을 상상하는데 마음이 가볍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자신의 마음을 얼핏 마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회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을 억압당해왔다.
억압당하는 자신을 보기 힘들어서였을까. 결국 외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바라는 것없이 똑같이 살아가는 것. 그러니 어떻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을까. 외면한 곳으로 부터 끊이지 않고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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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에 있는 ‘나’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다. 어쩌면 그렇게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면과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묵직하게 마음에 올려두었던 하지못한 말들을 내면과의 대화로 훨훨 털어내라. 그러면 깃털같아진 나는 후련하게, 그리고 기쁘게 불확실함으로 기꺼이 나아갈 것이다.
불확실함을 환대하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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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항복 미술관
두브라브카 우그레시치 지음, 조서현 옮김 / 아트북프레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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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떠올리면 하얀 벽에 적절한 핀조명을 받으며 각자의 빛을 발하고 있는 많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작품들은 누군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그 기록은 그 사람의 전부이기도 하고 파편이기도 하다. 전부이든 파편이든, 하나 확실한 것은 그 평면 너머에 무수히 넓은 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틈은 작가가 아니라 관람객의 영역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임에도 자신의 이야기와 삶. 그것에 투영시켜 그 틈에서 자신만의 감상을 길어올린다.
그것이 아픔일수도, 기쁨일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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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항복미술관 (#두브라브카우그레시치 지음 #아트북프레스 출판)은 제목에서 말하는 하얀 벽의 미술관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나라, 그 나라에 속하면서 향유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 어느 곳에도 환영받지 못하고 속하지 못하며, 그래도 물리적으로 육체가 머무르고 있는 곳의 언어도 한두마디 정도 밖에 뱉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각조각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다. 글 조각들이 ‘무조건 항복’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있는 언어의 박물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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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글들 하나하나가 명확하게 하나를 향해 이야기를 진행해 주지 않는다. 어찌보면 글 조각 하나만 보았을 때에도 별다른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뭔가 특별히 와닿고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천천히 읽어나가면 어느순간 머릿속에서 번뜩임이 발생한다.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고 별 의미없는 것 같았던 글들이 앞 어딘가에서 보았던 흐릿한 기억만 남아있는 무언가와 합쳐져 나에게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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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사진론이 꼭 정리할 것이라 다짐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 비로소 앨범을 구매해 정리기준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는 어머니와 딱 한장 남편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아내의 이야기와 합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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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별로 정리할지, 시대순으로 정리할지 이리 바꾸고 저리바꾸면서 나란히 둘 사진을 고르고, 필요없는 사진을 찢어 버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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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전쟁에서 ‘사라진’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인 남자의 사진을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며 아버지란다 라며 아이에게 보여준다. 그 가진은 군복이 교묘하게 정장처럼 수정되어 있다. ‘나쁜 쪽’의 군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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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진은, “끝없이 펼쳐진 제어할 수 없는 세계를 작은 사각형 안으로 압축한 것이다.”라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 어찌할 수 없이 벌어진 일을 그럼에도 간직할 수 있게 해준다. 비록 쓸모와 생존을 위해 수정되기는 하지만. 수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살아갈 수 있게도, 그리고 쓸쓸하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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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비롯한 망명자들의 아픔. 단조로운 일상. 단순한 메모, 예술론. 이런 것들이 얽혀 <무조건 항복 미술관>이라는 사진첩이 되었다. 글로 만들어진 사진 한장한장들은 어느 것이 사실 그대로 인지 어느 것이 의도대로 편집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살아있기에, 살아가야하기에 쓰여진 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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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항복‘은 포기가 아니다. 더 많은 다음을 위한 결단이다. 비록 그 다음이 이전과는 다른 고통스럽고, 이방인의 모습일지언정,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에 더할 수 없는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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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픔이 있었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 특별해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이기도 하다라는 것을 조각조각, 하나하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그것들을 스스로 조합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가면서 더 오래 살아남아 숨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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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어나가는 단조로운 행동이 계속 이어져야 비로소 <무조건 항복>이라는 미술관의 벽에 걸려있는 것들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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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들 속 인물들이 겪은 이야기도 그렇다.
관심을 갖고 살피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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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항복 미술관>에 걸려 있는 것들을 내 안의 회랑 한 곳에 조심스럽게 걸어둔다.
잊지않고 꺼내보고 생각하고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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