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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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그것이 죽어마땅한, 세상에서 사라져야할 말그대로 ‘죽을 죄’였던 시절.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거리를 두고 7살 차이의 두 예술가의 적극적인 그려야만, 써야만하는 도피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법과, 자신을 낳아주었으나 사십평생 자신을 옥죄는 감옥같았던 아버지와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생각과 시선으로 부터.

그 두사람은 자신의 글로 죽을 때까지 유명세를 얻지 못했고, 자신의 그림은 외설적인 포르노로 낙인찍혀 눈 앞에서 불태워졌다. 이 둘의 이름은 각각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에곤 실레이다. 문학계에서 미술계에서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현상이자 역사인 이 사람들을 빼놓고 각 분야를 논할 수 없는 사람인데 저런 지난한 고통의 순간들을 걸어왔다니.

더 놀라운 것은 이 두 사람이 하나의 책에 병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나지않은쌍둥이 (#홍선기 엮음 #모티브 출판)책에 담겨 있는 이 둘은 쌍둥이로, 하나의 융합체로 여겨진다. 카프카는 자신을 벌레로, 100점이 넘는 자화상에서 실레는 스스로를 마르고 툭 튀어나오고 눈은 공허하게, 아름답지 않게 그렸다.

무엇이 그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똑같이’스스로를 그려내게 만들었을까. 그것이 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 두 예술가가 한 테이블에 앉아 지금의 우리에게 건내는 묵직한 질문이다.

그들의 짧은 생애에는 고통이 가득했지만 고통만이 있던 것은 아니다. 깐깐한 그 둘의 성격에도 마음에 들만한 작품을 완성해낸 적도 있고 좋은 인연들과 웃기도 했으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은 어둡다. 괴롭고 안쓰럽다. 평생을 집필한 글을 자신이 죽으면 님김없이 태워달라 유언을 남기는 작가의 심정은 무엇일까. 안정을 찾아 단란한 가정을 꿈꿨으나 마지막으로 그린그림이 임종을 앞둔 아내의 모습이었던 화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분해하고 불안해 하던 그들의 부(-)의 감정들이 그들을 좀먹은 것일까. 결국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고 친구덕에 출간되어 수많은 이들의 인생 책이 되었고 불살라지던 그림은 세상에 남아 수많은 관람객이 그의 그림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들이 쓰고 그린 것들에서 인생의 전부가 아닌 슬픔과 불안이 가득담겨있었던 것은 글과 그림이 그들의 도피처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그림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자신을 좀 먹을 때 그들은 붓을, 펜을 들었다. 그리고 종이에다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토해냈다. 자신을 채우고 있는 그것들을 종이에 토해냄으로 그들은 숨을 쉰 것이다.

그렇게까지해서 포기하지않고 처절한 예술의 길을 걸었던 이들이 이제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에게도 우리와 같은 이런 불안이 있냐고.
그렇다면 어디 숨을 곳이 있냐고.
그 숨을 곳에서 너는 평안하냐고.
그렇게 구원을 얻었으냐고. 안녕하냐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술가 ‘쌍둥이’지만 나는 간절히 바랬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까지 포함해 ‘세쌍둥이’가 되지 않기를. 별나구나, 안타깝구나 여기고 적절히 풀어내고 담아내며 행복을 즐기며 살아가기를.

물론 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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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가족에 관한 글쓰기 - 가족 가면 벗기기
양혜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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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아무리 잘 쓰여지고 ‘고전’이라는 이름이 붙어 여전히 널리 읽힌다하더라도 태생적 한계를 가지는데, 어쩔 수 없는 시간의 고정성이 그것이다. 그 시절의 모습이 담길 수 밖에 없기에 그 시절이 지나 더이상 그 시절이 아닐 때 어쩔 수 없이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들이 옛날 이야기, 시대에 맞지않다라는 이유로 더이상 읽혀지고 말해지지 않고 사라진다.
우리나라는 근현대에 급격한 시대의 변화를 맞이해서 그런지 최근 100년의 모습이 짧은 시대간격으로 큰 변화를 지니고 있다. 그만큼 빨리 더이상 통하지 않는 옛날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발전이 극에 달했다고 여겼던 지금, AI의 발전으로 말도안되는 속도로 다시한번 변하고 있으니 이야기의 유효기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시대상의 모습을 입고 있음에도 여전히 읽히는 옛날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박완서 작가의 책들이 그러하다. 내가 어릴 때 까지만 해도 만화 영화 속의 짱구엄마가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이라는 것이 놀랍지 않았으나 이제 돌이켜보면 나보다 어렸던, 심지어 갓 사회에 뛰어들었던 시기였음을 깨닫고 흠칫 놀라게 된다. 그러면서 짱구 엄마 아빠가 짠해보이기고,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이 짱구 이야기 시대보다 더 이전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박완서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여성이 무언가를 결정하는데에 많은 제약이 있던 시절이었다. <오만과 편견>과 같은 이야기에서나 존재할 것이라 믿었던 결혼을 위해 살아가는 시대의 여성이 바로 박완서 작가 본인이었다.

사랑보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박완서라는 자신의 고유명사보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딸이라는 대체가능함에도 대체불가능한 아이러니한 집단명사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았던 그 시대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세대, 우리보다 더 어린 세대에게도 유효한 울림을 준다. 작가의 글 실력 때문일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박완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겠지.

#박완서가족에대한글쓰기 (#양혜원 씀 #책읽는고양이 출판)를 쓴 저자도 박완서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평생동안 연구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애정은 보장된 것일테니 이 책을 쓴 이유는 아마도 박완서에 대한, 박완서 글에 대한 자랑과 자부심일 것이다.

여전히 읽히지만 ‘아직도 박완서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구나’같은 반응이 아니라 여전히 주류임을 바라며 더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벌어져있는 시간의 틈을 저자가 메우고 있다. 가족이, 사랑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시간이 지나면서어떤 모습을 지녔는지. 그래서 이 작품에서 박완서 작가가 차용한 가족의 모습은 이러한 것들을 반영하고 의미하고 있다고 해설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 속 양혜원 저자만의 깨달음도 담겨있어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고싶게 만든다.
마흔에 작가가 된 박완서 작가가 요구받던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선택한 자신의 역할, 글쓰기. 그런 글쓰기에 그토록 자신을 얽매였던 가족이 가득 담겨있던 것은 왜 때문일까. 그때까지 평생이 소속되어 있던 가족이자신이 가장 잘 알고 할 말이 많은 ‘노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숨기고 의미를 담으려면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이어야 자신의 진의에 가장 잘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들보다 조금은 덜 품을 들여도 될 테니까.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내 나름대로의 이유는 의미와 형태가 변하더라도 가족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존재할테니까. 시대가 변해도 결국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가족이지 않을까이다.
박완서 작가가 던진 가족은 힘인지, 굴레인지 질문이 여전히 희대의 난제인 것만봐도 가족이라는 주제의 범시대성은 충분해보인다.

여성, 가족, 글쓰기, 요구받는 역할과 스스로 원하는 역할, 그리고 박완서라는 작가에 대해 수많은 물음표를 띠우게 하는 책이다. 답을 내리기 위해 박완서 작가의 책을 펼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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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빛의 순간들 - 100개의 대표작으로 만나는 클로드 모네의 모든 것
박송이 지음 / 빅피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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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관심을 갖게 해준 해외 작가 2명, 국내 작가 2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모네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로 모네를 꼽겠지만 나는 뭐랄까 굳이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모네보다는 모네의 수련 연작을 더 좋아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에 둘러싸여 하루종일 머물고 싶은게 버킷리스트일만큼.

그리고 모네라는 이름으로 인상주의를 좋아한다. 얼마나 똑같이 그리냐가 아니라 그 순간에 무엇을 느꼈는지, 그 순간의 인상을 솔직하게 담아내려고 애쓰는 그들의 그림들의 몽글몽글한 색감을 좋아한다. 실제 모습에는 없었을 것 같은 색을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색의 덩어리에서 인상적인 하나로 뽑아내 과감하게 사용하는 표현법이 나에게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제일 좋아하는지는 알수없으나 나만의 미술사의 대부분에 빠지지않는 이름인 모네. 돌아보니 나는 모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없었다. 모네를 떠올리면 자신이 직접 가꾼 지베르니 정원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있는 긴턱수염의 나이든 모습 뿐이다.

그의 화풍의 변화도 최근에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 알게되었을뿐 수련으로 대표되는 정확한 형상이 없는 빛의 덩어리같은 말년의 화풍만이 머리에 가득하다.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떤 계기와 인연으로 풍경화가가 되었는지, 그런 화풍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모네빛의순간들 (#박송이 지음 #빅피시 출판)은 그런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에 완벽한 책이었다.

십대 때 캐리커처로 그림을 시작했다는 것, 특징을 빠르게 그려내는 모네의 빠른 손의 재능을 알아보고 풍경화가의 길로 이끈 스승 부댕, 모델로 만난 영원의 사랑 카미유, 그녀가 1인 다역을 자처하며 둘이 완성시켜나가는 모네만의 인상주의, 돈을 벌기위해 정물화를 스스로 그려내는 선택을 하게 한 아들 장, 묵묵히 후배를 응원해준 멋진 선배 마네, 모네의 인상주의 화풍을 누구보다 먼저 인정하고 풍족한 한 때를 선물해준 화상 뒤랑뤼엘 등 수많은 인연들과 이야기가 르아브르, 아르장퇴유, 베퇴유, 지베르니를 따라 흘러나오고 있다.

그렇게 몰랐던 모네의 초기작들을 보며 <까치>와 <아르장퇴유 정원의 한편>같은 감탄을 불러일이는 새로운 작품들과 만나는 경험은 이 책의 매력이자 모네라는 예술가를 좀 더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수련>뿐만이 아니구나. 자신만의 답을 찾던 과정의 결과까지도 너무나 멋졌던 사람이구나. 감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수련>을 최애로 여기는 나에게 지난한 삶을 지나 도착한 지베르니에서의 절대적 고독의 순간이 그럼에도 가장 깊게 새겨졌다.
쨍한 빛을 너무나 오랜시간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렸던 탓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가는 참담한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청년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끝없이 그림을 그렸다. 약해진 시력으로 그런 불특정한 형태나 나왔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오히려 그가 보낸 시간과 그런 상태가 맞물려 오직 그만이 바라볼 수 있는 진실된 무언가가 있지않았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걸어온 길은 순례길을 걷는 것 같았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물집은 물론 발을 디디는 것부터 쉽지않은 날의 연속이다. 그런 나날들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그럼에도 걷는 것이다. 하루라도 쉬어버리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행복, 불행, 모두와 함께하는 순간, 이별, 고독. 인생의 모든 순간 그는 주저앉지않는 순례자였다. 그런 순례자는 마침내 구원을 얻었다. 빛의 순간들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담아낸 2500여점의 작품들을 남겼고 사후 100년이 된 지금도 인류의 보물로 남아있는 빛의 구원을. 이정도면 다시만난 카미유, 장과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지 않을까.

매순간 최선을 다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인생 자체로 다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작품을 보여준 이가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온기가 담긴 책이다.
그 온기는 감동과 위안, 위로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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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하루
김영글.안희제.정우열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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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제대를 하고 집에 와보니 작고 하얀 동생이 하나 생겼다. 동그란 구체의 얼굴에 비해 몹시 큰 두 눈에는 낯선이에 대한 불안함이 가득했다.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와서 우리가 모르는 아픔이 있는 것일까. 이리와 보다 저리가를 더 잘하던 토리. 아직도 터덜터덜 돌아가던 그 작은 뒷모습이 선명하다.

토리를 만나고 2년이 채 되지 못했을 때 또 다른 동생이 하나 더 생겼다. 부모와 형제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씩씩하게 살아남아 동물병원에 있던 러시안블루 미노.
아기 때 하늘 색 눈동자가 푸른 별 같았다. 어찌나 사람을 잘 따르는지 자고 있으면 어느새 침대 내 옆으로 뛰어올라 내 손바닥을 베고 몇시간을 배를 드러내놓고 쿨쿨잤다. (몇시간이었던 이유는 온 식구들 곁에 가서 자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합방의 문제를 생각해보지도 못할만큼 순했던 토리와 미노는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함께 했다.
다들 동안이라 마지막까지도 애기같았다. 겉으로는 나이듦이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둘 모두 사진으로, 메모리스톤이라는 이름의 반짝이는 돌로 남아있다.

#반려인의하루 (#김영글 #안희제 #정우열 지음 #을유문화사 출판)은 반려견, 반려식물, 반려묘를 키우는 세사람의 짧은 글들이 모여져 있다.
3마리의 길냥이 출신 고양이, 여전히 푸르르며 수확의 기쁨도 느끼게 해주는 식물, 반려인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19살 노견. 그들과 함께한 삶의 순간순간을 코로나시기부터 글이 엮여 하나의 책이 완성되는 최근의 근황까지 담겨있는데,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반려인들에게는 마냥 반갑지 않다는 것을 같은 반려인이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다뤄진 상실감은 너무 큰 슬픔이 아니라 공감의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나도 두 동생을 떠나보냈을 때 이제 다시는 안키운다. 또 보낼 생각하니 엄두가 안난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가에는 고양이 하나 강아지 하나가 또 있다. 고양이 ’라지‘는 토리 미노와 함께 있었던 막내였지만 지금은 최고참이 된 녀석이고, 막내 강산이는 이제 갓 세살이 된 왕성한 활동성을 보여주는 녀석이다.
본가네 갈 때마다 엉덩이를 내 허벅지에 올리고 모른척 앞만 보고있는 강산이와 자다보면 어느새 옆에서 몸을 말고 자고 있는 라지를 보고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물론 또 키우고 키우지 않고는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떠나보낼 때의 슬픔만을 크게 여기기에는 그들에게 받은 기쁨과 따뜻한 온도, 사랑과 충만함이 너무나 크다. 슬픈 이유도 그들에게 받았던 것들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라는 단어로 바뀐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일방적 돌봄이 아니라 쌍방의 돌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라며 물도 주고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놀아도 주고 산책도 시켜주고 화장실도 치워주지만 돌이켜보면 나에게 준 조건없는 무한한 애정과 기대는 마음이 나를 의미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해줬다.
그것으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었고, 지나가는 강아지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건낼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헤어짐의 아픔은 내 몸에 이렇게 눈물이 많았나를 확인할 수 있을만큼 아프지만 그래도 함께했던 것을 후회하게 하지 않는다. 함께했던 그 순간의 힘으로 앞으로도 살아낸다. 이 책은 그렇게 점점 흐려지고 있던 반려들과의 일상을 다시 떠올리고 지금을 담아내고 그로인해 조금은 덤덤한 인사를 비로소 보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플 줄 알면서도 기꺼이 걸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함께 보듬어져 가야할 함께 살아가야할 반려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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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스즈키 도시타카 지음, 김소연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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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과 떨어진 팬션같은 곳에서는 아침에 알람이 필요없다. 온갖 새소리가 티비를 켜놓았나 착각이 들 만큼, 또렷하고 커다랗게 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커피를 시원하게 태워서 음악처럼 새소리를 감상하면 얼마나 행복하던지.

새소리를 참 신비롭다. 어릴적부터 싫지 않았다. 새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내는 새를 찾기위해 나무 위를 바라보며 걸었다. 그러다 넘어서 무릎은 온통 상처 투성이였다. 그러다 부모님이 쌍안경을 사주셨는데 그때부터는 안전하게 제자리에 서서 이리저리 나무 위를 샅샅이 뒤질 수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일요일 아침마다 커피한잔과 어머니와 함께 동물농장 프로그램을 볼때면 윤무부 박사님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새를 얼마나 좋아하면 새로 박사가, 교수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동물행동학. 적어도 수십년의 데이터가 누적이 되어야 의미있는 자료가 되는 학문. 옛날 카메라 광고의 카피라이트였던 ‘72시간의 기다림’따위는 우습다. 기본으로 몇달은 인세와 멀어져 대상 동물이 경계해야할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한다.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스즈키 도시타카 지음 / 오팬하우스 출판)는 한 술 더 뜬다. 새의 행동이 아니라 ‘언어’를 연구하는 ‘동물언어학’을 창시한 진정한 새 러버다. 이 책에는 우연히 새의 울음소리가 감정을 넘어 특정 정보를 담은 우리의 언어와 같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것을 검정하기 위해 바친 저자의 15년이 위트있게 담겨있다. 하루종일, 15년을 새만 바라보는 이야기. 생각만해도 지루할 듯 하지만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무언가를 이토록 좋아한 적이 있었나 싶기도하다.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산을 내려가야하는 두시간. 그 두시간이면 실험을 한번이라도 더 한다라는 생각으로 반찬없이 쌀로만 한달을 버티는 ‘덕후력’은 ‘세상은 덕후가 이끈다’라는 말이 절로 떠올리기에 충분, 아니 차고 넘쳤다.

기본적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에서 부터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 까지. 변호사나 회계사가 사회 초년차에 하루 대부분을 갈아넣으며 존재이유를 증명하던 것들이 이제는 AI가 클릭 한번에 끝내면서 단순 반복 노동에 진득하게 시간을 들이는 것을 어리석다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도 성능좋은 카메라를 똑똑한 AI와 연동시켜 관찰하게 하고 비슷한 유형끼리 분류하라고 하면 금방금방 인간이 하는 것 보다 더 정확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저자처럼 문득, 번뜩이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까? 언어학의 아버지 촘스키는 언어를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단정지었다.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런 방대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검색하는 AI가 대부분의 자료가 가리키는 것과 반대되는 주장을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심지어 그 말도안되는 가설을 증명하기위해 15년을 바칠 확률은?

누가보면 어리석다, 이런 것으로도 돈을 번다 싶은 일이 가장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일이 되었다.
인간이란, 의미없어 보이는 무언가에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쏟아부어 관찰하고, 그 안에서 말도 안되는 가설을 찾아 검증하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걸어나가는 종이다.
그렇기에 다른 동물들과 다른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여기게 된 것이다.

인간의 저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직접적으로 보고 들리는 표현형이 다를 뿐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닌 똑같은 동물임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유쾌하게 느껴질만큼 천진무구한 인간의 호기심과 ‘덕업일치’의 꿈도 꾸게 만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있거나, 무언가의 덕후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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