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타티프
토니 모리슨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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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타와 트와일라.
이 흑인 또는 백인(누가 백인인지 흑인인지 정확하게 정해져있지않다) 여덟 살 소녀들의 삶 수십년이 50페이지의 짧은 분량에서 쏜살같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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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이자 둘이 공유하고 있는 보호 시설에서의 함께 했던 기억에서부터 성인 여성으로, 엄마로 살아가면서 중간중간 만나 묶는 매듭은 썩 유쾌하지 못하다. 함께 했던 보호 시설에서의 기억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불량소녀들의 괴롭힘을 당하는 나이든 여성을 방관했는지 동조해 괴롭혔는지, 그녀가 백인이었는지 흑인이었는지 너무나 큰 차이임에도 정반대의 기억.
이러한 정반대는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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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부유하고 누군가는 힘겹게 살아가고, 누군가는 부모의 권리를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식의 권리를 옹호한다. 이렇게 시소처럼 누가 흑인인 것 같았다가 백인인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어 인종을 맞춰야 하는 것 같지만 인종보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우위에 서고 약자가 생겨나는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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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강자. 영원한 약자.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지만 특히나 영원한 강자와 약자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가 살아있어서가 아니다. 억눌린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더 못한 상황의 사람들을 발견하고 되갚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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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듬어준다라는 아름다운 해결책도 있지만, 당한 것이 있는 입장에서 윤리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어딘가 해소라도 해야 겨우겨우 살아나갈 수 있지 않나. 인종과 윤리, 분명 집에 있으나 집이 아닌 것 같은 디아스포라. 아마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쪽과 저쪽으로 명확하게 둘로 나누는 것을 계속하다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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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희고 검은 것보다 회색이 더 많다. 완전히 극에 치우쳐 있는 것은 잘 없다. 하지만 나와 다르면 그때부터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그만두고 선을 긋는다. 그렇게 이쪽저쪽으로 사방팔방으로 선을 긋다보니 내가 오롯이 발디딜 곳 하나 없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하나 없다. 저마다 자기가 그어놓은 선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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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립애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선을 지우고 선 너머에 있던 사람들을 이분법적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는 것.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같은 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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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과 인종, 기억, 우정, 폭력, 방관, 배척.
짧은 이야기 속에서 끊이없이 이것들이 쏟아져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갖혀있지 말고 넓게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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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ㅣ 을유사상고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사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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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던 니체.
드디어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프리드리히니체 씀 #을유문화사 출판)을 마침내 펼쳐 평소보다 조금 더 큰 덩어리로 그를 만났다.
책을 읽지 않아도, 철학을 몰라도 니체라는 이름과 저 문장은 많은 사람들이 안다. 이것에서부터 오해는 쌓여간다. ‘신’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반종교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우니까 말이다. 물론 그 ‘신’도 포함되어 있지만 ‘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그 짐이 정말 당신의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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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짐에 억눌려 한걸음 겨우 내딛으며 살아간다. ‘학생이라면’, ‘남자라면’, ‘가장이라면’, ‘여자라면’, ‘어른이라면’ 같은 짐들 말이다. 이런 것들 누가 만든 짐인가? 정말 우리 스스로가 몇날며칠 심사숙소한 결과인가? 이 ‘짐’이 바로 ‘신’이다.
니체는 ‘신’으로 대표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누군가들이 제각각의 연유로 합의하고(또는 강제한) 존재해오고 있는 규율들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에서 벗어나고 자기 자신이 궁리하면서 만든 ‘진짜’규정들을 지켜나가는 정신을 가지기를 니체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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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간이 나아가는 정신 변용의 과정을 니체는 낙타, 사자, 아이로 구분짓는다. 위의 짐들을 짊어지고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무분별한 상태가 낙타, 정말 당신의 짐이 맞는가 라는 ‘용’(오랫동안 존재하며 커지고 굳어진 기존의 규범)의 뜨거운 입김과 같은 질문에 아니라며 포효하며 맞서는 것이 사자, 아니라고 거부하는 것을 넘어 놀이하듯이 자신을 발견하는데 온마음을 다하고 자기만의 규칙을 정하고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 재미있다는 듯 웃어넘기며 다시 그 과정들을 반복하는 것이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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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다시 일어나 반복하는 것.
이것이 니체가 주장하는 초인(위버멘쉬)의 조건이다.
만들어낸 규칙은 시간이 지나며 겪는 경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에게 또다른 기존의 것이 될 뿐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놀이하듯 즐겁게, 그리고 능동적이고 진심으로(놀이에 진심이지 않을 수 있나) 넘어지고 깨져도 또 다시 일어나 파괴하고 탈피하는 사자와 아이를 무한히 반복하는 ‘강자’이다.
말이 쉽지 니체도 사람인지라 넘어지고 깨지는 과정동안 고통스러워하고 흔들린다. 이것을 니체는 춤으로 극복한다.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의 말에 의하면 니체는 정신으로 춤을 춘 최초의 춤추는 철학자였다.
춤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면서 발 끝으로, 직접 세상을 느낀다. 능동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며 반복으로 동작을 익히고 능숙해진다. 마침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세상과 하나가 된다. 주체성과 끝없는 나아감(반복)은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 ‘웃음’까지.
그렇게 니체는 마침내 명랑의 철학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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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의 힘으로, 초인적 심상으로 니체는 ‘영원회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반복이, 이 삶이 계속해서 반복되더라도 너는 이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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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의 선택이 반복되기에 주저앉을 것인가. 그렇기에, 그럼에도 기꺼이 반복 위에 올라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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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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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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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의, 우리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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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안의 사람을 읽는 눈
발타사르 그라시안 지음, 김철 편역 / 히읏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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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하면서 삶은 나날이 풍족해지고 편해지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에서 표류한다. 즐거움을 찾지못하고 마음을 털어놓을 대나무숲도 없다.
그냥 작은 방에 몸을 누이는 것. 그것만이 위안이 된 시대이다. 빠르고 복잡해진 사회 그 자체가 문제일까?
사람이다. 사회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사람사이를 신경쓸 겨를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일단 눈 앞에 주어진 것들을 해내야 하기때문에 자신을 살펴보는 것은 나중으로 차일피일 미루어진다. 그러다보니 타인도 살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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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안의사람을읽는눈 (#발타자르그라시안 씀 #히읏 출판)은 400년 전 학자이자 사제였던 그라시안의 인간관계에 대한 글들이 적혀있다.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문장들도 있고, 처음 생각해보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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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무기요, 인품은 그 무기를 쥔 손이다.“, ”서투른 완성보다 늦은 완성이 낫다.“,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상인의 기질을 조금 가져라 순수함만으로는 세상을 살 수 없다.“, “불쾌함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같은 문장들이 고개를 끄덕이게도, 가만히 생각해보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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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처세술이란, 상사, 친구, 동료, 부하, 배우자, 자식 다양한 타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도 그 관계를 바로잡거나 점검하는 것은 그 관계 속에 있는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갈등, 불만, 온갖 반응들을 하게 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관찰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보인다. 그 상대방에 맞춰 나는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상대방이 불편해 할 질문이나 대답을 내어놓는다. 불쾌함과 불편은 적절함의 다른 이름이다. 자기 뜻대로 되지않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은 거기까지이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람은 적절한 그 무언가를 나와 함께 만들어간다. 불쾌함과 불편함이 사라질 수 있도록, 또 다시 선을 넘지않는 긴장으로 그것들이 치환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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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충분한 고민, 스스로와의 대화가 부족한 상태로 상대방만 살펴보고 있으면 상대방을 절대로 알 수 없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일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야한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어떻게 하고 싶어하는지, 왜 이렇게 했을 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이야기 나누고 답을 찾아야 한다. 나 자신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나를 이해하는 것. 그로인해 나를 잘 다스리는 것.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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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라시안의 말들은 유효했다.
결국 사람 속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들여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헛된 일은 전혀 아닐 것이다.
나, 그리고 타인과의 처세술.
그 시작으로 아주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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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저녁달 클래식 7
알베르 카뮈 지음, 김경일 기획 / 저녁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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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뫼르소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워낙 특이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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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녁달 출판의 #이방인 (#알베르카뮈 지음)으로 재독을 하면서, 그리고 김경일 교수의 해설로 내가 혼자 읽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살인범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전까지 그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웃고, 불편해하고. 하지만 읽는 우리에게 부자연스럽게 보인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솔직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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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이 날 만큼 슬프지 않아 울지 않았고, 어머니의 나이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그렇다고 말했고, 잠을 자지 못해 장례식이 얼른 끝나기를, 침대에 누워 편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랬다. 마리가 본인과의 결혼을 원하느냐 물었을 때 아니라고, 하지만 너가 원하면 내일이라도 할 수 있다 말하고, 무어인을 살해한 것을 후회하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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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짜증내고, 사랑하고, 웃고, 떠들고. 우리와 다름없다. 하지만 타인의 질문들에 사회가 응당 바라는 대답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자기자신에게 솔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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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 뿐만 아니라 미래를 확언받아 관계의 지속성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리, 부인이 죽은 뒤 데려온 강아지를 욕하고 때리면서도 개를 잃어버리자 삶에서 완전히 무너져버린 살라마노, 모든 관계를 자신이 주도해야하고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레몽까지.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했다. 사회가 바라는 정답이라 강요받는 뭉그러진 모습이 아니라 저마다의 인격체로 이름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뫼르소의 살인을 벌하는 법정과 사회는 뫼르소의 솔직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배우고 자신들이 지켜온 사회에 걸맞게 그를 재단한다. 그렇게 사회에 재단된 그들은 이름이 없다. 변호사, 판사, 검사, 배심원, 기자.
그들은 세상이 바라는 관성을 거스릴 생각조차 없다. 솔직한 대답이 아닌 해야만하는, 요구되는 답들로 그들의 삶은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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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의 살인 전 삶은 감정이 결여된 것이 아니라 권태로움에 가깝다. 파리로의 영전도, 결혼해서 안락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미래를 꿈꾸는 것도 그에겐 의미없다. 그것들보다 내리쬐는 태양, 넘실거리는 바다. 지금 이 순간 그를 자극하는 것들이 뫼르소에겐 전부이다.
그런 자유들이 억압되고 마침내 사형이 결정되면서 뫼르소의 권태로움은 끝난다. 벌이 가벼워 지는 것과 상고를 고민하는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게된다.
자꾸 찾아와 종교와 법이라는 제도 안에서 스스로를 속이는 선택을 종용하는 사제와의 대화에서 권태롭던 뫼르소는 폭발한다. 격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이 솔직했음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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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과 자기성찰.
이 두 단어가 다시 읽은 <이방인>이 나에게 남긴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나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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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게 정말로 솔직하게 살고 있냐고.
그렇게 너 자신이 살아온 삶을 진지하게 곱씹어 본 적이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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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 것은 죽음이었다. 삶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라는 유한성이 그렇게 만들었다. 길이와 방식의 차이일뿐, 우리의 삶도 유한하다. 끝에 뫼르소처럼 스스로의 지난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그것을 조금이라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이른 자기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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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단어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성찰.
나는 지금 누구의 기준에 맞춰 살고 있는가.
주체적이고 행복한 삶의 시작이 이 질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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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유영 ㅣ 창비청소년문학 149
최현진 지음 / 창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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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아픔. 상실.
한없이 아름답고 보드랍게 빛나야할 세 명의 여린 잎들.
큰 상실을 뒤로하지도 마주하지도 못하고 흔들리며 고여있다. 어른이 되려면 수없이 흔들려야한다던 책 제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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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유영 (#최현진 지음 #창비 출판)은 방콕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인기많은 관광지를 배경으로 한다. 엄마와 여행 온 삼수생 윈터,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공개하고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스위트룸으로 숨어 든 세계적인 스타 Y,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지만 생계에 뛰어 든 호텔 직원 한. 이 세 명은 그 나이게 겪기 힘든 부모님의 상실이라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이 아픔만이 다가 아니다. 살아다가보면 우리모두가 겪는 아픔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서로의 고통을 비교한다. 그러다 인정하고 도와주고싶어한다. 만약 이들이 닳고 닳은 어른이었다면 어땠을까. 끝없이 비교만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에 다른 사람의 사정은 듣고싶지도 않아 할 수 있다. 자신의 고통만으로도 힘겨우니까. 힘겨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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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20살이 넘으면서 무언가를 누리는 금지가 풀리지만 그것을 온전하게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어릴 적 보다 더 다른 곳을 둘러 볼 여유가 없다.
말랑한 신생아의 두개골이 점점 단단해지듯이 세상을 둘러보려는 마음도 굳어버리는 것일까.
별다른 방법이 없음에도 타인의 마음을 위로할 방법을 궁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말랑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의 지나간 시절이 떠오르며 방치해 두었던 나만의 슬픔도 떠오른다.
책 속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이다. 괜찮은 척, 아무렇자 않은 척 옆에 잘 두고 있다고 생각한 스스로의 아픔과 상실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비로소 마주한다. 그렇게 스스스로의 마음도 어루만진다.
돕는자를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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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유영. 제목이 계속 궁근했다.
무슨 뜻일까. 유영. 물 속에서 헤엄치며 놀거나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일을 뜻한다고 사전에 나온다.
좌불 속 따로 만들어 둔 황금 심장처럼 우리에게도 당연히 심장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고 있다. 그렇게 심장은 제대로 간수되지않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닌다. 얼마나 멀어져 갔는지,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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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타인을 돕고 그로인해 스스로를 돕자 비로소 심장을 발견한다. 심장을 회수한다. 갈고 닦고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이제는 심장만 아무도 모르게 떠내려가지 않는다. 반짝이고 온전한 심장을 단단히 움켜쥐고 이제서부터는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자유롭게 항해하는 놀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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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심장, 유영>은 단순한 넘어섬이 아니다. 문제해결임과 동시에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데 흔들리지 않을 신념을 만들어낸다. 혼자 이겨내고 극복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돕고 그로인해 스스로도 구원받는.
하나를 갈무리 짓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유효할 무언가를 심장에 새기는 긴 항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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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나도 새로운 하나를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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