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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ㅣ 을유사상고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사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평점 :
“신은 죽었다.”던 니체.
드디어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프리드리히니체 씀 #을유문화사 출판)을 마침내 펼쳐 평소보다 조금 더 큰 덩어리로 그를 만났다.
책을 읽지 않아도, 철학을 몰라도 니체라는 이름과 저 문장은 많은 사람들이 안다. 이것에서부터 오해는 쌓여간다. ‘신’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반종교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우니까 말이다. 물론 그 ‘신’도 포함되어 있지만 ‘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그 짐이 정말 당신의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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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짐에 억눌려 한걸음 겨우 내딛으며 살아간다. ‘학생이라면’, ‘남자라면’, ‘가장이라면’, ‘여자라면’, ‘어른이라면’ 같은 짐들 말이다. 이런 것들 누가 만든 짐인가? 정말 우리 스스로가 몇날며칠 심사숙소한 결과인가? 이 ‘짐’이 바로 ‘신’이다.
니체는 ‘신’으로 대표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누군가들이 제각각의 연유로 합의하고(또는 강제한) 존재해오고 있는 규율들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에서 벗어나고 자기 자신이 궁리하면서 만든 ‘진짜’규정들을 지켜나가는 정신을 가지기를 니체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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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간이 나아가는 정신 변용의 과정을 니체는 낙타, 사자, 아이로 구분짓는다. 위의 짐들을 짊어지고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무분별한 상태가 낙타, 정말 당신의 짐이 맞는가 라는 ‘용’(오랫동안 존재하며 커지고 굳어진 기존의 규범)의 뜨거운 입김과 같은 질문에 아니라며 포효하며 맞서는 것이 사자, 아니라고 거부하는 것을 넘어 놀이하듯이 자신을 발견하는데 온마음을 다하고 자기만의 규칙을 정하고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 재미있다는 듯 웃어넘기며 다시 그 과정들을 반복하는 것이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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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다시 일어나 반복하는 것.
이것이 니체가 주장하는 초인(위버멘쉬)의 조건이다.
만들어낸 규칙은 시간이 지나며 겪는 경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에게 또다른 기존의 것이 될 뿐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놀이하듯 즐겁게, 그리고 능동적이고 진심으로(놀이에 진심이지 않을 수 있나) 넘어지고 깨져도 또 다시 일어나 파괴하고 탈피하는 사자와 아이를 무한히 반복하는 ‘강자’이다.
말이 쉽지 니체도 사람인지라 넘어지고 깨지는 과정동안 고통스러워하고 흔들린다. 이것을 니체는 춤으로 극복한다.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의 말에 의하면 니체는 정신으로 춤을 춘 최초의 춤추는 철학자였다.
춤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면서 발 끝으로, 직접 세상을 느낀다. 능동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며 반복으로 동작을 익히고 능숙해진다. 마침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세상과 하나가 된다. 주체성과 끝없는 나아감(반복)은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 ‘웃음’까지.
그렇게 니체는 마침내 명랑의 철학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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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의 힘으로, 초인적 심상으로 니체는 ‘영원회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반복이, 이 삶이 계속해서 반복되더라도 너는 이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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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의 선택이 반복되기에 주저앉을 것인가. 그렇기에, 그럼에도 기꺼이 반복 위에 올라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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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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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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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의, 우리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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