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 생각지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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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고도로, 그 이상이 가능한가 싶을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만큼 편해지고 길거리가 깨끗해지고, 부당한 일이 예전만큼 팽배하게 벌어지지 않게 되었다. 모든 수치가 이전보다 살기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이전의 세대가 겪었던 불안하고 위험하고 옳지 못했던 문제점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럼 현재 우리가 안고있는 문제점은 줄어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교육수준이 올라가자 사회가 바라는 인재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강요받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특권이었던 뛰어놀기, 큰 소리 내기 같은 것들을 견뎌내지 못하게 되었고 노 키즈존을 외치는 영업소가 늘어났다. 예전에는 신경증으로, 예민한 편으로 여겨졌을 정도가 의학의 발전으로 우울증에 편입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 된다.

정신의학이 사람들의 병을 차료한다기보다 불필요한 환자 수를 늘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건강은 유지하면 좋은 것이 아닌, 유지하지 못하면 게으르고 무분별한 삶을 산 것처럼 낙인찍힌다. 그래서 건강이 수단이 아닌 하나의 목표로 제1의 가치에 놓이게 되고, 불필요한 비용이 들기 시작하며, 그로인해 노후대비 비용이 증가한다. 그래서 환갑에 은퇴를 해도 ‘제2의 도전’과 같은 낭만이 아닌 생계형으로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한다.

이처럼 이전에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해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다른 문제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는 끝없이 더 나은 쾌적함을 꿈꾼다.
쾌적함이 또다른 문제들을 야기한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체 말이다.

솔직히 이전사회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회가 쾌적해지면서 기본적으로 바라는 수준이 높아졌고, 그것을 맞추기 위해 사회가 너무나 많인 규칙들을 만들어 내면서 오히려 인간을 옥죄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전에는 병명도 생소했던 ADHD로 분류받고 약물치료로 행동을 교정받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회의 지원이 몰리다보니, 경계성 지능 장애같은 사람들은 지원을 누리지 못하고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도태된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를 ‘아름다운 사회’라고 부르고 있다.

그만큼 인지하지 못하고 무지하다는 뜻이다.

#쾌적한사회의불쾌함 (#생각지도 출판)을 쓴 저자 #구마시로도루 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기 때문에 정신적, 신체적 건강과 관련되어 책을 풀어나가고 있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주의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사회에 어떻게 적용하여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ADHD도 교정이 되어서 사회에 더 잘 적응하여 살아가면 좋은 일이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정신의학회가 그냥 받아들이기만 한 것을 지적한다. 정신의학회가 보았을 때 좀 더 시급하고 주요한 것들을 먼저 사회에 제기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경계성 지능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과 같은, 사회가 조금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제도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에서 시급한 것을 사회가 인식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자본이 있다.

적절한 곳에 적절한 만큼의 사회적 자본이 쓰일 수 있도록, 적제적소를 사회에 알려야한다.
무분별하게,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는 현실이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문제의 인식과 적절한 해결을 위한 능동적으로 목소리 내는 것이 우리가 올바른 쾌적함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닌 모두를 보듬을 수 있는 시선과 삶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촉진제가 되어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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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리포트 - 인생 제2막을 위한 융 심리상담
대릴 샤프 지음, 정여울 옮김 / CRETA(크레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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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먹을만큼 먹어서 왜 그러는거야?
나이도 먹을만큼 먹어서 이제와서 나는 왜 이러는 걸까?
남들이 봐도 이해할 수 없고, 내가 나를 봐도 이해할 수 없다. 늦게 사춘기라도 온걸까.
우리 부모님도 나 때 이랬을까? 흔들림없이 나를 키워내고 멋지게 살아오신 것 같은데.

예전 어릴적 봤던 다섯살난 못말리는 친구의 엄마가 삼십대 초반의 설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참 충격적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삼십대 초반과 우리 세대의 삼십대 초반은 천지차이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아직 어른이 덜 된 것일까. 늦게 온 것 같은 사춘기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그럴 때 찾게되는 철학자가 있으니 바로 카를 융이다. 카를 융은 중년이 되어서야 맞이하는 수많은 심리적 흔들림을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라 말한다.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진정한 자아와 찬란한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 제 2의 사춘기가 아닌 제 2의 성장통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심리서적을 혼자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나 융의 심리학이 그러한지 그의 지식이 녹아들어있는 소설형식의 글이 제법 많다. 하지만 어디에서 융을 느껴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만을 좇은 책들이 많다. 재미와 전문성 그 적절한 밸런스를 찾기가 힘든 것이다.

그 밸런스가 잡혀진 책이 #서바이벌리포트 (#대릴샤프 지음 #크레타 출판)이다. <서바이벌 리포트>는 C.G.융 연구소 출신인 융 학파 분석가인 대릴샤프가 가상의 상담자 ‘노먼’과 융 분석가 ‘나’를 찾아오며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내용이 진행된다.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상처받고, 일에도 지치고, 그런 일들로 인해 우울해하는 ‘노먼’을 상담하면서 ‘나’도 융 분석학을 배울 때 스스로에 대해 함께 상담하던 분석가를 떠올리면서 융 심리학의 전문적인 내용을 병렬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는 ‘노먼’에 이입하기도 하고, 욕하기도 하며 ‘나’의 수련생활을 따라가며 페르소나, 아니마, 그림자 등 융의 어려운 이론들을 자연스럽게 익혀나간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노먼을 다시 일으켜세워준 것은 융의 심리학도 한 몫 했지만,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꺼내도 말을 자르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안정되고 경력이 쌓이다보면 나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는 것이 쉽지않다. 배우자는 나름의 고충으로 지쳐있고, 동년배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수도있고, 어린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부모나 윗사람에게 말하면 ‘다 그렇다’며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해결책을 알려주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말을 시작하면 아무런 방해없이 계속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도 일단 처음을 시작하고 계속 써봐야 방향성이 잡히고 더 나은 글로 나아간다.
말도 시작해서 계속 하다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무의식에 머물렀던 것들이 말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내가 미쳐 몰랐던 것일수도 있고, 애써 외면해왔던 것일 수도 있다.

‘노먼’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뒤집어 쓰고있던,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무의식 속 스스로를 자각하고 그 스스로와 제대로,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묵묵히 들어주어 계속 말을 하게 해서, 속에 담긴 말을 뱉어내게 해서 마주하게 하는 것이 아주 주요했다.

물론 아주 작은 질문들로 방향을 잡아주는 정도만 하고 들어주는 것과 융이 제시한 꿈 분석, 그림 그리기, 글쓰기와 같은 적극적 명상과 같은 기법들이 어우러졌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왜 융 심리학이 널리 인용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 모두가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는 힘듦이, 그 힘듦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가 담겨있다. 융의 심리학은 그것들을 넘어 앞으로의 인생에서 어떻게 오롯한 나로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고 버티는 것 이상으로 생기있고 충만하게 스스로를 채워준다.

이 책은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으냐가 아닌, 마주친 난관들을 어떻게 이용해 결국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인생의 항해일지이다. 생존기‘서바이벌 리포트’라는 이름이 붙은.

인생을 항해하는 또 다른 항해사들 손에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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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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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거나 흥분하면 자기도 모르게 호흡이 빨라지는 경우가 있다. 자연스럽게 몸 안에 공기가 평소보다 더 많이 차게 될 것이고 배를 빵빵하게 하고 통증을 유발할 것이다. 배출을 해야하지만 온 사방에 사람이 가득한 사회에서 쉽지않다.
유일한 탈출구인 욕조에서 보글보글 거품으로 겨우 내보나며 살던 열여덟의 카오루는 강압적인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반복되는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어서’ 학교를 나가지 않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 마을에서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는 유쾌한 작은 할아버지 가네사다에게 여름동안 맡겨진다.

가네사다는 카오루에게 딱히 조언을 하지 않는다. 점심과 저녁을 챙기고 잘 곳을 내어줄 뿐이다.
카오루는 가네사다의 가게 ‘오부브’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가네사다에게 ‘주워진’ 직원 오카다를 만나게 된다.

오카다에게 요리를 배우고 그가 요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반복해야만 얻을 수 있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은 없다. 스스로가 무언가를 반복하며 시간을 쌓아갈 자신이.

하지만 이미 카오루는 자신도 모르게 ‘오부브’에서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과 표정은 이완되었고, 손님접대로 성공적이다.

도쿄로 돌아가기전, 마지막으로 간 바다에서 카오루의 발을 적신 파도가 남긴 거품이 부글부글거리며 터지면서도 남아있다. 그와 동시에 사라진다.

그 거품을 보며 카오루는 자문한다.
나도 이 거품처럼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그러면 그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가네사다와 오카다, 카오루는 직접적으로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손주를 그냥 강아지 돌보는 정도로 생각했고, 오카다는 물어보면 요리를 언제든지 얼마든지 알려주었지만 그 이상 먼저 나서지는 않았다.
가네사다와 오카다도 서로와 함께하는 미래를 당연히 그리지만 넌지시 내비칠뿐이다.

우리도 지나와서 알지만 어른들이 사랑의 충고라고 했단 말들이 그때의 우리에겐 잔소리었다.
괜한 반발심만 생겼더랬다. 물론 나이먹어서 틀린 말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내 다음세대에게도 그 말들을 하게 되지만 말이다.

결국 무언가를 전해주는 방식의 차이이지 않을까.
그냥 말없이 보여주는 것. 도움을 필요로 할때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 그것이 본인도 모르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불안으로 몸을 채우던 가스를 욕조에서 편편하게 빼내고 그 빈공간을 채우는 것은 또다른 불안이었다.
그렇게 숨쉬는 모든 순간이 불안하고 걱정하고 마음에 안드는 시기. 사춘기. 그 사춘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반대쪽 통로로 보이는 밝은 빛을 카오루는 ‘오부브’에서 발견했다.

러시아어 오부브는 ‘구두’라는 뜻이란다.
그곳에서 카오루는 아직은 자신없는 앞길을 다치지 않고 걸어나갈 수 있도록 구두를 신고 신발끈을 묶는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닐까.

바다에서 부서지는 거품을 보며 자기 안을 채우고 있는 거품도 사라질 것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도 그렇게 사라질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 유한한 시간을 쌓아나갈 무언가를 찾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거품 (#마쓰이에마사시 지음 #비채 출판)은 작가의 유일한 청춘소설이라고 한다. 책 속의 주인공은 카오루라는 청춘으로 보이지만, 곁에 있던 오카다도, 유쾌해야했던 이유가 있던 가네사다도 결국 청춘이었다.

무언가를 꿈꾸고 여전히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한 모두가 청춘이다.
이 책을 읽고 느낄 독자들도 연령대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느낀다면, 힘을 얻었다면 모두가 청춘인 것이다.

청춘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모두를 위하는, 가장 조용하고 묵묵한, 그래서 더욱 편안한 책이었다.
내 안을 채우던 거품이 빠져나가고 상쾌하고 지릿한 바닷바람이 기분좋게 나를 채운다.

남들과 달라도, 나는 왜이럴까 싶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더 바람직하게 살아갈 사람이라고 나를 채운 그 바람이 속삭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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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바누 무슈타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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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부커상이 SF소설에게 주는 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트램프 (#바누무슈타크 지음 #열림원 출판)를 읽으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없는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쓴 줄 알았다. 하지만 부커상은 영국에서 출판된 그 해 최고의 책에 수여하는 상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음직한, 어딘가에서는 비슷한 일이 일어났(진행중일)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단편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라기엔 신이 과연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만큼 부당한 것들에 둘러싸여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런 비통한 일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니 또 뒷맛이 썼다.

20세기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사람들의 권리가 점차 평등해졌다. 노예, 여성들 까지 모두 차별없는 한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 굶고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죽는 아이들이 있듯이, 여전히 동등한 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존재했다.

바로 종교 근본주의와 가부장제로 탄압받는 ‘어머니’이다.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가족이게 바치는 희생에 대한 존경을 받아야함이 마땅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12편이 담겨있다. 그 안에서 여성은 끊임없이 출산하고 더이상 애기를 낳지 못하게 하는 수술도 수치로 여겨진다. 그리고 출산 후 제대로 된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런 친구를 가엽게 보는 여성은 한달이 넘도록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해서 몸을 회복시켜줬던 어머니를 잃는다. 세상을 잃고 돌아온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같은 날 죽은 그 친구이다. 자신은 건강해서 괜찮다며 일주일만에 스웨터를 입고 장을 보러 나왔던 친구마저 세상에 없다.

다른 여성은 최후의 믿을 곳이어야하는 친정이 폭력을 행사하는 곳이고, 아들에게 재산이 다 상속되어 먹고 살기가 요원하다. 무슨 오만과 편견 속 시대도 아니고.

여자는 고등학교까지만 다니면 된다고 영특한 첫째딸은 결혼도 전에 이미 또다른 엄마, 또다른 아내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글 속의 여성들은 이런 현실 속을 살아가기만 할뿐 평가하지 않는다. 슬퍼할 뿐 어찌하지 않는다. 내가, 나의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또 그의 어머니가 겪어오면서 당연한 것으로 세겨진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적응해버린 것이다.

현실을 더 잘 받아들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택한 전략이겠지만 이 여성들이 처한 환경은 생태계와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다. 누군가 잘못되었다 목소리를 내야 ‘그런가?’라는 의심이 생기고 그 의심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트리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트 램프>는 그 트리거의 역할을 한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런 믿기 어려운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알았을까? 실제 그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자기 나라 여성이 쓴 책이 큰 상을 받았다고 읽어보면 왜 이 책이 그렇게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는지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는지 이 세상에 있는 나, 너, 우리 모두가 알게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꽝꽝 얼어있는 곳에 돌을 하나 던지고 또 던지다 보면 표면에 금이 갈 것이고 결국 깨어져 다시 물이 흐를 것이다. 매말라있던 곳을 촉촉하게 적실 것이고 새로운 환경을 싹틔울것이다.

우리의 눈이, 신경이 미쳐 닿지 못하는 곳이 이렇게 꽁꽁 얼어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문지 해결의 첫 단계인 문제가 있음을 항상 인식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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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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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격적으로 읽기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일본소설이 제법 괜찮다는 사실이다.
소모성이 짙은 단순한 이야기에도 책을 덮을 때 마음에 따스함이 가득해졌고 문학성에 집중한 별게없는 잔잔한 소설도 잔뜩 쌓인 책을 정리하다보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여전히 일본은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기에 문학이 그 사람들을 담아낸 것일까.

그런 일본에서 유명한 문학상을 꼽자면 아쿠타가와상이다. 오직 신인작가에게만 주어지는 상으로 앞으로 일본의 문학을 부탁한다는 기대감을 보여주는 상이다.

최근에 아쿠타가와상이 ‘해당작품없음‘으로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아 바로 직전 상을 수상한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런 상의 이름으로 제정된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라쇼몬‘ ’코‘ 등의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서른 다섯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픈 역사를 가진 작가다.

그런 작가의 단편 중 12편을 골라 담은 #아쿠타가와류노스케단편선 (#성림원북스 출판)으로 작가를 처음 마주했다.
유일하게 알고있던 작품이었던 ‘라쇼몬’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해 평가를 내리거나 판단을 내리면 꼭 반대의견을 덫붙이고 있었다. 왜그럴까 생각하며 주욱 읽어가다 그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톱니바퀴’와 ‘어느 바보의 일생’을 보면서 순간 멈칫했다.

‘어느 바보의 일생’은 소설이라기보다 작가의 마지막 유서같은 글이었는데 51개의 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진 이 글은 작가의 인생, 생의 마지막에 눈 앞에서 펼쳐지는 주마등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멈칫한 이유는 이 글 속에 들어있는 인물들이 앞에 수록된 단편 속에서 등장했던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 단편들은 나에게 소설로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 진짜 이야기가 담긴 비밀편지로 보였다.

실제로 그는 태어나기 전 딸을 잃어 정신병에 걸린 어머니를 보며 자랐고, 당연히 받아야할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끊임없이 불안했고 행복을 좇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행복해야 하니까.

그렇게 자라지 못한 아쿠타가와는 빛보다는 어둠에 집중했다. 천국보다는 끝없이 불타는 지옥을 그려냈다.
그렇게 자신 안을 가득채우고 있는 어둠을 토해내도 빈 부분을 빛으로 채우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않았다.

자신도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으나 기쁨보다는 이 아이는 무슨 죄가 있어 자신과 같은 부모를 만났는지라는 자괴감에 빠지고,(배우지 못한 부모의 사랑과 유전적 걱정이 심했다고 한다.)가장을 잃은 가족의 생계까지 챙겨야 하면서 삶에 부담감이 더욱 심해지고 끝없이 어두워 지는 내면에 침잠하여 바깥세상을, 빛을 결국 보지 못하고 수면제를 털어넣었다.

이런 작가의 스토리를 알고나서 책에 수록된 글을 다시 살펴보니 ‘귤’이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수록된 글 중에 유일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빛을 바라보았다. 어린 소녀가 감사의 마음으로 던져주는 귤, 달리는 기차에 담겨있는 인생의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에서 그는 잠시나마 자신이 불안해하며 쥐고있던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는다. ‘귤’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끝없이 글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글은 거짓없이 자신이 바라보고 느껴왔던 세상을 담아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쉴 수 없었기에.

글을 쓰기위해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글이라도 썼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글 자체가 삶이었고 작가 그 자체였던 작가.
그래서 신진작가들에게 온 마음을 다한, 거짓없고 꾸밈없는 참된, 자신같은 글을 써달라는 마음을 담아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쥐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앞으로 걸어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려줄 수 있는 가장 밝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아쿠타가와처럼 괴롭지만은 않기를.
내면에만 집중하지 말고 세상 속 아름다운 오색빛깔들을 만끽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래야 그도 세상의 빛을 하늘에서나마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후배들의 글로 위안받았기를, 속이 빛으로 가득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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