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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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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거나 흥분하면 자기도 모르게 호흡이 빨라지는 경우가 있다. 자연스럽게 몸 안에 공기가 평소보다 더 많이 차게 될 것이고 배를 빵빵하게 하고 통증을 유발할 것이다. 배출을 해야하지만 온 사방에 사람이 가득한 사회에서 쉽지않다.
유일한 탈출구인 욕조에서 보글보글 거품으로 겨우 내보나며 살던 열여덟의 카오루는 강압적인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반복되는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어서’ 학교를 나가지 않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 마을에서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는 유쾌한 작은 할아버지 가네사다에게 여름동안 맡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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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사다는 카오루에게 딱히 조언을 하지 않는다. 점심과 저녁을 챙기고 잘 곳을 내어줄 뿐이다.
카오루는 가네사다의 가게 ‘오부브’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가네사다에게 ‘주워진’ 직원 오카다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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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에게 요리를 배우고 그가 요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반복해야만 얻을 수 있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은 없다. 스스로가 무언가를 반복하며 시간을 쌓아갈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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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카오루는 자신도 모르게 ‘오부브’에서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과 표정은 이완되었고, 손님접대로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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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로 돌아가기전, 마지막으로 간 바다에서 카오루의 발을 적신 파도가 남긴 거품이 부글부글거리며 터지면서도 남아있다. 그와 동시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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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품을 보며 카오루는 자문한다.
나도 이 거품처럼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그러면 그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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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사다와 오카다, 카오루는 직접적으로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손주를 그냥 강아지 돌보는 정도로 생각했고, 오카다는 물어보면 요리를 언제든지 얼마든지 알려주었지만 그 이상 먼저 나서지는 않았다.
가네사다와 오카다도 서로와 함께하는 미래를 당연히 그리지만 넌지시 내비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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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지나와서 알지만 어른들이 사랑의 충고라고 했단 말들이 그때의 우리에겐 잔소리었다.
괜한 반발심만 생겼더랬다. 물론 나이먹어서 틀린 말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내 다음세대에게도 그 말들을 하게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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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무언가를 전해주는 방식의 차이이지 않을까.
그냥 말없이 보여주는 것. 도움을 필요로 할때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 그것이 본인도 모르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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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으로 몸을 채우던 가스를 욕조에서 편편하게 빼내고 그 빈공간을 채우는 것은 또다른 불안이었다.
그렇게 숨쉬는 모든 순간이 불안하고 걱정하고 마음에 안드는 시기. 사춘기. 그 사춘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반대쪽 통로로 보이는 밝은 빛을 카오루는 ‘오부브’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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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오부브는 ‘구두’라는 뜻이란다.
그곳에서 카오루는 아직은 자신없는 앞길을 다치지 않고 걸어나갈 수 있도록 구두를 신고 신발끈을 묶는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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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부서지는 거품을 보며 자기 안을 채우고 있는 거품도 사라질 것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도 그렇게 사라질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 유한한 시간을 쌓아나갈 무언가를 찾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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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마쓰이에마사시 지음 #비채 출판)은 작가의 유일한 청춘소설이라고 한다. 책 속의 주인공은 카오루라는 청춘으로 보이지만, 곁에 있던 오카다도, 유쾌해야했던 이유가 있던 가네사다도 결국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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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꿈꾸고 여전히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한 모두가 청춘이다.
이 책을 읽고 느낄 독자들도 연령대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느낀다면, 힘을 얻었다면 모두가 청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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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모두를 위하는, 가장 조용하고 묵묵한, 그래서 더욱 편안한 책이었다.
내 안을 채우던 거품이 빠져나가고 상쾌하고 지릿한 바닷바람이 기분좋게 나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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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달라도, 나는 왜이럴까 싶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더 바람직하게 살아갈 사람이라고 나를 채운 그 바람이 속삭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