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 -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 필사
월간 <샘터> 지음 / 샘터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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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나는 편집부였다.
신문부와 같은 맥락인데 교내 신문을 만들고 교지校誌 도 같이 만들어내는 동아리(?)였다.
아직도 선배와 동기, 지도 선생님이 기사로 작성했던 내 글을 빨간색 펜으로 수정해서 빨갛게 피멍이 들었던 모습이 생생하다.

내가 부장이 되었을 때 우리 동아리의 보물이라며 낡은 캐비닛 열쇠를 나에게 건내주었는데 그 안엔 수십년치의 교지가 보관되어 있었다. 책방골목에서 맡을 수 있던 낡은 종이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재학중일 때 육십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학교였는데 1권부터 모두 보관되어 있었다.
지금은 오래된 강당을 리모델링한 역사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나때(라떼)만 하더라도 교지에 실린 기사를 읽고 오탈자 찾아주고 문장지적질 해주고 졸업할 때까지 교지 세권이 책장에 꽂혀있더랬는데 이제는 텍스트도 그 소비기한이 무척 짧아졌다.

스테디셀러로 살아남기가 너무나 힘든 요즘이다.
그런 급변하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문고형 잡지이자 56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로 국내 최장수 문화교양지였던 <샘터>가 올해 1월로 휴간상태가 되었다.

글로 보듬어 주는 이해인 수녀님, 나태주 시인님 등 기라성 같은 대작가들이 꾸준히 글을 우리에게 전해주던 매개체라서 좋은 문장들도 참 많았다. 물론 주부, 음식점 사장님, 군인같은 일반인들의 생활감이 생생히 살아있는 좋은 문장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샘터> 속 명문장 100개를 엄선하여 #56년샘터잊지못할명문장 (#샘터 출판)이라는 고운 마음의 편지가 잠시동안의 이별을 전하기 위해 찾아왔다.

수많은 잡지를 일일이 찾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좋은 말들을 다양하게 함께 모아두어 보석상 하나를 통째로 선물 받은 느낌이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 같은 풍선다발을 연상케하는 표지디자인과 더불어 마음을 짠하게 한다.

차곡차곡 글을 읽고 따라 써내려가다보면 전문 작가든 글이 전업이 아닌 사람들이든간에 각자가 집중하기 좋은 애정하는 자리에 반듯이 앉아 사각사각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그 장면 속 사람들 모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번도 만나지 못한 <샘터>의 다른 독자들에게 거부감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들을 털어놓는다. 부끄러움도 스스럼없이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글들을 보면서 인상이 찡그러지는 일은 한번도 없다.
그저 공감하고 공명한다. 자연스레.

그것이 <샘터>가 가진 힘이 아니었을까.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글에서 자기자신을 발견하고 글을 읽으며 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 글위에 덧씌운다. 그렇게 독자들을 은연중에 작가로 만들어내서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에 위안받는 것.
그랬기에 반백년이 넘는 시간을 독자의 곁에서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자reader 작가 writer 합치면 독작가 rewriter가 되려나? 다시쓰는사람이란 뜻을 가진 것 처럼 보여 퍽 마음에 든다.

비록 <샘터>의 시간은 잠시 멈췄지만 읽고 쓰던 독자들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수십년 습관으로 삶에 물들었던 것을 단박에 끊기는 쉽지않다. 분명 무언가를 읽으며 또 자신만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내가 살던 집터에 낡은 집을 헐고 살기 좋은 멋진 집을 다시 짓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내 집 같지 않은 곳에서 읽고 쓰며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다시 완공되어 돌아갈 것이라는 확정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더 튼튼하고 아늑한 집으로 돌아오길.
그러나 너무 오래걸리지 않길 간절히 바래본다.

지난 집에서 찍었던 앨범들을 들춰보며 사진 밑에 적힌 작은 질문들로 새로운 추억여행을 하며 기꺼이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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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고침 서양미술사 3 - 치유와 연결의 순간들 : 초현실주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새로고침 서양미술사 3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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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수만년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켜켜이 쌓여있지만 짧은 기간 가장 임팩트 있던 시기를 고른다면 20세기가 아닐까. 20세기를 전후로 세상은 그야말로 차원이 달라졌다. 2020년대에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삶의 모습이 달라진 것 보다 훨씬 더.

20세기 초 세계 1,2차 대전을 치르면서 그전까지 이룩해온 역사들은 파괴되었다. 전복顚覆되었다.
우리를 외치면서 이쪽과 저쪽을 나누었고, 이쪽이 아니면 말그대로 학살했다. 유전자를 없애려했고 문화를 없애려했다. 그렇게 핏물가득한 전쟁을 지켜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존의 개념과 정의들을 거부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인류가 살아있는 동안 두고두고 회자될 참극이 벌어지게 한(물론 오역, 남용이지만)것들을 바라만 보아도 매쾌한 폭약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족, 친구, 삶의 터전, 일상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울분을, 슬픔을 표현하기에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부족했다.

#새로고침서양미술사3 (#이진숙 씀 #돌베개 출판)은 이렇게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고, 응어리진 속마음을 표출해내기위해 기존의 양식들을 버리고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만큼 새로운 형식으로 세상을, 인간을, 자신을 표현한 현대예술을 다루고 있다.

미술관에 가면 올해의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이 전시되는 시즌이 있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일단 미술이라 하면 가장 익숙한 형태인 회화가 거의(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없고 명확한 형태도 없다.
작품 옆 해설을 보아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심지어 감상에 방해된다고 작품별 해설을 제공하지 않는 전시도 있다.

뭐 이렇게 불친절한 전시가 다 있냐며, 현대미술은 어렵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미술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해왔다.
이 작품은 이런 의미가 담겨있는거야. 이러한 알레고리가 숨겨져 있으니 놓쳐서는 안돼라며 하나의 작품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보아왔다.
아마 소수의 권위있는 엘리트들이 만들어놓은 스토리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면서 발생한 일일 것이다.

유명한(비싼) 작품을 보고나서 좋지 않으면 내가 문제인가 싶어서 그냥 좋다고 눈치보며 말 할 수 밖에 없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았다.

그런 것들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은 것이 현대미술이 아닐까? 기존의 사조를 버리고, 마침내 붓까지 벗어던져버린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작품들.
캔버스를 벗어나 하나의 동산을 만들기도, 관객들이 직접 들아기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다시 볼 수 없는 그 순간에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퍼포먼스로, 원래 만들어져있던 예술품이 아닌 오브제(레디메이드)를 작품으로 만들고, 자신의 피를 뽑아 자화상을 만들어내고 이런 것도 미술이야?라고 할만한 것들을 두려움 없이 스스럼없이 세상에 내어놓으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치유한다.

예전처럼 주변사람들과 많은 것들을 나누는 시대가 아니라 혼자 고립되는 세상에서 자기자신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방식으로 관조하고 세상에 들어냄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새로고침 서양미술사>에서 본 현대미술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타인보다 자신을 더 위하는 것 같은 현대미술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이전의 감상법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알 턱이 없다. 이게 맞나? 나는 이렇게 보이는데? 오답일까봐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그 감정들이 모두 현대미술에서는 정답이었다.
그렇게 보면 된다는 것을, 현대미술의 계보 보다는 작품과 미술가, 그리고 세상에 초점을 맞춰 저자 개인의 사유를 적어놓은 에세이 같은 이 책이 올바른 예시가 되어준다. 그렇게 자신감이 생기고 현대미술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진다.

자기를 온전히 들여다 보았을 때 비로소 시선은 세상으로 향한다. 자신을 토해내고 맑아진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많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픔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아픔, 물질만능주의, 환경 오염 등으로 해맑게 웃어야 하는 아이는 웃지못하고 매서운 눈매의 어른아이가 되어버렸다. 표지에 있는 요시모토 나라의 작품 속 아이가 눈에 밟히는 이유이다.

미술관의 흰 벽에 걸려있던 미술이 여러형태가 되면서 미술관을 벗어나 우리의 생활터전으로 들어와 융합되고 있다. 어쩌면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렸던 것을 회복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자연이 그러하듯이 미술도, 인간도 잊어버렸던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올바른 모습으로 돌아가는 자가치유를 하고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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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직업 - 세 편의 에세이와 일곱 편의 단편소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미현 옮김 / 이소노미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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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읽어본 사람이 더 거의 없을 확률이 높은 작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화한다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버지니아울프 의 이야기다.

<자기만의 방>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과 같은 이름난 작품들이 있지만 그것외에도 워낙 다작한 작가이다 보니 단편, 에세이, 강연용 글까지 합치면 그녀가 남긴 말들을 무수히 많다.
나는 부끄럽지만 #여성의직업 (#이소노미아 출판)으로 작가의 원글을 처음 접했다.

의식적흐름이라는 문학기법을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한 것으로 알고는 있었는데 정말 시간이나 장소의 흐름이 아닌 화자의 의식이 흘러가는대로 자유분방하게 흘러간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시절이었음에도 누구보다 자기 안에 잠재된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자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성정과 매우 닮은 문체였다.

7편의 단편과 3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의 표제작인 에세이 <여성의 직업>에서 그녀는 글을 쓰고 받은 첫 돈으로 페르시안 고양이를 사버렸(?)고, 글로 돈을 벌어 자동차를 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차를 몹시도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한 그녀 자체가 꾸밈없이 담겨있다.

이 글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집안의 천사’를 죽여야한다는 것이었다. 남성에게 집안에서 순종하는 기존의 여성성을 버리고 직업을 가진 여성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방법이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방을 채워야 한다고, 가구를 갖추고 자기 입맛에 맞게 장식도 하라고 말한다.
끝없이 계속 꿈꾸라고 그것이 여성을 벗어나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참 인상적이었다.

다른 작품에서 색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당당하고 자신있는 이미지라 강연에서의 말투도 강할 것 같지만 왜 그렇죠? 라는 부드러운 말투로 거부감없이 각성을 촉구하는 ‘어째서’, 위아더월드를 외치지만 거기에서 위we는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다루는 ‘인류를 사랑한 남자‘, 남성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견고한 것‘, 꿈에서인지 몽상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생생하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묘사해 놓은 ’초상‘시리즈들을 보고 있으면 이제 버지니아 울프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예측하고 변화를 바랄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깊은 사유와 세밀한 관찰력, 겪어보지 못한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봐보려 애쓰는 마음씀씀이 까지. 세상을 떠난지 백년이 훌쩍 넘은 작가가 아직까지 그 이름이, 작품이 전해질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하지만 하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죽음이다.
책 속 작품 중 하나인 ’유령의 집‘을 보면 죽음도 어쩌지 못하는 진정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도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하고(사랑받은)걸로 알고 있는데 왜 코트 주머니에 돌을 가득채우고 호수로 걸어들어갔어야만 했을까.
마지막순간 까지도 남편을 걱정하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작가가 너무나 낯설면서 안타까웠다.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이 넘실거리는 호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녀의 말로와 연관지으면 참 시리게 아름다워 보인다.
그녀의 죽음은 미리 알고 있었어서 책을 읽으면서 계속 왜 그래야만 했을까를 생각했었다.

그러다 어떤 시인의 말을 우연찮게 들으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진정 사랑해야만 멸종을 말할 수 있다라는 시인의 말을 들었을 때, 아 그녀는 이 삶을, 그녀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만큼 너무나 사랑했구나. 너무나 사랑했기에 죽음을 생각할 수 있었구나라고.

그럼에도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너무나 마음아프다.
더이상 그의 인생을 망칠 수 없다던 그녀를 떠나보낸 남편의 인생은 편안했을까. 하나의 이야기라기엔 스케치 같았던 ‘초상’시리즈를 아내가 떠난 뒤에 출판한 남편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마 그때서야 비로소 아내와 정말 이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들은 담겨있지 않지만, 인간 버지니아 울프를 이해하기에는 그 이상이 없을 것 같은 책이었다. 지적이고 통찰력있고 깊게 사유하고 처절하게 사랑하고 싸웠던 버지니아 울프, 그 자체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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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건축 기행 - 익숙한 도시의 낯선 표정을 발견하는 시간
천경환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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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상경했을 때, 촌놈 티 팍팍내며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북촌마을이었다. 으리으리한 빌딩숲이 하늘을 가리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요즘 북촌은 막히지 않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고개가 뻐근해져 내리면 한옥 특유의 지붕처마의 곡선들이 모여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다가왔고 리듬감 넘치는 돌담들이 무언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 북촌은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의 느낌보다는 관광지같은 곳이었다.

#북촌건축기행 (#천경환 지음 #디자인하우스 출판)에 담겨있는 북촌은 관광지 그 이상의 특별한 장소였다.
계동의 아담한 한옥주택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건축사이자 건축 전문 여행사와 함께 북촌 건축 기행을 운영하고 있는 건축 전문가답게 북촌의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19개의 건축으로 북촌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다

북촌에 있는 한옥 중 상태가 양호해 보이는 것들은 일제시대 때 다시 지어진 한옥주택이거나 대기업 자본들이 유입되어 쇼룸형태로 운영되는 건물들이 많다.
한옥 뿐만 아니라 너무 높지 않지만 각각의 건축가와 건축주가 지은 현대식 건물들도 있다.
물론 경복궁과 창덕궁에 어우려지게 멋스러우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품는 것을 잊지않아 북촌의, 궁의 경치를 헤치지 않는다.

삼청동 부자주민들의 지름길 역할을 해서 갤러리가 많고 그덕에 미술관이 많은 독특한 문화성도 빼놓을 수 없다.
갤러리를 위해 유명 건축가가 아예 건물을 새로 짓기도 하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구역답게 기무사 건물과 같은 남다른 역할을 수행해온 건물들이 리모델링되어 미술관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미술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모습은 유지한 채 여전히 이용되는 나이가 많은 건축물들이 꽤나 많다.

신구조화가 멋지게 어우러진 건축물들을 따라 여행을 하는 것도 멋진 경험이었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에서 한발 떨어져 계동의 나뭇잎의 수맥같은 골목골목을 따라 관광객이 없는 보통의 북촌을 구경하는 것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각자의 목적에 맞게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가는 곳이 북촌이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수십년을 고즈넉하게 살아가는 주민들이 보였다.

궁 근처, 청와대 근처라는 지리적 특성때문에 크게 집을 고치지도 못하는 제약이 있음에도 그곳에서 여전히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살아가는 주민들과, 출근의 목적으로 일상의 한부분으로 북촌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관광지로만 내안에 저장되어 있는 북촌 이미지의 빈곳들을 채워넣었다. 비로소 내안의 북촌이 완성되었다.

왜 직접 북촌을 드나들던 시절에 보이지 않던 삶의 터전으로의 북촌이 <북촌 건축 기행>을 읽으면서야 보였을까. 그 이유는 나는 건축의 특징때문이 아닐까 싶다.

건축은 건축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물의 용도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물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며 자신들의 일상으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건물은 그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세월이 흐르며 길들여진다.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으로 맞춰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서는 발견하지 못하고 놓쳐버렸을 건축물의 특성들을 살펴보면서 그안에서 살아온(살고있는)사람들을 비로소 생각할 수 있었다.

궁 옆이라는 특징덕에 나무기둥과 화강석, 기와를 주로 사용하거나 포인트로 사용한 건물들은 특유의 묵직함과 고즈넉함이 있다. 그 특유의 무게감이 견뎌온 시간들을 흘려보내지않고 나이테처럼 시간이라는 조각칼로 삶의 무늬를 새겨왔고 그것을 지금의 내가 보며 시간을 되짚어 관광이 아닌 삶으로 여행을 떠난다.

다시 북촌을 가보고 싶다.
책이 알려주는 코스를 따라 걸으며 손으로 건물들을 훑으며 진짜 북촌을 손 끝으로, 눈으로 내 안에 아로새기고싶다.

관광지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조금 특이한 하나의 형태로의 북촌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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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인문학 - 투자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돈의 심리학, 부의 물리학
오형규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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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은 도박이라고, 짜고치는 사기극이라며 일확천금 노리지말고 저금해라, 부동산이 최고다라고 말하던 시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주식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코스피지수는 5000을 넘어 5500에 도달했고, 주위에서는 얼마벌었네라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한다. 문제는 벌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주변에 꽤 된다는 것이다.

늦은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들어가야하나?
인터넷은 이런 고민들과 소위 ‘야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전재산과 풀대출로 주식에 올인하는 사람들의 인증으로 가득하다. 승승장구하던 국내주식이 지난 주 파랗게 멍이들었을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퍼렇게 멍이들었을까.

우리가 하고있는 것은 투자가 맞나? 계속 오른다고 하니까, 누가 얼마 벌었다니까, 미국장은 지금은 아니다 라는 합리적인 이유와 스스로 충분한 자문없이 냅다 돈부터 넣어버리는 것을 과연 투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매일 붉게, 푸르게 변하는 수익률을 보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언제 빼야할지 익절할지 손절할지 손바닥 뒤집듯 딱 정할 수 있을까? 팔고 나서 보유했었던 주식의 가격을 확인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팔고나서 오르면 익절했음에도 돈을 잃은 것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경제학적으로 따르면 우리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합리적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인데 투기같은 투자를 하고 달라질 것 없는 후회와 미련을 끌어안고 있을까.

주식은 누가 잘하는 것일까? 경제학의 원리로 돌아간다면 경제학자들은 투자로 돈을 쓸어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투자인문학 (#오형규 씀 #글담 출판)은 이런 투자에 관한 수없는 의구심들에 대한 답이 수천년 동안 전해져온 철학, 문학, 종교와 같은 인문학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찾아야한다고) 말한다.

애초에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알고리즘을 가진 생명체다. 같은 input을 넣는다고 매번 같은 out put을 예상할 수가 없다. 당연히 매번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일수도 없다. 그러니 이런 합리적 인간을 가정하고 만들어놓은 경제학적 원리들에 맞게 세상이 돌아갈리가 없다. 세상은 인간이 모여 이루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기존 경제학도 경제학에 심리학이 첨가된 행동경제학에 주류를 내어주고 있다.

결국 경제와 주식도 그 속에 있는 사람을 알아야 대비하고 흔들리지 않고 투기가 아닌 투자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저자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은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 <데이비드 스완>으로 시작한다. 나무그늘 밑에서 데이비드가 단잠에 빠져있는 동안 그에게 숯한 기회와 위험이 지나간다. 그가 잠에서 깨었으면 그 행운도, 위기도 그의 것이 되었을테지만 자는 동안 지나간 일이되어버렸고, 숙면을 취한 그는 다시 자신의 여정을 즐겁게 떠난다. 숱한 기회가 있을것이라는 것과 움켜쥐지 않으면 자기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학에서 길어올려 투자에 접목시킨다. 돈은 주도하면 좋은 하인이고 휩쓸리면 나쁜 주인이라는 격언을 쇼펜하우어와 기원전1세기의 철학자 세네카가 들려주는 등(돈에 대한 이중적인 마인드를 깨닫게함과 동시에 돈을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라는 깨달음을 전한다), 경제학과 시장원리에서 투자의 원칙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동 경제학, 심리학, 동서고전, 물리학에서 찾아낸다.

투자서라는 분류에 그렇지 않는 세부항목들을 읽어가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자에 실패하는 원인이 경제의 구조때문(물론 이것도 맞다)이라기 보다는 심리적인 문제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장도 경제원리를 따르지 않고 광기狂氣를 지니고 있음도 알게된다.

그렇게 지금의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교정하고 자신도, 시장도 한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행동교정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투자서이기도 하지만 제목에서도 밝히듯 인문서적이기도 하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는 스스로를 비추는 글로 된 거울인 <투자인문학>을 보고 스스로 매무새, 매무시 모두 반듯하게 고쳐 진짜 투자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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