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나는 편집부였다.신문부와 같은 맥락인데 교내 신문을 만들고 교지校誌 도 같이 만들어내는 동아리(?)였다.아직도 선배와 동기, 지도 선생님이 기사로 작성했던 내 글을 빨간색 펜으로 수정해서 빨갛게 피멍이 들었던 모습이 생생하다.⠀내가 부장이 되었을 때 우리 동아리의 보물이라며 낡은 캐비닛 열쇠를 나에게 건내주었는데 그 안엔 수십년치의 교지가 보관되어 있었다. 책방골목에서 맡을 수 있던 낡은 종이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내가 재학중일 때 육십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학교였는데 1권부터 모두 보관되어 있었다.지금은 오래된 강당을 리모델링한 역사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나때(라떼)만 하더라도 교지에 실린 기사를 읽고 오탈자 찾아주고 문장지적질 해주고 졸업할 때까지 교지 세권이 책장에 꽂혀있더랬는데 이제는 텍스트도 그 소비기한이 무척 짧아졌다.⠀스테디셀러로 살아남기가 너무나 힘든 요즘이다.그런 급변하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까.우리나라 최초의 문고형 잡지이자 56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로 국내 최장수 문화교양지였던 <샘터>가 올해 1월로 휴간상태가 되었다.⠀글로 보듬어 주는 이해인 수녀님, 나태주 시인님 등 기라성 같은 대작가들이 꾸준히 글을 우리에게 전해주던 매개체라서 좋은 문장들도 참 많았다. 물론 주부, 음식점 사장님, 군인같은 일반인들의 생활감이 생생히 살아있는 좋은 문장들도 마찬가지이고.⠀그런 <샘터> 속 명문장 100개를 엄선하여 #56년샘터잊지못할명문장 (#샘터 출판)이라는 고운 마음의 편지가 잠시동안의 이별을 전하기 위해 찾아왔다.⠀수많은 잡지를 일일이 찾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좋은 말들을 다양하게 함께 모아두어 보석상 하나를 통째로 선물 받은 느낌이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 같은 풍선다발을 연상케하는 표지디자인과 더불어 마음을 짠하게 한다.⠀차곡차곡 글을 읽고 따라 써내려가다보면 전문 작가든 글이 전업이 아닌 사람들이든간에 각자가 집중하기 좋은 애정하는 자리에 반듯이 앉아 사각사각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그 장면 속 사람들 모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그들은 한번도 만나지 못한 <샘터>의 다른 독자들에게 거부감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들을 털어놓는다. 부끄러움도 스스럼없이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글들을 보면서 인상이 찡그러지는 일은 한번도 없다.그저 공감하고 공명한다. 자연스레.⠀그것이 <샘터>가 가진 힘이 아니었을까.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글에서 자기자신을 발견하고 글을 읽으며 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 글위에 덧씌운다. 그렇게 독자들을 은연중에 작가로 만들어내서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에 위안받는 것.그랬기에 반백년이 넘는 시간을 독자의 곁에서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다.⠀독자reader 작가 writer 합치면 독작가 rewriter가 되려나? 다시쓰는사람이란 뜻을 가진 것 처럼 보여 퍽 마음에 든다.⠀비록 <샘터>의 시간은 잠시 멈췄지만 읽고 쓰던 독자들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수십년 습관으로 삶에 물들었던 것을 단박에 끊기는 쉽지않다. 분명 무언가를 읽으며 또 자신만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내가 살던 집터에 낡은 집을 헐고 살기 좋은 멋진 집을 다시 짓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내 집 같지 않은 곳에서 읽고 쓰며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다시 완공되어 돌아갈 것이라는 확정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더 튼튼하고 아늑한 집으로 돌아오길.그러나 너무 오래걸리지 않길 간절히 바래본다.⠀지난 집에서 찍었던 앨범들을 들춰보며 사진 밑에 적힌 작은 질문들로 새로운 추억여행을 하며 기꺼이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