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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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백발에 탄탄하게 관리된 몸, 젊은이 못지않은, 아니 더 능숙한 사격실력. 눈빛만으로 이미 한번, 무기로 두번 타킷을 제거하는 만년의 킬러.

‘나이든 여성 킬러’를 보고 떠올리는 모습으로 이보다 적절한 것이 또 있을까.
마침 작년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영화 ‘파과’의 주인공이 좋은 예가 되아주었다. 하지만 #대문자뱀 (#피에르르메르트 지음 #열린책들 출판)의 ‘킬러’ 마틸드는 나이만 빼고는 정반대다. 작은키, 뚱뚱한 체구, 자동차 핸들에 바짝 붙어앉아야하는 짧은 팔, 돋보기… 이 모든 것은 킬러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킬러라는 직업에 적합한지조차 의문이 든다. 하지만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사람을 죽이는데 스스럼이 없고 말년의 무료함을 ‘사냥’의 짜릿함으로 달래는 뼛속까지 킬러이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 기억력문제가 발생한다.
기억에 구멍이 나면서 기존의 타깃을 받는 방법마저 혼동이 온다. 한번 사용하고 버려야하는 총기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44구경 큰 총을 선호하는 마틸드라 같은 총을 사용하면 덜미를 잡힐 확률이 높다.)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없는 타깃을 사냥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조용하고 깔끔하게 사냥을 마무리 해야하는데 더심 한복판 마트 주차장에서 소음기도 달지않고 직전 사냥에 사용한 총을 ‘또’ 사용해 저질러 버린다. 비명을 지르는 목격자를 처리하느라 천둥같은 총소리를 한번 더 내주는 것도 잊지 않고.

<대문자 뱀>은 경찰 바실리에브, 바실리에브의 후원자의 도우미 콩스탕스, 킬러 마틸드, 마틸드의 보스 레옹이 이야기를 각자 진행해 나가는데 조금씩 각자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섞여들어간다.
영화로 만들면 그 어떤 누와르에도 뒤지지 않을만큼 분장용 피를 써대야하는 이야기임에도 속이 불편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뭐랄까. 현실에서는 수많은 제약때문에 하지 못했던(하지 말아야 했던)것들을 대리경험한다고 해야할까? (그렇다고 누구를 쏴 죽이고 싶다는 말은 아..아니다)
날 것 그대로의 사냥이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보다 한단계 에너지업된 톤으로 전해져서 굉장히 몰입된다.
그리고 말그대로 굉장히 재밌다.

보통 누와르에서는 보는 사람, 극 속 인물 모두의 심리를 불편하게 하는 잔인한 행위를 ‘그럴 수 밖에 없는’당위성을 꾸역꾸역 부여해가는 과정이 그려져서 관객이 설득당해도 다 보고 나서 마음이 찝찝하다.

<대문자 뱀>에도 이런 불편함은 담겨있지만 ‘이것이 블랙코미디구나’ 싶은 위트로 아주 잘 포장되어 있다.
물론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의 필력답게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까지 잊지 않고 담겨있다.

이게 누와르물이라면 얼마든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은 누와르물로 늦은 나이에 데뷔한 작가의 미발표 글을 거의 그대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인사도 없이 더이상 누와르물과 작별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던 작가의 첫 누와르물인 <대문자 뱀>, 처음이면서 (저자 왈)자가의 누와르 커리어의 마지막이기도 해서 서사, 설득력면에서 완전 납득이다.

다만 나는 이제 이 작가에게 입문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끝이라니.
이렇게 잘쓰는데 왜! 라는 아쉬움이 자꾸만 든다.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피에르 르메르트가 계속 누와르물을 써주길 열렬히 바랄 것이다.
지금까지 작가가 쓴 책을 모두 읽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대문자 뱀>을 넘어 피에르 르메르트를 탐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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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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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언어로 희망과 격려를 전하던 사람이 사랑에 관한 글을 쓴다면, 그 글 속 사랑은 얼마나 핑크빛일지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구원에게 (#정영욱 씀 #부크럼 출판)를 그런 생각으로 펼쳤다가는 큰코다친다.

빛이 강하면 그늘지는 그림자도 짙다고 했던가.
작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고 있는 이 책에서의 사랑은 달의 뒷면과도 같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눈이 멀어 보지못하는(어쩌면 완강히 보기를 반대하는) 그림자가 빛보다 더 어둡게 담겨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잘못키운 자신 탓이라며 엉성한 자세로 당신의 종아리를 내려치는 아버지를 보며 맞지않아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한 ‘나’는 그렇게 다시하면 안되겠다는 고통을 주는 것만을 피하며 염세적으로 성장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누군가와 완전한 한몸처럼 서로에게 스며드는 완전무결한 사랑을 믿지 않는다. 믿는 척 하며 스스로 그렇지 않음을 티내지 않으려 시선관리, 표정관리를 한다. 단순한 하룻밤을 원하던 그의 사랑은 수, 비와 같은 자기만의 결핍, 더 나아가 결함같은 상처를 가진 ‘일반적’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사랑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자기의 방식에 상대방을 맞추게 이끌던 것이 뒤늦게 나마 상대방의 의중을 이해하게 되었고, 느닷없이 부모님 간호로 인한 귀향으로 이별아닌 이별을 하였다가 결혼하게 ‘되었다’는 인사로 끝이난 사랑의 상대방을 그리워하고 떠올리고 길거리에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만나면 그녀라 믿고 또 그렇게 우연으로라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떠난 ‘수’의 빈자리를 ‘비’가 채우게 되면서 수와 닮았다는 첫인상이 있었지만 그녀가 가진 아픔은 너무나 달랐다. 서른에 죽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자신이 죽으면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죽는 것이라며 걱정하던 ‘비’. 이때 ‘나’는 좌절아닌 좌절을 한다. 왜 나의 사랑은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냐고.
하지만 그 와중에 다른 분야이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라는 둘이었기에 서로의 일을 스스럼 없이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문학적으로 깊지 못한 글을 써내고 있다고 푸념하는 ‘나’에게 모든 글이 깊을 필요는 없지않냐며 사랑에 관한 글을 쓰라고 ‘비’는 조언한다. 너가 잘하는 사랑을 쓰라고. 자신이 사랑을 잘하는 줄도 몰랐었는데 말이다.

그처럼 사계절같은 각각의 사랑을 지나오면서 ‘나’는 알게 모르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랑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간다. 즐겁기 위해, 쾌락을 좇던 사랑이 누군가를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시큼해지는 ‘아픔’이 실은 아픔이 아니라 이것이 사랑임을 배운다. 그런 사랑을 겪으면서 물러나지 않고 ‘나는 왜 이런 아픔을 감내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런 사랑들을 넘어오며 자신이 관계마다 마음의 방을 만들어 감정을 가두어 온 것은 아닌지 자문하고, 그와동시에 자신은 어떤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고민하게 된다.

사랑과 글, 써야지만 완성되는 것들에 대한 물러나지않는 사유와 내 삶으로 들어온 모든 사람들, 추억들, 숨기고 지우고 싶은 오점들까지 모두 써서 제 소임을 다 하게 하겠다는 각오로 ‘나’는 사랑과 글을 쓰기로 마침내 다짐한다.

그렇게 <구원에게> 책이 탄생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은 혼자 있으면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고 갈고 닦는 것이 성장에 중요하지만, 나를 비출 거울이 없으면 스스로의 모습을 바로잡거나 고쳐나가지 못한다. 그 거울이 바로 타인이고, 그 거울 속 자신을 마음에 들지않아도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그리하여 마침내 단정한, 마음에 드는 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나’는, 저자는 자신만 사랑의 상대자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모두 각자의 아픔과 그림자가 있다. 숨길뿐이다. 믿기에 사랑하기에 그 모습까지 숨김없이 내보이는 것이다. 그런의미로 ‘비정상적’일 수는 있겠으나 각자에게 그림자가 있는 것은 ‘정상’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아무 눈치 보지않아도 되는 안식처같은 구원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각자의 사랑에게, 각자의 자신에게, 그렇게 우리의 구원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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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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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시작한 생명체가 진화된 작은 발로 육지를 밟았을 때부터 생명체의 시선은 바다가 아닌 육지로 향했다.
조금 더 비옥한 땅, 조금 더 넒은 땅, 조금 더 금싸리기같은 땅을 차지하려는 굳이 없어도 되는 욕심에 전쟁이 일어나고 땅에 자기들만의 선을 그어 서로를 경계한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있다. 우리는 바다에서 출발하였으며 최초의 문명들은 물 옆에 바짝 붙어 자리잡았고 그토록 탐내는 비옥한 땅도 결국은 물이 중요하다는 것을.
더이상 필요없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의 출발이었던 것, 막히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는 것, 결국 인간의 시선이 다시 향하게 되는 곳. 그것이 바로 바다다.

#흑해 (#찰스킹 씀 #사계절 출판)는 현재 흑해라고 불리는 7,8천년의 역사를 예상하는 바다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지금의 냉전의 결과로 이름붙여진 동유럽이 아닌, 객관적, 지리적으로 정말 유럽의 끝(동남)인 곳에 자리잡혀 있는 이 바다는 유구한 역사만큼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라틴어, 이탈리아어, 튀르크어, 영어로 된 그 바다는 환대를 뜻했다가, 큰 바다가 되었다가, 어두운 바다(색보다는 오스만 문화에서 북쪽을 검은색으로 표현하던 특유의 문화가 녹아있을 확률이 더 높다)였다가 그것이 영어로 굳어지는 역사를 보여주면서 지중해보다 깊어 검게 보이는 바다의 수심못지않게 깊은 역사의 적층을 이야기 한다. 열강들의 패권다툼의 관심을 벗어나면서 그 유구한 역사도 함께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역사와 이미지는 강자의 시선에서, 주위에서 결정된다.
수많은 공산주의 소국 끼리의 내전, 지구의 곡칭지대 발칸반도를 삼키려는 안면수심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끝날 줄 모르는 전쟁이 전파를 타고 전세계에 전해지면서, 흑해는 말그대로 희망이 없는 죽은 곳, 어두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민족, 민족국가라는 가치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흑해의 역사가 산증인으로 단단히 서있다.
그리스인이라 불리지만 튀르키예어를 사용하던, 무슬림임에도 튀르키예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그리스어, 슬아브어만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2000년의 역사가 지금의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현재 전쟁이 흑해 주변 여러나라에서 빈번히 일어나다보니 오랜 세월동안 뺏거 뺏기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꽤 오랜 역사동안 지배하는 세력이 바뀌지 않는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다양한 공동체가 근처에 다닥다닥 붙어 살고있었으나 빈번한 전쟁보다는 현상유지, 공존에 더 애를썼던 유구한 역사에서 흑해는 그 서로서로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다리의 역할을 해왔다.

현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역사다. ‘역사는 반복된다.’같은 단순한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지 않더라도 그 땅에서, 그 바다에서 일어난 역사들을 훑어보면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보인다.

우리가 세계의 역사를 얼마나 정확하게, 큰 틀로 알고 있을까. 평생을 세계사를 전공한 학자들도 남미면 남미, 동아시아면 동아시아처럼 자신들의 ‘전공’만 안다. 다른 지역의 나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는지를 알고 이해하려면 학자들도 새롭게
그 지역의 역사를 배워야한다.

흑해. 우리와 상관없는 먼 곳에서 벌어지는 남 이야기가 아니다. 최대 곡창지대와 세계 에너지자원에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 사이에 진행 중인 전쟁은 우리의 물가를 상승시키고 삶을 고달프게 한다. 공산주의의 흐름이 어디까지 흘러들어올지도 예상할 수 없다.

실제적인 이유로도, 이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을 잡기 위해서라도. 흑해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세상의 끝이 아닌,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가 우리에게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진짜 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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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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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에 비해 생각만큼 많이 읽히지 않는 작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뒤로 갈수록 글이 깊어지지만 한순간 놓치면 따라가기 힘든 특유의 문장이 그런 뜻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호기롭게 도전한 <자기만의 방>에서 호되게 느꼈다.

우리에게는 작가라는 직업으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그것만큼 잘했던, 특출났던 영역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비평가이다. #누가제인오스틴을두려워하랴 (#버지니아울프 글 #아티초크 출판)속 그녀의 글은 글 뿐만 아니라 미술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식과 이해력, 헤아릴 수 없는 감성으로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문학이었다.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가 활발히 활동한 시기에는 문학에 비평과 전기도 해당했었다고 하니 당대 최고의 문학가로 손꼽히는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한 작가, 작품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서 버지니아 울프는 당시의 역사는 물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일기와 편지 등으로 방대한 배경지식을 쌓는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를 행동으로 고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성이 느껴지는 폭넓은 배경지식을 사전 삼아 작품을, 인물을 번역해간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의 등장인물을 말하며 작가의 성장환경과 시대적 배경을 말함은 물론,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의 증언(평소 말이 없음에도 이렇게 사람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등)과 사촌이 써낸 제인 오스틴 전기까지 총동원하여 적어놓은 표제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는 제인 오스틴은 물론 버지니아 울프라는 사람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글이다.

더 좋았던 것은 항상 하나의 것을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에 함께 포함하면 좋을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을 풀이하며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차이가 있는 브론테 자매를 떠올리고 여류작가를 넘어 세계대전을 치르지 않은 시대에서 옥스포드 같은 지식의 요람에서 세상과 경제는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책을 읽고 철학을 익히고 사유하여 최고의 작품들을 만들어낸 서머싯 몸, T.S 엘리엇 까지 떠올려 ‘그 시대의 엘리트 천재 작가’들로 묶는다.

자기가 보고 읽은 것을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것들과 관계지어 놓는 것. 아무리 빼어나고 불세출의 것이라도 혼자 있게 하지 않고 무언가와 함께 있게 하는 것. 하나로도 완벽하지만 함께 있어야 완전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 그녀가 동생들에게, 남편에게 바랬고, 주었고, 받은 것. 그렇게 삶의 방향이자 목표, 제일의 가치가 되었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책임감도 있고 자유를 즐기면서도 본분을 다함을 잊지 않았던, 아버지도 딸의 능력을 믿어 고리타분한 교육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갖분야의 오만가지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 깨우치는 힘을 물려주었던 버지니아 울프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 호수로 스스로 걸어들어 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기 사람들을 걱정하고 사랑했던 것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딱 하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는데 그 마지막도 조금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사랑함에도 더 사랑하는 것의 행복을 위해.

세상의 평화와 차별없는 사랑을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에 소리쳐온 그도, 그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에 의해 홀로가 아니라 리베카 솔닛, 수잔 손택과 함께 여전히 우리의 시대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욕하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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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폭풍 속에서 춤을 - 흔들리는 삶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는 인생 수업
이정민(데비 리) 지음 / 나무사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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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는 일이다.
하지만 인생을 그렇게 쉽지않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인생의폭풍속에서춤을 (#데비리 #이정민 씀 #나무사이 출판)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다.
소위 ‘억까’라고 말해지는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외부적인 일들이 나를 격람하는 인생의 한가운데로 나를 이끄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며 부여받은 이름 ‘이정민’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진정한 친구들과 멋진 커리어를 쌓아온, 스스로가 부여한 이름 ‘데비 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내 삶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물론 외적인 요소들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없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시선, 기대, 부여받은 역할이 내가 떠있는 인생이라는 바다의 날씨를 잔뜩 흐린 비바람으로 만들지만 그것을 보며 내가 그렇지, 이 빌어먹을 세상이라며 욕만 하며 잔뜩 비맞게 한 것은 나였다.

바다의 상태가 좋지 않을 수록 항해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항해사, 선장과 같은 그 배를 모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않거나 배를 버리고 도망갈 생각만 한다면 그 배는 결국 좌초될 것이다.

<인생의 폭풍 속에서 춤을>이 인생을 바다로, 삶을 항해로 비유하고 있는데, 나 자신을 배로, 목표를 목적지로,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을 항로로, 나와 함께 삶을 나아가는 동료를 선원으로, 잠시 쉬어 재충전하는 것을 항구로 비유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나는 특히 선원과 항구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은 결국 혼자 가는 것이라며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않고 도움받지않으려 하는 성향이었는데 꼭 누군가에게 기댄다기 보다는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다보면 내가 몰랐던 것을 배우기도 하고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덜 지치고 덜 괴롭게 된다는 것을 몰랐던것이다. 돌이켜 보면 작년에 알게된 새로운 사람들에게 위로도 용기도, 더 잘하는 법도 얻으며 덕분에 지치지 않았다. 막연했던 나아짐을 이 책을 통해 명쾌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항구, 쉰다는 것은 나약한 것이고 실패한 것이라고,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낙오되는 것이라 생각해서 이악물고 버티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건만, 물자도 연료도 채워주지 않으면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동력을 잃은 배는 물살에 떠밀려 표류한다. 정처없이 기약없이 계속.

결국 나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우리는 목표부터 목표까지 가는 과정까지 모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왔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남들이 이렇게 하면 성공하더라는 방식으로 노력한다. 그 노력도 자신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노력이라고 받아들여질 때까지 한다. 내 인생임에도 내가 결정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인생의 폭풍 속에서 춤을>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한다고 말해준다. 나 자신을 살펴보라고. 의문이 들면 다른 사람들은 어찌하는가 눈치보지말고 내 안에 갖혀있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정답이다.
결국 표류되는 것도 배를 모는 것도 목적지를 정하는 것도 어느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 것이다.

이 경로는 내가 정말로 내가 정한 것인가?
목적지는 내가 정말로 내가 원하던 곳이 맞는가?

최단경로, 최고속도, 최단시간이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분명 고장나고 사고가 난다.

속도를 늦추고 점검하고 계획하고 수정하고 조율해야한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이 자기만의 속도를,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길을 알려주는 것은 밤하늘의 별이다. 비가 올지, 방향은 맞는지 확인하려면 속도를 늦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펴야 한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가면 더 틀리기만 할 뿐이다.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
거기서 부터 나만의 충만한 항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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