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을유세계문학전집 148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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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으로 영원할 것 같았던 체제가 급격히 바뀌는 것을 보고, 마찬가지로 대제국이었지만 오랫동안 병들어 있던 러시아에서도 고장난 줄 알았던 심장이 박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의기투합이 아니라 각자 무언지 정확히 알지못하는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정도라 실제로 행동은 미비했다. 잃을 것을 걱정하는, 그럴리 없다 철석같이 믿은 지배층은 깨어있는 척 비싼 술을 들이키며 탁상공론을 펼치고 그들끼리 주먹질을 하는 등 말그대로 주정만 부린다.

#전날밤 (#이반세르게예비치투르게네프 지음 #을유문화사 출판)은 자기도 모르게 달라진 자신의 욕망을 파들어가는, 참지않고 시대에 목소리를 내겠다고 결심하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변화의 싹이 태동하던 그 시대같은 인물, 옐레나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평온하고 무던한, 모두가 꿈꾸는 그런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은 베르세네프와, 터키에 탄압받는 조국 불가리아의 해방을 위해 불타오르는,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인사로프 둘을 저울질한다.

이것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라 격변이 태동하던 그 시대의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앞으로의 자신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이었다.
지금을 영위할 것인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인가.

옐레나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개, 고양이, 가난한 이들, 모든 가엾은 것들을 가엽게 여겨 보살피면서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그녀가 가진 것 없으면서도 조국을 위해 목이터져라 소리내는 인사로프를 보며 알을 깨고 나와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좇는 각성의 순간을 독자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런 각성의 결과로 사랑도 결국 인사로프를 선택, 집안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결혼한다.
대의를 위해 불가리아로 두 부부는 떠나지만 인사로프는
병으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다.
격동, 격발의 순간임에도 옐레나는 불가리아를 떠나지 않고 남편의 유지를 받든다.

드미트리 인사로프의 조국 외, 다른 조국은 내게 없습니다. 그녀의 이 말 한마디가 그녀의 신념이 얼마나 굳건한지 보여준다.

이 시대, 특히나 여성에게는 많은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시기다. 말그대로 결혼 잘하기 위해 평생을 악기와 시, 신부수업을 받는다. 정해진대로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삶. 어찌보면 노예보다도 더한 강제.

그 어떤 연못보다 탁한 썩은듯해보이는 진흙 속에서 가장 고결한 연꽃 하나가 그 자태를 뽐낸다. 비록 악취에 향기가 잘 나지 않을지언정 꼿꼿하게, 푸릇하게 자신의 모습과 향을 잃지 않는다.

수동적일 수 없는 결혼에서 그 어떤 결심보다 더 능동적인 선택을 함으로 그녀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간다.
나 하나로 세상이 바뀔까라는 두려움은 필요없다.
바뀌는 것 보다 더 원하는 것은 나의 자유의지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알다시피 결국 세상은 바뀌었다. 보잘 것 없던 개인의 자유의지들이 모여 결국 세상도 자유를 찾았다.

개인의 이야기가 개인을 넘어 역사에 남는 순간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프랑스에 잔 다르크가 있었다면 러시아에는 옐레나가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책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살아숨쉬었을 것 같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아마 내가 모르는 수많은 옐레나가 실제로 있었겠지.
당시 이 글을 읽고 가슴에 불을 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덕에 실제 역사가 바뀐 것이겠지.

실제로 횃불이었던,
내 마음에도 열정의 불씨를 나누어준.
여전히 횃불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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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 독재자의 새로운 얼굴
올레크 V. 흘레브뉴크 지음, 유나영 옮김, 류한수 감수 / 삼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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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과 수많은 국제법으로 이제는 아무도 모르게 순식간에 전쟁을 발발하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그럼에도 전쟁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원수지간끼리 혈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지만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한 나라의 내부 결속을 위해 해외로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다.
주로 독재자가 존재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인데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하면서 더이상 국민들이 우둔하지 않고 깨닫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이 약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달콤하길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끝없는 욕심, 영원한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전쟁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정당화를 위해 캐캐묵은 옛 인물을 데려온다. 그 인물을 세워 자기가 정당한 그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것이다. 같은 민족 다른 다라(라고 우기는)윗지역의 백두혈통이 떠오르는 것은 기분탓일까. 입맛이 쓰다.

스탈린도 그러한 인물 중 하나다.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은 그가 집권하는 동안 별다른 이유없이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범보다도(물론 한국전쟁에 참여했으니 전범이기도 하다.)더한 인물이다. 자신의 권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삼았으며 그의 정책 실패로 인한 대기근으로 2년동안 백만명이 넘는 국민이 목숨을 잃었으나 그가 한 것이라고는 제한적 사유제한을 인정해주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다.

그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며 타산지석의 예로 들 때 뿐이여야 하건만, 지금의 ’열강‘러시아를 만든 위대한 인물로, 공산주의의 수호자, 러시아의 영웅으로 평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역사는 기록으로, 역사가의 주관이 담겨있는 것이라하지만 경제적 발전을 수백 수천만명의 목숨보다 무겁게 책정할 수 있는가.

#스탈린 #독재자의새로운얼굴 (#올레크V흘레브뉴크 씀 #삼인 출판)은 이렇게 평가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어찌됐든 러시아 근대화의 상징인 스탈린의 진짜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추적한 책이다.

측근의 일기, 스스로 한 기록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편협한 시선들이 가득하고 제대로된 사료를 고찰하지 않는 책들은 과감이 배제하고 팩트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만 담아 스탈린의 인생을 따라간다.

차르의 혼외자다, 불우한 가정환경이었다 등 말이 많지만 그의 순탄하고 평범한 가정환경과 성장환경이 의외였다. 오히려 성적이 우수했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런 그를 삐뚫어지게 만든 것은 신학교에서의 부당함이었다. 주일마저도 자유가 없는 감옥같은 생활, 부조리한 선생들의 처신은 그를 불만이라는 감정에 침몰되게 만들었고 영웅적인 무언가를 갈망하는 시인으로 만들었다.

헤아릴 수 없는 목숨을 앗아간 이가 신학교에 다녔다니. 신학교를 그가 견뎌냈었으면 신의 뜻을 따랐을까. 그곳에서 신을 등저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게 혁명 전, 혁명 후를 지나 쓸쓸하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난 뒤 1주일을 담는 이 책에서 그의 과오들도 알아두어야 하지만 그의 사후의 기록들이 이 책이 하고자하는 말을 또렷하게 담고 있는 듯 했다.

남은 이들은 그를 방부처리하며 상징화 시켰지만 그의 성향을 따르지 않았다. 폭군에게 시달려온 그들이 공포 체계의 철폐를 선언한 것이다.

그의 사후 초기에는 모두가 평등하게, 또 다른 폭군의 등장을 경계하였으니 말이다. 공안과 굴라크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형태를 잃었다.
결국 스탈린 지우기였다. 스탈린의 입장에서는 배은망덕한 이들이였지만 그 누구도 스탈린과 같은 유일 권력을 누리지 못하는 러시아가 되었는데 이것을 배은망덕이라 표현해도 될까?

스탈린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유신 독재를 행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존재함도 스탈린과 같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와 그때를 그리워하고 미화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개인의 생명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자유라는 가치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보며 제대로 된 교훈을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희망이 더이상 없다고 하루하루를 비관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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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박서련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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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사랑하는 사람과 맞이한 위급한 순간을 초인적인 힘으로 극복하거나 불치의 병을 극진한 간호로 이겨내는 상황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사랑의힘 (#박서련 지음 #문학동네 출판 )에서 사랑의 힘은 더 구체적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미했던 능력 하나가 대폭 강화된다. 연산 능력, 기억력, 끈기가 좋아질수도, 점프력이, 청력이, 후각이 발달되기도 한다.

이것은 사랑의 이점으로 그려진다. 입시, 육아에서 하나도 모자람이 없는 육각형 인재를 만들고 싶어 부모들 입회하게 어린나이부터 다양한 만남을 주선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않는 아들의 첫 여자친구를 만난 아들이 입시에 아무 도움이 되지않는 점프력이 강화되어서 휴대폰을 쥐어주며 헤어져달라 부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것은 이점이라기 보다는 자기 마음의 확인에 더 가까웠다. 내가 이 사람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그냥 문득 생각이 난 것인지 내 감정을 명확하게 해준다. 사랑이 끝날 때 강화된 능력도 사라진다. 사랑의 바로미터인 것이다.

물론 좋아진 후각은 그녀를 먼 거리에서도 명확하게 찾을 수 있게 해주고, 기억력은 죽어서도 그를 잊지 못하게 하며, 좋아진 간은 어떤 슬픔도 잘 해독해낼 수 있게 해주기도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점과는 다르다.
사랑이라는 분야에서만 유용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향하는 마음과 정성을 더 잘 행할 수 있도록 해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들이 인물들이 하나씩 겹쳐지며 끈을 놓지않으며 각자 다른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 이야기들은 각각의 색으로 칠해져있어 한데모여 순서가 조금 다르지만 무지개빛을 띈다.

무지개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색들만 사용해서 일곱가지색으로 나눠져있는 것 처럼 여겨지지만 색 사이사이에는 미쳐 우리가 보지못하는 각각의 색은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또 다른 색들이 있다.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 상관도 없어보이는 사람들을 서로 하나처럼 묶어주는 것. 결합된 부위가 보이지 않게 둘의 색 사이 가장 어울리는 수만가지 색으로 원래가 하나처럼 만들어주는.

결국 나와 같이 여길 수 있는 또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의 힘’이지 않을까.

각기 다른 모양, 향기, 소리로 사랑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근원은 모두 같다. 프리즘을 통과하여 갈라지는 형형색색의 빛이 모두 하나의 광선에서 기원하듯이.
그렇기에 서로 다른 사랑을 해도 공감하고 이해하고 축하하고, 격려하고 응원 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보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각기 다른 형질의 사랑을 하지만 그 둘을 넘어 결국 우리 모두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하나로 묶어주는 것도 ‘사랑의 힘’일 수도 있겠다.

결국 사랑을 찬양하게 만드는 책이구나.
<사랑의 힘>은 사랑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담긴 책이었다.
그래서 좋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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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의 소통법 - 소음을 화음으로 바꾸는
김진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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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바토Rubato. 의도적으로 음의 길이를 늘이거나 줄이는 것. 악보에서 벗어나는 행위이기에 콩쿨과 같은 경합에서는 위험요소이지만 그만큼 얼마나 곡에 대해 고민했는지, 작곡가와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를 알려주는 소통의 흔적이다.

본인만의 음악성을 드러내기위한 욕심과는 소리부터, 설득력부터가 다르다.

하나의 분야에 통달하면 그 원리는 만물의 이치와 결을 함께 한다고 했던가. 개인의 삶에 피어나는 표현형은 다를지언정 결국 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지휘자의소통법 (#김진수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출판)을 보며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저자인 김지수는 지휘자, 마에스트로의 경험을 살려 올바른 조직문화를 정착시키는 강의를 하고 있다.
음악이나 하던 사람이 조직을 알겠냐고 하면 오산이다.
솔리스트, 오케스트라, 지휘자 모든 음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소리를 낼 것인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어떤 소리를 내는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의 조직문화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기에 바뀌어야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을 읽어낼 수 있게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밖을 향해 있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점이다.

음악가의 책 답게 1악장 아다지오, 2악장 안단테, 3악장 모데라토, 4악장 알레그로로 이어져 마침내 피날레로 향하는 이 책은 그 자체가 이미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하고 있다.

바로 ‘처음부터 전력질주 하지말 것’이다.
시장경제주의가 도입되면서 모든 것이 숫자로 환원되는 시대에 속도는 미덕도 아닌 기본이 되었다.

일당백이라는 말. 조직의 스페셜리스트를 뜻하지만 결국 업무처리량이 많은 사람을 뜻하니, 모두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길 바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걷는 법, 나아가야하는 방향도 완전히 익히지 못하고 냅다 달려나가면 오래 달리지도 못하고 부상도 당하고 방향도 틀려 오히려 걷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런 실패감은 다른 조직원들의 눈치를 보게 만들고 이 눈치는 아이러니 하게도 타인에 대한 시선과 귀를 막고 자기 자신 안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조직원이 아니라 조직안에서 표류하는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늦추는 것을 넘어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바짝 당겨져있던 긴장감을 과감히 끊어내면 비로소 함께 긴장하다 낮은 한숨을 뱉어내는 동료와 눈이 마주치고 겸연쩍게 웃다 농담하고 기지개켜고, 그렇게 주변의 공기가 바뀐다.

그렇게 다시한번 탱탱하게 당겨질 준비를 갖춘다.
같은 당겨짐이지만 다르다. 이번에는 혼자 당기는 것이 아니라 주변 동료들과 눈으로 호흡을 주고받아 함께, 같은 힘으로 당긴다. 둘이서 하나 처럼. 한소리 한마음으로.

결국 조직이라는 것은 조화와 소통이다.
소통도 결국 조회로 나아가는 길이니 결국 조화이다.

조화란 발맞춰 나아가는 것.
속도가 더할나위 없이 중요하다.
빠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멈추었다가 느리게, 천천히, 걷는 속도정도, 조금 더 빨리 걷는 속도. 이렇게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속도. 그것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단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단체에 중요하면 개인에게도 중요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단계적인 속도와 여유가 필요하다.
몰아붙이면 결국 자기자신도 보이지 않게 된다.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있으면서도 절대적 고독을 느끼게 된다. 더불어 산다는 것, 함께 나아간다는 것만큼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나 개인에게도, 내가 속한 조직에게도 그만큼 조화는 중요하다는 것을 감상평으로 남기게 되는 좋은 공연한편 감상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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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 - 릴케와 카푸스 왕복 서한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프란츠 크사버 카푸스 지음, 최성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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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누군가 곁에 있고 따뜻한 밥과 잠자리, 향긋하고 깨끗한 옷과 애정을 담은 눈길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 온기는 나에게 닿지 않는다.
자신도 정확히 모르지만 무언가가 불편하다.
발가락 다섯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사이가 몹시 답답하고, 마음에는 온갖 생각들이 무엇에 대한 생각인지 정의내릴 수 없는 폭풍이 자리잡고 있다.

죽음 같은 막연한 끝을 생각했던 것도 같은데 결국 어두운 어둠 속에서 엄마를 부르고 내뱉은 한마디는 “울고싶어.”였다.

#젊은시인에게보내는편지그리고젊은시인이보내는편지 (#라이너마리아릴케 & #프란츠크사버카푸스 지음 #을유문화사 출판)은 시로 업적을 이룬 위대한 시인과 현재 자신의 상황을 견딜 수 없어함과 동시에 시인이 되고자 하는 청년이라는 지위적 차이가 혁혁하게 드러나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이다.

이 속에서 릴케에게 예술에 대해, 성에 대해, 시에 대해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는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를 보고 있으면 위에 적어둔 나의 어릴적이 생각난다.

사춘기 없이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한번씩 저런 순간들이 있었다. 울고싶다는 아들의 말에 울어라고 대답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떤 애정이 담겨있을지 가히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이때의 카푸스도, 그리고 나에게도 가족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정이 너무나 위대하고 크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 진짜 내 고민을 말 할 수도 없다.
그렇게 썩어문드러져가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털어놓는 것을 넘어 다정하게 강요가 아닌 방향을 잡아주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그 당시에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행운을 카푸스는 얻었다.
아니 얻어냈다.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그 분야의 최고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월이 흘러 비로소 작가가 된 카푸스에게는 치기어린 자신의 어린날 글이 공개되길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가 쓴 어떤 글보다 더 간절하고 감정 충만한 글이었을 것이다.

릴케도 그렇다. 릴케는 그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받았을까. 유명 시인이 그 명성에 걸맞는 답장을 쓰는 것은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그럼에도 릴케는 이 청년의 애달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격려해주고, 물음에 답도 해주고, 그의 글을 읽어주었으며, 심지어 필사도 해서 보여주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정성을 담아 한글자 한글자 눌러담아 써내려만 필사만큼 감동적인 것이 또 있을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편지를 쓰기도 쉽지않은 사람이 이런 수고를 더했다는 것은 애정 말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비록 이 둘의 편지는 비교적 짧게 끝났고 실제적인 친분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케의 주소록에 카푸스와 그의 주소가 남아있었다는 것, 주소를 갱신하지 못해서 비워두었음에도 그의 이름만은 남아있었다는 것이 편지만큼의 큰 울림을 주었다.

그 둘이 나눈 편지에서 보이지 않는 또다른 사정이 무엇이 중요할까. 이런 일화를 보며 사람들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 생각할 것이고, 자기도 그런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다, 또는 만나고 싶다 희망을 품고 자신의 삶을 더 단단히 하려 애쓸 것이다.

릴케의 시를, 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청년에게 주는 조언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시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라 미쳐 보지 못하고 놓친 것이 있을테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것이 후회스럽지 않다.

마음을 전한다는 것. 너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는 다정함을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에도 존재했음을 볼 수 있던 것만으로도 두께보다 더 큰 의미를 내게 주었다.

편지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인,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여러모로 어울리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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