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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 - 릴케와 카푸스 왕복 서한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프란츠 크사버 카푸스 지음, 최성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평점 :
매일 누군가 곁에 있고 따뜻한 밥과 잠자리, 향긋하고 깨끗한 옷과 애정을 담은 눈길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 온기는 나에게 닿지 않는다.
자신도 정확히 모르지만 무언가가 불편하다.
발가락 다섯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사이가 몹시 답답하고, 마음에는 온갖 생각들이 무엇에 대한 생각인지 정의내릴 수 없는 폭풍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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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같은 막연한 끝을 생각했던 것도 같은데 결국 어두운 어둠 속에서 엄마를 부르고 내뱉은 한마디는 “울고싶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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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인에게보내는편지그리고젊은시인이보내는편지 (#라이너마리아릴케 & #프란츠크사버카푸스 지음 #을유문화사 출판)은 시로 업적을 이룬 위대한 시인과 현재 자신의 상황을 견딜 수 없어함과 동시에 시인이 되고자 하는 청년이라는 지위적 차이가 혁혁하게 드러나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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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에서 릴케에게 예술에 대해, 성에 대해, 시에 대해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는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를 보고 있으면 위에 적어둔 나의 어릴적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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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없이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한번씩 저런 순간들이 있었다. 울고싶다는 아들의 말에 울어라고 대답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떤 애정이 담겨있을지 가히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이때의 카푸스도, 그리고 나에게도 가족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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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 너무나 위대하고 크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 진짜 내 고민을 말 할 수도 없다.
그렇게 썩어문드러져가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털어놓는 것을 넘어 다정하게 강요가 아닌 방향을 잡아주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그 당시에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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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행운을 카푸스는 얻었다.
아니 얻어냈다.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그 분야의 최고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월이 흘러 비로소 작가가 된 카푸스에게는 치기어린 자신의 어린날 글이 공개되길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가 쓴 어떤 글보다 더 간절하고 감정 충만한 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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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도 그렇다. 릴케는 그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받았을까. 유명 시인이 그 명성에 걸맞는 답장을 쓰는 것은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그럼에도 릴케는 이 청년의 애달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격려해주고, 물음에 답도 해주고, 그의 글을 읽어주었으며, 심지어 필사도 해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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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에게 정성을 담아 한글자 한글자 눌러담아 써내려만 필사만큼 감동적인 것이 또 있을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편지를 쓰기도 쉽지않은 사람이 이런 수고를 더했다는 것은 애정 말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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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 둘의 편지는 비교적 짧게 끝났고 실제적인 친분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케의 주소록에 카푸스와 그의 주소가 남아있었다는 것, 주소를 갱신하지 못해서 비워두었음에도 그의 이름만은 남아있었다는 것이 편지만큼의 큰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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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이 나눈 편지에서 보이지 않는 또다른 사정이 무엇이 중요할까. 이런 일화를 보며 사람들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 생각할 것이고, 자기도 그런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다, 또는 만나고 싶다 희망을 품고 자신의 삶을 더 단단히 하려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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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시를, 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청년에게 주는 조언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시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라 미쳐 보지 못하고 놓친 것이 있을테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것이 후회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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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전한다는 것. 너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는 다정함을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에도 존재했음을 볼 수 있던 것만으로도 두께보다 더 큰 의미를 내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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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인,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여러모로 어울리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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