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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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그 장르(소설, 교양, 인문 등) 속해져 있는 책들의 양을 보면 그 장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정도를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인기의 척도라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내가 예전에 책을 보던 코흘리개 시절에 비해 작가도, 책의 수도 눈에 보이게 증가한 장르는 에세이가 아닌가 싶다. 자기만의 생각이나 경험을 가상의 인물들과 각종 플롯으로 촘촘하게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 보다 잔잔하게 꾸밈없이 적어내려감으로 조용한 감동을 주고, 실화라는 걸 알고 읽으니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구나 라는 위안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새로운 물결이 일고있다.
바로 에세이의 소설화라고 할까? 실화를 소설처럼 극적으로 편집해 글을 쓰는 것인데 실화라는 것에서 주는 울림과 소설이 주는 책을 덮었을 때 몰려오는 깊은 감동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한권으로 에세이와 소설 두권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에세이의 소설화에서 가장 선두에 서있는 작가가 바로 미국의 #조앤비어드 이다. 현대 미국 에세이의 경로를 바꿔놓은 작가, 슬픔과 사랑의 경계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을 끌어내는 작가, 고통을 품고 빛을 말하는 작가,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꾼, 문장의 결을 다루는 세밀화가라는 수식어를 모두 수용해 버리는 조 앤 비어드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첫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대표작인 #축제의날들 (#클레이하우스 출판)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가 되었는데, 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과는 다르게 죽음과 병, 화재, 관계의 상실, 반려동물과의 이별 등 쉽게 그 아픔을 예측할 수도 없는 슬픈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대체 왜 이 슬픈날이 축제의 날이란 말인가. 책에 실려있는 아홉편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공통된 태도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슬픈 사건들을 슬픈 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하지도 않는다. 묵묵하게 그 슬픔의 고통의 한 가운데에 몸을 깊게 담그고 슬픔과 오랫동안 마주한다. 그로인해 조개가 진주를 만들듯, 진흙속에 뿌리내려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흔적이 피어나는 것을 목도한다.

어두운 밤 모닥불을 크게 피워놓고 그 주위를 크게 둘러 춤을 추는, 그래서 흙이나 동굴 벽면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그런 축제가 생각난다.

이러한 축제에서는 잃어버렸던, 그리고 놓쳐버렸던 무언가들이 발견된다. 하나의 경건한 의식처럼.

그 어둠을 살라먹고 인간의 가치에서 소중한 사랑과, 자기애를 넘어 인간대 인간의 사랑, 유대, 연대로 나아가는 인류애적 가치까지 담겨겨있어 책 속의 글들이 책 밖으로 흘러나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휘감는다.

장르를 파괴하는 실험적인 작품이나 그 실험의 결과값은 상당했다. 수없이 탈고라는 실험노트를 포기하지않고 빽빽하게, 꾸준하게 적어 내려간 인고의 결과가 이렇기 달콤쌉사름하다니.

전혀다른 두개의 과일은 접붙이기하여 맛좋은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 농부의 마음이 이럴까.

에세이가 가지는 기억을 기록함으로 생기는 진실함과,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무한한 상상력이 합쳐서 진실이 머리 안 생생한 상상처럼 살아움직이는 마법같은 글이다.

내용적으로 우리의 삶과 죽음, 고통, 사랑과 우정에 대해 생각해보고, 글 형식적으로는 장르를 허무는 형식이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까지, 이야기거리가 풍성한 책이다.

글속의 주인공을 따라 어둠속을 깊게 탐험하다 한줄기 희망을 찾고, 다른 사람들과의 축제같은 대화로 더 큰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축제의 날들>은 하나의 책을 넘어 잊은게 아니지만 뜸했던, 누군가일수도, 무엇일수도 있는 그것과의 연결을 견고하게 해주는만남의 장이 되어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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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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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지원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모스크바의 신사>와 <우아한 여인>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에이모토올스 가 신작 #테이블포투 (#현대문학 출판)을 발표했다.

단편으로 글쓰기 수련을 많이 했다는 에이모 토올스는 이번 작품 <테이블 포 투>에 10년동안 쓴 단편6 중편1 를 수록했다.

에이오 토올스의 이름은 워낙 많이 들어봤는데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어서 프리뷰북 이벤트에 신청해서 수록 된 단편 소설 중 하나 ‘밀조업자’를 받아 읽었다.

읽는동안 감탄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글에 빠져들 수 있다니. 오히려 단편이라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일단 내가 동경하는 클래식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메카, 카네기홀에 얽힌 이야기가 시작부터 가산점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삼십대 중반, 아이비리그 출신 골드만삭스 역사 상 가장 젋은 상무이사 토니는 두아이의 육아로 집에만 있던 아내 메리를 위해 아이들이 통잠을 자기 시작하다 토요일 외출계획을 계획한다. 키신의 공연을 예약하기위해 카네기홀에 후원금도 내며 철두철미하게 조사하여서 결국 4주동안의 ‘거장의 공연’을 통으로 예약한다. 메리의 취향은 아니지만 사랑하니까 라며 따라나선다. 자유로운 영혼인 메리는 취향은 아니었지만(감상하고 느끼는 것을 보니 취향임이 분명했지만)연주에 집중해서 듣는 반면 남들 시선에 몹시도 의식하는(그래서 고급정장과 좋은 레스토랑, 와인으로 식사를 하고 카네기홀에서 좋은 자리에 앉아 연주자의 악기생산연도를 줄줄외고있다)토니의 눈에 옆에 앉은 노인 파인의 레인코트 옷섬으로 빠져나온 마이크를 발견하고 기겁한다. 쳐다도 보고 혀도 차보고, 외면도 해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4주간의 공연 중 두번째 공연에서 결국 일이 터진다.

참지못한 토니가 공연 중 관계자를 찾아가 신고한 것.
경찰까지 데려와 의기양양 한 토니. 하지만 파인 씨는 녹음한 적이 없다 말하고 일단락 되는 듯 한 것을 보고 직접 몸을 날려 차인 씨 옷 속에서 녹음기를 발견한다.

하지만 십수년동안 아내와 공연을 보러왔었는데 아내가 몸이 아파 올 수 없어 아내에게 들려주려 녹음을 했다는 그의 사연에 토니는 할 말을 잃고, 모두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토니는 파인씨를 기다리겠단다. 사과를 하겠다고(하는 김에 녹음 행위가 얼마나 신경쓰이는지에 대해 설명도 하겠단다)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나쁜 인상을 갖고 있지 않길 바라는 토니의 성향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참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파인 씨는 만날 수 없었고 그 다음 공연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않는 가엾은 토니. 홀의 경비원과의 대화를 통해 파인 씨가 근처에 도보로 이동가능한 거리에 산다는 것을 파악 75군데의 거주건물을 뒤져 결국 찾아낸다. 여기에서 파인 씨가 혼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토니는 분노하지만 아내가 죽어서 혼자산다는 것을 알게되고는 또 멘붕에 빠진다.(제발 토니 그 입좀..🤣)그렇게 파인씨 집에 초대되어 티타임을 가지던 중 파인 씨의 딸을 만나 호되게 저주를 받았다. 평생 카네기홀에 다녀서 공연을 들었으면 좋겠다며 첼로연주를 들을 때 마다 오늘을 잊지말고 스스로가 개자식임을 잊지말라고.

저주를 당한 토니는 카네기홀 근처를 지나갈때, 고등학생이든 누구든 연주하는 첼로소리만 들으면 인상이 찌푸려진다.

저주가 통한 것이다.
카네기홀은 가지 않는 것 같지만.

예전 금주령의 역사에서 몰래 술을 만들어 판매하던 ‘밀조업자’들의 역사가 남아있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음악‘밀조업자’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음악을 팔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떠난지 1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내를 그리워하며 녹음을 계속하던 파인 씨의 단란했던 가족이야기도 감동스러웠고, 토니와의 일을 계기로 카네기홀 입장금지를 당했지만 덕분에 아내를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며 불법녹음본을 치웠노라며 이야기하던 파인 씨의 어른스러움이 참 좋았다.

하나의 일대기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죽으면서 끝나는데 죽음의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한걸음을 내딛으려라는 일대기인 것 같아 더 마음에 들었다.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1번을 듣는 메리의 ‘승천하는 음악을 따라 나도 승천했다’라는 감상평이 내가 이 단편을 읽는 감상평이었다. 단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던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나머지 다른 이야기들도 너무나 궁금하다.
나를 어디까지 상승시키고 또 추락시켜 내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인간임을 일깨어 줄 것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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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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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글이지만 리뷰 대회 참여합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짐을 뜻하는 단어로, 원래는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에 살면서 유대적 종교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뜻한다고 한다.

#벌집과꿀 (#폴윤 지음 #엘리 출판)에서는 이 단어 앞에 한국계를 붙여 ‘한국계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주제로 삼아 7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각각의 사정과 사연으로 고향을 떠나 타지에 정착하여 살아가는자들. 한국인 디아스포라.

막 출소해 미국 낯선 동네에 정착하려는 한국계 청년, 탈북한 뒤 흘러흘러 스페인에서 청소 일을 하는 나이 든 여성, 조선인 고아 소년의 고국 송환 길을 호위하는 에도시대 사무라이, 탈북 한국인 2세로 런던 외곽 한인타운에서 살아가는 한 부부, 러시아 극동 지방의 척박한 고려인 이주지에 배정받은 러시아인 초임 장교, 사할린섬에 있는 교도소에서 일하는 고려인 아버지를 찾으려 나선 십 대 소년,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를 간직하고 외진 산골 고향으로 내려온 남자.

어린 나이에 고국이 아닌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뿌리가 뽑히고, 낯선 땅에서 마음붙일 이유를 만들기위해 치열하게 집을 짓고, 부모가 탈북해 자연스레 런던에서 태어난 교포2세,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섬으로 끌려온 할아버지이후로 3대 째 타국에서 살면서 한국인이 아닌 고려인으로 불리는 사람. 등등 분명 한국과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한국에는 이들을 그리워 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가지고 있을 때 보다 가지지 못했을 때가 더 아름다워 보이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시리다 했던가.
자기의 의지도 아님에도 이런 시린 마음을 지고, 고국에서도 타국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무슨 낙으로 고된 삶을 살아가는지 궁금하다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스스로에 놀랐다.
국내에 살고 해외에 살고의 차이 밖에 없는데 왜 무슨 낙으로 사는지를 걱정할까. 나도 낙없이 사는건😂똑같지 않나?

가만히 돌이켜 보니 이들은 상실 과 결여를 나보다 하나씩은 더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국일수도, 심지어 고국을 고국이라 말할 수도 없는 경우도 있다.

자기가 원해서 된 결핍이 아니라 더욱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큰 맘 먹고 떠날 수 있는 이유는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행지가 좋고 여기서 살고 싶다 하더라도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아 그래도 역시 집이 최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기에 언제든 안심하고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벌집과 꿀>의 인물들도 물론 home 과 house의 관점에서 봤을 때 모두 house는 가지고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하지만 아직 모두가 제대로 house가 있는 곳에 뿌리를 깊숙하게 내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집에 있어도 단단히 뿌리내리지 못해 ‘여행하는 와중’인 것이다. 심지어 돌아갈 마음의 ‘집’도 없다.
그러니 삶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들이 쉽게 흔들리고 뽑히듯.

하지만 이 책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곁은 내어주는 이들이 한번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기하도록 아무렇지 않게 곁을 내주고 마음을 써주는 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부담스럽지 않게 나눈 따뜻함은 그것만으로 삶을 구원할 만큼은 아니지만, 한 번의, 한순간의 유대가 이들에게 ‘집’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조그마한 집을 마음에 담고 또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주위를 둘러보면 고향을 떠나 여러가지 이유로 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나처럼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취업을 위해 대부분 상경하는 세상이니. 인생의 전부를 살아온 곳을 떠나 어딘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참으로 쉽지않다.
아는 사람도 없고, 혼자 불켜고 불끄는 온기없는 단칸방도 휴식에 도움이 되지않는다. 그렇게 원동력을 잃어간다.
그럴 때 누군가가 전해준 사소한 마음하나가 보일러 못지않은 뜨거운 온정으로 다가온다. 우리모두 겪어봤을 것이다.
이방인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법이다. 보이지 않을 수 없다. 하고자하는 마음만 있으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방인은 자취를 감출 수 있다.

내몸을 누일 곳에 마음붙일 수 있는 살아갈 이유, 기꺼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달콤한 꿀을 서로서로 챙겨줄 수 있는 그런 달콤한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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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
르쁠라(박민지) 지음 / 크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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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첨단기술이 모든 분야를 집어 삼키고 있는 지금, 몇 안되는 분야들만이 겨우겨우 인간의 손에 의지하며 칼날같은 빙판위 걸음을 이어나가고 있다. 미술과 문학은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고 구분할 수 없어 사용자제를 요구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의 인생이 담긴다는 내면의 가치덕에 예술은 AI의 시대에서고 고유성을 잃지 않았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심미적 디자인 뿐만 아니라 산업디자인적 요소로 인해 활용성도 있어야 하고 디자이너의 인생이 녹아든 아이덴티티까지 담겨있어야한다. 어디 그뿐인가? 기꺼이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 실제로 입고 다녀야 하기때문에 설득력도 갖추어야 한다.

물론 소재와 마감의 우수성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같은 머글이 생각하는 패션은 이정도이다.
하나정도 더 추가하자면 디자인 복제에 굉장히 예민하고 그로인해 굉장히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자기 브랜드들의 방향성을 제기하는 오뜨꾸뛰르 같은 경우에는 당일 무대에 올려질때까지 유출되는 일이 거의 없다.

최신전자기기인 스마트폰들은 출기되기 몇달 전부터 디자인과 스펙이 꽤나 정확하게 유출되는 것과 굉장히 대비된다.

짙은 폐쇄성과 패션의 본고장이 동양이 아니라 서양이라 새로운 옷들이 공개되는 무대를 직접 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현대 패션에 기조가 되는 디자인이나 현재까지도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디자이어들의 신념과 디자인을 알아둬야 한다.

영어로 치자면 알파벳에 해당하는 역할일 것이다.
영어를 배우려면 알파벳을 알아야 하듯이.

그래서 물리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를 신경쓰지않고 패션과 패션 디자이너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있다.
#세계유명패션디자이너50인 (#ksibooks 크루 출판 #르쁠라 #박민지 저)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이미 이전 저서 <패션 디자이너, 미래가 찬란한 너에게>로 예비 패션디자이너들에게 희망을 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그 다음을 위해 준비한 책이다. 시대별로 나누지 않고 디자이너 50인의 동기와 철학, 대표작, 시대적 배경, 삶의 태도까지 남김없이 담겨있다.

글과 함께 저자가 직접 그린 100여개의 일러스트가 포함되어 있어 각 디자이너의 세계관과 스타일을 동시에 연관지어 시각화 할 수 있어 후에 지식들을 활용하기 훨씬 유리하다.

시각적 자극이 굉장히 중요한 분야이다 보니 정성들여 그린 일러스트가 아주 큰 힘을 발휘 할 것이다.

요즘 의류 브랜드 시장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아이덴티티와 철학을 철저히 무시한채 그냥 부의 상징, 과시용으로 ‘명품’,‘사치품’으로 소비되면서 라이프스타일도 고려하지 않고 위화감만 조장한다.

브랜드에서도 신제품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인기있던 모델을 복각하고 핸드메이드에서 많은부분들을 대량생산하며 퀄리티를 낮추고 가격은 너무나 잦은 빈도로 올리며 가격저하를 우려해 남은 물량은 소각하고 있다.

분명 그 브랜드를 자기이름을 걸로 만든 디자이너들의 유지를 분명 알텐데 자본주의사회에서 너무 많이 그 뜻이 변질 된 것 같아 아쉽다.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 책을 읽으면 그 안에 디자이너의 인생과 철학, 눈정화를 책임지는 멋진 일러스트까지 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기며 스스로가 추구해야할 가치관을 생각하면 딱 좋을 것이다.

지금의 패션계를 올바르게 다시한번 부흥시킬 누군가가 이 책을 보고 나오면 좋겠다.

그것이 꾸준히 디자이너의 삶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의 염원일지도 모르겠다.

샤넬, 발렌시아가, 프라다, 가브리엘 샤넬, 엘사 스키아파렐리, 랄프로렌, 베르사체, 피비 파일로 등 이들의 로고부터 디자인까지, 하나의 유행을 좇지않고 자기표편의 새로운 자기표현의 언어로 받아들여 이 아름다운 아카이브의 하나를 담당할 수 있는 K디자이너가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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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건너는 교실
이요하라 신 지음, 이선희 옮김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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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불량과 학구열.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단어들임에도 하나의 그릇에 담겨질 수 있는 것들이다. 바로 하나의 ’사람‘속에.

불량, 불량품은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
그 판단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완벽한 판단일 수 있는가.

애초에 사람에게 불량품이라 낙인찍는 것이 옳은 일인가.

판타지 소설같은 제목 #하늘을건너는교실 (#이요하라신 지음 #쌤앤파커스 출판사)은 고등학교 야간반에 다니는 10대 부터 70대 까지 각자의 사연을 들려주는 청춘물이다.
장년 노년 층이 들어와 있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분명 청춘물이 맞다.

요즘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대학 입시때에는 야간을 따로 뽑았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오전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제도로 보였지만 일반 수능 커트라인보다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직업반 정도의 이미지였던 것 같다.
그냥 공부가 정체성이던 시절이라 이외의 것이 용납되지 않던 시기였어서 그런 편견들이 가득했던 시절이다.

그래서 나머지 길은 다 틀린 길이었는데 그 길을 자기가 선택했을수도 있고 외적 요인들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을 수도 있는데 참 어렸었다. 물론 생각하는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두가 그럴 것이라는 편견은 참 위험하다.

그래서 남들 다 공부하는 시기에 공부하지 못했다는 결여가 컴플렉스가 되어 평생을 문제없이 살아왔지만 만학도의 길을 걷는 멋진 분들도 있고, 직장을 다니면서 잠을 줄여가며 검정고시, 대학, 대학원까지 패스하는 분들도 있다.

<하늘을 건너는 교실>의 야간부는 하루에 4교시씩만 진행해서 4년제이지만 1학년 때 불량한 학생들은 거의 다 떠나가고 그 뒤에는 학업에 뜻을 두고 있거나, 취업을 위해 고등학교 학력이 필요해서 버티는 그런 사람들 위주로 남아있어 썩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대부분 성인이라 중정에서 담탐을 가지고, 야간반 담당 교사는 매일 학교 안 담배꽁초를 퇴근전에 주워야하는 좀 요상한 장면들이 있지만. 🤣

하지만 스스로를 불량품이라 여기는 야나기다 다케토, 남편과 딸의 도움으로 식당을 맡기고 학교에 다니게 된 고시카와 안젤라, 자율신경 이상으로 제때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나토리 가스미, 생계 문제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나가미네 쇼조는 심야식당의 마스터를 떠올리게 하는 과학교사 후지타케를 만나 과학부를 결성하여 다양한 지구의 현상을 실험한다. 하늘은 왜 푸른색인지 하늘은 왜 하얀지, 대류는 왜 일어나는지 지진과 화산폭발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배우며, 화성의 저녁놀은 푸른색이라는 의외의 것들도 배우면서 무언가를 배워나간다.

화학시간에 혼합물과 화합물을 배운 것이 생각났다.
A+B인건 같지만 A와B가 고대로 남아있는 혼합물과 그 두가지가 섞여 새로운 물질 C가 되는 화합물.

야간반의 제각각의 학생들은 도저히 합쳐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개성강한 무언가 들이었지만 과학부에서의 활동으로 인하여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가 하나되어 새로운 무언가가 되는 것이 혼합물 같기도 화합물 같기도 했다.
이게 인간의 특성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어느 누구 하나 똑같은 사람이 없는 절대 개성에 끈끈하게 하나로 이어지는 유대감, 시너지까지. 무언가 하나로 콕 집어서 정의할 수 없는 그런 복잡한 복합체, 콤플렉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지도 재단하지도 말기를.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제 때라고 불리는 시기에 하는 것은 이유가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때를 놓쳤다고 낙오된 것도 아니며 다시는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이다.

교복을 입고 열심히 어딘가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어리고 순수하고 말그대로 예쁘다.
그 예쁨은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벗겨진다.

나이들어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이들어도 여전히 예쁜 사람들도 많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지 않아서이다.
세상의 모든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아름답게 보기를.
스스로, 또 이 세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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