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늘을 건너는 교실
이요하라 신 지음, 이선희 옮김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
불량과 학구열.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단어들임에도 하나의 그릇에 담겨질 수 있는 것들이다. 바로 하나의 ’사람‘속에.
⠀
불량, 불량품은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
그 판단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완벽한 판단일 수 있는가.
⠀
애초에 사람에게 불량품이라 낙인찍는 것이 옳은 일인가.
⠀
판타지 소설같은 제목 #하늘을건너는교실 (#이요하라신 지음 #쌤앤파커스 출판사)은 고등학교 야간반에 다니는 10대 부터 70대 까지 각자의 사연을 들려주는 청춘물이다.
장년 노년 층이 들어와 있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분명 청춘물이 맞다.
⠀
요즘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대학 입시때에는 야간을 따로 뽑았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오전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제도로 보였지만 일반 수능 커트라인보다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직업반 정도의 이미지였던 것 같다.
그냥 공부가 정체성이던 시절이라 이외의 것이 용납되지 않던 시기였어서 그런 편견들이 가득했던 시절이다.
⠀
그래서 나머지 길은 다 틀린 길이었는데 그 길을 자기가 선택했을수도 있고 외적 요인들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을 수도 있는데 참 어렸었다. 물론 생각하는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두가 그럴 것이라는 편견은 참 위험하다.
⠀
그래서 남들 다 공부하는 시기에 공부하지 못했다는 결여가 컴플렉스가 되어 평생을 문제없이 살아왔지만 만학도의 길을 걷는 멋진 분들도 있고, 직장을 다니면서 잠을 줄여가며 검정고시, 대학, 대학원까지 패스하는 분들도 있다.
⠀
<하늘을 건너는 교실>의 야간부는 하루에 4교시씩만 진행해서 4년제이지만 1학년 때 불량한 학생들은 거의 다 떠나가고 그 뒤에는 학업에 뜻을 두고 있거나, 취업을 위해 고등학교 학력이 필요해서 버티는 그런 사람들 위주로 남아있어 썩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대부분 성인이라 중정에서 담탐을 가지고, 야간반 담당 교사는 매일 학교 안 담배꽁초를 퇴근전에 주워야하는 좀 요상한 장면들이 있지만. 🤣
⠀
하지만 스스로를 불량품이라 여기는 야나기다 다케토, 남편과 딸의 도움으로 식당을 맡기고 학교에 다니게 된 고시카와 안젤라, 자율신경 이상으로 제때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나토리 가스미, 생계 문제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나가미네 쇼조는 심야식당의 마스터를 떠올리게 하는 과학교사 후지타케를 만나 과학부를 결성하여 다양한 지구의 현상을 실험한다. 하늘은 왜 푸른색인지 하늘은 왜 하얀지, 대류는 왜 일어나는지 지진과 화산폭발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배우며, 화성의 저녁놀은 푸른색이라는 의외의 것들도 배우면서 무언가를 배워나간다.
⠀
화학시간에 혼합물과 화합물을 배운 것이 생각났다.
A+B인건 같지만 A와B가 고대로 남아있는 혼합물과 그 두가지가 섞여 새로운 물질 C가 되는 화합물.
⠀
야간반의 제각각의 학생들은 도저히 합쳐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개성강한 무언가 들이었지만 과학부에서의 활동으로 인하여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
그렇게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가 하나되어 새로운 무언가가 되는 것이 혼합물 같기도 화합물 같기도 했다.
이게 인간의 특성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
어느 누구 하나 똑같은 사람이 없는 절대 개성에 끈끈하게 하나로 이어지는 유대감, 시너지까지. 무언가 하나로 콕 집어서 정의할 수 없는 그런 복잡한 복합체, 콤플렉스. 그것이 인간이다.
⠀
그러니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지도 재단하지도 말기를.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제 때라고 불리는 시기에 하는 것은 이유가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때를 놓쳤다고 낙오된 것도 아니며 다시는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이다.
⠀
교복을 입고 열심히 어딘가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어리고 순수하고 말그대로 예쁘다.
그 예쁨은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벗겨진다.
⠀
나이들어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이들어도 여전히 예쁜 사람들도 많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지 않아서이다.
세상의 모든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아름답게 보기를.
스스로, 또 이 세상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