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정원
아야세 마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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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동료, 남편, 아내, 남자친구, 여자친구, 아버지, 딸. #감각의정원 (#아야세마루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에는 다양한 모습의 남자와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두개의 공통점이 있다.

첫번째는 ‘사랑’이다.
특히나 에로스적 사랑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어른의 사랑에는 육체적 사랑도 꽤나 구체적이고 자극적으로 담겨져있다. 괜히리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내 뒤에 누가 있진 않는지 살펴보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야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두사람이 나누는 관계의 모습에서 그 둘의 관계가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여자를 마음에 들어하는, 지금 연인이 밥을 먹자하면 바쁘다고 외면하면서 잠자리를 예고하는 연락에는 칼같이 연락이 오기도 하고, 연인이 큰 맘먹고 마련한 큰 일인용 소파를 자기것인양 독차지하는 남자는 그곳에서 관계를 맺으려 한다. 여전히 사랑하는 부부는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런 모습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필수적인 요소였음을 뜻하는 것일테니.

두번째 공통점은 비현실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몰입해서 읽다보면 뭔가 낯선 부분들이 등장한다.
명치 근처, 발목 근처에 미묘하게 금이 그어져 있어서 그곳으로 상대방의 속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면 뒷목에 고유한 색을 가진 돌이 자란다. 상대방도 누군가를 좋아하면 돌이 있고, 서로를 좋아한다면 그 돌을 꺼내 교환하면 서로의 마음이 더 강해진단다는 설정도 있고, 목련을 연기하던 남편은 점점 더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다가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나서는 정말로 한그루의 목련이 되어버린다.

다 읽고 나서야 이러한 비현실적 요소들을 ’그로케스크‘라고 작가와 문학계가 표현한다는 것을 알았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에게는 ’그로테스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랄까. 새로운 것을 발견한 감동,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황홀함이랄까? 정확히 무어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이런 불안감은 책 맨 뒤, 옮긴이의 말에 담긴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사라졌다.
“살아 있음은 곧 그로테스크한 것이다. 고양이도 새나 쥐의 목을 부러뜨리고 잡아먹는다. 고양이로서는 당연한 일인데 사람이 보기에 그로테스크하다. 다른 생명체의 이질성을 그려내면 그로테스크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동시에 동떨어진 의외성이 보이기에 아름답다.“

이것을 보고 내가 느낀 긍정적 감정의 이름이 아름다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로테스크는 이해할 수 없음, 다름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다름을, 그로테스크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닌 그 사람자체를 다른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보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나는 사랑한 것이다.

책 속의 인물들도 상대방의 그로테스크함에 호들갑떨지 않는다. 초연하다. 온 세상이 떠들썩해도 상대방만은 고요하다. 여전히 고요하다. 우리를 이 세상과 동떨어트려 다양한 모습을 지님에도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봐라, 사랑이 참 아름답지 않느냐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엔 어쩔 수 없이 요구받는 단계들이 존재한다. 썸, 교제, 결혼, 육아 등으로 이루어진 단계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무언가들이다. 그 무언가들을 지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이때껏 보지못했던 그로테스크한 것을 본다. 사회의 기준에 맞춰야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이런 그로테스크함을 무던히 지나 여전히 함께하는 모습도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는 사랑의 수만큼, 각기다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각자의 아름다움이 서로 해치지 않고 아름답게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는 감각의 정원,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이상향이 아닐까.

<감각의 정원> 제목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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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상식사전 - 좋은 시간을 만드는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의 모든 것, 2026년 전면개정판
이기태 지음 / 길벗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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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분기위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기념일을 맞이했을 때, 가족들과 구이용 고기를 잔뜩 사와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는 물론, 업무상 중요한 분을 모셨을 때(피치못하게 식사자리에서 업무이야기를 해야할 때)같은 접대 상황이 그렇다.

그럴 때 찾게되는 술은 와인이다.
소주처럼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고 양주처럼 도수가 몹시 높아 취할 일이 없고, 서로의 취향이나 주문한 와인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들이 대화주제를 생각해내야하는 부담감을 줄여주기도 한다.

전세계 국가 정상들이 모이는 회담자리나 각종 시상식에서 와인을 공식 만찬주로 많이 선택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은 날씨와 지리적 환경, 그리고 사람까지. ‘천지인’이 모두 맞물려야 온전한 맛을 낼 수 있기에 몹시 귀하게 여겨지는 술이다. 유구한 역사덕에 스토리가 풍부하고, 오랜 세월 와인을 만들어온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유럽의 나라들은 국가가 직접 와인의 품질을 법으로 규제해 관리하고 있어서 이름있는 와인은 가격도 만만치 않다.

가격때문일까(와인애호가로 알려진 연예인의 추천와인들을 나도 한번 마셔볼까 싶어 검색해보면 가격에 많이 놀란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씨와 껍질에서 나오는 탄닌의 쓴맛 때문일까 와인은 고급진 문화, 사치, 낭비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적당한 도수와, 앞서말한 유구한 히스토리, 레드, 화이트, 로제, 스파클링 과 같은 다양한 종류로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와인은 알아두면, 적당히 즐기면 좋은 술이긴 하다.

그렇다고 공부한답시고 냅다 아무 술이나 사서 마시면 될까? 시작부터 자신과 맞지않는 ‘맛없는’와인을 만난다면 또 다시 와인을 익힌다는 꿈은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와인상식사전 (#이기태 씀 #길벗 출판)은 그러한 와인초보들에게 최고의 가이드이다.
<와인 상식사전>은 출간된 이후 18년동안이나 최고의 와인입문서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책이다.
이번에 한번 전면 재개정을 했는데 표지 색이 어리고 마시기 편한 레드와인 같기도 하고, 연인들의 술이라 불리는 로제와인의 색 같기도 하다. 표지부터 호감.

책을 펼치면 와인잔 어디를 잡아야하는가, 상대방이 와인을 따라줄 때 잔을 들어야(동방예의지국)하는지, 첫잔은 원샷인지 같은 기본 매너부터 와인의 종류, 바디감, 산도, 거침 등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단어를 지나 결국 우리의 궁극의 목표인 ‘와인을 고르는 기준 3가지‘를 향해 나아간다.

와인을 고르는 기준 세가지는 포도 품종, 산지의 특징, 레이블 읽는 법이다.
내가 봤을 때 이 중에서 결국 꽃은 레이블 읽는 법인 것 같았다. 포도 품종과 산지의 특징을 공부하는 것은 결국 레이블을 보고 이 와인이 어떤 와인인지 확인하고, TPO에 적합한 와인인지 판단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포도 품종과 산지는 이론이라면 레이블 읽기는 실전편이랄까. 앞에서 잠깐 언급한 와인생산의 역사가 긴 유럽 구세계와인과 새롭게 떠오르는 미국, 남아공과 같은 신세계와인이 각각 와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레이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참 좋았다. 구세계 와인에서는 떼루아, 즉 와인이 생산된 원산지와 등급(등급에 따라 지방, 마을, 포도밭으로 더 세세해진다.)이 적혀있고, 신세계 와인에서는 이 원산지가 빠지고 포도품종과 와인을 만든 생산자가 표기되어 있다.

인간과 자연. 어디에 조금 더 가치를 두느냐의 차이가 맛으로도 이렇게 분명한 차이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와인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면 책의 뒷부분에 위치한 ‘스토리로 맛보는 와인’과 46개의 와인리스트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화려한 외모 뒤에 열정적인 독사광이었던 마릴린 먼로가 사랑했던 샴페인, 파이퍼 하이직이 참 반가웠다. 먼로가 사랑한 술이라 해서 짝꿍과 함께 온 편의점을 뒤져 겨우 한병 구입해서 마셨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녀석을 만날 예정인데 나를 자신이 단골인 와인바에 데려갈 생각에 신이 난 모습을 보고 돈값(?)을 해내기 위해 오랜만에 와인에 대한 지식을 떠올려볼까 하던 타이밍에 만난 귀한 책이다.

잊었던 기억도 떠오르고, 지식도 채우고, 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게 된 일석삼조 그 이상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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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시작하면 잠들 수 없는 클래식 - 24명의 대표 작곡가와 함께 떠나는 유쾌한 클래식 여행
음플릭스 지음 / 빅피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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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넷플릭스 처럼?
재미난 소설이 있는데 왜 넷플릭스를 보냐는 한 배우의 말이 작년 최대의 밈이었는데 클래식을 그렇게 즐길 수 있다고?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편(사랑한다고 스스로를 세뇌 시킨)인데 그래도 클래식은 어렵다. 좋아하는 곡들은 물론 재미있지만 어? 그럼 재밌는 곡은 왜 재밌을까? 나에게 그 곡에 얽힌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몇차례 이야기했지만 클래식을 만화책으로 입문했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에 일찍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와 함께 문방구 불량식품과 책방에서 만화책을 빌려서 점심을 먹고, 몇시간 만화책을 읽었었는데 그 만화책 중에 클래식 만화책이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연재가 되어서 엄마랑 북카페 데이트를 하기도 했었고. 만화책 그 자체의 스토리도 좋아했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된 것들도 다 챙겨봤다. 그 작품안에서 들었던 사연있는(?)곡들은 실제로 들어도 그 장면들이 떠오르고,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학창시절 즐겨듣던 대중가요를 들으면 그 시절이 떠오르고 반가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번시작하면잠들수없는클래식 (#윤진 #이민규 #이현도 #음플릭스 씀 #빅피쉬 출판)도 바로 클래식 곡들의 스토리에 집중해놓았다. 곡의 형식, 사조를 자세히 설명한다기 보다는, 최초로 음악을 악보로 옮기시 시작하는 것을 그레고리오 성가와 귀도 다레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미사곡이라기엔 성부가 너무 많은 형식이 오히려 해가 된다며 다시 성부를 하나로 줄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성부를 줄이고 모든 성부가 같은 음으로 하나의 가사를 불러 신의 말씀이 더 잘들리게 만든 팔레스트리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연스럽게 클래식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이지만 우리에게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만 느껴진다.) 넷플릭스 보듯 따라가게 한다.

음플릭스로 유튜브를 운영하는 사람들답게 너무 길지 않은 적절한 분량과 흥미를 돋게 하는 대본(글)이 위에서 언급했던 ‘중세’부터 시작해 바흐의 ‘바로크시대’,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 시대’, 슈팽, 슈만, 브람스의 ‘전기 낭만시대’, 라흐마니노프, 바그너의 ‘후기 낭만시대’, 드뷔시, 스트리반스키의 ‘근현대 시대‘까지 기나긴 서양 음악사 전반을 아우르는데도 하나도 질리지 않는다.

이 흐름을 따라 이야기에 올려진 음악을 듣다보니 음악이나 미술이나 오랜 시간 사라지지 않고 우리곁에 있는 이유가 작품들에 각자의 스토리가 담겨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양식, 어떤 재료인가보다는 누가 언제, 어떤 사건이 있을 때인지, 누구를 만났을 때인지, 어떤 심정이었는지가 지금까지도 이것들을 살아숨쉬게 만드는 것이다.

경매에서도 작가의 객관적인 그림실력 보다는 개인의 스토리, 유명세가 더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하니, 그것들의 고객인 우리들에겐 스토리가 먹히는(?)가보다.

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한 쉬운 책들을 몇 권 읽었다.
읽을 때 마다 이런 책을 또 읽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읽을 때 마다 새롭다. 내가 한번에 기억을 못하는 당연한 문제도 있겠지만 저자별로 책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담겨있는 내용도 제각각이다.

그런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딱딱하고 외워야할 것이 많아서 겁나고 어렵다는 이유로 클래식을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 시작하면 잠들 수 없는 클래식>이 제격인 듯 하다.

물흐르듯 흐르는 재미난 이야기에서 이 음악이 왜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지를 배우면 자연스럽게 이 음악을 들어야하는 이유도 깨달을테니.

QR코드로 음악이 귀로, 피부로. 글로 음악이 눈으로, 마음으로. 그렇게 나를 온통 클래식으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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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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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백발에 탄탄하게 관리된 몸, 젊은이 못지않은, 아니 더 능숙한 사격실력. 눈빛만으로 이미 한번, 무기로 두번 타킷을 제거하는 만년의 킬러.

‘나이든 여성 킬러’를 보고 떠올리는 모습으로 이보다 적절한 것이 또 있을까.
마침 작년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영화 ‘파과’의 주인공이 좋은 예가 되아주었다. 하지만 #대문자뱀 (#피에르르메르트 지음 #열린책들 출판)의 ‘킬러’ 마틸드는 나이만 빼고는 정반대다. 작은키, 뚱뚱한 체구, 자동차 핸들에 바짝 붙어앉아야하는 짧은 팔, 돋보기… 이 모든 것은 킬러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킬러라는 직업에 적합한지조차 의문이 든다. 하지만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사람을 죽이는데 스스럼이 없고 말년의 무료함을 ‘사냥’의 짜릿함으로 달래는 뼛속까지 킬러이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 기억력문제가 발생한다.
기억에 구멍이 나면서 기존의 타깃을 받는 방법마저 혼동이 온다. 한번 사용하고 버려야하는 총기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44구경 큰 총을 선호하는 마틸드라 같은 총을 사용하면 덜미를 잡힐 확률이 높다.)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없는 타깃을 사냥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조용하고 깔끔하게 사냥을 마무리 해야하는데 더심 한복판 마트 주차장에서 소음기도 달지않고 직전 사냥에 사용한 총을 ‘또’ 사용해 저질러 버린다. 비명을 지르는 목격자를 처리하느라 천둥같은 총소리를 한번 더 내주는 것도 잊지 않고.

<대문자 뱀>은 경찰 바실리에브, 바실리에브의 후원자의 도우미 콩스탕스, 킬러 마틸드, 마틸드의 보스 레옹이 이야기를 각자 진행해 나가는데 조금씩 각자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섞여들어간다.
영화로 만들면 그 어떤 누와르에도 뒤지지 않을만큼 분장용 피를 써대야하는 이야기임에도 속이 불편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뭐랄까. 현실에서는 수많은 제약때문에 하지 못했던(하지 말아야 했던)것들을 대리경험한다고 해야할까? (그렇다고 누구를 쏴 죽이고 싶다는 말은 아..아니다)
날 것 그대로의 사냥이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보다 한단계 에너지업된 톤으로 전해져서 굉장히 몰입된다.
그리고 말그대로 굉장히 재밌다.

보통 누와르에서는 보는 사람, 극 속 인물 모두의 심리를 불편하게 하는 잔인한 행위를 ‘그럴 수 밖에 없는’당위성을 꾸역꾸역 부여해가는 과정이 그려져서 관객이 설득당해도 다 보고 나서 마음이 찝찝하다.

<대문자 뱀>에도 이런 불편함은 담겨있지만 ‘이것이 블랙코미디구나’ 싶은 위트로 아주 잘 포장되어 있다.
물론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의 필력답게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까지 잊지 않고 담겨있다.

이게 누와르물이라면 얼마든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은 누와르물로 늦은 나이에 데뷔한 작가의 미발표 글을 거의 그대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인사도 없이 더이상 누와르물과 작별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던 작가의 첫 누와르물인 <대문자 뱀>, 처음이면서 (저자 왈)자가의 누와르 커리어의 마지막이기도 해서 서사, 설득력면에서 완전 납득이다.

다만 나는 이제 이 작가에게 입문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끝이라니.
이렇게 잘쓰는데 왜! 라는 아쉬움이 자꾸만 든다.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피에르 르메르트가 계속 누와르물을 써주길 열렬히 바랄 것이다.
지금까지 작가가 쓴 책을 모두 읽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대문자 뱀>을 넘어 피에르 르메르트를 탐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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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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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언어로 희망과 격려를 전하던 사람이 사랑에 관한 글을 쓴다면, 그 글 속 사랑은 얼마나 핑크빛일지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구원에게 (#정영욱 씀 #부크럼 출판)를 그런 생각으로 펼쳤다가는 큰코다친다.

빛이 강하면 그늘지는 그림자도 짙다고 했던가.
작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고 있는 이 책에서의 사랑은 달의 뒷면과도 같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눈이 멀어 보지못하는(어쩌면 완강히 보기를 반대하는) 그림자가 빛보다 더 어둡게 담겨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잘못키운 자신 탓이라며 엉성한 자세로 당신의 종아리를 내려치는 아버지를 보며 맞지않아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한 ‘나’는 그렇게 다시하면 안되겠다는 고통을 주는 것만을 피하며 염세적으로 성장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누군가와 완전한 한몸처럼 서로에게 스며드는 완전무결한 사랑을 믿지 않는다. 믿는 척 하며 스스로 그렇지 않음을 티내지 않으려 시선관리, 표정관리를 한다. 단순한 하룻밤을 원하던 그의 사랑은 수, 비와 같은 자기만의 결핍, 더 나아가 결함같은 상처를 가진 ‘일반적’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사랑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자기의 방식에 상대방을 맞추게 이끌던 것이 뒤늦게 나마 상대방의 의중을 이해하게 되었고, 느닷없이 부모님 간호로 인한 귀향으로 이별아닌 이별을 하였다가 결혼하게 ‘되었다’는 인사로 끝이난 사랑의 상대방을 그리워하고 떠올리고 길거리에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만나면 그녀라 믿고 또 그렇게 우연으로라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떠난 ‘수’의 빈자리를 ‘비’가 채우게 되면서 수와 닮았다는 첫인상이 있었지만 그녀가 가진 아픔은 너무나 달랐다. 서른에 죽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자신이 죽으면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죽는 것이라며 걱정하던 ‘비’. 이때 ‘나’는 좌절아닌 좌절을 한다. 왜 나의 사랑은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냐고.
하지만 그 와중에 다른 분야이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라는 둘이었기에 서로의 일을 스스럼 없이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문학적으로 깊지 못한 글을 써내고 있다고 푸념하는 ‘나’에게 모든 글이 깊을 필요는 없지않냐며 사랑에 관한 글을 쓰라고 ‘비’는 조언한다. 너가 잘하는 사랑을 쓰라고. 자신이 사랑을 잘하는 줄도 몰랐었는데 말이다.

그처럼 사계절같은 각각의 사랑을 지나오면서 ‘나’는 알게 모르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랑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간다. 즐겁기 위해, 쾌락을 좇던 사랑이 누군가를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시큼해지는 ‘아픔’이 실은 아픔이 아니라 이것이 사랑임을 배운다. 그런 사랑을 겪으면서 물러나지 않고 ‘나는 왜 이런 아픔을 감내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런 사랑들을 넘어오며 자신이 관계마다 마음의 방을 만들어 감정을 가두어 온 것은 아닌지 자문하고, 그와동시에 자신은 어떤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고민하게 된다.

사랑과 글, 써야지만 완성되는 것들에 대한 물러나지않는 사유와 내 삶으로 들어온 모든 사람들, 추억들, 숨기고 지우고 싶은 오점들까지 모두 써서 제 소임을 다 하게 하겠다는 각오로 ‘나’는 사랑과 글을 쓰기로 마침내 다짐한다.

그렇게 <구원에게> 책이 탄생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은 혼자 있으면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고 갈고 닦는 것이 성장에 중요하지만, 나를 비출 거울이 없으면 스스로의 모습을 바로잡거나 고쳐나가지 못한다. 그 거울이 바로 타인이고, 그 거울 속 자신을 마음에 들지않아도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그리하여 마침내 단정한, 마음에 드는 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나’는, 저자는 자신만 사랑의 상대자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모두 각자의 아픔과 그림자가 있다. 숨길뿐이다. 믿기에 사랑하기에 그 모습까지 숨김없이 내보이는 것이다. 그런의미로 ‘비정상적’일 수는 있겠으나 각자에게 그림자가 있는 것은 ‘정상’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아무 눈치 보지않아도 되는 안식처같은 구원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각자의 사랑에게, 각자의 자신에게, 그렇게 우리의 구원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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