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정원
아야세 마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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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동료, 남편, 아내, 남자친구, 여자친구, 아버지, 딸. #감각의정원 (#아야세마루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에는 다양한 모습의 남자와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두개의 공통점이 있다.

첫번째는 ‘사랑’이다.
특히나 에로스적 사랑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어른의 사랑에는 육체적 사랑도 꽤나 구체적이고 자극적으로 담겨져있다. 괜히리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내 뒤에 누가 있진 않는지 살펴보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야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두사람이 나누는 관계의 모습에서 그 둘의 관계가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여자를 마음에 들어하는, 지금 연인이 밥을 먹자하면 바쁘다고 외면하면서 잠자리를 예고하는 연락에는 칼같이 연락이 오기도 하고, 연인이 큰 맘먹고 마련한 큰 일인용 소파를 자기것인양 독차지하는 남자는 그곳에서 관계를 맺으려 한다. 여전히 사랑하는 부부는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런 모습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필수적인 요소였음을 뜻하는 것일테니.

두번째 공통점은 비현실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몰입해서 읽다보면 뭔가 낯선 부분들이 등장한다.
명치 근처, 발목 근처에 미묘하게 금이 그어져 있어서 그곳으로 상대방의 속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면 뒷목에 고유한 색을 가진 돌이 자란다. 상대방도 누군가를 좋아하면 돌이 있고, 서로를 좋아한다면 그 돌을 꺼내 교환하면 서로의 마음이 더 강해진단다는 설정도 있고, 목련을 연기하던 남편은 점점 더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다가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나서는 정말로 한그루의 목련이 되어버린다.

다 읽고 나서야 이러한 비현실적 요소들을 ’그로케스크‘라고 작가와 문학계가 표현한다는 것을 알았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에게는 ’그로테스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랄까. 새로운 것을 발견한 감동,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황홀함이랄까? 정확히 무어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이런 불안감은 책 맨 뒤, 옮긴이의 말에 담긴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사라졌다.
“살아 있음은 곧 그로테스크한 것이다. 고양이도 새나 쥐의 목을 부러뜨리고 잡아먹는다. 고양이로서는 당연한 일인데 사람이 보기에 그로테스크하다. 다른 생명체의 이질성을 그려내면 그로테스크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동시에 동떨어진 의외성이 보이기에 아름답다.“

이것을 보고 내가 느낀 긍정적 감정의 이름이 아름다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로테스크는 이해할 수 없음, 다름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다름을, 그로테스크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닌 그 사람자체를 다른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보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나는 사랑한 것이다.

책 속의 인물들도 상대방의 그로테스크함에 호들갑떨지 않는다. 초연하다. 온 세상이 떠들썩해도 상대방만은 고요하다. 여전히 고요하다. 우리를 이 세상과 동떨어트려 다양한 모습을 지님에도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봐라, 사랑이 참 아름답지 않느냐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엔 어쩔 수 없이 요구받는 단계들이 존재한다. 썸, 교제, 결혼, 육아 등으로 이루어진 단계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무언가들이다. 그 무언가들을 지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이때껏 보지못했던 그로테스크한 것을 본다. 사회의 기준에 맞춰야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이런 그로테스크함을 무던히 지나 여전히 함께하는 모습도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는 사랑의 수만큼, 각기다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각자의 아름다움이 서로 해치지 않고 아름답게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는 감각의 정원,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이상향이 아닐까.

<감각의 정원> 제목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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