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 페리앙 - 모든 삶에 깃든 현대 예술의 거장
샤를로트 페리앙 지음, 유상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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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20세기. 그렇게 멀지않고 20세기를 보았던,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21세기에도 살아가고있는 그런 시기이다.
당연히 지금과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20세기 초중반은 1,2차 세계대전과 인종차별로 인한 대량학살 등 끔찍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전의 20세기는 19세기와 오히려 더 가까운 생활이었다. 나에게 그 시대의 모습이라면 강하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여성인권이 약했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제약들이 있었겠지만 요즘 내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부분은 바로 남성 대가들의 이름의 큰 그림자아래 이름 자체부터 묻혀버리는 여성 예술가들이다.
재능이 남자못지않고 열정고 있고 결과물도 훌륭했지만 그 프로젝트의 마스터 (주로 남성)의 이름으로 발표되고, 이것이 남녀에게 모두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나머지 팀원들의 이름 배치에서 기여도에 따른 순서가 아니라 여성이라 뒤로 밀리고 아예 이름이 빠지기도 한다. 여성 이름이 들어가있으면 고객에게, 심사자들에게 이미지가 좋지않다는 이유로.

나는 대학 진학 때 지금의 전공이 1순위가 아니었다.
건축이 1순위었는데 이미 건축사의 길을 걷고있던 외삼촌의 반대로 진학하지 못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창의력이 1도 없는 나에게 맞지않는 길이기는 했으니🙈
그래도 나는 건물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건축도 분명 하나의 예술이니까. 심지어 여러 예술들을 안에 들일 수 있는 포용력마저 있는 대단한 예술품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들을 보러가기도 하고 자연 경관을 헤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한옥들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지금 우리 주위에서 가장 널리 볼 수 있는 건축디자인을 구축한 건축가는 아마도 르코르뷔지에일 것이다. 모더니즘, 콘크리트를 대표하는 르코르뷔지에의 명성은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도 들어봤을 정도일 것이고, 그가 디자인 했다고 알려진 쇼파와 의자같은 가구들도 빈티지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고 복각품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가구들은 르코르뷔지에의
이름을 따서 LC 라고 불렸는데 사실 이것들은 르코르뷔지에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다. 프랑스의 1세대 여성 건축가이자 실내
디저이너, 가구를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샤를로트페리앙 이 그 작품들에 가장 큰 기여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가구들은 2022년이 되어서야 정확한 의미의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LC로 불리고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여러가지 제약들이 있음에도 페리앙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않았다. 이런 제약들이 있음에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자기 직업에 대한 열정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여성은 그저 음식을 만들어 낼 뿐, 손님 접대에 참여하지 못하는 실상을 주부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거실과 완전히 통합된 ‘주방 겸 바’를 만들어 식사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게하였고, 공간을 온전히 눌ㄹ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수많은 사회공헌적, 거의 무페이에 가까운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겼다. 자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샤를로트페리앙 #모든삶에깃든 (#샬로트페리앙 씀 #을유문화사 출판)은 그런 그녀가 생을 마감하기 1년전에 태어난 1903년 부터 세상을 떠나기 2년전인 1997년까지 자신의 삶응 돌아보며 쓴 회고록이자 자서전이다.

정말 말그대로 20세기의 모든 모습이 담겨있는 것이다.
복잡한 역사를 한사람의 인생에서 살펴보면 더 기억도 잘남고 더 공감할 수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역사가 모여 인류의, 지구의 역사가 되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장 프루베, 루시우 코스타, 페르낭 레제, 야나기 무네요시, 야나기 소리 같은 20세기를 수놓은 거장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의 손 끝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좋은점이다.

왜 샤를로트 페리앙이라는 이름이 많은 것들이 바뀐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유효함을 넘어 무언가를 대변할 수 있는지는 “단순히 예쁜 것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사는지 표현하고 행동해야 해”, “눈을 부채처럼 크게 뜨고 봐야 해. 세상은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거야.“라는 그녀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녀가 또 한번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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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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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아무리 단단해보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은(꼭 필요한)것이 하나있다. 바로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이다. 없어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나의 사연으로 인해 기분이 가라앉거나 그 사람의 삶에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더해지는 것이 미안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다(본인이 좀 그런 타입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나 자신인양 이해해주고 들어줘서 털어놓고 싶은 욕망은 분명히 존재한다.

#디어올리버 (#올리버색스 #수전배리 저자 #부키 출판)에서 올리버 색스에게 첫 편지를 보냈을 때의 수전 배리의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다. 사시로 인해 한쪽 눈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그만두어 3D가 아닌 2D로 세상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수전 배리는 유아기가 지나면 입체시가 발달할 수 없다는 기존의 정설을 48세에 입체맹을 벗어나며 깨버린 살아있는 반례가 되었다.

입체시를 얻었을 때의 그 감동은 어땠을까. 평면으로 보이던 것들이 깊이감 있는 입체로 오롯이 받아들여질 때의 기분과 감동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호외요! 호외!‘를 외치며 길거리를 달려가는 꼬맹이가 되어 사방팔방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계의 정설을 깨트린 스스로를 비밀에 붙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했던 입체시가 수전에게는 너무나 경이롭고 매순간 기쁨이었다. 그 기쁨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런 존재가 절실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큰 행복이다.

그리고 수전이 살던 시대에는 그런 인물이 존재했다.
바로 환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하는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였다. 답장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찬연한 기쁨을 이해해 줄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렇게 수전은 첫 편지를 보냈고 <디어 올리버>를 채우고 있는 150편의 편지만큼의 공감의 역사가 그 둘사이에 새겨졌다.

그렇게 나이와 직업과 모든 것을 초월한 진정한 친구가 된 두사람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오랜시간 동안 우정을 나누었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또 하나가 있었다면 바로 올리버 색스의 건강악화였다. 안구 흑색종으로 시력을 잃기 시작한 올리버가 이전의 수전처럼 평면시에 갖혀버렸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스스로를 다른사람과 다르다며 괴물이라 부르던 수전의 용기있는 자기고백을 누구보다 자상하고 세심하게 들어주고 그녀의 이야기를 <스테레오 수>라는 책으로 세상에 내어놓기까지 한 그인데 그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우정을 나눴던 수전의 증상을 똑같이 경험하다니.

하지만 여기에서 올리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단안시의 평면세상을 바라보는 스스로를 의사, 작가정신을 발휘하여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선척적으로 없던 감각을 가지게 된 수전의 이야기까지 합쳐 <마음의 눈>이라는 책으로 까지 펴낸다.

안구 흑색종이 결국 간까지 전이되었지만 그것마저도 올리버의 끝없는 호기심과 열정을 누를 수 없었다.
그는 암의 진행속도를 늦춰 생겨난 마지막 몇개월을 슬픔에만 잠식되지 않고 수전과도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고(수전도 올리버를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며 인생을 ‘즐겼’다. 마지막까지 용기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남을 위할 줄 아는 세심한 친절뿐만이 아니라 150개의 편지에는 과학뿐만 아니라 취미, 일상생활 같은 온갖 분야들이 담겨있는데 이십년의 나이차이가 있지만 둘다 나이가 지긋한 두사람이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박수치고 까무러치는 모습들을 보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올리버와 수전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을 아름답고 즐겁게 바라보는 시선까지 이 책으로 배웠다.

자기자신과의 고요한 대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시나 다른 누군가와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수전이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그녀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 올리버를 만나기 전후,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올리버도 물론 마찬가지일테지만.

세상을 떠난 절친의 필체를 보는 것은 슬픈일일 것이다.
하지만 올리버의 말년에 두사람이 슬픔에만 침잠하지 않았던 것처럼, 남겨진 그녀는 슬픔만을 바라보지 않고 그와의 행복한 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왜 서간집이 출판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 책이었다.

많은 대화를 남겨두고 싶다. 남을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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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 하나, 내 멋대로 산다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서교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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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도쿄 아자부에서 멋들어지게 자신을 꾸미며 멋지게, 당당하게 살아가고있는 ‘일흔여덟’ 오시 하나.
재미있게 책을 읽었음에도 제대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패션용어들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구사하고(나이는 숫자일 뿐이다)그뿐 아니라 자신만의 패션으로 녹여내는 센스!
꾸준한 스트레칭과 피부, 손톱관리로 모두가 십년은 어리게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열심히 자신을 꾸미는 연륜에서 묻어나는 멋진 삶의 태도까지 가진 그녀에게 나는 #오시하나내멋대로산다 (#우치다테마키코 씀 #서교책방 출판)의 표지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나이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나이드는 것을 거부하는 그녀의 노력과 다른 사람과의 말로 하는 결투에서도 절대 흥분하지않고 노련하게 승기를 잡는 모습이 책장을 넘기는 것을 아쉽게도, 얼른 또다른 멋진 모습을 보기위해 넘기고 싶게도 만들었다.

그런 오시 하나 에게는 종이접이가 평생의 친구였던, 일용품점을 운영하며 1남 1녀를 함께 키워낸 동반자이자 남편, 이와조가 있었는데 그 시대의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나가 나의 자랑이야’ ‘하나가 나의 아내인 것이 참 자랑스러워’라는 팔불출(positive)멘트를 스스럼없이 날려대는 애처가이다.

그런 그가 일흔 아홉의 9월,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곧 죽을 거니까’라는 말을 노인들의 면죄부라 생각하며 나는 끝까지 세련된 여자로 살거라며 매일 활기차던 그녀의 삶에 허전함이 더해진다. 꾸미는 것도 의미가 없어지고 너무 오래 슬프지 않게 얼른 남편이 자기를 데려오기를 기다린다며, 다음 날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기가 그토록 경멸하던 삶의 태도를 뱉어내기에 이른다.

남편이 죽음을 논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도 혼을 내던 그녀였는데, 어느날 그런 남편이 오십대 때부터 적어 조금씩 고쳐온 자필 유서가 발견되면서 이 책은 큰 전환을 맞이한다.

유서에서 처음 보는 이름들이 발견된 것.
그리고 본인 스스로 다른 가정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남편의 유언에 하나는 큰 충격을 받는다.

항상 최고라며 이쁘다며 평생을 애정표현을 하던 그가 40년 가까이 두집살림을 했다니, 배신감부터 내가 너무 들들볶아서 기댈 곳이 필요했나라는 자기비판까지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드는 그녀였다.

설상가상으로 그 ‘첩’에게 남기는 유산이 남편이 살아생전 보물처럼 아끼고 매일 쳐다보고 각오를 다지고, 하나도 함께한 평생의 추억이 담긴 ‘의연하게 산다’라는 문구가 적힌 족자였어서 하나는 더 심난하다.

장남이 버젓이 있으나 ‘장남’이 가져야 할 이름을 남편에게 직접 받은 내연녀의 아들과 도쿄대 의대를 졸업한 자신이 그토록 십년만 젊었으면 좋겠다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정말 딱 열살 어린 첩을 마주하고 나서는 교양있게, 세련되게 조용히 넘어가겠다던 처음의 각오는 사라진다.

그녀는 복수를 꿈꾼다.
일본에서 드라마가 제작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작품인 <오시 하나 내 멋대로 산다>를 읽는 내내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나서 중간에 멈추기가 쉽지않았다.

멋진 꽃중년(?)을 꿈꾸는 나에게 너무나 임팩트있게 다가오는 오시 하나 선생님!의 애티튜드가 정말 멋졌고, 샤이니 키가 왜 그렇게 자극적인 드라마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자극적인 사건으로 그 다음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런 온갖 맛과 향을 첨가해주는 향신료같은 것들을 제외하더라도, 가장 기본이 되는 메인 재료가 너무나 멋졌다.
바로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다.
나도! 늙지만 내가 중년이 되면서 부모님은 정말 노년에 접어 들고, 장례식을 가야할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그로인해 자연스레 죽음과 늙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 둘의 공통된 이미지가 있다.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찾아 하는 것을 멈추는 것, 내일을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글 속 하나도 매일 일을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일을 그만둔 후에도 매일매일을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남편이 죽고나서 외도의 사실을 알기전까지 그 사이에는 늙고 죽어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외도로 다시한번 열정을 되찾는 하나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이듦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유쾌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멋진 오시 하나 선생에게 배울 수 있는 일타강사의 교재같은 책이다. 적극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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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기획자와 보이지 않는 고릴라 - 소비자의 심리를 설계하는 어느 전략가의 인사이트 노트
이규철 지음 / 그래도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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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망하는기획자와보이지않는고릴라 (#이규철 저 #그래도봄 출판)을 읽고 났을 때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일수도 있지만)기획자라는 특수한 직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이 열심히 자신의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를 재치 있게 적어놓은 에세이처럼 읽혔다.

술술 읽히면서도 덮고 나니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는 전문적인 방법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신 삶을 살아가는 좀 더 나은 모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책 제목에도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심리학의 용어로, 무언가에 너무 깊게 집중하고 있으면 보지 못하고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흰색과 검은색 옷을 각각 입은 두 팀의 농구 경기에서 한 팀이 패스한 수를 맞춰보라는 과제를 주었더니 패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경기장을 유유히 지나가는 고릴라를 피실험자 절반 정도가 보지 못했다는 실험이다)

저자는 신입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자기 일에서 성과를 내느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 가지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전문가가 되다 보면 온 세상이 자신의 분야에 입각한 이론들도 돌아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모든 직렬공통의 직업병이 아닐까)

하지만 특히나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야 하는 기획자에게는 일상의 다양한 자극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일 일반인 모드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 일반인 모드의 시간동안 휴식도 취하고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자극을 받아들이며 창조에너지를 충전시키고 다른 분야의 것들을 내 분야로 가져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획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르네상스’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이 책에는 일상에서, 직장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지나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또는 모멸감을 벗어나고, 일상적인 순간들에서 느끼는 것들에 대해 너무 빽빽하지 않게, 광고에서 고객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의도하여 비워두는 ‘여백’처럼 부담스럽지 않게 적절한 밀도로 담겨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한 여자의 남편이자 사랑하는 아이의 아빠인 작가의 소박한 일상과, 처음에는 고개를 젓던 아내조차도 키득거리며 따라 하는 작가의 아재 개그가 담겨있어서 그런지 술술 읽히는 에세이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수저론을 걱정하면서도 이제 막 혼자 밥을 먹기 시작한 아이 손에 들려있는 고무 숟가락을 보며, 모든 것을 다 떠먹여주는 부모보다 스스로 안전하게 도전할 수 있는 그정도의 부모가 되겠다는, 고무 수저론을 말하는 광고인 짬바(?)가 느껴지는 일상의 인사이트에서 자기계발서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창의력이 참 부족한 사람이다.
미술도 주제가 주어지지 않는 상상화나 추상화가 주제인 날은 그림을 시작도 못했었고 인생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딱 나에게 입력된 값 그대로(다행스럽게도 능숙해지기는 한다)수행만 반복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은 그럭저럭 해내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절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욕망하는 기획자와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읽으니 내가 해왔던 반복과 그냥 하는 것(이제 생각해보니 나이키의 ‘just do it'이네)에서도 저자처럼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창의, 아이디어였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물론 그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과정이 있어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무언가를 생각해낸다라는 것이 너무 꿈같고 거창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인사이트라고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제 조금 창의적 사고에 대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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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증언 -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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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군국주의에 억압받고 스스로가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천재지변 앞에 무기력한 존재임을, 스스로에 자신을 잃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로 야기된 폭력성은 어디로 향할까.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방에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강력한 여진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통에 건물이 무너져내리고 여기저기에 불이 붙어 말그대로 아비규환인 상황이었다.
그때 조센징, 불량선인들이 뭉쳐서 돌아다니며 각 집 우물에 독을 풀고있다, 물을 마시지마라. 불이 나는 것은 이것들이 불을 지르고 다녀서 그렇다같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일본인들은 조선인, 조센징(심지어 아침‘조’자를 빼서 센징이라고 부른다. 좋아보이는건 다 가져간다)을 보면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 시작한다. 자경단의 활동이라며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가두고 죽여나갔다.
아이러니한 것은 조선인으로 구분 짓는 방법이 특정 일본어의 발음 또는 칙령이나 천황의 연대를 외우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는데 다른 지방 사투리가 있거나 안타깝게도 외우지 못한 내국민(일본인)들도 잡아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명백한 기준도 없는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러한 학살은 한달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그나마 한달이 지나서야 보도가 되고 학살이 멈출 수 있었던 것은 외국에 알려지면서 부터이니 반성의 기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없다. ’독립신문‘에서 추정한 간토대지진, 아니 간토대진재(천재지변이 아닌 혐오와 국가폭력이 만든 인재라는 뜻을 담은 표현)의 희생자는 자그마치 6000여명에 육박한다.
실종자도 포함한 수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독립신문이 희생자를 집계하기전까진 어디에서도 집계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총독부 등 여기저기에서 집계했지만 그 수는 현저히 줄어들어 집계되었다. 어느누구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오히려 국가가 나서면 문제가 되니 자경단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도구를 지원하고 뒤에 숨었던 9월1일을 경각심을 가지자는 취자로 기리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조선인 학살은 한글자도 한마디도 뱉지않는다.

아마 가장 먼 나라이지 않을까 일본이.
매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반대로 우리 한국을 방문하기는 하지만 근100년의 원수같은 역사로 인해 둘만의 경쟁은 무조건 이겨야한다. 그래서 각종 스포츠 경기의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하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일본에게 졌다면 죄인처럼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백년동안의증언 (#김응교 씀 #책읽는고양이 출판)은 100년전에 일어난 끔찍한 대학살의 흔적들을 저자가 틈틈히 현장을 찾아가 조사하고 연구한 것들을 토대로 있었던 일을 있었던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세상에 나온 책이다.

이것은 옛 것을 들추어내서 또다시 분쟁을 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몸에 남은 흉터가 지워지면 가장 좋겠지만 세월이 지나도 남아있다면 그 이유는 그 흉터를 보고 그때를 잊지않고 떠올려 다시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타산지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토대진재도 그렇게 백년의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큰 흉터이다. 우리의 아픔이 더 크겠지만(아픔은 비교하면 안되지만 희생자의 수가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선인들과 함께 묶여 탄압받았던 사회주의자들과 애매한 기준으로 조선인으로 오해(?)받아 죽은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일을 했던 선조들, 그런 일을 가능하게 용인하고 그런 시대를 만들었던 국가까지 모두가 지금까지도 지니고 있는 흉터인 것이다.
비록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졌지만 눈에 보이지않을 뿐 그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흉터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인정하고 양심과 정의를 좇아 사과하고 해야할 행동을 해야만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사과받고 응어리를 풀어야 멀지 않은 진짜 이웃이 될 수 있다. 매듭이 단단히 묶여 풀 수 없다면 그 시작점을 찾아 찬찬히 풀어나가야 한다.
다행히도 일본 내에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고 군인 위안부 문제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시정하려는 일본 시민 단체들이 있다. 이들과 적극 협력하고 왜곡을 진실처럼 외치는 정치인들을 묵시하지말고 비판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여야한다.

이런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들’이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옛 유적에서 발견된 700년 전의 연꽃 씨앗을 각고의 노력끝에 ‘아라홍련‘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듯, 이 책이 그때와 지금의 ’우리‘를 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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