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아무리 단단해보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은(꼭 필요한)것이 하나있다. 바로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이다. 없어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나의 사연으로 인해 기분이 가라앉거나 그 사람의 삶에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더해지는 것이 미안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다(본인이 좀 그런 타입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나 자신인양 이해해주고 들어줘서 털어놓고 싶은 욕망은 분명히 존재한다. #디어올리버 (#올리버색스 #수전배리 저자 #부키 출판)에서 올리버 색스에게 첫 편지를 보냈을 때의 수전 배리의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다. 사시로 인해 한쪽 눈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그만두어 3D가 아닌 2D로 세상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수전 배리는 유아기가 지나면 입체시가 발달할 수 없다는 기존의 정설을 48세에 입체맹을 벗어나며 깨버린 살아있는 반례가 되었다. 입체시를 얻었을 때의 그 감동은 어땠을까. 평면으로 보이던 것들이 깊이감 있는 입체로 오롯이 받아들여질 때의 기분과 감동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호외요! 호외!‘를 외치며 길거리를 달려가는 꼬맹이가 되어 사방팔방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계의 정설을 깨트린 스스로를 비밀에 붙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했던 입체시가 수전에게는 너무나 경이롭고 매순간 기쁨이었다. 그 기쁨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런 존재가 절실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큰 행복이다. 그리고 수전이 살던 시대에는 그런 인물이 존재했다. 바로 환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하는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였다. 답장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찬연한 기쁨을 이해해 줄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렇게 수전은 첫 편지를 보냈고 <디어 올리버>를 채우고 있는 150편의 편지만큼의 공감의 역사가 그 둘사이에 새겨졌다. 그렇게 나이와 직업과 모든 것을 초월한 진정한 친구가 된 두사람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오랜시간 동안 우정을 나누었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또 하나가 있었다면 바로 올리버 색스의 건강악화였다. 안구 흑색종으로 시력을 잃기 시작한 올리버가 이전의 수전처럼 평면시에 갖혀버렸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스스로를 다른사람과 다르다며 괴물이라 부르던 수전의 용기있는 자기고백을 누구보다 자상하고 세심하게 들어주고 그녀의 이야기를 <스테레오 수>라는 책으로 세상에 내어놓기까지 한 그인데 그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우정을 나눴던 수전의 증상을 똑같이 경험하다니. 하지만 여기에서 올리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단안시의 평면세상을 바라보는 스스로를 의사, 작가정신을 발휘하여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선척적으로 없던 감각을 가지게 된 수전의 이야기까지 합쳐 <마음의 눈>이라는 책으로 까지 펴낸다. 안구 흑색종이 결국 간까지 전이되었지만 그것마저도 올리버의 끝없는 호기심과 열정을 누를 수 없었다. 그는 암의 진행속도를 늦춰 생겨난 마지막 몇개월을 슬픔에만 잠식되지 않고 수전과도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고(수전도 올리버를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며 인생을 ‘즐겼’다. 마지막까지 용기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남을 위할 줄 아는 세심한 친절뿐만이 아니라 150개의 편지에는 과학뿐만 아니라 취미, 일상생활 같은 온갖 분야들이 담겨있는데 이십년의 나이차이가 있지만 둘다 나이가 지긋한 두사람이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박수치고 까무러치는 모습들을 보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올리버와 수전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을 아름답고 즐겁게 바라보는 시선까지 이 책으로 배웠다. 자기자신과의 고요한 대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시나 다른 누군가와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수전이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그녀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 올리버를 만나기 전후,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올리버도 물론 마찬가지일테지만. 세상을 떠난 절친의 필체를 보는 것은 슬픈일일 것이다. 하지만 올리버의 말년에 두사람이 슬픔에만 침잠하지 않았던 것처럼, 남겨진 그녀는 슬픔만을 바라보지 않고 그와의 행복한 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왜 서간집이 출판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 책이었다. 많은 대화를 남겨두고 싶다. 남을 이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