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아직 읽지 않았다. 사놓은 지 꽤 되었는데 읽지 않았다는 말이다. 테드 창의 신작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를 주문해 놓고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 보려고 책장을 들어내다가 <<나오키의 대중 문학 강의>>가 툭 떨어졌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찾지 못했지만 '대중문학'이라는 제목의 일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얼마 전에 현대 사회의 특질 중 '대중'을 꼽고 그에 관해 논하고 있는 책을 읽어서였을 것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대중의 반역>>을 낸 것이 1930년이었고 나오키 산주고가 <<나오키의 대중문학 강의>>를 낸 것이 1932년이다. 나오키는 대중사회라는 새로운 흐름의 한가운데에서 이 책을 쓴 것이다. 한편 1932년은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다음 해이다. 일본은 만주사변을 통해 본격적 대륙침략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이에 조선도 파시즘 체제로 편입되어 간다.
'대중'이라는 개념을 1930년대의 조선으로까지 끌고 온 것은 '왜 한국에서는 국내장르문학이 대중 문학의 한 류로 자리잡지 못했을까?'라는 궁금증 때문이다. 이 궁금증은 늘 궁금해하기는 하나 어디서부터 해결해야할지 감도 오지 않아서 그저 늘 궁금해하기만 하는 궁금증이다.
소위 장르소설이라 불리는 책들을 띄엄띄엄이나마 읽어 왔다. 그리고 공포와 기괴함을 느낄 때마다 내가 왜 이런 걸 무서워하고 기괴하다고 느끼는지 생각해보는 정도에서 마지막 장을 덮고는 했다. 정서적으로 장르소설을 읽고 즐겼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오키의 대중문학 강의>>를 조금 읽다보니 이참에 장르소설이 태어나고 자란 맥락에 관한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적으로(?) 장르소설을 읽어보겠다는 건 아니고, 그간 읽어 온 장르소설들이 나름의 지도 속에서 배열되고 앞으로 읽는 장르소설들이 그 지도 위에서 맥락을 갖췄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새로 읽는 책에서 얻는 재미가 이미 읽은 책에도 덧붙여졌으면 하는 바람, 그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장르소설을 막 읽기 시작했던 2008년(아마도) 여름 쯤에 읽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들을 다시 펼친다. 이미 읽고 팔아버린 책들을 다시 주문해야 했는데, 40% 할인에다가 <애거서 크리스티 A to Z>라는 소책자가 함께 왔다. 맥락없이 내키는대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을 몇 권을 읽은 나에게는 꽤 도움과 재미를 줄 것 같다. 알파벳 A-Z로 시작하는 키워드를 뽑아 애거서 크리스티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사진, 자료를 담고 있다. 작고 얇지만 알찬 책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