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만든 사람 -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다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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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어려운 경험 때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 때문에 더 비참해지곤 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보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강준민 목사님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대하게 되는데 ​이 책은 아브라함의 영성과 믿음의 발자취를 좇아가면서 그의 믿음의

근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그의 믿음이 자라가게 되는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이전 책과는 다른 형식이어서

약간 어색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인물강해가 아닌 주제별로 강해한 책이 더 좋았습니다.​

책을 살펴 보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단어가 '기다림'이란 단어였습니다. 아직도 이 단어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고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급증만 아니었어도 더 큰일과  더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 뻔 했던 사람을

종종 보게 되는데 기다림은 나를 극복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과제 중 하나임이 틀림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바라 보면서 기다림이라는 여울물로  빚어낸 가장 빛나는 믿음의 보석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이 보석을 간직한 사람은  운명이나 숙명에 얽매이지 않고 개척자의 삶을 살아가며 가장 분명한  믿음의 내용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암울한 상황을 묵묵히 인내하며 걸어갔던 것도

자신 속에 품은 '믿음의 부화'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시기별로 성경의 목차대로 그의 행적을 쫓아 가는데 아브라함의 고된 인생사와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안심이 됩니다.

니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우리도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에 한층

더 다가서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마침내 언약의 후손인 이삭을 25년 만에 얻고 승리의 깃발을 꼿고 웃음을 웃는 모습을 보면서

저 승리의 날이 내게도 임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보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물론 겉으로 드러난

사실(fact)만  기록을 하고 있지만 만약 감정적인 내면의 깊은 부분까지 우리가 알 수 있었다면 적지 않은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기다림의 현장에서, 자신을 속이는 시간에서 점차 변화되어 늘 제단을 쌓는 거룩한 생활로,믿음의 

점진적인 진보를 보이는 괴정에서 또 다른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편 한편 설교를 읽는 것처럼 편하게 읽어 내려가면서 예전에 강준민 목사님의 칼럼에서 읽었던

 "하나님은 물이 끓는 온도인 100프로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고는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첫 단계인 '떠나라"는 명령은 그래도 순종하기가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강도가 세져서

나증에는 급기야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 그의 애간장이 녹는 심정을 헤아려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마지막  임계점에 도달하기까지 그는 아직까지도 진정한 믿음이 사람이 아니었으나 이 순간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순간 순간 고비마다 '하나님의 침묵'과 아브라함의 '기다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기다림이 아닌 하나님의 기다림이란 사실을, 그리고 미래의 그 순간이 다가와 봐야 침묵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60세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15년을 하란에서 허비하면서 공허한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이 '다시 순종하고'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올해 초에 들었던 말씀 "다시 복음 앞에 서서'라는 말씀과 맞물리면서  [다시]라는 단어 앞에 멈춰 섰습니다. 

'다시 복음 앞에' / 다시 하나님 앞에' ​-이렇게 우리는 늘 '다시'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아직도 진행형인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리플레이 되는 이런  반복의 삶이 없었다면 히브리서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너 있는 곳에서' ... 라는 창세기 13:14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선 자리에서부터 "다시"

위대한 일을  시작하심을 보게 됩니다. 축복의 시발점은 내가 선 바로 이 자리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동서남북이 축복의 땅이고 하나님이 늘 눈 여겨보시는 ​땅임을 망각하고 롯처럼 더 나은 것만 찾아 헤메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힘이 웃음의 시간을 갖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녀냈을까?​ 그도 우리처럼

흠이 있고 결점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브라함을 아브라함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열심'이었습니다.

때로 지치고 힘들어서 모든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열심이 그 의를 이루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반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열심과 우리의 반응이  결합해서 최고의 선을 이끌어 내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신 때는 이스마엘을 가진  86세를 지나서 99세에 다시 나타나시는데

이 기간이 13년입니다. 이  기간의 긴 영적인 침체기, 하나님의 침묵에도 나는 과연 하나님께 예배의

 제단을 쌓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글쎄'란 답이 나올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을

바로 여기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긴 침묵의 시간에도 그는 끊임없이 반응하며 순종의 길을

걸어가서​ 마침내 '내가 ~하리라'로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후손들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강즌민 목사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한 마디로 '고독한 순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독한 순종을 통해서

믿음의 시간을 건네 받았고 이겨 냈고 "마침내​...~ 하리라는 약속을 모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견뎌 낸 사람이 어디 아브라함만 있겠습니까?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다윗도, 사도바울도

모두 이런 고독한 순종의 시간을 잘 극복해서 믿음의 결승점을 뚫은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룬 결코 평범하지 않은 최고의 믿음이 ​모두 '고독한 순종'을 통해서 이뤄진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이 받은 축복을 부러워 하기 전에 이런 고독한 순종의 시간을 받아 들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에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있지만 아브라함만큼 우리에게 믿음의 표본을 남긴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따르고 본 받아야 할 많은 믿음의 본 중에서 한 가지 만이라도 실천하리라 다짐하고 쫓아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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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다치지 않게
설레다(최민정) 글.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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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면서 마음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은 없을까?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상대하는 일이고 상대가 표현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누구를 나무랄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는 마음의 표현을

세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덜 상처를 받고 내 마음이 평온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노란 토끼가 주인공인 이 책의 삽화가 말 없는 평안함을 가져다 준다. 마냥 보고 있기만 해도

노란색의 효과 때문인지 그림만으로도 글을 대신하는 무언의 효과가 있다. 노란 포스트잇에

 저자의 상한 마음을 담아 스스로 치유의 효과를 가지고자 해서 그린 그림들이 몇백장이 되고

그것을 모아 책으로 펴 낸 것이다.

 

 

 

"내 마음 다치지 않게,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해"-라는 쓸쓸한 말이 나온다.

누구나 경험 햇을 법한 그늘진 마음이다. 저자가 포스잇에 그림을 한장 한장 그려 갈 때마다 마음의

얼룩을 닦아내고 치유를 경험했다면 그 경험을 우리와 함께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음이 무겁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통째로 떨어 나갈 줄은 몰랐습니다. 상처 받으면

받는 만큼 바스러질 때는 있었지만 이렇게 몸이 휘청일 만큼 크게 떨어져 나가 버리다니요"

 

누구나 이런 시간이 있었을 텐데  당시에는 죽을만큼 힘든 시간도 지나서 되돌아보면

그까짓 것 하면서 훌훌 털어 버린 날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자신이든 아니면 누군가가

발라 준 연고 덕택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 하지만 상처는 남는다.

더 단단해진 맷집으로 남게 된 상처를 보면서 한층 더 성숙해지겠지만 그 과정의 시간이

늘 우리를 힘들게 한다.

 

누구나 힘들고 속 깊은 아픔과 공허가 지리잡고 있다. 남에게 말 못할 이야기들. 감정 이야기. 마음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방법, 아니면 스스로 삭혀 내더라도 좀 더 지혜롭게 극복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게 하는 방법 등이 실려 있다. 노란 토끼가 우리가 하고 싶은 속의 말을 대신 하면서. 때로는 저자가

하고 싶은 처방을 내리면서 그렇게 노란 토끼는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싸매면서 우리 마음이 성숙하게

성장하듯이 자라간다.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당시는 아프고 힘들고, 지나고 나서도 흉터는 크게

남겠지만 연륜있는 시간을 거치고 나면 그렇게 큰 상처 덕분에 스스로 성장하며 자랐노라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더 이상 마음을 다쳐서 잃어버릴 일도 줄어 들 것이고 아픔을 참으며 꿰매야

할 일도 줄어 들 것이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저자의 독백 같은 자기고백이다. 수필처럼 때론 시어처럼 동화처럼 편하게

써 내려간 글이지만  편한 그 글에서 오히려 평범한 안위를 느끼게 된다. 최선의 적절한 방법은

아니어도 한번 쯤 읽어 내려 가면서 아. 이럴 때는 이렇게 해도 좋갰구나 한번쯤은 고개를

끄덕여 줄 수 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 살아온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의 방법이 모두에게 적용 될 수는 없고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 속의 이야기는 편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이갸기로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읽어가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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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당신을 위한 로마서 1 팀 켈러, 로마서
팀 켈러 지음, 김건우 옮김 / 두란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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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바라 보거나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기 모습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완성된 구원만 바라보고 의지한다."

 

 

새해 벽두에 팀켈러의 로마서 읽기를 시작한 것은 신앙의 행위에 많은 비중을 두었던 것에서 이제는

복음으로 회귀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로마서 1장에서부터 7장까지 강해한 이 책은  우리가 이제까지 

 고수해 왔던 신앙의 상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마틴루터,존칼뱅,어거스틴, 더 나아가 존 스토트까지- 이 로마서를 통해서 변화되었고

그만큼 로마서는 복음의 핵심 요소만을 집약해 놓은 장이다. 팀켈러는 서문에서 "로마서는 성경속 보화를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입구다"라고 말하고 있을 만큼 로마서를 관통하지 않고서는 복음의 진수를 맛볼 수 없다.

 

복음의 중심 요소인  율법/  행위/ 자유의지/ 징의/ 죄/ 속죄/ 믿음/구원/ 등의 핵심 키워드가 로마서에

씨실 날실로 엮어져 있는데 이렇게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팀켈러가 잘 풀어서 가지런하게 놓아 주어 우리는

그것을 잘 흡수하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이 왜 우리를 의롭다 여기는지? 이 선물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복음이 우리의 행위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매 장마다 점검하며 지나게 된다.

 

우리가 아는 잘못된 견해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에 더해 우리의 행위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율법적인 도덕주의>와 <종교적인 신앙인>으로 우리를 전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켈러 목사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아니 지금도 여전히 잘못 행하고 있는

신앙의 외적인 행위들과 잘못된 믿음에 대한 지식을 부수고 새로운 복음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팀캘러는 종교적인 사람과 /비종교적인 사람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비종교적인 사람보다 하등 더 나을것이

무엇이 있는가를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예수님 외에 다른 것 들을 의지한다면 복음을

거부하는 것과 같아서 비종교적인 사람들처럼 복음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인 사람들에게도

복음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고 행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행위는 그 자체로 구원 받는

믿음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고  변화된 우리의 삶을 통해 참된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에 필요하다.

 켈러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비교하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어떻게 결심하는가?라고 우리의 낯뜨거운 심장을 조준하고 있다.

 

이어서 유대인과 울법을 논하면서 도덕주의를 언급했는데 "도덕주의는 항상 우리 곁에 있어 왔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종교"라고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행위나 신앙고백 혹은 정체성을

자랑한다면 우리는 기능적으로 도덕주의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상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성경을 통해 나를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오직 복음만이

 하나님을 세상에 자랑할 수 있는 교회와 사람을 만들어 내지만 도덕주의는 그렇지 않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 참된 믿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드리는 거룩한 배나 헌신의 행위가 과연 참된 믿음을 표현하는 의식일까? 이것도 좋은 것이지만

이런것이 너무나도 쉽게 죽은 행위의 형태로 이용되어서 그리스도의 의와 우리가 받은 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우월감에는 내적인 생명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배나 헌신이나 교인이나 성도가 아니라 그 표시가 의미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그 표식은 바로 복음이고 구원을 이루고 완성하신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선한 행위로 구원 받으려는 것은  선한행위의 대상이 (그 의도가)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에 

"우리 손으로 어떻게 섬기는가 보다는 우리 마음으로 누구를 섬기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인과 종교적인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죄가 아니라 착한 행위애 대한 태도에 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착한 행위에 의존하면서 율법이나 성화,구원을 이룬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울법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에게도 따금한 일침을 가하고 있는데 율법은 우리가 점검해야 할 표가 아니라

우리가 결코 도달하지 못할 기준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빈손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그분의 의를 받는 것이다. 사람들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그들의 죄가 아니라 그들의 선한 행위이다.

자신의 선한 행위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의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선함을 포기하고 종교성도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켈러는 중효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믿음으로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어떻게 받느냐에 관한 것이고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태도일 뿐이다.  믿음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믿음 자체에 주목할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대상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구원을 받게 하는 이유가 아니라 도구일 뿐인데

자신의 믿음에 주목하게 되면 자랑할 것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게 된다. 구원하는 믿음이란 에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믿는 것이다.

 

켈러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순종하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기 위한 순종을 그만 두는 사람이며

구원받는 믿음이란 신뢰하는 대상의 전환이고 순종과 동의어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고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이다.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에 관해 생각하고 그 분에 관한 사실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관해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바라 보면서 그것이

당신을 위한 진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율법의 목적은 죄의 속성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며 우리가 죄인이며 구원이 필요함을 보여 주는 것에 불과하다.​

복음은 사람을 거북하게 만들지만  복음이 없으면 우리는 세상의 즐거움을 숭배하든지 세상의 즐거움으로부터

 도피하게 된다. 그래서 더 복음이 필요하고 이 복음이 변함 없는 하나님과 만날 수 있게 해 준다.고 설명한다.

 

낱낱히 속을 해부해서 다  보여 준, 민낯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이 책을 마주하며  곱씹으며

완벽한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한계성에서 잠깐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지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고  누구도 죄와 싸우지 않을 만큼

 성숙하지는 않다"는 말이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 우리는 목적이 있는 피조물이다. 존재의 이유를 각자가

 부여 받은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화살표, 길이 되고 생명이 되어 준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선포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과 꿈,희망이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그 준엄한 선포가 진실이 되는 그 날까지 이 행진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뷔페를 대하는 느낌으로 로마서라는 밥상을 받았다.​ 때론 딱딱한 반찬도 있었고 부드러운 반찬도

 있었지만 우리에게 모두 이로운 영혼의 보약이다. 종교인과 도덕주의자.율법주의의 촘촘한 그물망에 다 걸려든

내 모습을 보면서 성경을 알면 알수록 더 위험해진다는 경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학서적들의 이론적이고

적용점이 없는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신학의 지식이 오히려 복음에 저해가 되고 자기기만과 우월감을

느끼면서 복음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것 때문인데 이 책은 그런 염려가 없었다. 한가지 주제를 마친 후에는 

논점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로 향하면서 우리에게 적용할 부분을 명확히 짚어 준다. 해서  읽는 중간 중간에

 다시 한번 내용에 대해 묵상하게 되고​ 성경을 펼쳐 읽으면서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 보다는 오히려

버려야 할 것과 수선 해야 할 것이 많음을 알게 된다.

로마서의 복음이 위대한 신앙 선배들을 변화시켰듯이 그 무중력의 변화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가게 된다.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마다  신학적인 배경이나 각도가 달라서  논의나 주제가 각기 다르지만 이 책은 로마서에

나오는 복음의 핵심을​ 짚어 주면서 완벽한 진리 안으로 우리를 끌어 들인다.  ​로마서의 내용을 절 별로 주해를 했고

 상세한 해설과 더불어  (신학이 아닌) 신앙적인 오류를 바로 잡아​ 주면서 성도들의 신앙 전반을 총제적으로

점검하게  해 주는 복음의 거울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  복음의 거울 앞에 서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의롭게 살았 왔고 충성하고 헌신했는가를 비춰 보기 보다는 얼마나

내가 릇되게 행해 왔는가를 세세하게  비춰 보면 좋을 것 같다.​ 2015년 새해를 맞이 하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우리 영혼을 깨끗이 세탁해서 복음의 새 부대에 담고 다시 전진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별 5개 이상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책 속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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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리는 감정 동화 - 세계 대표 작가들이 들려주는 세계 대표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4
에스티브 푸졸 이 폰스 지음, 정지현 옮김 / 가람어린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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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주인이 누구일까? 당연히 자신이지만 때로는 주인같지 않을 때가 있는데

자신의 감정을 나도 다스리기가 힘들 때 이 때는 다른 사람이 주인인 것만 같다.

마음 속의 이성과 감정이 대립을 할 때 자아와 초자아가 서로 대립하고 있을 때 그렇다.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무조건 참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참는 것만 강요당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도 문화도 많이 달라져서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의 주인은 나이며

이것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도 자신이란 것을 가르치며 배우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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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음을 다스리는 감정동화]는 어린이의 마음을 다스려 주는 동화이지만 이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읽게 되었다. 요즘 힐링을 이야기 하는 가운데 음악치유 그림치유 등 여러가지 방법 중에

이야기를 통한 치유가 있다. 동화도 그 중의 하나이고 전에도 동화를 많이 활용한 경험이 있어서

낯설지 않은 분야이다.

 

세계명작 가운데 선정한 동화 20편의 내용이 나온다.  서두에 감정에 관한 개요가 있고 동화

내용이 나오고 끝마무리에 이야기애 나오는 동물이나 사람들의 감정에 관해 조언을 해 주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어린 연령대의 아이들 특히 3세에서 8~9세 까지의

 아이들에게 감정에 관한 교육을 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책이다. 어린 유아들은

 어른들의 설명이 필요하고 이후의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 주고 나면 뒷 이야기 교훈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고

단편적인 부분이 많았었다. 선과 악,행복과 불행 등의 이분법적인 내용으로  가르치려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교육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의 동화를 통해서 전달되는 메세지는 이분법적인 교훈 외에도 감정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문화적인 발달이 교육에도 여러가지 좋은 소재를 제공해 주고

있음도 새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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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아이들의 입장에서 동화를 읽듯이 천천히 읽어 나갔다. 그 후에 어른의 감정에

 

 대입시켜 보았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이런 동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의 감정을 열어 놓고 솔직하게 대화해 본 적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조용한 자신만의 시간에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 보는 시간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잘 사용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줄 것이다.

 

이 책은 총 새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 나에게서 츨발하기/ 두 번째 앞으로 나아가기

세 번째 어울려 살아가기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자신의 감정은 어떠한지를 살펴

볼 수 있게 한다. 두 번째는 장애물을 만나서도 좌절하지 않고 끗꿋하게 살아갈 용기를 주는

글이 실려 있고 세 번째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관계를 개선할 수 방법이

실려 있다.

 

한 두명만 자녀를 낳는 핵가족 사회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지혜롭게 다스리는 법을

모르고 자라날 수 있는데 불투명하거나 헝크러진 감정을 현명하게 잘 컨트롤 할 수 있게 해 주고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감정의 기초를 잘 다스릴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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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을 용기 -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이승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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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더 적게 받으면서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아 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 책은 사회생활- 그 중에서도 직장내에서의 대인관계, 동료들로부터 받는

 비난에 대해  어떻게 하면 거기애 함몰되지 않고 잘 생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저자가 정신과 의사로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 건강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내담자로부터 얻은 고민과 갈등을

통해 비난과 갈등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 주고 있다.

 

책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요지는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엮어 나가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그러니 괜한 사람들로

인해 내가 망가지는 것을 허락하지 말고 내 자존을 높이며 자신을 향한 자긍심으로 살아가라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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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상황이 닦칠 때 더 이상 스스로를 내어 주지 말자. 남 눈치 보느라 사방으로 안테나를 뻗어 주위를

살피지도 말자. 더구나 재수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말자. 시련은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듯이

반복된 비난에 맞서 싸운 경험들이 앞으로 자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 오히려 비난이

 닦쳤을 때 기회라 생각하고 나를 방어해 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비난에 대처하는 맷집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하게 자신의 자존을 끌어 올리는 연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활동들을 찾아서 실천해 나가면 비난에 대처하는

맷집도 단단해 질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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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에서 사람들의 관계로 속을 끓이는 것이 비단 사회 직장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부부간에도

학교에서도 일어나는 문제이지만 저자가 특별히 직장내의 비난에  대해 고민한 것은 저자의 직업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사회가 개인의 이기적인 사회로 점차 변모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 모든것의 근원 그 이유를 파헤쳐보면

어느 상황에서건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사람이다. 나를 돋보여야 하고 내가 잘 나야 하고 내 이름을 높여아 하는 사회.

 남을 짓누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직장생활,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안 할수도 없는 노릇이니 비난이라는 상황을 맞닦뜨리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뾰족한 답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특별한 처방을 하지 않았어도 시간이 흐른 후에 내담자가 다시 찾아 왔을 때는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었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그냥 무시했더니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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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비난의 내용이 아니라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훌훌 털어 버리면 되고 무시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 상황에 대해 자신이 스톱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왜 가치 없는 것들에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는다면 답변은 자명해진다.

 

"우리를 삐딱하게 바라볼 사람은 어디나 존재하게 마련이다.이것을 받아 들인다면 실제 현실에서 자신에 나타날

괴로움의 수준을 조금은 낮출 수 있다. 결국 비난에 잘 대처하는 방법은 비난의 상황에서 생기는 감정들을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사실에 반응하기 때문에

괴로워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말로 하면 나 또한 다른 사람 모두를

100프로 만족 시킬 수 없다는 말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어차피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말고 차라리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챙기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게 낫다. 호감으로 비난을 상쇄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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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도 않고 배려도 없는 사람들, 그들의 비난에 왜 흔들려야 하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과학이 아니다. 자신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맞이하면서 스스로 깨우쳐 가야 하는

감정의 길인 것이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그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이 있다면  앞으로

그 길을 고수하며 걸어가면 될 일이다. 인생의 길에 대한 기준도 다르고  삶의 자세도 다르고 사람의 평가에 대한

기준도 각기 다르다. 선각자들의 조언도 자신에게 맞는 답일 뿐 사람마다 일률적인 답을 구할 수는 없다.

후천적이든 선천적이든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과 기질이 다르고 그들의 삶의 터전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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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자신이 옳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은 그것이 아닌 타인과 내가

다른 것의 차이일 뿐이다. 차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옳고 그름이라는 탈을 쓰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비난에 대처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있는데 바로 자존감이고 이것은  방어기제의 연로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자신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바로 자존감이며 비난과 인신공격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비난을 피하는 방법이 된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행복한 삶이다.

내 행복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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