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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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정통한 로마 역사라고 인정받고 있는 로마의 위대한 3대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3권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로마의 개국 신화과 국가의 건국을 시작으로 저자가 살았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시대까지 700여년의 로마 역사를 다룬 142권의 방대한 분량인 로마사는 아쉽게도 원래 분량의 1/4 정도만 현존하고 있다. 로마시대의 역사가의 시선으로 쓰여진 리비우스 로마사는 당대 로마를 좀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며, 여타 로마사와 다른 시각과 즐거움을 준다.

21권~30권에 해당하는 3권은 로마 역사상 중요한 전쟁 중 하나인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다루고 있다. 현존하는 리비우스 로마사 내용 중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기에 더욱더 반갑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로마와 동맹을 맺은 스페인의 사군툼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한니발 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그야말로 로마와 한니발의 전쟁이라도 볼 수 있다.

기존에 사용되었던 해상로가 아니라 몇만명에 달하는 병사와 코끼리를 이끌고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가혹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군을 공격하고 오랜시간 로마를 불안에 떨게 만든 한니발 바르카와 젊은 나이부터 한니발 군대와의 전투에서 아버지를 구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지략과 인품으로 결국 자마에서 한니발을 격파하고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의 대결을 비롯하여 17년간 이탈리아 본토를 비롯하여 카르타고, 스페인, 시칠리아, 아프리카 등 로마와 카르타고 영토에서 벌어지는 두 나라의 다양한 대결이 리비우스의 글을 통해 마치 소설이나 영화을 보는 것처럼 생동감있게 눈앞에 펼쳐진다.

유려하고 매혹적인 문장, 당대 역사가의 저서, 방대하고 자세한 분량, 리비우스 로마사가 극찬받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나는 유독 연설하는 장면을 다루는 부분을 좋아한다. 회의나 선거,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전쟁을 앞두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연설, 웅변은 단순한 역사의 서술이 아닌 당시의 상황과 그 인물의 성향, 인물상을 추측해볼 수 있게 해준다. 한니발과 스키피오, 로마의 여러 집정관과 장군들이 전투전 병사들을 향한 연설을 통해 그려보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은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고 흥미롭다.

아쉽게도 3권과 함께 출간된 4권으로 리비우스 로마사는 완결되었다. 4권을 이루는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인생 후반기와 제2,3차 마케도니아 전쟁을 다룬 31권~45권 이후 부분은 모두 결락되었다고 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하는 로마 공화정 말기를 어떻게 그려냈을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리비우스 로마사> 이번 권을 통해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사랑받고 읽혀오고 있는지 그 이유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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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기 드 모파상 지음, 이형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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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이자 10여년간의 짧은 문단생활 동안 <여자의 일생>, <벨아미>를 비롯하여 다수의 장편소설과 약 300편에 달하는 단편소설을 남긴 기 드 모파상의 사랑의 여러 형태를 담은 단편집이 펭귄클래식 레드 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빨강과 보라의 강렬한 표지가 제목과 잘 어우러져 눈을 사로잡는다.

살아가며 가장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일 중 하나가 자신의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 중에서도 사랑, 분노 같은 격렬한 감정은 더욱 그렇다. 시간이 지난 후 후회를 한다해도 그 순간만큼은 그 감정만이 나를 지배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정염(情炎)'이라는 단어는 '불같이 타오르는 욕정'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열보다 더 격렬하고 강렬한 감정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기품있고 훌륭한 부인이 젊은 장교에게 사랑에 빠져 가족과 명예,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마저 버리려 했으나 결국 그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했던 표제작인 '어떤 정염'을 비롯하여 두 자매와 한 남자의 어긋난 애정을 담은 '고백', 어린 시절 한순간에 사랑에 빠진 후 자신의 평생을 바친 '의자 수선하는 여인' 사람은 일생에 한 번 밖에 사랑할 수 없다고 믿는 손녀에게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본능 같은 것이라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옛 시절', 우정과 사랑의 어긋남이 만들어낸 비극을 담은 '어린 병사'를 포함한 20편의 단편들은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격정적으로, 마치 광기에 빠진듯하고 모든것을 걸기도 하는, 이야기 속 다양한 모습을 통해 그 감정으로 인해 가족과 친구를 배신하기도 하고, 결국 자신마저 파멸에 이르게 만들기도 하는, 하지만 설령 그 결과를 알게 되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어렵게 살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그에게 존재 자체도 인지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애정과 헌신을 비웃음당하는 인물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사람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죽음에 이르게 만들지만, 자신 역시 평생을 죄책감 속에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랑에는 정염이라는 열정적인 감정 만큼이나 거대한 허무함 역시 존재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짧막한 단편소설 하나하나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들은 왜 기 드 모파상이 당대 최고의 작가들로부터 사랑 받았던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가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글에는 그 시대 고유의 사상과 감정이 담겨있다. 하지만 동시에 시대를 초월해 보편적으로 울림을 주는 무언가가 존재하기에 고전이 시간의 구애없이 사랑받는 것일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각가지 사랑의 모습이 어딘가 낮설지 않은건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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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시체 문화유산 탐방기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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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있어도 좋은 시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태어나는 존재는 언젠가 죽기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 아닌 것처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살아간다. 아마도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이들의 죽음이란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무척 흥미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미국에서 장의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장례 문화와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여러 형태를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를 때로는 리얼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리고 때로는 먹먹하고 담담한 방식으로 마주하게 만들어준다.

 

저자는 갈수록 더 상업적이고 기업화되어 가는 미국의 최근 장례문화에서부터 미국 콜로라도주 크레스톤의 야외 화장, 노스캐롤라이나주 인간 재구성 프로젝트, 인도네시아 타나토라자의 마네네 의식, 멕시코의 망자의 날, 스페인과 일본의 장례 문화, 볼리비아의 냐티타를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막에 위치한 조슈아트리 묘지에서의 자연장까지, 전통적인 장례 의식에서 현대적인 장례 절차까지 세계 곳곳의 여러 장례에 대한 인식과 형태를 단순히 조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방문하고 참여함으로서 더욱 생생하고 감각적으로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세상에는 각기 다른 망자에 대한 애도의 방식이 존재한다. 혁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하고, 스마트카드 하나로 고인의 불상을 확인할 수 있는 현대적인 방식의 루리덴 납골당을 보자면 일견 추모라는 형태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갈수록 고령화되고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외로운 죽음이 점점 더 늘어가는 시대의 변화에 맞춘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이를 미라의 모습으로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옷을 갈아입히고, 보살피는 타나토라자 사람들은 마치 삶과 죽음이란 뚜렷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역시 짧은 시간에 장례의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상을 치르고 묘지를 쓰고 제를 올리는 전통적인 장례 절차에 따라 산소나 선산에 시신을 안치하는 매장이 주였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화장 비율이 이미 80%를 넘어섰다고 한다. 수목장 같은 자연장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또한 장례의 절차 역시 가족과 친인척들이 주도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상조회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 역시 점점 더 늘어가면서 장례문화가 상업화되고 마치 서비스업처럼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 요즘, 책에서 보여주는 죽은 이를 떠나보내고, 추모하는 다양한 모습들은 형식과 애도의 관계를, 나는 어떻게 떠나고 싶은가를, 내 소중한 이를 떠나보냈을 때 나는 어떻게 애도하고 싶은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 방식이 어떨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나 역시 좋은 시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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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힘 -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신동흔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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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면 많이 생각나는 일 중 하나가 동화책을 읽던 시간이다. 신데렐라부터 백설공주, 백조 왕자, 팥죽할머니와 호랑이까지 때로는 재밌기도 하고, 때로는 무섭기도 하며, 동물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신기한 광경과, 공주를 구하러 오는 왕자님이 등장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접한 동화나 설화는 추억 속의 이야기와 많이 달랐다. 아동용으로 순화된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잔혹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복수 이야기에 놀라고, 왕자가 와주기만을 기다리는 공주들의 모습에서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이를 숲에 버린 '헨젤과 그레텔'을 보면서 아동 인권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기도 했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읽어내게 되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이야기를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눈을 가지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구비설화 전문가인 저자 신동흔은 각국의 동화, 민담, 설화 속에 숨겨진 깊고 복잡한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 옛이야기들을 현재의 시각에서 좀더 다양한 시선으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수동적으로 느껴지는 신데렐라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며 스스로 고난을 이겨내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인물인지 보여주고, 여우로 둔갑한 누이가 부모와 형제를 잡아먹고 마지막으로 막내 오빠까지 잡아먹으려고 하는 이야기인 '여우 누이'의 부모와 요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고 모두 들어주는 부모를 엮어 내며 현실적인 오싹함을 느끼게 한다.

 

빨간모자 이야기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할머니에게 음식을 가져다드리기 위해 길을 나선 빨간모자는 늑대의 달콤한 말과 숲의 아름다움에 빠져 할머니 집에 가야한다는 목적을 잊고 숲 속 깊숙히 들어간다. 결국 늑대에게 할머니에 이어 자신까지도 잡아먹히는 빨간모자와, 페이스북의 좋아요에 빠지고 타인이 자신을 긍정해준다는 행복감에 휘둘려 현실에서 눈을 돌려 점점 가상의 공간 속 행복을 쫓아 가까운 주변을 소홀하게 되고 실망감을 주게 된 저자의 경험에서 과연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이야기지만 현실과 그닥 다르지 않다.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온 옛날 이야기는 그 시간만큼이나 수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철학을 담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일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비슷한 내용을 가진 이야기가 세계 각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치 신데렐라와 콩쥐 팥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인간이란 다양성 만큼이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심리와 상상력을 내재하고 있다고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푸른수염'이나 '개구리 왕자', '선녀와 나무꾼'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만큼이나 '신비한 해골', '지빠귀 부리 왕', '코르베스 씨'처럼 생소한 한국 설화나 그림형제 민담 속 이야기 들은 자신, 가족, 사랑, 성장과 독립, 성공, 세상과의 관계, 행복 같은 삶에 중요한 요소들이 담긴 다양한 서사와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들로 가득하다. 왜 옛이야기가 이렇게 오랜시간 사랑받고 이어져왔는지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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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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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일임하겠습니다.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일본의 거품경제기가 끝나면서 일하던 건축회사에서 퇴사하고 좌절한 채 방황하다 결국 아내와도 이혼을 하고, 대학 동기이기도 했던 오카지마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세상과 타협하고 기계적으로 일을 하며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건축사 아오세는 의뢰인 요시노 부부에게 기묘하기까지 한 단 하나의 요청 사항과 함께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패배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적당히 살아가던 그에게 그 의뢰는 건축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살아나게 했고 그의 손으로 '빛의 굴뚝'을 통해 다정한 노스라이트가 가득한 Y저택을 완성한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아름다운 북향의 집에 의뢰인은 무척 만족을 했고, 잡지에 '일본을 대표하는 주택 200'에 개재되어 유명해졌지만, 몇달 후 다른 의뢰인을 통해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Y저택에는 요시노 가족이 살고 있는 흔적은 전혀 없이, 타우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자만이 2층에 놓여 있었다.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그 집에, 행복해 보였던 다섯 식구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결국 아오세는 집에 남겨진 실마리인 과거 독일의 군사독재화를 피해 일본에 망명해 일본 건축사에 많은 영향을 준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를 실마리로 요시노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한편 아오세가 근무하는 건축사무소의 사장인 오카지마는 아들인 잇소를 위해, '데스마스크를 쓰는 순간, 마지막으로 머리속에 떠오를 집'을, '제 손으로 만든, 영혼을 담은 집'을 남기기 위해 <후지야마 하루코 기념관> 공모전에 무리하게 뛰어든다.

 

살아 있는 것들은 본능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는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있기에 인간은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다. (P184)

 

의식주. <집>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중 하나다. 집이란 자신을 보호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물질적인 공간만이 아닌, 추억의 공간이자 심리적인 공간이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만들 수 있으며, 항상 돌아갈 수 있는 장소이다. 어린 시절 댐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현장 숙소에서 몇 달씩 지내는 방랑 생활을 해왔던 아오세에게 있어서 집이란 더욱더 특별한 공간이다. 사람은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가 만들어낸 Y저택은 과거 행복했던 아버지와 가족의 기억처럼 부드러운 노스라이트가 따뜻하게 비치고,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사는 곳을 옮겨다녀야 했기에 고향과도 같은 오랫동안 살고 싶은 집을 지었다.

 

사라진 요시노 일가의 행방과 후지야마 하루코 기념관 공모전이라는 두 사건이 교차하며 무언가를 잃고, 좌절하면서도 결국 따뜻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다보면 삶이란, 소중한 것이란,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64나 사라진 이틀 같은 복잡한 사건이나 치밀한 트릭이 등장하는 과거 요코야마 히데오의 본격 미스터리와는 또 다른,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작가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아오세의 삶의 또 한번의 재생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남은 건 빛의 기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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