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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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일임하겠습니다.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일본의 거품경제기가 끝나면서 일하던 건축회사에서 퇴사하고 좌절한 채 방황하다 결국 아내와도 이혼을 하고, 대학 동기이기도 했던 오카지마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세상과 타협하고 기계적으로 일을 하며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건축사 아오세는 의뢰인 요시노 부부에게 기묘하기까지 한 단 하나의 요청 사항과 함께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패배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적당히 살아가던 그에게 그 의뢰는 건축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살아나게 했고 그의 손으로 '빛의 굴뚝'을 통해 다정한 노스라이트가 가득한 Y저택을 완성한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아름다운 북향의 집에 의뢰인은 무척 만족을 했고, 잡지에 '일본을 대표하는 주택 200'에 개재되어 유명해졌지만, 몇달 후 다른 의뢰인을 통해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Y저택에는 요시노 가족이 살고 있는 흔적은 전혀 없이, 타우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자만이 2층에 놓여 있었다.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그 집에, 행복해 보였던 다섯 식구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결국 아오세는 집에 남겨진 실마리인 과거 독일의 군사독재화를 피해 일본에 망명해 일본 건축사에 많은 영향을 준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를 실마리로 요시노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한편 아오세가 근무하는 건축사무소의 사장인 오카지마는 아들인 잇소를 위해, '데스마스크를 쓰는 순간, 마지막으로 머리속에 떠오를 집'을, '제 손으로 만든, 영혼을 담은 집'을 남기기 위해 <후지야마 하루코 기념관> 공모전에 무리하게 뛰어든다.

 

살아 있는 것들은 본능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는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있기에 인간은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다. (P184)

 

의식주. <집>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중 하나다. 집이란 자신을 보호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물질적인 공간만이 아닌, 추억의 공간이자 심리적인 공간이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만들 수 있으며, 항상 돌아갈 수 있는 장소이다. 어린 시절 댐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현장 숙소에서 몇 달씩 지내는 방랑 생활을 해왔던 아오세에게 있어서 집이란 더욱더 특별한 공간이다. 사람은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가 만들어낸 Y저택은 과거 행복했던 아버지와 가족의 기억처럼 부드러운 노스라이트가 따뜻하게 비치고,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사는 곳을 옮겨다녀야 했기에 고향과도 같은 오랫동안 살고 싶은 집을 지었다.

 

사라진 요시노 일가의 행방과 후지야마 하루코 기념관 공모전이라는 두 사건이 교차하며 무언가를 잃고, 좌절하면서도 결국 따뜻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다보면 삶이란, 소중한 것이란,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64나 사라진 이틀 같은 복잡한 사건이나 치밀한 트릭이 등장하는 과거 요코야마 히데오의 본격 미스터리와는 또 다른,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작가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아오세의 삶의 또 한번의 재생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남은 건 빛의 기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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