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와 함께 이효리씨가 어머니와 함께 여행 떠나는 프로그램을 애청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보는 것이 의아하기도 했지만 회차가 거듭 될수록 축적된 세월의 길이만 다를 뿐 우리 또한 다르지 않은 모녀임을 느낀다. 몇몇 장면에서는 “엄마는 왜 할아버지가 무서워? 할아버지는 정말 다정하고 친절한데 왜 무서워?” 라고 물어왔던 아이에게 뒤늦은 답변도 했다. 그리고 녀석과 나는 #네가되어줄게 를 음성으로 읽어내려갔다. 평소에도 역할극처럼 책 속 따옴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낭독하는 것을 즐기는 우리이지만 지문을 읽어내려가면서 곁들이는 “내가 이래?” “너도 그래!” ”웃겨~ 엄마도 그래”와 같은 문답은 자못 거울치료의 향기가 풍긴다.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레 82년생 김지영으로 옮겨갔다. 딸이 엄마로 빙의하여 토해내는 절절한 문장들. 미어지는 슬픔이 번져 겉잡을 수 없던 그 순간을 복기해본다. 밀쳐내도 밀쳐지지 않는 결속된 감정과 경시할 수 없는 상대의 아픔. 가족이라는 관계성에 갇힌 것이 아니라 내가 엄마의 딸이기에 고스란히 전달 받아야 했던 그 이야기들 속에서 아리고 쓰라린 것은 최대한 걷어내고 경쾌하고 발랄하게 전하고 있는 버전이 #네가되어줄게 가 아닐까 싶었고 이 책은 꼭 엄마 목소리를 통해 완독하고 싶다던 아이의 요청에 응답하길 참 잘한 책이기도 하다. 부모님께 그토록 쌓였던 불평과 불만이 왜 이제와서는 이해가 될까? 답습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어쩜 이리도 쉽사리 상실 되었을까? 필연적으로 그리 설계된 것은 아닐텐데 딸이었던 과거에 내가 그토록 싫었던 집요하고 숨막히는 구석만 스포이드로 뽑아내어 내 피에 들어온 것 같았다. 예컨대 나는 나만의 윤리를 아이에게 강요하거나 아이에 속도를 추월하여 상황을 타진하고 개입하려 한다. 아이는 비상구가 없는 100층짜리 집에 들어온 기분일거라 머리로는 짐작은 하면서도 감정이 앞설땐 역지사지가 잘 안된다. 역지사지는 아이에 잠든 모습을 보면서나 가능한것일까.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가능해진다. 더하여 지금에 내가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현재에 도착했는지 알 수 있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하듯, 보이지 않는 사랑의 끈이 우리를 구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책을 만났다 #조남주 #문학동네 #문학동네청소년 #호수네책
새로운 가족을 맞이한 뒤부터 우리의 시계는 다르게 돌아갔다. 이전에 의례히 해왔던 것부터 우선순위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가 제법 무거웠기에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빈자리를 느낄 세도 없었다. 어느날 우연히 찾아온 여유 시간, 아이와 나는 한 마음으로 “오늘은 숲에 가자” 했다. 숲 안에서 우리는 감각들을 깨워나갔다. 아이가 말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이야!” 그렇게 우리는 반나절 동안 바위도 타고, 나무도 오르고, 엉덩이 썰매도 타며 놀았다. 그곳에선 또 다른 시계가 바삐 달리는 기분이었다. #초도리와말썽많은숲 은 째깍째깍 일분일초가 아쉽게 흐르는 숲속에서의 시간과도 같은 책이다. 제목은 <말썽 많은 숲> 이지만 말썽이라기엔 몹시도 경쾌하고 자지러지게 귀여운 3편의 이야기와 더불어 밤코 작가님의 그림에서는 총천연색 풍경과 인물들을 자꾸만 상상하며 미소짓게 하는 주문이 걸려 있는 것만 같다.살던 곳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된 초도리와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초도리를 찾게 되는 숲속 친구들의 사건과 그 것을 해결을 위해 합심하는 이야기는 크고 작은 집단 속에서 공동체를 구성하며 진정한 독립을 배워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독립을 한다는 건 또 다른 공동체를 꾸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왜 숲토리를 떠나는 나이를 9살로 설정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완전하지 않은 우리가 완전해질 수 있는 연대의 힘은 건강한 개인의 화합할 때 발휘 된다는 것을 이 책은 들려주고 있다. 숲에서 엎어지고 구르며 단련되는 근육처럼 관계 속에서 단단해지는 마음이 엿보이는 책을 만났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숲 자체가 아니라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 또한 말이다 #문학동네 #호수네책 #책이야기
펫샵 앞을 쉬이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에 손을 이끌고 매몰차게 그곳을 벗어난다. 품종 계량과 불법 번식으로 태어나 투명벽 너머 작은 아크릴 상자와 같은 곳에서 지내다 돈을 내는 사람이 있어야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강아지들. 이런 배경은 모른채 작고 작은 강아지들이 보고 싶은 아이에게 ‘현실을 꼭 들려줘야만 할까?’ 잠깐 멈칫했다가도 자처해서 냉정해지는 편이다. 주위에 펫샵에서 강아지를 분양 받았다는 사람들에 이유를 들어보면 한편으론 수긍이 되기도 한다. 길고 짧든 이전에 시간과 상처가 있는 유기견들을 입양한다는 것이 분양과 왜 다른지, 왜 더 큰 결심이 필요한지. 그리고 왜 꺼려지는지 까지도 어렴풋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사지 않고 입양해야 하나요?”라는 말에 응당한 답을 해줄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 진정한 동물권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할 것 같다. 상실의 늪에 빠진 감정은 통제력을 잃는다. #개는용감하다 속 보호소 강아지들끼리의 다툼과 혼란은 상실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매일 내게 밥을 주고, 함께 산책하던 가족과 이별했는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담담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되려 비정상적이지 않은가. 그들에 현실은 구조되어 보호시설에 살게 된 강아지이지만, 사랑받았던 기억 속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상대보다는 덜 찌질해보이려 애쓴다.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초라해질 용기는 잘 생기지 않는 강아지들에 이야기를 읽다보면 용감함은 내제된 것이 아니라 찰나에 발휘되는 지혜이자 판단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과 얽혀지내는 모든 동물들이 용감하고 행복하길 #열림원어린이
종잡을 수 없이 위태로운 시절이 있었다. 곧 폭발할 것처럼 불안해서 스스로를 가만히 두지 못하던 때. 나 역시 #떠돌씨 처럼 무작정 짐을 꾸려 떠났다. 그때의 나를 함축적으로 표현하자니 ’볶아치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늘상 상기된 상태로 술렁이는 자신을 계속해서 볶아쳤다. 그럴수록 불안과 두려움은 비대해져갔고 떠나는 것만으로는 근본에 머물러 있는 그것을 찾을 수 없었지만 종착지도 없이 걷고 또 걷고 계속해서 걸었다. 껍데기를 떨치고 알맹이를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허영과 치기를 털어내야 허구의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답에 다다랐을 때에서야 떠도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나는 나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확신의 열쇠는 스스로 쥐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 연민에 빠져 버린 영혼은 쉽게 그 열쇠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때엔 나를 판단하지 않고 흔들리는 바위에 작은 돌을 괴듯 등을 맞대줄 존재가 한명만 있어도 깊은 우물에서 뛰어오르지 못할 때 밧줄을 내려주는 것과 같은 힘을 얻는다. 언제든 각자가 흔들릴 때에 주춧돌이 되어 자리를 지키는 든든한 신의의 관계가 있다는 건 살아가는데 너무도 큰 힘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는 독자 모두의 마음속에서 피어나고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면 좋겠다. 가지와 잎이 나부끼는 중에도 목대와 뿌리는 더더 깊이 땅을 향해 파고들고 있길 바래본다 #신간 #떠돌떠돌떠돌씨 #신간그림책 #미세기신간 #미세기 #미세기출판사
요즘 부쩍 기대어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쿵짝이 맞는 관계가 되기까지 소비되는 에너지와 그 관계가 합이 맞게 굴러가는 정도에 안착되기까지 에너지의 합을 계산해보면 친구가 된다는 것은 꽤나 녹록하지 않은 과정임에 틀림이 없지만 이건 마음에 녹이 쓸어버린 내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아이는 참 스스럼이 없다. 곁을 내어줄 만반에 준비가 되어있는듯 보인다. 하지만 그런 녀석도 이 책을 덮으며 이런 말을 남겼다. “엄마 사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두가 친구가 될 수는 없어. 나만해도 모두와 잘 맞을수는 없더라고.. 어떤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어울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하지만 #모두가친구 라는 책의 뜻이 무엇인지 알 거 같아. 물론 내가 이 친구들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생긴 모습과 성격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마음에 거리가 가깝다면 그것이 진정한 친구라는 뜻 같아.”#모두가친구 에서 세편의 이야기는 친구가 되는 다양한 과정들을 통해 누구나 기꺼이 친구가 될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꼭 서로간에 교집합이 존재해야만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이 스미듯 쌓이고 틈을 채워가듯 마음을 나누다보면 어느새 맞닿아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때에 비로소 친구가 됐다고 느낀다. 물론 나는 이 또한 영원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친구와의 지난 시간을 반짝이는 보석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 아이에게 과거의 시간에 매달려 있기 보다 현재의 추억을 꾸리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길 바란다는 충고를 하곤 한다. (원론적 조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럴까, 나는) 다행히도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에 진하게 우정을 나눈 친구를 떠올렸고, 자신에 반쪽과도 같은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