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가장 실망시키고 속상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나일거야.” 오늘 아이와 내가 이야기 나눈 감정은 실망과 속상이었는데 나는 위 문장으로 운을 띄웠다. 부모가 되면 대체로 아이가 외부에서 부터 상처를 입을까 노심초사하겠지만 나는 되려 엄마인 내가 원흉인 경우이다. 아이가 거절과 외면에 첫 경험은 나로부터 였을것이고 현재도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 그러니 나도 너도 작은 사회, 더 솔직히 빼도 박도 못하는 우리 관계를 건강하게 지켜 낼 수 있는 우아한 질서를 배워야 한다. 회사를 관두기 얼마전, 조직내에 이야기를 나눌수록 골이 깊어만 가는 문제가 심각해져서 집단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회의시간은 점점 늘어가는데 결정사안을 확정짓지 못하는 경우가 쌓이다보니 피로도가 극에 달했을 때 였다. 대화는 난무하는데 소통을 하지 않는 조직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상담사는 대화와 소통의 차이는 명확히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은 대화, 대화를 통해 뜻을 모으고 그를 통하여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소통. 그러니 소통이라 착각해 왔던 그 시간동안 맥락없이 떠드느라 대화도 소통도 아닌 말로 잡음만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바람에날아갔어 는 핑퐁핑퐁 - 각자의 사정으로 아이의 요구를 튕겨내며 육아를 서로 미루기 하던 와중에 가시 돋힌 말 하나가 날아들면서 시작되는 부모의 불화와 그 속에 갇혀버린 불안한 아이의 마음이 투영된 태풍급 바람은 유리잔 처럼 깨져버린 가족을 다시 결속하게 한다. 이 책은 가족이니 당연히 헤아려줄거라는 교만보다 진솔한 의사전달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나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집단이 가족이라는 점도 전하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내게 가장 귀한 존재일 가족에게 정직한 마음을 곱게 전달하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한울림어린이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아이와 장거리를 갈때에는 차 안에서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다. 다양한 소리동화가 많지만 우리 꼬마의 최애는 <초등탐정 강이치>라는 컨텐츠다. 강탐이라고 통하는 강이치와 그의 친구들이 학교를 중심으로 안밖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마을 사람들과 연대하고 경찰과 공조하며 풀어가는 추리동화인데, 이 동화는 우리에게 일어날법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아이에게는 쉬운 접근이었던거 같다.아이는 마치 당연한 수순인냥 엉덩이탐정을 읽었고, 셜록홈즈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차곡차곡 추리물의 매커니즘을 익혀갔다. 만화는 어디서든 찾아읽게 된다는 말씀처럼 내가 집에 꽂아두지 않으니 도서관에 가면 검색해서 읽는 기지까지 발휘했던 탐정만화를 향한 사랑에 시간들을 #탐정칸 #부리부리단의습격 을 연거푸 세번을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 증명해보였다. 어린이 탐정 칸이 사건현장에서 발견하게 된 슈퍼볼의 정체와 그 속에 감춰진 음모의 뿌리를 찾기 위해 끈질기게 파고 드는 전개가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속고 속이며 배신을 일삼는 등장인물들 중에 진실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몰입도를 높이는 포인트 이기도 하다. 거기에 곤경 속에 피어나는 용감함은 히어로물에서 느낄법한 짜릿함이다. 이쯤되면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이가 나서서 어른이 저지른 범죄를 풀어가는 소재가 왜 사랑을 받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어른의 부도덕함과 위선을 낱낱이 고발하다 못해 온전치 않은 실타래를 풀어 해결까지 해내는 어린 탐정들의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 복수에 쾌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린이는 모두 (용기가 겉으로 다 표현되지 않아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영리함과 지혜를 가졌다. 부조리와 타협하는 부정한 어른을 향해 진실이 정말 무엇인지 순수하게 질문하는 어린이들의 영롱함이야 말로 미래에 정의라는 점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을 만났다. 고맙습니다 #창비 #창비어린이책 #호수네책 #책이야기
올해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준비해볼까? 툭 던진 내 제안에 남편은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면 어떻겠냐고 답했다. 할로윈에 아픔이 채 가시도 않았는데 같은 하늘아래에서 벌어진 참사를 정녕 애도한다면 우리만이라도 별다른 것 없는 매일처럼 수수히 보내자고 말이다. 찾아서 흥을 올리지 않아도 회사에선 회식을, 나는 아이를 핑계로 연말 기분에 취하게 되겠지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우리 가족은 아기예수님의 탄생축하 한해쯤 건너뛰어도 무방하니 가정에서 만큼이라도 자중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크리스마스는 화려함이 지나쳐 눈이 잠깐 머는 날, 판단이 흐려지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날. 그래서 성탄이 갖고 있는 특수성을 이용해 힘을 보태는 날. 하지만 되려 이 책은 우리가 특별한 것에 너무 목을 매고 있진 않은지 더듬거리게 한다. 우아한 호흡이 만들어 낸 침착한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크리스마스타일 은 각이 뚜렷하고 반듯해서 이어 붙이기에 편리한 타일이 아니라 뭉뚱그린 타입일거란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게 된다. 살아가는 날에는 층위가 없다. 어쩌면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날이지만 여지를 남겨두어도 괜찮은 날이라는 안도를 건네는 것이 내가 느낀 이 소설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다. 일상 속 변주는 매일진행형이고 하루쯤 시시하게 보내버려도 삶은 계속 되며 우리의 희망도 그럴 것이라고 사려깊게 전해주는 책을 만났다. 고맙습니다 #창비 #호수네책 #책이야기
귀엽고 잔망스러운 할머니가 되기 위한 첫 단추는 내 텃밭을 가꾸기, 2단계는 뜨개질 배우기, 그 다음은 꽃가꿔보기 였는데 그것을 다 이룬 한해다. 4월부터 시작된 텃밭에서 이모작을 했고 가을에도 알차게 식량을 조달해 먹었다. 그리고 갈무리하는 날엔 서리를 맞고도 얼지 않은 상추를 베란다 텃밭으로 옮겼다. 며칠 전엔 시누이와 그 집 마당 귀퉁이에 노는 땅을 파 돌을 다 걷어낸 다음, 새 흙을 뿌려 튤립 구근을 심었고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한다. 매년 그렇듯 김장 소식으로 연말이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다음주에 시댁 마을 어르신들과 하는 품앗이 김장을 마치면 한해도 얼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봉숭아할매 는 내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에 채색을 한듯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호수는 작년까지 봉숭아물을 옅게 라도 들여왔는데, 올해는 봉숭아를 곱게 빻아 냉동실에 얼렸다. 겨울이 되면 그것을 꺼내어 손톱에 올리고 실을 동동 동여멜 생각이다. 겨울 날에 뜨뜻한 바닥에 앉아 봉숭아 물을 들이는 시간이 얼마나 낭만적일지 상상해본다. 타는 듯한 뙤양볕 아래에서도 꿋꿋하게 흙장난을 하며 텃밭생활을 즐겨준 호수가 오랫동안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려주면 좋겠다고 바래본다 #어린이작가정신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아이가 다섯살 때에 미술심리치료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에게 이상함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이의 말에 맥을 끊지 않고 들어주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말은 봇물처럼 터지는데 가만히 들어주지 못하니 그러면 원이 없이 말할 대상을 찾아주고 싶은 절박함이 나를 그곳까지 가게 했다. 왜 그런 시기가 있지 않은가?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나를 향하라고 내 뺨에 자신에 손을 대고 이끌어 와서 또 계속 말을 이어가는 상황 말이다. 아이는 정말이지 고운말 미운말 가릴것 없이(가리지도 못할때에) 입력된 모든 상황을 말로 하고 싶어했는데 나는 뭣이 그리 급급했는지 잠깐만- 을 달고 지냈다. 나와의 상담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집에 방문하신 날에 아이는 클레이를 만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클레이 색깔을 섞으면 혼이나요. 그러니까 색을 섞지 마세요!”“엄마가 이전에 색을 섞었다고 너를 혼내었니?”“아니요. 우리 엄마는 그러지 않았는데 우리집에 놀러오는 이모들도, 우리 큰엄마도 클레이 색을 섞으면 싫어해요.”“그분들은 호수 엄마가 아니잖아.”“그래도요......” 선생님을 통해 이 내용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피동적인 엄마인 상태로 호수의 진심을 파고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흘러갔을 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의 말을 받아주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는 질문하지 않았던 근원뿐만 아니라 대화의 은연에 내 잣대를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된 후로 호수의 마음에 적극적으로 노크하게 되었다. 물론 짜증과 분노는 여전했다. 빨간맛과 핑크빛의 한끗차이, 난 그 두 색을 넘나든다. 호수가 평가하는 나는 아래와 같다. ”엄마는 혼도 많이내고, 화도 잘 내지만 무섭지는 않아. 왜냐하면 엄마는 사과도 빨리 잘하고(ㅎㅎ) 결국 내 마음을 가장 잘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니까.“ 나는 호수가 행복하다고 그래서 엄마와 매일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해줘서 좋다. 부모에게 그 이상은 찬사가 있을까. 나는 내가 완성형 양육자에 가까워 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넘실대는 감정의 진폭을 잔잔히 그리고 너그럽게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에는 대화가 있다. 대화만이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성실한 방법이다. 아이 마음을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솔함이 발동 할때마다 펼치고 싶은 책을 만났다. 고맙습니다 #샘터 #호수네책 #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