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섯살 때에 미술심리치료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에게 이상함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이의 말에 맥을 끊지 않고 들어주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말은 봇물처럼 터지는데 가만히 들어주지 못하니 그러면 원이 없이 말할 대상을 찾아주고 싶은 절박함이 나를 그곳까지 가게 했다. 왜 그런 시기가 있지 않은가?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나를 향하라고 내 뺨에 자신에 손을 대고 이끌어 와서 또 계속 말을 이어가는 상황 말이다. 아이는 정말이지 고운말 미운말 가릴것 없이(가리지도 못할때에) 입력된 모든 상황을 말로 하고 싶어했는데 나는 뭣이 그리 급급했는지 잠깐만- 을 달고 지냈다. 나와의 상담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집에 방문하신 날에 아이는 클레이를 만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클레이 색깔을 섞으면 혼이나요. 그러니까 색을 섞지 마세요!”“엄마가 이전에 색을 섞었다고 너를 혼내었니?”“아니요. 우리 엄마는 그러지 않았는데 우리집에 놀러오는 이모들도, 우리 큰엄마도 클레이 색을 섞으면 싫어해요.”“그분들은 호수 엄마가 아니잖아.”“그래도요......” 선생님을 통해 이 내용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피동적인 엄마인 상태로 호수의 진심을 파고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흘러갔을 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의 말을 받아주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는 질문하지 않았던 근원뿐만 아니라 대화의 은연에 내 잣대를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된 후로 호수의 마음에 적극적으로 노크하게 되었다. 물론 짜증과 분노는 여전했다. 빨간맛과 핑크빛의 한끗차이, 난 그 두 색을 넘나든다. 호수가 평가하는 나는 아래와 같다. ”엄마는 혼도 많이내고, 화도 잘 내지만 무섭지는 않아. 왜냐하면 엄마는 사과도 빨리 잘하고(ㅎㅎ) 결국 내 마음을 가장 잘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니까.“ 나는 호수가 행복하다고 그래서 엄마와 매일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해줘서 좋다. 부모에게 그 이상은 찬사가 있을까. 나는 내가 완성형 양육자에 가까워 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넘실대는 감정의 진폭을 잔잔히 그리고 너그럽게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에는 대화가 있다. 대화만이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성실한 방법이다. 아이 마음을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솔함이 발동 할때마다 펼치고 싶은 책을 만났다. 고맙습니다 #샘터 #호수네책 #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