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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윈터 에디션)
김신회 지음 / 놀(다산북스)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살아가는 건 점점 망가지는 일이야.
아무도 그걸 막지 못해.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걸 만들 수밖에 없어.
하긴. 새로운 건 다 쓸데없는 것들이지.
하지만 쓸데없는 것들 때문에 불행해진다면
그 불행 역시 쓸데없는 거라는 걸 난 알아
그렇게 보면 행복도 마찬가지일지 몰라.
그래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야홍이 형은 새로운 건 쓸데없는 것, 쓸데없는 것 때문에 불행해진다면 그 불행 역시 쓸데없는 것. 하지만 행복도 마찬가지일지 모르니. 행복 역시 쓸데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말.
소중한 것은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소중한 것은 움직이는 게 아니야.
소중한 것은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된 거야.
보노보노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은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아서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는 것. 우리에게 있어 소중한 것 역시 그런 것 아닌가. 설명하기 어렵고, 납득하기 힘들고, 그래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없으면 안 될 무언가. 그것 때문에 때때로 인생은 힘들어지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는 지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랑이나 우정 같은 것. 정이나 진심 같은 것.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들이 그런 것처럼.
"아가야 아빠는 또 야옹이 형에게 졌단다.
하지만 아들아, 졌을 때의 아빠의 얼굴도 잘 봐둬야 한다.
잘 봐라. 이게 졌을 때의 아빠다."
꽃 길을 걸을 때는 인생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다. 아니, 만끽한다는 실감조차 할 겨를이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인생에 대해, 불행에 대해, 또는 도무지 잡히지 않는 행복에 대해 여러 번 곱씹고 떠올리게 된다. 무언가를 자주 생각하고 떠올릴 때는 그것과 한참 멀리 있을 때다. 내가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지 자꾸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도무지 답을 구하지 못했던 것처럼.
삶에 대해 논하기에는 충분히 살지 못했지만 인생은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됬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잘사는 법에 대해, 성공하는 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넘어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인생을 10이라고 봤을 때, 잘 사는 기간은 고작 2 또는 3이고 1도 채 안 될 때가 더 많다. 나머지 기간은 대부분 좌절하거나, 좌절을 딛고 겨우 일어서거나, 그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해 웅크려 있거나,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다. 하지만 하나만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졌을 때의 얼굴'앞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 고개를 돌리거나, 도망치거나 부정하는게 다다.
하지만 큰곰 대장은 그러지 않는다. 이기고 싶어서 시작한 싸움이지만 졌다는 결과 역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창피해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져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이긴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은, 결코 좋지만은 않은 것이 삶이라는 걸 큰곰 대장은 알려주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졌을 때의 얼굴'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같이 울어주기 보다는 같이 웃어주는 것
같이 울다가도 웃음이 터져버려서.
시끄러우니까 그만 좀 웃으라고 서로 등짝을 때리는 것.
친구가 새로운 욕을 만들면 참신하다,
입에 착착 붙는다며 감탄해주는 것.
아무리 내 스타일이 아니어도
친구 앞에서는 그 욕을 이용해주는 것.
실연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친구에게
술잔 대신 꽃을 건네는 것,
다시 태어난 거 축하한다며 작은 꽃다발을 안겨주는 것.
마트에서 트랜스 지방 가득한 과자 한 박스를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일 때
"사" "사지마""안 살 거면 그냥 가자"는 말 대신
창피해하지 말라는 듯 슬쩍 말해주는 것.
"그렇게 먹고 싶었던 거면 사야지."
친구가 싫어하는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몇 년 뒤 불쑥 물어보는 것.
이게 우정이 아니면 뭐겠느냐며 감동을 안겨준 친구의 배려들이다.
"재미있는 건 변하기 마련이지만
강처럼 점점 흘러가는 게 아니야.
낙엽처럼 점점 쌓여가는 거야.
우정도 낙엽처럼 점점 쌓여가는 것.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새 일기장 두 바닥을 채우고 마는 것.
알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우정의 목록이 있다.
한 때 부드럽고 읽으면 기분 좋아지는 문체라 요시모토바나나를 좋아했었다. 방송 작가 출신인 김신회 작가 역시 요시모토바나나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녀의 글도 옆집 언니가 전해주듯 친근하면서 편해서
공감이 간다.
아등바등 살아가며 지친 우리에게 토닥이는 위로를 건네 주는 글.
귀여운 삽화는 덤이다^^
오늘의 힐링 타임 끝!
인간은 예술을 통해 삶을 즐기고
즐거움은 삶의 의지를 강화시킨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