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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ㅣ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4년 6월
평점 :
알베르트 카뮈의 에세이집 《결혼 · 여름》은 청춘 시절 카뮈의 세계관이 잘 드러난 책이다.
알제의 여름에서 보낸 20대 초반의 알베르트 카뮈의 이야기는 그의 젊은 날의 고뇌를 맛볼 수 있다. 인생의 유한함 속에서 인간을 초월하는 행복은 없음을 자각하는 그. 그의 반항적 낙관론에 빠져들다 보면 다소 난해한 부분들도 있지만, 젊은 날의 찬란함과 고뇌에 빠진 청춘의 철학적 사유라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심오하게 느껴진다.
카뮈의 청춘예찬 <결혼>에는 <티파자에서의 결혼>을 시작으로 <제밀라의 바람>, <알제의 여름>, <사막>까지 네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가난한 알제리 출신 카뮈가 알제리와 피렌체를 여행하며 써 내려간 에세이 <결혼>은 남녀 간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태양과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사는 삶의 행복을 이야기한다. 훗날을 기약하기보다 현재의 풍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의 문장이 왠지 처연하게 다가온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훗날에'를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것은 내 눈앞에 있는 현재의 풍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죽은 다음에는 또 다른 삶이 열린다고 믿는 것이 내게는 즐겁지 않다. 내게 죽음이란 닫혀버린 문이다. 죽음이란 그저 내디뎌야 할 한 발짝 아니라 끔찍하고 추악한 모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밀라의 바람 p.27
나는 세상에 인간을 초월하는 행복이란 없다는 것을, 해가 떴다 지는 나날들의 곡선 밖의 영원이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이 하찮지만 본질적인 재산, 이 상대적인 진실들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것이다.
알제의 여름 p.49
<여름>에는 <미노타우로스 또는 오랑에서 잠시>, <아몬드 나무들>, <명부의 프로메테우스>, <과거가 없는 도시들을 위한 간단한 안내>,<헬레네의 추방>, <수수께끼>, <티파자에서 돌아오다>,<가장 가까운 바다>까지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다. 냉혹한 현실에서도 찬란한 태양처럼 뜨겁게 버텨나가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멸한 운명인 것은 어느 것이나 다 영속을 바란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다 영속을 바란다고 해두자. 인간의 모든 작품이 의미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으니, 이런 측면에서 카인의 사자들은 앙코르의 유적들과 똑같은 기회를 가진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 모두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미노타우로스 또는 오랑에서 잠시 p.105
사랑받지 못한 것은 그저 불운이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니까.
우리는 오늘날 모두가 그 불행으로 죽어가고 있다.
피와 증오가 심장 자체를 말려 죽이기 때문이다.
티파자에서 돌아오다 p.166
또 수평선과 함께 외톨이가 된 우리. 파도는 하나하나, 참을성 있게, 눈에 보이지 않는 동쪽에서 온다. 우리 있는 데까지 왔다가는 또 참을성 있게 미지의 서쪽으로 하나하나 다시 떠나간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기나긴 전진…. 시냇물과 강물은 지나가지만 바다는 지나가고도 머문다. 바로 이렇게 일편단심으로, 덧없이, 사랑해야 하리라. 나는 바다와 결혼한다.
가장 가까운 바다 p.176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라는 카뮈의 문장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사랑하지 않기에 그 불행으로 죽어간다는 그의 표현은 세월의 흐름을 넘어서도 여전히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우리의 삶에 사랑이 있으면 제아무리 퍽퍽한 인생일지라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니 말이다.
해가 길어지는 여름 날, 알베르트 카뮈의 또 다른 감성이 느껴지는 산문집 《결혼 · 여름》을 읽으며 무더워지는 이 계절 찬란한 태양 아래 '고독'에 대해 사유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