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하현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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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내가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최근 독학하고 있는 스페인어에 대한 에세이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사서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저자가 서문에서 '배움이란 무릇 숭고해야 한다고, 세상은 지금껏 나를 그렇게 가르쳤지만. 아니, 왜 꼭 그래야 하지?' 라고 말한 것이 퍽 공감됐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괜히 읽었다고 후회한 이유는 저자가 자신의 가벼운 배움의 의지에 너무 당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괜히 사서 읽었다고 후회한 이유는 입으로 불면 활자가 반절 이상 날아가버릴 만큼 가볍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어보단 스페인어를 배우는 일상에 초점이 가있긴 했지만 기실 저자의 일상 기록 정도로 받아들이고 읽으면 부담 없이 읽히고 제법 유익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니라 전반적으로 가독성은 괜찮았다. 스페인어의 다양한 관용구나 배울 때 어려운 부분은 그래도 저자가 학원을 다니며 배운 보람이 있게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소개하기에 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가령, 스페인어는 내가 아는 한 알파벳으로 이뤄진 언어 중 정말 적혀있는 대로 읽기만 하면 될 정도로 발음 체계가 명확해 진입장벽이 낮아 보였지만, 단어의 성별 구분이 매우 엄격해 마치 한자로 넘어가면서부터 급격히 난이도 상승하는 일본어처럼 첫인상에선 예상되지 않는 심오함이 가득한 언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어의 성별 구분이야 제2외국어가 프랑스어였던 내게 아주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지만, 주어의 성별에 따라 동사와 조사의 형태마저 바뀌는 게 꼭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나 이슬람의 남녀 구분보다 엄격하게 느껴져 역시 이 세상에 쉬운 언어란 없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밖에도 스페인어 공부의 여러 자잘한 고충이 묘사되지만, 실질적으로 '스페인어는 첫인상에 비해 결코 쉽지 않은 언어다' 라는 걸 제외하면 이 책을 읽고서 남는 게 딱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부분은 일기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에세이집에서 흔히 느껴지는 단점으로, 가볍게 읽혀서 부담이 없다는 장점을 없애버리고도 남는 터라 스페인어가 첫인상과 많이 다른 어려운 언어임을 저자가 알려줬듯이,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리라 예상하게 만든 프롤로그와 달리 끝맛은 그닥 좋지 않은 책으로 기억에 남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배움에 대한 호기심은 있어도 의지가 박약한 편이고 그에 대한 자기합리화도 심한 편이라 나도 모르게 '이럴 거면 언어 공부는 자제해야지' 하고 속으로 쓴소릴 하게 됐다. 

 너무 신랄한 말이긴 하지만 수록된 에세이들의 질적 수준이 그리 고르지 않고 그나마 괜찮게 읽은 것도 깊이가 기대보다 떨어지기에 어쩔 수가 없다. 뭐, 가볍고 부담없는 글을 쓰는 것도 능력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며 또 나 역시 배움이 엄청나게 숭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기본적으로 작가의 글을 따라가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각각의 글의 연결고리가 의외로 허술해 갈수록 흡입력이 떨어졌고 개중엔 스페인어와 전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내용의 글까지 있어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너무나 뜬금없는 나머지 그 글의 자체적인 완성도를 논하는 게 무의미할 지경이었다. 이를테면 저자는 자신이 통학하는 홍대 근처가 어느날 달리 보였다는 취지로 낙태죄 폐지와 '검은 시위'에 대한 글을 썼는데, 난 아직도 그 글이 왜 수록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글이기도 하고 편집 과정에서 이 글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작가나 편집자나 그 나물에 그 밥인 것 같아 이 책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지게 됐다. 아직 책은 150페이지 더 남았는데. 


 거기서부터 기대를 떨어뜨린 덕분인지 저자가 자신의 스페인 공부를 흐지부지하게 끝내게 됐더라는 내용의 글이 별 감흥 없이 읽힌 건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자꾸 얘기하지만 배움이 꼭 숭고할 필요는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왜냐하면 나는 배움이란 숭고함 이전에 즐거움이 우선돼야 한다고 평소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인데 정작 저자는 숭고하지만 않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공부에 엄청난 즐거움을 느끼지도 못하는 듯해 읽는 나도 마찬가지로 별로 즐겁게 읽히지 않았다. 

 물론 순수하게 즐거워야지만 배움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자격증 취득 및 스페인으로 유학이나 여행을 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것도 훌륭한 동기일 텐데 문제는 저자는 어느 동기도 갖고 있지 않고 기왕 기회가 있으니 배워본다, 정 안 되면 글감으로 다루면 되니까 하고 어느 순간부터 의무적으로 수강에 임하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꼭 숭고하지 않더라도 명확한 목적이 있었더라면 책의 무게감이 확 달라졌을 텐데, 저자는 자신의 의지박약을 인정하면서도 그대로 발전없는 채로 시간을 보내 글도 흐지부지 끝내버린다. 


 '이럴 거면 애당초 배우지 말지' 라고 속으로 많이 생각했지만 그 말로 내 감상을 정리하지 않겠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심차게 뭘 배우기 시작했다가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끝내버리기 일쑤잖은가. 나도 그렇고... 그리고 저자는 적어도 이런 흐지부지한 에피소드로 책 한 권을 완결냈으니 소정의 성과는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에 공감이 가는 사람들도 - 특히 스페인어의 문법에 질려 포기한 사람들 - 적잖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선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아,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고 읽을 수 있는 책, 비꼬는 말이 아니라 이런 위로를 주는 책은 정말 필요하다 생각한다. 나쁘게 말하면 반면교사 삼기 딱 좋은 책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말하라지. 

 허나 한 사람의 독자로서 얘기하건대 저자가 사람으로서가 아닌 작가로선 영 정이 가지 않았다. 이제야 독학으로 스페인어 어휘를 익히고 있는 내가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저자는 책의 제목에 넣은 '스페인어'라는 소재에 대한 전문성을 살리기보단 저자 자신의 감상을 적어내는 것에 주력했다. 작가가 자신의 주관을 글에 녹여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비문학적인 요소, 스페인어의 역사나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등 다각도에서 접근했더라면 적어도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생각난 자신의 과거를 풀어내기만 했던 것보다 훨씬 풍요로운 내용의 책이 됐을 것이다. 


 나라고 꼭 책의 내용이 풍요롭지 않았다고 깎아내리고 싶진 않으나 결정적으로 저자가 자신의 글을 치밀하고 진지한 자세로 임한 것 같지 않아, 말 그대로 배움이 숭고할 필요는 없다며 자신의 글에도 숭고함을 불어넣지 않은 듯해 독자로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제목에 스페인어란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로 읽은 주제에 너무 혼자 실망하고 폭언을 하는 것 같아 조금 찔리지만, 책의 제목처럼 정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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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티사르의 자동차 - 현대 예멘 여성의 초상화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페드로 리에라 지음, 나초 카사노바 그림, 엄지영 옮김 / 미메시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10 






 실화가 가진 압도적인 힘이 있어 두 번째 접함에도 압도당하며 읽었다. 예맨에 일 때문에 가본 경험이 있는 스페인 만화가의 작품으로 예맨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낱낱이 드러낸다. 앞서 말했듯 작가의 창작이 아닌 '어느 예맨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그래픽 노블'의 특성에 따라 그림보다 문장을 따라가며 읽는 맛이 상당했던 작품이다. 예전에 읽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인데 문장력이 상당히 뛰어났는데 아무리 그래픽 노블이라지만 엄연히 만화에 속하는 작품에 문장력에 감탄해보긴 처음이었다. 다시 곱씹어볼 만한 문장은 이번에 읽을 땐 없었지만 워낙에 작품의 분위기가 분위기인 지라 그냥 작품 자체가 뛰어난 문장처럼 읽혔다. 

 처음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어느 예맨 여성'은 예맨의 문제는 종교가 아닌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관습과 전통'이라는 종교가 문제임을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 이슬람교는 거들 뿐이란 것이다. 여담이지만 쿠란의 구절을 쓴 무함마드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쿠란을 쓸 당시와 지금 시대를 동일시할 순 없으니 어느 정도는 고리타분하고 폐쇄적인 마음가짐과 환경에서 그 구절들을 적은 것이겠지만, 후대의 이슬람교와 관련된 문제들은 그 쿠란을 교묘하게 자기들 입맛대로 오독한 것에서 비롯되니 이슬람교 전체를 싸잡아 욕하기도 뭔가 애매하단 생각도 든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이 작품의 주인공 인티사르부터가 샤를리 엡도의 풍자 만화를 바보같다며 비판하는 등 딱히 이슬람교도인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눈치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인티사르는 예맨이란 나라의 막장스러움, 자신의 아버지는 틈이 날 때마다 씹지만 이슬람교를 근본적으로 혐오하는 장면은 없었다. 아주 나쁘게 말하면 세뇌당해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상 이슬람교를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입장인 나 같은 독자는 실제 그 종교를 믿으며 본인 나라에서 특정 성별로 살아감에 있어 어떤 기막힌 고충이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게 그나마 이 책을 읽는 동안 감정을 격해지지 않게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동양권과는 비교가 불허한 여권의 후진성이 작품 전반에 걸쳐 여과 없이 묘사됐다. 사실 동양이라고 어디 가서 여권 신장이 잘 이뤄졌다고 할 순 없지만 상대적으로 예맨 같은 나라랑 비교했을 때 뭐든 위엔 더 위가 있구나 하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신을 가리는 니캅을 시작으로 흡연하는 여성을 바로 창녀 취급하거나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진학과 취업과 결혼이 당사자의 의지완 상관없이 결정되고 번복따윈 용납하지 않는 것, 여성 혼자선 담배 한 갑 구매할 수 없는 것 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이래저래 도가 지나쳐 일일이 언급하며 화를 내는 게 입 아프고 열불나는 사례가 줄지어 소개된다. 


 그래도 이 작품을 결말까지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주인공 인티사르일 것이다. 사회 분위기상 여성 혼자서 운전을 하는 게 용납이 안 되는 상황에서 퇴근할 때 도로에서 자신의 자동차로 스릴 넘치는 드라이브를 펼치는 도입부는 제법 흥미로웠다. 고작 여성이 운전하다는 이유로 얼굴 붉히며 달려드는 남성 운전자도 정상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을 대처하는 인티사르의 대범함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의미에서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상당한 자산가의 자제이고 또 그 꼰대 아버지를 상대로 학업이나 취업처럼 중대한 문제에선 절대 타협하지 않던 인티사르였기에 느닷없는 광란의 레이스따윈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티사르의 상황이 그나마 나은 건 그녀의 성격 덕분이 크지만 이런 성격조차 바로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싫어하는 아버지의 재력에서 어느 정도 비롯됐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인티사르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다른 나라도 아니고 작중 묘사에 따르면 예맨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제약이 많고 나라 자체가 빈부 격차가 극심한 나라에선 가장의 재력이 곧 그 집안 인물들의 정체성을 살펴봄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요소임엔 분명하다. 즉 인티사르의 비극은 그나마 다른 예맨 여성에 비해 가방끈도 길고 어느 정도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버지 덕분이란 걸 본인이 결코 모르지 않는다는 것에 있는데... 이는 굳이 예맨이 아니라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그늘에 사는 자식이라면 다 공감할 여지가 많은 부분이라 여겨졌다. 내가 이 책을 5년 전에 읽을 때와 다르게 인티사르의 이야기가 부분적으론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결정적으로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변화긴 한데 참 씁쓸하구만. 


 따지고 보니 이 작품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인 인티사르의 성격이 어느 정도는 아버지의 덕도 있다는 결론이 나와 책이 전에 없이 씁쓸한 뒷맛을 안겼다. 하지만 반대로 결말을 다다르니 씁쓸함이 아닌 감동이 밀려왔다. 낡아빠지긴 했어도 애지중지 타고 다닌 인티사르의 자동차가 아버지에 의해 이복 남동생의 운전 연습용으로 넘겨졌을 때 인티사르는 자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남자인 친남동생과 함께 자동차를 몰래 태워버린다. 제아무리 낡아빠졌어도 남이 망치느니 자기가 끝을 내는 게 맞다며 눈물을 머금고 태워버린 것이다. 물건의 제값이 어떻든지 간에 자신의 소유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과 그 물건을 빼앗기느니 과감히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는 행동이 참으로 주체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싶었다. 

 비록 인티사르의 자동차든 주체적인 성격이든 아버지의 제력에서 비롯된것일지언정 어쨌든 인티사르의 것이기도 하며 이는 변함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계속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력이 뒷받침된다면 아버지나 다른 남성의 방해로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그녀에게 어떻게든 활로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너무 낙관적인 생각은 당사자 입장에선 역겨움을 유발할 수도 있다. 허나, 이 작품의 제목에 다른 무엇도 아닌 인티사르의 '자동차'가 들어간다는 것에서 인티사르가 마지막에 자동차를 대한 태도에서 인생의 활로를 개척할 만한 약간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었기에 저 낙관적인 생각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때론 자신의 소중한 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없애면서 얻게 되는 자존감도 있는 법이다. 우리가 그 자존감을 얻고 지켜나간다면, 어쩌면 답이 없어 보이는 삶이 실마리를 얻은 듯 유려하게 흘러갈는지 모른다. 실제로 이 작품이 마지막까지 씁쓸하게 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난 내 낙관적인 해석에 더욱 애착이 간다. 반면교사를 삼긴 좀 그렇지만, 예맨처럼 힘겨운 나라에서 저런 결말의 이야기를 접하니 다가올 새해가 전보다 밝게 느껴졌다. 이 기운이 부디 오래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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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관 산책 ㅣ 미술관 산책 시리즈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9.4 






 읽기 전엔 런던 유명 미술관들의 대표작을 소개해주는 평범한 미술 서적인 줄 알았다. 물론 런던 미술관에 대한 선망을 품고 있기에 펼친 책인 만큼 제아무리 평범하더라도 나름대로 만족하며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서문을 읽고서 정말이지 본문의 내용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저자는 런던의 유명 미술관들만이 아닌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역사적으로, 또는 미술을 전공한 저자 스스로 생각하기에 중요한 미술관도 몇 곳 다뤘음을 서문에서 밝혔다. 일단 그 점이 흥미로웠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단지 그 미술관의 대표작이 아닌 런던이나 영국 전체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림 위주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즉 유명하더라도 예컨대 고흐나 얀 반 에이크, 벨라스케스의 그림처럼 내셔널 갤러리를 대표하는 그림이더라도 영국 역사와 무관한 내용의 작품이라면 뒤에 '이외에 꼭 보아야 할 그림'으로 간략히 정리해놓은 것이 제법 신박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들 것이다. 영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메이드 인 영국'은 건물과 경비원밖에 없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오로지 영국 작가의 작품만으로 책 한 권을 채우는 게 가능한가? 오죽하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일 적에 여러 나라에서 하도 많이 훔친 나머지 양심에 찔려 입장료를 안 받는다고 수군거릴 정도니 정말 말 다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농담은 농담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영국의 화가라고 하면 기껏해야 터너밖에 떠오르지 않아 저자의 서문이 흥미로우면서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노르웨이에 여행갔을 때 그 나라에 뭉크를 제외하고도 정말 멋진 화가가 많다는 걸 알았으니 영국에도 꼭 터너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화가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 꼭 세계적으로 유명해야 멋지고 훌륭한 화가인 것은 아니니까... 


 이 책을 읽고 언젠가 런던을 방문한다면 이 그림들은 꼭 봐야지 하고 구체적인 리스트가 머릿속에 작성됐다. 대표적으로 내셔널 갤러리에선 폴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비, 증기, 속도>, 모네의 <웨스트민스터 하구에서 본 템스 강>, 르누아르의 <우산>을, 코톨드 갤러리에선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루소의 <톨게이트>가, 테이트 브리튼에선 윌리엄 홀맨 헌트의 <깨어나는 양심>을, 조지프 라이트의 <대장간>, 터너의 <노엄 성의 일출> 등이 보고 싶었다. 개중엔 런던이나 영국과 크게 상관없는 작품도 있고 그저 좋아하는 화가의 대표작이거나 아니면 저자가 소개한 작품의 내용이 흥미로워서 보고 싶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나 테이트 모던에서 작가가 소개한 작품 중엔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었다. 

 오해해선 안 될 것이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경우엔 소개되는 그림들이 전부 영국의 위인이다 보니 역사를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 가장 이질적이면서 어떤 의미에선 가장 흥미로웠지만,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듯한 그 이질감 때문에 순수하게 그림으로서 끌리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반대로 테이트 모던은 폐공장을 현대미술관으로 바꾼 것으로 유명하며 개인적으로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지만 현대 미술의 특성상 난해하고 기괴한 그림이 많고 - 특히 베이컨의 작품이 그렇다. - 작가가 소개한 작품들 중 영국 문화나 역사를 대변하는 작품이 없어서 읽는 동안 그 이상의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이 미술관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런던의 도시 계획에 관한 책을 읽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간혹 예산을 감축한 탓에 임기응변으로 오래된 건물을 활용한 공간이 크게 각광받는 케이스가 참 많은 것 같다. 정말 인간 만사 새옹지마랄까. 


 생각보다 소개된 작품의 수도 많았지만 저자가 너무 어렵게 글을 쓰지 않아서 좋았고 영국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맥락 파악에 문제 없었던 것이나, 또 너무 자전적인 이야기에 빠진 나머지 글이 감상적으로 흐르거나 삼천포로 빠지지 않은 것도 이 책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자는 자신이 소개한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테크닉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설명하기보다 저자 자신의 눈으로 정성스럽게 관찰한 결과를 들려주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 어투 덕분에 진입 장벽이 낮아져 자칫 지루하고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은 그림들의 이야기가 꽤 재밌게 스며들었다. 

 아까 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집필 방침이며 그 예시로 든 두 그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참으로 흥미롭기 그지없었다고 말했었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위에서 런던에 가서 보고 싶은 그림들 중엔 저자가 소개해주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그림도 많다. 가령 산업혁명을 최초로 화폭에 담은 화가인 조지프 라이트의 이야기나 모네가 런던에 잠시 살았었다는 사실, <제인 그레이의 처형> 속 비극적인 역사는 나처럼 역사나 미술 전공이 아닌 사람이 따로 알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만큼 낯선 이야기인 터라 저자가 쏟아내는 이야기에 잠시나마 지적 욕구 및 갈증이 적잖이 해소됐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아는 만큼 보이긴 하지만 모르더라도 알기 위해 노력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결국 이 책을 쓴 저자도 처음부터 완벽히 모든 이야길 알고서 집필에 임한 것이 아닌 집필하는 도중에도 미술관에 몇 번씩 들러 이야길 풍성하게 만든 것에 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저자가 미술관에 몇 번씩 들르는 동안 겪었던 에피소드나 개인적인 감상, 그림의 배경을 공부한 뒤에 달라진 인상 등을 들려주니 작품들을 직관하지 않았음에도 간접적으로나마 감상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처럼 인쇄물이 풍족해진 세상에선 책에 수록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간접 체험을 하는 느낌은 받기 쉽지 않은데 저자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정말 미술관을 사랑하는 작가라 그럴까, 그림을 살펴보는 자세나 열정 등 참 본받아 마땅한 작가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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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 상
미우라 시온 원작, 쿠모타 하루코 그림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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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라고만 이 작품을 소개하면 솔직히 별로 재밌어 보이진 않을 것이다. 원작 소설가가 미우라 시온이며 원작이 일본서점대상을 수상했고 인기에 힘입어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는 얘기까지 들어도 사전 만드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까 싶을 것이다. 내 경우엔 지금 이렇게 포스팅을 쓸 때도 사전을 꽤 많이 참고하는 터라 사전 자체가 익숙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어쩌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잡지 않은 책이 사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밖에. 내 나름대로 사전을 많이 본다고 한 나도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리 재밌을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배를 엮다>는 '대도해'라는 이름의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들의 13년 간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사전의 이름은 말의 바다를 나아가는 배이며 작품의 제목은 배라는 이름의 사전을 엮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미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개봉된 영화의 제목은 '행복한 사전'이었는데, 그 제목도 아주 관련이 없는 제목이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원제가 훨씬 낫다고 본다. 물론 '배를 엮다'라는 말이 일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보니 이해는 하지만. 아무튼 넘쳐나는 말의 홍수 속에서, 또 내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단어여도 막상 사전적 정의를 말하라고 하면 입이 잘 벌리지 않는 언어의 어려움 속에서 묵묵히 시간을 다해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가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간혹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또는 회사의 재정 문제 때문에 사전 제작 자체가 엎어질 위기에 처하지만 그때마다 잘 수습해 결국 사전 출간에 이르게 된다. 


 13년이라니, 객관적으로는 참 길고도 긴 시간이지만 원래 정성을 다한 책은 그만큼 시간이 드는 법이다. 대체로 소설도 따지고 보면 10년이 넘게 구상되고 집필된 작품이 아주 많다. 특히나 사전은 치우치지 않은 언어의 정확한 풀이를 살펴보는 책이므로 오히려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들이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은 사전 만들기의 전문성, 언어를 어떻게 풀이해야 하며 사전엔 어떤 종이가 적합하며 어떤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지 제법 디테일하게 소개된다. 요즘엔 사전을 인터넷 사전만 보거나 영어 사전만 보는데 작품을 읽다 보니 종이로 된 사전을 언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됐다. 비단 이 작품 속 캐릭터들 못지않게 우리나라에서 사전을 만든 사람들도 적잖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냈을 테니까.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순전히 지식을 위해 만들어진 책이란 점에서 고매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난 이 작품을 영화로 먼저 접했고 원작 소설도 읽었고 만화로 세 번째로 접하게 됐다. 만화가 영화나 원작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인물의 감정 표현이나 묘사가 조금 더 발랄하고 적극적이며 알기 쉽다는 것이다. 이 점 덕분에 주인공 마지메와 카구야의 연애 이야기보다 만화에선 니시오카의 열등감이 더 흥미롭게 묘사됐다. 어떻게 보면 니시오카의 열등감이 작품 전체에 걸쳐 중요하기 그지없는 부분인 지라 만화의 연출이 실로 적합했다고 여겨졌다. 보통 마지메처럼 사교성 떨어지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의 경우 그들의 성실함과 전문성을 높여주며 그와 다른 사교성 높은 사람들, 소위 말하는 인싸에 속하는 사람들을 두고 경박하다면서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반대로 그렇게 홀대를 당하는 인싸가, 아니면 정말로 내실 없게 살거나 그렇게 산다고 푸념하는 인싸가 화려하지 않은 삶이어도 내실 있게 사는 마지메 같은 캐릭터에게 형용하기 힘든 열등감을 품는 대목이 - 그런 와중에도 둘 사이에 아주 바람직한 우정이 형성된다는 것도 - 신선하면서 정말 그럴 수도 있겠는데 싶어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을 통해 사전을 만드는 이야기, 언어의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길 접할 수 있던 것도 좋지만, 그저 자기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과 끈기, 이른바 장인 정신의 가치란 것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애정이 갔다. 캐릭터들이며 소재며 이래저래 사랑스러운 작품이지만 사전을 만드는 이야기라는 자칫 생소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길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고매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장인의 이야기란 대체로 그런 법인가? 작품의 결말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내심 이 만화를 읽기 전엔 과연 원작 소설의 내용이 만화로도 2차 창작될 만한 내용이었나 싶었지만 읽는 동안 만화가 더 편한 독자들에게도 <배를 엮다>의 내용을 전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라며 역시 괜히 만화로 나온 게 아니구나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까지 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장르로 치환되더라도 재밌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원작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을 둔 다음에 소설이랑 영화도 다시 볼 생각이다. 내용이 가물가물해진 다음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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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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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내 모든 여행은 배낭에 넣어갈 책을 고르는 일로 시작한다" 라는 문장만으로 읽을 수밖에 없던 책이다. 총 25권의 책과 그와 관련된 여행 이야길 풀어낸 이 책은 읽는 동안 정작 본문의 내용에 감탄한 적보다 내 지난 여행들을 추억한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작가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일부 에세이를 제외하곤 대체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장황하거나 혹은 소개되고 있는 책을 내가 읽질 않은 탓인지 잘 와 닿지 않았다. 물론 내가 읽었던 책이라고 이 작가가 아주 맛깔나게 소개해줬다는 뜻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페르세폴리스>, <카탈로니아 찬가>,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소개된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대해 작가가 풀어낸 감상이 기억에 남는다. <페르세폴리스> 빼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책들인데 언젠가 읽어볼 생각이다. 그 책들을 읽고 이 에세이들만 따로 읽어도 좋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독서량보단 이 작가가 직접 가본 여행지들에 더 감탄했다. 보통 이란이나 부탄, 몽골, 아마존 같은 곳들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볼 순 있어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것도 여자 혼자 몸으로. 아니나 다를까 여성이란 이유로 모종의 신변 위협을 느낀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보단 에세이엔 여행지와 책과의 연결 고리나 복합적인 감상에 대한 기록이 우선으로 적혀있었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정말 대단한 역마살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었다고 그 배경에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야 잘 알지만... 솔직히 말해 시국이 시국이라 그런지 걱정보다 부러움이 훨씬 앞섰다. 역시 여행은 의지로 하여금 시간을 만들어서 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갔던 여행 중 책과 관련된 여행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떠올려봤다. <도련님>의 마츠야마, <신참자>의 도쿄, <레몬>의 하코다테, <침묵>의 나가사키, <말레이 철도의 비밀>의 말레이시아, 그리고 '해리 홀레' 시리즈의 노르웨이... 되돌아보니 나도 적잖은 성지순례를 실천해냈다는 성취감이 느껴졌다. 정말 하나같이 소중한 여행들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가령 <내 이름은 망고>의 캄보디아나 <박쥐>의 호주,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웨덴, '에를렌뒤르' 시리즈의 아이슬란드, <과테말라의 염소들>의 과테말라, <차일드44>와 <모스크바의 신사>의 모스크바, <13.7>의 홍콩, <남쪽으로 튀어!>의 이리오모테섬, <푸른 불꽃>의 가마쿠라, <보틀넥>의 가나자와,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 대부분의 작품의 무대인 센다이는 내 버킷 리스트에 있는 여행지들이다. 특히 스웨덴은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작년 3월에 여행갈 뻔했기에, 홍콩은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다른 국제적인 상황 때문에 가기 힘들어져 더욱 아쉽다. 언젠가 갈 수 있는 날이 오긴 올는지... 

 여행할 때만큼 책이 잘 읽히는 경우도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여행 가방을 쌀 때 가장 고심하는 것은 단연 책이다. 재미의 여부나 두께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가급적 여행지와 어울릴 만한 책을 들고 가려고 한다. 꼭 그 여행지가 배경인 소설일 필요는 없다. 내가 나가사키에 갈 때 나가사키가 고향인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들고 간 것처럼, 삿포로 여행을 갈 때 <맥주별장의 모험>을 들고 간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책을 가져가려고 한다. 여행까지 가서 무슨 책이냐 싶겠지만 여행과 마찬가지로 독서도 의지로 하여금 시간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다. 카페나 느리게 가는 기차, 잠들기 전 숙소에서 얼마든지 짬을 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여행지의 지명이 책 속에서 언급되기라도 하면 어마어마한 반가움을 느끼는 동시에 내가 소설의 등장인물이라도 된 듯한 잘 설명하기 힘든 고양감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들은 성지순례를 위해 책의 배경 속 도시로 여행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내 스스로 엄청난 팬임을 자처하는 작품일수록 실제 배경을 내 두 발로 걷는 것만큼 쾌감 넘치는 일도 없으니까. 그런데 성지순례란 대체 무엇일까? 단지 그 장소를 걷는 일로만 여기는 건 약간 부족한 설명인 듯하다. 내가 봤을 때 성지순례란 책 속의 배경으로 내가 실제로 걸어가는 것, 어떻게 보면 책과 나를 동일시하는 일이다. 한편으론 책 속의 무대가 실존하는 장소란 걸 확인하려는 궁금증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크다. 실제 장소를 거닐다 보면 작품의 분위기가 온몸으로 스며들 때도 있고 기대한 것과 너무 달라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망한 적이란 거의 없다. 오히려 현실은 이렇구나 하면서 나만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므로 결과적으로 나쁜 여행이라 느낀 여행은 없었다. 

 반대로 그 여행지가 너무 감명 깊은 나머지 관련 책을 더 찾아보는 경우도 있었다. 히로시마나 뉴욕이 그랬다. 여행은 걸어서 읽는 책이고 책은 눈으로 하는 여행이랬나? 내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여행과 책, 도저히 한쪽을 따로 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당장 이 책 <여행할 땐, 책>만 하더라도 읽으면서 리스본이나 모스크바, 바르셀로나, 아이슬란드 같은 곳이 더욱 가고 싶어졌다. 여행 다큐멘터리를 봐도 여행 욕구가 샘솟지만 글로 샘솟게 되는 여행 욕구는 정말 남다는 구석이 있다. 내가 머릿속으로 구성한 여행지에 대한 인상을 직접 경험하고 주변에 떠들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나는 단지 부러워서 성지순례를 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누가 누굴 보고 장황하다느니 잘 와 닿지 않는다느니 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비교하려니 쑥스럽지만 책과 여행을 연결 지어서 글을 쓰려니 필요 이상으로 감상에 젖게 돼 참으로 쉽지 않다는 걸 방금 확실히 깨달았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진 이런 생각이 안 들었지만 여행과 책에 대한 에세이를 25편 쓴 작가를 존경하게 됐다. 최소 25번은 넘게 여행한 작가의 인생은 더더욱 존경하게 됐고. 지금은 시국 때문에 국내 한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과연 나도 이 작가에 필적할 만큼 여행으로 점철된 삶을, 여행에 살고 여행에 죽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만 감히 그 인생 못지않게 살아내고 싶단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내 안의 여행 욕구를 이보다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던 독서는 또 없었던 것 같다. 

 작가 이름을 검색해보니 코로나 시국 이후에 나온 책도 있던데, 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과연 그 작가는 이 시국에 어떤 감상을 할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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