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잽 테르 하르 지음, 이미옥 옮김, 최수연 그림 / 궁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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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개인적으로 장애인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한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만화, 영화든 비중을 떠나 장애인 등장인물이 나오면 한번 더 눈길이 간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나온 일본 드라마 <뷰티풀 라이프>,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청각 장애인이 나오는 만화 <나는 귀머거리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 소설 <데프 보이스>. 시각 장애인이 나오는 소설 <드래곤플라이>... 갑자기 시각 장애인이 나오는 작품이 더 안 떠오르는데, 이번에 읽은 이 작품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세 번째 분류, 그러니까 시각 장애인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사고로 눈을 다쳐 시각을 상실한 주인공,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건 다시는 볼 수 없는 현실과 막막한 앞날이다. 공부도 운동도 곧잘 해냈던 학급의 인기인이었는데 처지가 아주 딱하게 된 것이다. 소설은 이 후천적 시각 장애를 안게 된 소년을 통해 우리가 결코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지도 않았던 재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누구도 겪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 겪을지 모를 일, 하필 그게 내가 된다면? 이 느닷없는 불행을 겪은 주인공은 환희와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여기서 잠깐, 시각 장애를 무조건적으로 불행이라 치부하면 실례되는 말일 수 있다. 특히 선천적 시각 장애인들에게 말이다. 평생을 눈을 감았던 사람이 눈이 떠지자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고 다시 눈을 감으니 길을 잘 찾았더라는 얘기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장애가 곧 불행이라기 보다 한 사람의 개성일 수도 있으니 무작정 불행이라 말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준비도 없이 시각 장애인이된 주인공에게는 어떨까? 이건 엄연히 불행이다. 점자 타이핑을 익힘에 있어 '한 번이라도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던 주인공의 외침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심연의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책 읽는 것만 해도...

 제목에서 말하듯 이 작품은 본다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전부가 아님을 얘기한다. 물론 본다는 건 우리 삶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한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방송에서 말하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설을 쓰면서 묘사를 할 때 주로 시각 정보에 많이 의존하고 - 예를 들어 어떻게 생겼고 무슨 색이고 어디로 움직인다, 이런 식으로. - 시각 장애인이자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인 전제덕 씨도 보이지 않아 처음 하모니카를 부를 때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악보가 없이 청각만으론... 첫인상이라는 말도 보통 그 사람의 외양을 지칭하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만화 <나는 귀머거리다>에서 봤는데 작품 속에 장애인이 등장한다고 하면 청각 장애인은 주로 소통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로맨스물에 주로 등장 - 보진 않았지만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셰이프 오브 워터>도 주인공이 비슷한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하고 시각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감각이 열려 만만찮은 전투력을 강조하기 위해 주로 배틀 만화에 - <은혼>의 니조, <원피스>의 후지토라가 대표적인 예다. - 등장한다고 한다. 감각에 대한 부분은 이 작품에서도 인상적으로 다뤄진다. 보지 못하는 대신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감정의 폭이 느껴지거나 전에 없는 상상력이 발휘되는 장면은 꽤나 감동적 -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도 컸다. - 이었다.

 작가가 성장 소설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던데 과연 피상적인 묘사는 커녕 오히려 전방위적인 통찰력이 있어 흥미롭기까지 했다. 시각 장애인의 불안한 심리와 더불어 가족 중에 시각 장애인이 생겼을 경우 가족 내에 부는 파장 또한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성장 소설의 수위에 맞게 좀 더 희망적이거나 혹은 갈등이 비교적 재빠르게 풀리는 경향은 있었지만 꽤 현실적인 묘사가 펼쳐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묘사를 하기 위해선 상상력이나 통찰력을 넘는 소재에 대한 상당히 진지한 조사 정신도 요구될 텐데 작가는 문제 없이 잘 해내지 않았나 싶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불만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주인공이 시각 장애인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이야기가 끝난 점이다. 여운 있는 엔딩이지만 어떻게 보면 시각 장애인 학교에 들어간 다음도 되게 중요한 만큼 딱 그 시점에서 끝난 건 너무 쌈빡하단 생각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 너무 길었으려나. 너무 지리멸렬하거나.

 근래 읽은 소설 중 읽은 뒤 가장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좀처럼 겪을 수 없는 세계를 읽음으로써 공감 능력을 일깨워주는 역할로써도 훌륭한 책이었고 성장 소설로도 탁월했다. 성장 소설이라... 이 작품을 읽고서 어쩌면 우리가 성장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렸을 때 뭘 놓쳤는지 깨닫기 위함이 아닌가 싶었다. 책 하나로 인생이 크게 바뀌기는 쉽지 않으나 만약 이 작품을 더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이라도 읽었음에 안도하며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p.s 여담이지만 생애 처음으로 읽은 네덜란드 소설이었다.

 p.s2 그나저나 인터넷 서점마다 저자 이름이 다르게 표기됐다. 잽 테르 하르, 얍 터르 하르... 나는 후자의 표기를 쓰기로 했다. 독일, 북유럽, 네덜란드는 j를 y발음으로 내는 걸 익히 봐온 터라. 예를 들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도 심심찮게 봤지. 유세요, 얌실... ㅋ

그러니까 내 말은 죽음도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 눈이 먼 것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야. 나는 네가 살아가면서 실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네 삶을 사랑하기 바라거든 - 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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