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 아이들 - 개정판 카르페디엠 5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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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이 읽었지만 이렇게 학교에 대한 이야길 전면적으로 내세운 소설은 처음이었다. 생애를 이야기할 때 학교와 아이들을 뺄 수 없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보다 월등히 좋았다. 일견 소설보단 논평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는 내용이지만 내용 자체가 워낙 훌륭하니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교육적이지도 않고 너무 착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못지않게 학교라는 장소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게끔 하니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중학교에 신임 교사로 부임온 주인공 구즈하라가 담임을 맡게 된 3학년 C반 아이들과 만나며 교사로서, 나아가 선생으로서 성장해나간다는 내용이다. 교사와 선생, 같은 게 아닌가 싶겠지만 굳이 위 아래를 정하자면 단연 선생이 더 위다. 교사는 교권을 가진 직업인을 지칭할 뿐이지만 선생은 존경할 만해 따르게 되는, 이른바 먼저 산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낱말의 차이가 거의 없는 교사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교사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불행히도 대다수가 이런 교사들에게 시달리며 학창시절을 보냈을 걸 생각하며 읽으면 이 세상에 진정한 불량아란 사실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즈하라가 맡은 3학년 C반 아이들은 통칭 '문제아'들의 반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를 주지만 정작 구즈하라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길 한다. 방송일 등 교사 이전에 여러 일을 했던 구즈하라는 아직 교사로서의 자각이 부족한 덕분에 학교 입장에서 불리할 이야기를 늘어놓는 학생들의 말에도 맥빠질 만큼 순수한 태도를 보인다. 이 선생 이래도 괜찮을 걸까 되려 걱정을 해주는 학생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구즈하라는 교사치곤 특이할 정도로 학생들의 말을 경청한다. 경청하면서 아이들이 듣던대로 문제아 같지도 않은데 어쩌다 문제아 취급을 당한 걸까 궁금해 한다.

 상습적으로 결석을 일삼고 교칙을 우습게 여기고 선생의 말에 일일이 토를 달아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 하지만 그 말들엔 다 뼈가 있다. 결석이나 등교 거부엔 학교의 교칙에 동의하지 않는 등의 이유가 있고 교칙은 머리 기르는 기준부터 머릴 묶는 고무줄의 색깔까지 지정하는 등 이상하게 세세하고 비합리적인 내용이 많고 토를 다는 것은 조금도 민주주의적이지 않고 학생들을 신용하지 않은 채 독단적인 가르침을 행사하려는 교사에 대한 반발이다. 과도한 처벌과 학생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폐쇄적인 사고를 보노라면 누군들 문제아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돌이켜 보면 저걸 다 참으며 생활했던 내 학창시절이 비정상으로 느껴지게 됐다. 난 그걸 왜 참고 입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던 걸까? 그런 의미에서 구즈하라는 참 대단하고 만만치 않은 반의 담임 교사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작품인데 작가의 진지한 통찰이 제대로 녹아들어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게 된다. 아마 이 책을 읽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 시절을 겪었거나 아니면 겪는 중인 사람들일 텐데 90년도 초반에 나온 작품이라지만 너무나 정확한 학교 묘사에 공감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의 풍경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에 - 이는 바로 옆나라인 일본이 우리나라와 상대적으로 비슷한 정서의 문화권인 덕분도 있을 것이다. - 신선하게 읽히기까지 했다. 소설은 주로 연령대가 낮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분류되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거의 전 세대가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학교가 나오는 소설 중 손에 꼽히는 책이었다.

인상 깊은 구절






지나친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정신이 번쩍 뜨이는 반항에 부딪히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의외로 중요할지 모른다. - 97p




어느 시대든,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린이만이 유토피아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사회 자체가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 어린이나 젊은이도 불행에 맞설 용기와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 234p




사람을 죽일 자유도 있지만,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자는 결코 살인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요. - 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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