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자 - 하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8.7






 처음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그가 코미디 소설만 쓰는 작가인 줄 알았다. <한 밤중에 행진>,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만 보면 정말 코미디 소설가인 것만 같다. 이후 <올림픽의 몸값>이나 최근에 읽었던 <침묵의 거리에서>를 통해 작품 색깔이 다양한 작가라고 인식하게 됐지만 기본적인 뿌리는 코미디 소설가라고 여겼다.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작품은 작가가 데뷔 직후에 쓴 초기작으로 그간 코미디 소설가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작가의 뿌리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간 작가의 추리소설, 범죄소설은 잘 찾아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보니 오히려 이런 작품이 더 전문 분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능숙하고 자연스러웠다. 특히 이 작품의 분위기는 내가 알던 오쿠다 히데오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암울했는데 그럼에도 작풍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가로서 월등한 능력을 가졌다며 감탄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장기인 여러 등장인물의 교차되는 시선이 십분 다뤄진 작품으로 각각의 일상의 행복이 어떻게 방해당하는지 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식의 주제와 접근 방식은 미야베 미유키와 흡사했는데 개인적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손을 들고 싶다. 장르 소설의 측면에선 미야베 미유키의 사이코패스와 악당 - 예를 들면 <모방범> 같은 작품. 여담이지만 <모방범>과 <방해자>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 그 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모방범>이 1위를, <방해자>가 2위를 받았다. -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게 읽히지만 순수하게 무너지는 일상을 살펴보는 데에는 오쿠다 히데오 같은 필치가 더 와 닿는다. 미야베 미유키의 글은 따뜻한 나머지 어딘지 오그라드는 부분이 있는데 오쿠다 히데오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친구들과 함께 비행을 일삼는 막장 고등학생, 아내와의 사별 후 삶의 의지가 결여된 듯한 형사, 동네 마트에서 알바를 하며 가족과의 소소한 행복을 꾸려나가는 주부. 이렇게 3명이 폭행과 방화, 야쿠자 조직과의 알력, 노동 현장 고발 등 여러 사건에 휘말려 서로의 인생에 균열을 낸다. 그 균열은 처음엔 의식하지도 못할 만큼 작았지만 균열이 점점 커져 결국 무너져버리는 제방처럼 끝을 향해 내달리는 인물들의 심리가 부족함 없이 그려졌다.


 개인적으로 페이지는 빨리 넘어감에도 어째 지루하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서서히 무너지는 일상과 그에 따른 심리를 그린 작품이다 보니 감수하고 읽을 법했는데 그래도 작가의 초기작이라 그런지 이후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흡입력이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아무래도 세 인물의 시선이 번걸아 가며 진행되느라 흐름이 막혔던 것 같은데 요전에 읽은 <침묵의 거리에서>를 떠올리면 참 대조되는 부분이다. <침묵의 거리에서>는 세 명보다 더 많은 인물의 시선을 다뤘는데 심지어 이 작품보다 분량이 적었음에도 내용이 난잡하지 않고 풍성했다. 중심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을 그린 그 작품은 각 인물이 맡은 역할과 상징하는 바가 적절했는데 이는 유감스럽게도 <방해자>에선 살짝 부족한 요소다.

 물론 점점 변화하는 인물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그린 점에서 이 작품은 굉장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검소하고 소심한,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평범한 일본 소설의 주부 같았던 교코는 처음의 인상과는 다르게 점차 행동력 있고 감정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내 개인적으론 구노의 이야기보다 더 눈길이 갔다. 소설을 읽으면서 특정 캐릭터 한 명에 대한 인상이 이렇게까지 바뀌기는 무척 드물기 때문이다.


 복선과 반전을 추구하는 장르 소설로써가 아닌 범죄 소설, 그것도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터진 범죄에 잇따르는 균열에 추측하는 작품의 특성에 의거하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교코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자포자기한 듯 이미 불행을 등에 업은 구노는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 반면에 교코는 정말 평범했지만 자신이 놓인 일상 속 평화가 위협받자 보이고 마는 반응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종국에 가서는 소름이 돋기도 했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초반에 받은 인상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반전 어린 전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주 사소한 흔들림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음을 최근 들어서 절감하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이 작품의 내용에 정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품을 읽은 게 2주 전이고 일이 생긴 건 요번 주였는데 선후는 뒤바뀌었지만 어쨌든 이렇게 포스팅을 하고 있으니 완독했을 때완 또 다르게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이 우연찮게 범한 범죄는 해결이 된다 해도 뒤끝이 안 좋다. - 하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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