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9.5







 성장 소설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일종의 틀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출생의 비밀 같은 걸 시작으로 가령 남다른 가족 환경에서 자라거나 반체제적이거나 자아 찾기에 몰두하는 등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이러한 예상되는 이미지를 안고서 본연의 감동을 줄 것인가, 혹은 차별화가 있었는가 살펴보는 게 성장 소설 감상의 출발점일 것이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네 번째 빙하기>는 실로 전형적인 성장 소설이었다. 일단 저자인 오기와라 히로시에 얘기하자면... 참 종잡을 수 없는 작가다. 처음 <소문>으로 접했을 땐 추리소설가인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접한 <내일의 기억>은 전형적인 신파 소설이었고 이번엔 성장 소설이다. 다른 저서를 살펴보니 하드보일드, 유머, 호러 등 장르가 다양하던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궁금해졌다. 이런 걸 장르의 마술사라고 불러야 하나?


 사생아인 주인공이 시골 마을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특기할 부분이 있다면 자신의 아버지를 크로마뇽인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빙하기의 그 크로마뇽인이 떠올랐다면 그게 맞다. 도대체 무슨 연고로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를 크로마뇽인이라 여긴 것일까. 500페이지에 달하는 제법 길쭉한 분량에 걸쳐 그려지는 소년의 삶은 그 질문과 함께 출발한다.

 처음엔 사생아인 주인공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라 넌지시 들여다보듯 읽어 내려갔다. 전개에 박차를 가하는 유별난 사건이 등장하기 보단 일본 영화를 보듯 비교적 잔잔히 흘러간다. 과학자인 어머니가 러시아가 소련이었을 적 유학을 갔는데 어쩌다 냉동 인간 상태의 크로마뇽인의 자손을 낳는 실험에 자원했다가 자신이 태어나버렸다는 게 초반부에 주인공이 독자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아버지라는 빈 구멍을 다소 허황되지만 혹할 구석이 있는 출생 배경으로 채움으로써 자랑스런 '크로마뇽인'답게 성장하려는 주인공의 여정이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개인적인 소감을 밝히자면 부분부분은 흥미로웠지만 사냥이니 창이니 하는 비중 있는 사고와 묘사들이 은근히 지루한 경향이 있었는데 그만큼 작품이 컨셉은 확실해서 중반부 이후부터는 점차 익숙해졌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역할을 모자람 없이 수행했고 주인공도 특이한 마인드의 소유자였던 것치곤 산뜻하게 성장기를 보내서 막판에는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로 몰입하고 있었다. 종국엔 주인공이 자신의 슬픔을 떨치고 일말의 미스터리를 해결함과 동시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마무리를 짓는 것으로 하여금 독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감동을 선사한다. 이건 정말이지 성장 소설이 아니면 형용할 수 없는 종류의 감동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은 이른바 자신의 일생에 직결된 것이고 그것은 곧 생존이라고 불릴 만하다. 이 도식을 무시한 채 무작정 살아가려고만 들면 주인공 말마따나 구멍이 구멍인 채로 방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처럼 허황될지라도 우리는 자신만의 정체성, 그게 크로마뇽이든 네안데르탈인이든 뭐든 채워넣어야만 한다. 비록 현실과 달라 나중에 재정립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게 바로 귀엽기 짝이 없는 우리들의 유년기가 필연적으로 밟을 수순이니까.


 처음 독서에 맛들렸을 때완 달리 요즘은 성장 소설이 그리 와 닿지 않았다. 그 소설이 그 소설 같기도 하고 특정 나이대에 맞는 감성을 지나치게 중시해 반감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흔히 성장 소설을 '청소년 문학'이라고 지칭하곤 하는데 이 말이 '청소년만 읽을 소설'이란 뉘앙스를 풍겨 일부 작가가 그를 충실히 따른 탓이 클 것이다.

 유년기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건 누구라도 거칠 수밖에 없는 이벤트로 특정 연령대의 사람에게 읽혀도 될 만큼 하찮은 시기가 아니다. 긴 일생과 비교하면 짤막하지만 초반부에 벌어질 일이라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성장은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란 말 이전에 성인이 되기까지의 일생은 허투루 다룰 수 없으며 사람에 따라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별한 시절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보편적이면서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할 텐데 이 작품이 바로 그랬다.


 가슴으로 느껴 설명하기 복잡한 걸 되도록 그럴 듯하게 말하려 하니까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처음에 언급한 전형적인 틀을 대놓고 갖춘 작품이거늘 어딘가 벅차오르게 만든 작품이었다. 작가가 최근에 나오키상을 받았다는데 그 작품을 비롯해 다른 작품들도 이참에 살펴봐야겠다. <소문>을 쓴 작가가 날 이 정도로 감동시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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