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2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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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헬프>는 작년에 본 가장 좋았던 영화 - 어디까지나 작년에 본 영화지 작년에 개봉한 영화는 아니다. - 중 하나다. 보통은 원작 소설이 있으면 소설을 먼저 읽고 그 뒤에 영화를 접했는데 얼떨결에 영화를 먼저 보고 말았다. 다행히 영화를 먼저 본 덕분에 소설을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 <분노>라는 영화를 봤는데 지금 할 얘기의 적절한 예시가 될 수 있겠다. 그 영화는 원작 소설보다 더욱 흡입력 있게 연출됐는데 차라리 영화를 먼저 봤더라면 소설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헬프>를 소설로 먼저 접했다면 마찬가지의 감상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간혹 영화를 먼저 보는 게 괜찮은 경우가 있는데 연달아 접하니 얼떨떨하다.


 이 작품이 그렇게 허접하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영화를 너무 의식했는지 모르겠다. 일부 각색을 제외하곤 내용면에서 판이한 부분은 없는데 아무래도 문장의 문제가 컸던 것 같다. 내가 번역 가지고 뭐라고 할 주제는 못 된다고 생각하지만 읽는 내내 원래 작가의 문체가 이렇게 딱딱한 것인지 - 작가의 데뷔작이니 그걸 가능성도 높다. - 아니면 번역의 문젠지 적잖이 궁금했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에선 굵은 글씨를 사용해 서술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있었는데 그게 너무 빈번히 사용되다 보니 가독성을 헤쳤다. 충분히 묘사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도 굵은 글씨를 남발해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졌다.

 개인적으로 영화만 봐도 상관 없다고 보지만 그래도 역시 좋은 내용이라서 그렇게까지 저평가하긴 주저된다. 분명한 건 문장만으로 훼손될 수 없는 주제의식을 이 작품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빌린과 미니, 그리고 스키터로 구성된 3명의 주인공들의 시점이 교차되며 진행되니 나름 매력적이었다. 그게 장면 전환이 빠른 영화와는 차별적인 기능을 한다고 보긴 어렵지만 영화가 미처 담지 못했거나 생략했던 디테일한 묘사가 있으므로 - 그 어떤 매체도 디테일 면에선 소설을 따라올 수 없다. - 그것대로 의미가 있었다.


 영화와 비교만 하다 글을 마무지 짓기도 뭐하니 지난 영화 포스팅 때 정리 못한 이야길 이어 써보겠다.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차별이란 것이 어째서 가져선 안 되는가를 여지없이 깨달을 수 있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에 이런 장면이 있다. 나치의 한 장교가 영사기를 돌리는 작업을 베테랑 기사에게 시키지 말라며 교묘히 명령한다. 왜냐하면 그 베테랑 기사는 흑인이었는데 히틀러가 볼 영화를 어떻게 흑인이... 여기까지 쓰겠다. 아무튼 이 장면에서 우리는 나치가 비단 유대인만 아니라 그저 자신과 다른 인종을 차별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헬프>는 흑인에 대한 극심한 차별이 만연했던 미국 남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둔 작품이다. 흑인들도 이런 풍토에 거의 체념했고 오히려 스키터가 흑인의 인권에 대한 책을 쓰려고 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음을 넘어 목숨이 위험해질 지경의 행위로 비춰진다. 그렇다 보니 작품 속에선 흑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을 둔 인물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면 인성들이 아주 가관이다. 여자란 자고로 남편 잘 만나 가사와 육아 등 내조에 전념하는 게 최고라 믿는 친구나 일을 구해 독립하겠다는 딸을 두고 한심하다는 듯 치장에나 신경 쓰라며 잔소릴 해대는 스키터의 엄마, 자기 자식에 애정을 쏟지 못하고 방치하는 여자부터 자기 전남친하고 결혼했다는 이유 때문에 한 여자를 마을로부터 왕따시키는 치졸함이나 자기 가정부를 교묘하게 감옥에 넣는 소인배 등 눈뜨고 못 봐줄 지경이다.


 차별이란 연쇄 작용이 있는 것이지 않을까.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수적인 생각에 자신의 고집을 불어넣어 차별을 공고히 다지려는 사람은 여타 문제에 관해서도 차별적 언동을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보이곤 하지 않았는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가 흑인도 싫어하듯 흑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이 전근대적 여성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에 휘둘려 일상 속에서도 폭력을 휘두르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이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작품의 장치, 이른바 밉상 캐릭터를 더 밉상으로 보이게 하려는 작가의 노림수에 걸려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법 일리가 있는 이야기지 않냐며 반문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차별 속에 내제된 심리를 간과할 수 없으니 꼭 검토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미 봤지만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한두 번 감상하고 끝낼 작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접하게 될 것 같다.



http://blog.naver.com/jimesking/220764360807 

 이건 영화 <헬프>의 포스팅.



 p.s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어떤 인물의 대사가 소설에선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그 대사는 다분히 신파적으로 영화로면 노릴 법한 대사였다. 신파적이든 뭐든 좋은 게 좋은 거지만.

문제를 일으키려는 게 아니야, 스튜어트. 문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어. -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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