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9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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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지난번에 <점과 선>을 읽은 뒤로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많은 관심이 갔다. 찾아보니 국내에 상당히 많은 작품이 출간됐던데 너무 많은 나머지 고민이 앞섰다. 일생 동안 몇 백편을 썼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아무튼 많은 분들이 추천해주셨고 어떤 작품을 읽을지 심사숙고하기로 했다. 다작하는 작가가 가장 위험한 법이니까 말이다.

 친구에게서 빌려 읽은 이 <모래그릇>은 마쓰모토 세이초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문학동네 세계명작선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입대 직전에 출작된 책이라 잊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세계명작선이 추리소설을 펴냈다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났다. 아무려면 어쩔까 싶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분명 추리소설을 넘어 일본 소설계에 분명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니 만큼 어떻게 보면 진작에 세계명작선에 포함되지 않은 게 신기한 일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리소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높은 추리소설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름이 드높은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이 죄 사회파 추리소설에 속하는 걸 보면 말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원조이자 후배 추리소설가들이 추앙을 아끼지 않는 당사자인 만큼 만나는 작품마다 처음 읽는데도 불구하고 어째 어색하지 않았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자신의 데뷔작인 <십각관의 살인>에서 사회파 추리소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곤 했지만 적어도 이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만 봤을 때 그 불만은 썩 와닿지 않는다. 수많은 양산형 사회파 추리소설이 있긴 하지만 '원조'는 확실히 다르다. 아니, 다른 걸 떠나서 난 이렇게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사회파 추리소설은 처음 읽어봤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여행은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소년 시절의 기억은 이후의 작가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점과 선>도 이미 경험했지만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엄청 발품을 판다. 모든 작품이 다 이렇진 않겠지만 확실히 여행 추리소설하면 이 작가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매 장마다 계속 기차를 타는데 그게 어색하지 않고 그렇게 움직여야 할 정도로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이나 또 그를 파고드는 형사의 끈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다.

 목격자들에게서 피해자가 '가메다'라는 말을 한 것을 유추 삼아 수사가 시작되고 끝내 진상에 다다르는 쾌감을 선사해줬다. 사건의 진상은 비교적 단순한 편에 속하는데 원래 단순한 사건일수록 미궁에 빠지기도 쉽고 추리소설화하기도 쉽지 않다. 이 작품에선 이런 미궁을 주인공 형사가 끈기 어린 추적으로 조금씩 파고들게 되는데 이 과정이 아주 디테일하다. 이 과정 속에서 우연도 있고 형사가 한 발 늦기도 하지만 과정 자체가 여행과 비슷한 만큼 자연스레 몰입이 된다. 분량이 길다보니 좀 지치기도 하지만 진짜 형사가 이런 식으로 수사를 할 것이라 생각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방언, 음악 등 온갖 소재를 녹여낸 것도 대단했다. 철저한 조사에 앞서 저런 소재를 채택한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바라본 당시 일본의 사회상은 그대로 작품 속에 녹아드는데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역사성뿐만 아니라 이렇게 인간의 추한 얼굴을 추리소설적으로 풀어내는 재미도 있으니 오늘날까지 회자되지 않을 수가 없다.

 종국에 밝혀지는 범인의 사정이나 사건을 이렇게 꼬게 만든 상황도 그렇지만 인간의 야망이란 것은 그릇된 방향으로 치달으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범인이 살인을 범하게끔 몰아간 두려움과 그 뒤에 발생한 연쇄 살인도 살펴보면 정말 부질없게 느껴진다. 뭐 이런 동기가 있을까 싶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당시의 일본이 이 정도로도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 만큼 위태로운 자화상들이 많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오쿠다 히데오의 <올림픽의 몸값>에서도 그렇고 일본 근대사를 엿봐도 알 수 있지만 일본은 패전했지만 운 좋게도 한국 전쟁 특수로 인해 재기의 발돋움을 딛고 이윽고 패전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경제적인 성장을 이룬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은 그들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축제였고 이 작품 <모래그릇>의 출간 시기도 그 전으로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가 이해하는 그 시대가 맞다면, 아마 그 당시 일본은 경제적으로 부유했지만 사람들 개개인에게 있어서 패전 이전의 일본 만큼이나 혼란스런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예술가들의 그릇된 가치관으로 드러났지만 당시 일본인들의 '성공'에 대한 갈망은 어마어마했으리라 본다. 심지어 미국에게서 민주주의도 심어진 덕에 모두가 성공을 꿈꿀 수 있는 시대로 등떠밀려졌을 것이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 성공을 향해 어떤 방식으로 오르는가는 문제가 된다. 누군가는 성공을 향해 해가 되는 과거 기록은 전부 지워야 할 것이고 버릴 수만 있다면 방해가 되는 것은 사람이건 목숨이건 해치우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다. 이런 가치 전도 현상이 만연했던 시기였던 게 아닐까.


 적고 보니 요즘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확실한 건 어느 시대건 반드시 경계해야 할 문제다. 성공이란 것은 영원히 끝이 없는 것이기도 해서 거기에 다가서는 자신에 도취된 나머지 주위의 수많은 가치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 만큼 위험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나. 이 작품만 봐도 그렇다. 연쇄 살인의 희생자들의 사망 소식이 유독 가슴 아프게 다가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저 좋다고 하는 사람을 자신의 사익에 이용하는 것은 진짜 악질이지 않은가. 정말이지 이런 인물은 추리소설에서 많이 접하지만 접할 때마다 크나큰 반면교사로 다가온다.

 정말 묵직한 사회파 추리소설이었다.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재미와 주제의식 덕에 작가의 이름값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분량이 좀 더 짧았으면 좋았겠지만 주인공의 긴긴 수사 과정에 함께할 수 있어서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제 작가의 단편을 읽어볼까 한다. 이 작가는 장편도 좋지만 단편이 정말 좋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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