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 - 추정경 장편소설
추정경 지음 / 놀(다산북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8.1






 아무리 재기 발랄하게 문단에 데뷔해도 두 번째 작품에서 미끄러지는 신인은 정말 많다. 극히 일부의 소설가가 아닌 한 이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안착하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매우 냉정한 이야기지만서도 말이지.

 이 작가는 <내 이름은 망고>로 제4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한 그 성장 소설은 군대에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래서 두 번째 작품도 사뭇 기대하게 됐다. 그래서, 신작이라고 하기엔 벌써 3년 전에 출간됐지만 어쨌든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을 드디어 읽게 됐다. 이미 다수의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아서 나름대로 기대가 팽배해진 상태에서 말이다.


 그렇게 기대감이 드높아진 상태에서 읽은 이 작품은 못내 실망감을 안겨줬지만, 한편으론 작가가 던지는 출사표가 느껴졌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만회하는 기막힌 반전이 등장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발상 자체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제목에 나오는 저 벙커를 무의식이 피하는 자신만의 공간쯤으로 묘사한 것이나 그 장소에서 이야기의 대부분을 전개시킨 것은 고루해서 내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의문을 줄 정도였지만 분량이 워낙 짧아서 그냥 한 번 참고 읽어봤다. 그런데 결말에서 아주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뒤집는데 그게 아주 신선해서 다시 보게 됐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을 많이 해봤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였으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을지에 대한 상상을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상황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을 때 그런 상상이 더욱 잘 가동됐던 것 같다. 이런 상상을 비단 나만 한 것은 아닐 텐데 이를 캐치해서 작품에서 줄곧 얘기했던 상처받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접목시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안겨준 것은 제법 파격적이었다. 개인의 파괴가 다름 아닌 세상의 파괴라니. 바로 전에 읽은 <영원의 아이>가 장장 1500페이지에 걸쳐 디테일하게 푼 이야기를 아주 짧고 효과적으로 표현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결말도 뒷맛이 개운하면서도 희망적인 여운도 짙어져서 나쁜 기억은 죄다 사라지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데뷔작과는 확연하게 다른 작풍의 소설이었는데 자신의 글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 관한 포부를 보다 확실히 선포한 작품인 것 같아서 흡족하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다음 작품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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