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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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아마 이 작품이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 가장 가혹한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출판사 소개 문구에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도시 오슬로'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작품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시리즈 첫 작품인 <박쥐>에서부터 해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픽픽 죽어나갔지만 이 작품은... 이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더는 예전만 같지도 않고 바로 전작인 <목마름>을 읽은 게 벌써 3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초반부터 단숨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몰입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쯤 되면 작가가 해리를 괴롭히기 위해 작위적으로 사건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들 만큼 비슷한 유형의 비극을 시리즈 내내 다루니 알게 모르게 식상해져 충격이 오래 가지 않은 것이다. 또 해리가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유력 용의자들이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안겨줄 만큼 유력 용의자라기엔 어딘지 모양 빠지는 작자들이라 그리 긴장감이 일지 않았다. 아무리 허탕을 치는 거라지만, 나중에 무고하다고 밝혀지더라도 용의자로 등장을 한다면 어느 정도 그럴싸한 모습이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선 긴장감을 영 주지 못했는데... 전엔 안 그랬잖아요, 작가님?


 오히려 수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힘든 해리의 골때리는 상황이나 수사를 거듭할수록 해리가 해리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더 압권이었는데 이게 굉장히 느릿느릿 진행되기에 인내심이 많이 요구된다. 내가 봤을 때 670페이지는 확실히 과했고 개인적으로 음악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잡담은 분량이 너무 많이 할애된 감이 있으며 어쩐지 유치했다.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긴 하지만 이마저도 추리소설의 소품으로썬 공정성이 다소 결여돼 읽기 무가치한 부분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허리 부분은 이래저래 불안정했지만 머리와 꼬리는 훌륭했다. 초반의 몰입도는 아까 말했듯 대단했고 결말은 진짜 가혹하고 기구하기 이를 데 없어 더없이 해리가 불쌍했다. 자업자득이라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독자인 내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치가 떨릴 정도인데 당사자는 어떨까? 시리즈가 장기화되면서 내심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생각이 들던 와중에 던진 초강수를 보고 작가에게 감탄... 보단 독하단 생각이 앞섰다. 후속작이 노르웨이에선 출간됐다던데 벌써부터 걱정이군. 해리가 또 얼마나 산전수전을 겪을는지 원.


 워낙에 중간 부분이 지루해 이제 이번 12편을 마지막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에 작별을 고해야 하나 싶었지만 충격의 결말을 접하니 아직 시리즈의 명운은 남아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편까지 이어질까 궁금하면서 걱정도 되는데... 문득 1편부터 다시 읽고 싶어졌다. 내가 <스노우맨>과 <박쥐>를 10년 전 군대에서 처음 읽었다. 그때 노르웨이란 나라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전역하고 나서 돈을 모은 다음 <스노우맨>을 들고 노르웨이를 여행했다. 그 노르웨이 여행은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라 생각한다. 반대로 가장 아쉬운 선택 중 하나는 노르웨이를 고작 열흘만 여행을 갔던 것이고.

 아무튼 그런 내게 있어 이 시리즈는 누가 뭐라 해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시리즈다. 그러니 끝까지 읽고 싶다. 괜히 박수 칠 때를 놓쳐 흐지부지 끝나는 건 바라지 않는다. 후속작이 나오기 전까지 전작들로 복습을 해야지. 점점 전작의 내용이 후속작에 중요하게 작용하니 허투루 읽으면 나만 손해인 것 같다. 당장 이 작품만 해도 <목마름>의 어떤 전개가 아주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으니까. 언제가 될는지 모르지만 후속작이 출간하는 그날까지 시리즈의 방대한 세계관을 다시금 빠져들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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