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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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여행과 편지와 소설에 대한 관심이나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무지하게 취향에 맞을 작품이다. 설령 여행을 별로 해본 적이 없고 편지는 왜 쓰는지 모르겠고 소설 쓰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해도 상관없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확고한 철학을 접하다 보면 나도 한 번 따라해보고 싶어질 테니까 말이다. 

 10년 전에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너무 풍만한 나머지 약간 미련하고 고집스럽게도 보이는 주인공의 여행은 그가 여행을 하게 된 계기나 여행을 끝마칠 조건 등 무엇 하나 밝혀지지 않고 선뜻 동의하지 못하겠어도 자꾸만 시선이 간다. 주인공의 성향이 대다수의 독자들의 심정을 대변하기엔 취향이 마이너한데... 이는 어쩌면 나의 편견일 수 있고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처럼 미련할 순 있어도 자신만의 확실한 기준과 철학이 있는 무기한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로망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작품이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자기 임의로 숫자를 붙여 기억하는 주인공, 숫자를 붙이는 조건은 서로 주소를 공유한 사람들로 주인공은 여행 내내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매일밤 모텔에서 그날 떠오른 생각을 가족에게 편지로 써서 보내고 여행 중에 갑자기 떠오른 사람들에게도 보내고...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친구에게 전화로 물어봐도 주인공의 집엔 편지가 온 적이 없다고 한다. 제목 그대로 아무도 주인공에게 편지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면서 오기로 딱 한 통이라도 편지가 올 때까지 무기한의 여행을 계속한다. 

 원래는 맹인안내견이었다가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 반려견 와조와 함께 여행을 하던 주인공은 지하철에서 자신의 소설을 직접 홍보하며 팔고 있는 소설가 751을 만나게 된다. 아직 그녀와는 서로 주소를 공유하지 않았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동행을 하게 되면서 그녀에게도 일단은 숫자를 붙인다. 반대로 그녀는 주인공을 0이라 부른다. 이 골때리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두 남녀는 흔히 기대하거나 예상해봄직한 성적인 긴장감 하나 없이 일종의 영혼의 교감 같은 것을 나누게 된다. 주인공은 751과 동행하는 초반에만 해도 누군가와 동행하는 걸 질색하지만 주인공의 말마따나 한 사람만 나오는 소설은 없듯이 751이 등장하고 그녀의 엉뚱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인공의 삶이 참견당하면서 소설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남다른 필력과 개성으로 일찌감치 가독성을 확보했지만 역시 대화를 나눌 사람이 등장하니 소설에 본격적으로 혈색이 도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동행인과 가치관의 차이로 다툼도 일고 서로의 아픔과 과거도 공유하고 부족한 점도 극복하게 되고... 전형적이지만 확실히 뒤가 궁금한 전개로 하여금 작품은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안정적으로 결말까지 독자의 손을 잡고 이끈다. 결국 이 여행은 끝이 날 것인지, 왜 주인공에게 편지 한 통 오지 않는지, 무사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각자 여행길에 기대했던 바를 얻게 될 것인지... 여행이란 왜 좋고 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식상하지 않게 추상적이지 않게 어필하는 이 소설은 막판에 뭉클한 반전과 포용 가능한 아픔을 선사하며 끝을 맺는다. 주인공이 여행한 시간이 적지 않아서 그런지 그 과정을 막판에 잠깐 따라다녔을 뿐인 나도 형언하기 힘든 먹먹한 기분을 느꼈다. 

 혼자만 알고 지내기엔 참 아까운 작품으로 다 읽고 난 다음에 많은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다녔다. 물론 미숙한 나의 말로는 매력을 어필하기 까다로운 작품이긴 하지만 다섯 페이지만 읽어도 결말까지 별다른 저항감 없이 읽히리란 기분 좋은 예감을 심어주기에 속는 셈 치고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 기능을 이용해볼 것은 추천한다. 아니, '속는 셈 치고' 읽어보라기엔 이 작품한테 너무 실례되는 말이겠다. 대신 이렇게 말해보겠다. 비록 거창하고 강력한 주제의식을 겸비한 작품은 아니나, 절대 시간 낭비했다고 후회할 만한 작품도 결코 아니다. 나에게 명예라는 것이 있다면 어디 한 번 걸고 말하건대 삶이 지쳤을 때 읽기에 특히 좋은 작품이니 믿고 읽어볼 것을 강추한다. 


 여담이지만 아마 이 책은 앞으로도 종종 찾아 읽을 듯한데, 여행 갔을 때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주인공처럼 편지도 쓰고... 이 작품을 다시 읽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제법 여행을 떠난 편이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나도 의미 있는 여행을 해보기는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내 생각을 제대로 남기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나는 사진이 절반을 차지하는 여행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여행을 위한 책인지 책을 위한 여행인지 헷갈리게 한다. 그보다 나는 여행을 과시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자신을 위한 여행인지 타인을 위한 여행인지 헷갈리게 한다. 여행을 과시하는 사람은 진짜 가진 게 없어서다. - 13p



그러므로 평생을 살아도 해보지 못할 생각을 글로 남기지 않는다는 건 생의 손해이자 실수다. 사진은 다시 가서 찍을 수 있다. 기념품도 얼마든지 다시 살 수 있다. 그러나 여행중에 스쳤던 생각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갔을 때의 감정과 느낌은 이미 그때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13~14p



나는 가끔 말한다. 타인의 욕망이 궁금해지거든 여행가방을 싸보게 하라고. 아니면 타인의 여행가방을 훔쳐보라고. 가방 속에 이것저것 집어넣는 사람은, 자기가 집어넣은 물건의 양만큼 여행을 떠나서도 피곤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가방의 무게 때문에라도 그렇게 된다. 짐을 버리기 위한 여행은 졸지에 짐이 되는 여행이 되고 만다. - 27p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에는 비밀 한 가지 정도는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기가 단독범이라면 편지는 공동정범이거나 방조범이다. - 34p



진정한 외로움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둘이 있어서 외로운 것이다. - 62p



한 사람만 나오는 소설을 읽어본 적 있어요?

(중략)없으니까 없었겠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런 소설도 없는 거라고요. - 139p



습관과의 이별이란 원래가 서운한 법이다. 그 습관이 내면과 일상의 평화에 기여했다면 더욱. 나의 여행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나는 다른 습관에 적응해야 하고, 다른 일상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진정한 내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 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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