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이야기
폴린 레아주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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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O 이야기>는 에로티시즘 문학 사이에서 전설로 꼽히는 작품이며 <어린 왕자>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힌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출간 이후부터 끊임없이 '예술이냐, 외설이냐' 라는 논란에 시달림에도 <어린 왕자> 만큼 읽힌 것이 의아하게 여겨질 사람이 있을 듯한데, 나는 호불호가 심히 갈릴지언정 특정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기에, 또 반대로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오히려 화제를 낳아 여러 나라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았을까 싶어 그렇게 놀랍게 들리지 않았다. 

 한편 아흔이 넘은 나이에 자신이 이 작품의 저자라고 밝힌 폴린 레아주, 본명 안느 데클로스는 이 작품을 예술이냐 외설이냐, 반페니즘 작품이냐 아니냐에 대한 숱한 논란에 대해 '그저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환상'이라고 답했다. 역자의 후기에서도 나오는 표현이지만 정말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는 게, 확실히 에로티시즘은 판타지다. 이 작품의 주인공 O의 내면을 보면서 제대로 깨달았다. 


 작품의 주인공 'O'의 이름을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갔다고 한다. 구멍Orifice, 물건Objet, 오르가슴Orgasme... 다 일리가 있지만 나는 O가 알파벳이 아닌 그냥 구멍 그 자체(O)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O 이야기>는 말 그대로 구멍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O가 자신의 애인 르네에 의해 성노예로 전락해 온갖 구멍이 학대당하면서 시작된다. 비밀스런 사교클럽 루아시에 입성한 O는 성의 남자들로부터 항문이 좁다며 꾸지람을 듣는다. 마치 그녀가 기본 소양도 갖추지 못했다는 듯 아주 혹독한 관심을 받게 된다. 

 이 상황에 대한 묘사가 가관이면서 인상적인데, 일단 애인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르네라는 남자는 O의 항문을 넓히자는 다른 남자들의 얘기에 좋으실 대로 하라고 말하고, 어떤 남자는 너무 넓어도 곤란하다고 말한 뒤 도구를 이용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O의 항문을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은 넓이로 넓혀버린다. 

 초반부터 너무 수위가 센 말을 하는 건가 싶지만,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나중에 O가 겪을 일에 비하면 항문 정도는 정말 애교에 불과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너무 좁아도 너무 넓어도 곤란하다는 말은 이 작품의 분위기나 문체에도 해당된다. 강간, 학대 등의 장면을 거침없이 묘사하면서도 정작 어휘는 차분한 편에 속한다. 가령 신체 부위에 대해 ㅂ, ㅆ, ㅈ으로 시작하는 저속한 단어를 구사할 법도 하고 남성이 O를 비롯한 여성들한테 하는 말도 그대로 적을 수 있음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저속한 말을 했다' 정도로 에둘러 서술하는 등 이른바 절제미가 느껴졌다. 그렇게 표현을 절제하고 직접적인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어 더 야하게 읽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소설이 적어도 초반부부터 중반부까진 단지 외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문학, 예술의 묘미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이 작품은 야동을 보는 감각으로 자극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론 그 맛을 알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문장도 길고 가독성도 떨어지고 서사보다 묘사의 비중이 훨씬 커 문장을 빠르게 훑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그저 역겨운 소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은 역겹지만, O가 성노예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몰입하며 내제화하는 등 나름대로 자기합리화하는 과정이 담긴 중반부까지는 역겨운 동시에 독특하고 흥미로운 지점도 상당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왜 그녀가 르네를 애인이라 존경하며, 그런 찌질한 고자질쟁이의 어떤 면모에 반했는지 - 재력 때문인가? 그렇다기엔... - 직접적인 에피소드는 다뤄지지 않아 결국 O의 복종 어린 태도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상황에 본능적으로 저항하면서도 점차 변화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고 심상치 않게 묘사해 이래저래 읽는 맛은 상당했던 작품이다. 

 O를 비롯해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은 채찍질을 당한다. 진짜 채찍 말이다. 별 대단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은 아니다. 다릴 오므렸거나 남자들 앞에서 말했거나 남자들과 눈을 마주쳤거나... 이유는 사소하고 폭력적이며 일부 남성은 잘못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 등 한마디로 채찍질 하고 싶어서 채찍질하는 것이라 이해하면 편하다. 남자들은 여성들이 채찍에 맞는 걸 즐기기보다 고통을 호소하고 제발 멈춰달라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즐기며 둔부에 채찍 자국을 남기고 싶어한다. O는 기가 막히게도 자신이 채찍에 맞는 걸 황홀하게 바라보는 애인의 표정에 황홀함을 느끼며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한다. 


 루아시에서 성노예로 재탄생한 O는 파리로 돌아와 애인과 그의 이복형제인 스티븐 경이 공동 소유하는 여성이 된다. 웃긴 것은 두 남자는 그녀에게 언제든 떠나도 좋지만, 그녀가 승낙하면 자신들의 지도 하에 지금까지 받은 교육 그 이상의 교육이 실시된다고 한다. 정말로 그녀가 떠난다고 하면 보내줄지도 의문이지만 - 안 그런다에 건다. - 이미 두 남자가 원하는 답이 뭔지 아는 O는 두 남자가 공동 소유하는 여성이 될 것을 어렵사리 승낙한다. 

 하지만 O는 얼마 되지 않아 자위를 하라는 스티븐 경의 명령에 불복한다. 루아시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자위가 뭔 대수인가 싶지만, 사실 O는 르네를 비롯해 남자들이 명령을 했기에 다릴 벌린 뿐이라고 자위해왔지, 실제로 자기 스스로 성욕이 발동돼 자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랑과 복종을 헷갈리는 게 아니냐고 질책하는 스티븐 경은 - 이런 사람이 '경'이라 불리는 것이 정말 소름 끼치는 일 아닌가? - 스스로 가공할 수준의 주인임을 미리 공언한 대로 O가 스스로의 성욕을 인정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점점 그녀를 몰아붙인다. 

 결국 구멍도 활짝 열리고 채찍질을 견디는 것도 모자라 명령하면 언제든 자위하겠다고 직접 말하는 지경에 이른 O는 이전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주체적인 성노예로 거듭나게 된다. 처음 만났을 당시엔 수동적이었던 O는 스티븐 경과 대화를 할 때마다 겉돌았지만, 시간과 공을 들인 보람이 있게 O는 이 다음부턴 상당히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게 된다. 


 중반부 이후부터 이 소설은 급격히 외설에 가까워진다. 처음엔 이 작품을 '남자 잘못 만나 성노예로 전락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루아시에서의 고분고분한 태도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탓에, 혹은 목숨이 아까워 자기 감정을 속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왔음에도 어딘가에 신고도 않고 도망을 칠 생각도 않고 아무것도 강제하는 것도 없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는 남자들의 말에도 O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랑을 위해 이 모든 시련을 견디겠노라는 그녀의 태도에 연민을 느꼈다. 사랑이 원래 바보같은 것이고, 전부를 주고도 아쉬워하는 것이라지만 이건 지나치다고, 그녀가 그걸 언제쯤 깨달을 것인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이야기는 '성노예로서의 자질을 자각하지 못했던 주인공이 능력 있는 주인을 만나 잠재력이 개화되는 묘한 성장담'으로 읽히기 시작했는데... 그렇다 보니 솔직히 말해 O가 어느새 더는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이 작품 속 남자들의 언행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길에서 엄청나게 애교를 부리는 개냥이를 보는 기분으로 O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게 됐다. 가령 스티븐 경의 명령을 받들어 모델 자클린의 육체를 탐하거나 루아시와 비슷한 성격의 사교클럽 사무아에서 인체 개조를 당하고, 스티븐 경의 사유재산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의 몸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음모가 깎이면서 스티븐 경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하거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경멸하는 여성들에게 O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은,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지만 '귀여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O가 귀여웠다. 그리고 동시에 가여웠다. 공교롭게도 발음이 비슷한 이 두 단어는 내가 생각했을 때 종이 한 장의 차이만 있을 뿐 꽤나 비슷한 개념이지 않은가 싶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개처럼 사람 손을 타는 모습을 보면 우린 귀여움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굶주렸으면 본성과 반대로 행동할까 싶어 가여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겐 O의 모습이 딱 그랬다. O가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자세히 그려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전까진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는 문란한 성생활을 가졌을 뿐인 O가 사랑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해 남자들한테 휘둘리게 된 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책의 묘사에 따르면 O의 복종하는 성향엔 천부적인 요소도 없잖아 그녀 스스로 어떤 취급을 당할지 알고 있음에도 반항하지 않는 모습은 어떤 의미에선 읽는 이의 죄책감을 덜어내기도 했다. O가 르네나 스티븐 경에게 언젠가 버림받을 것이고 '사랑'은 단지 그녀의 일방통행적인 감정일 뿐, O를 취하는 남자들은 그녀를 쉽게 자기 입맛대로 구슬릴 수 있는 일종의 마법의 단어 정도로 '사랑'을 입에 담는 것이 너무나 뻔히 보여 불쾌하고 탄식을 자아냈지만, 정작 당사자인 O는 학대당할수록 '행복하다'고 말하니 원... 그렇다 보니 읽을수록 O의 다소곳한 태도가 순수하게 남성으로 하여금 가학성을 유발하는 감이 다분했는데, 그녀의 모습에서 더는 안쓰러움도 귀여움도 아닌 흐뭇함을 느끼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 적잖은 충격을 받기까지 했다. 아, 이러니 19금 판정을 받은 건가?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이 여성의 본성은 복종을 원하며 그 내면을 잘 드러낸 소설이라 인용하고, 어떤 사람들은 천인공노할 안티 페미니즘 소설이라 경멸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피학성애를 실천하는 페미니즘 소설이란 궤변을 늘어놓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예술이냐 외설이냐 이전에 그저 판타지다. 루아시에 간 O가 애인이 기대하는 그 이상의 엄청난 피학성을 내재했다는 것도 판타지고 나중에 등장하는 자클린이나 자클린의 이부동생 나탈리가 O와 결이 다를 뿐 마찬가지로 성노예의 소질이 있으며 그런 여성이 너무 타이밍 좋게 자주 등장하는 것 - 뿐만 아니라 피임이나 위생이나 성병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는 것도 작위적이기 그지없었다. 유일하게 현실적인 장면을 꼽자면 스티븐 경이 르네로부터 O의 항문 단독 사용권을 양도받자 그녀의 항문이 찢어지지 않을지 걱정하는 정도다... - 모두 판타지다. 현실에 O 같은 여성이 있을 수 있어도 이를 개인의 성향으로 이해해야지 여성 전체가 그렇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은 작품의 본질에서 벗어난 차원의 해석이라 생각된다. 

 한편 이 소설은 저자가 자신의 애인으로부터 '여성은 절대 사드처럼 소설을 쓰지 못할 것'이란 말에 자극을 받아 썼다는 말과 자신의 애인에게 보내는 일종의 지독한 연애편지라는 말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퍽 성공을 거뒀다고 본다. 정작 저자의 애인이라는 장 폴랑이란 작자는 자기 애인이 <O 이야기>의 저자인 줄은 모르고 죽었다지만 생전에 이 작품을 아주 극찬했다는데, 남성의 가학성을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 발달시키기까지 하는 이 소설을 '연애편지'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정말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성욕이 충만한 남성이 O 같은 여자를 만났다면? 그녀를 딱 잘라 거부할 수 있는 남성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연애편지로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좋은 소설, 문학, 예술이라 봐야할는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 독자들은 장 폴랑이 아니니까. 우리에겐 이 소설이 외설로 그치지 말고 좀 더 완성도 있는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소설에 정식 후속작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허무한 결말이지만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엔 엄연히 <루아시로의 귀환>이란 정식 속편이 있고, 그 작품에서 O는 역시나 스티븐 경에게 버림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고 스티븐 경은 그걸 허락한다고... 한다. 역자 후기에서 소개된 후속작의 결말은 예술로 시작해 외설로 끝난 <O 이야기>의 단점을 잘 보완해준단 생각이 들었다. 

 O가 언젠가 버려질 것이라 불길한 예감만 들게 하고 끝낸 책의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다소 전형적이고 교훈적이더라도 한결같이 사랑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관철한 O가 끝에 가서 지난 날을 후회한다든지, 아니면 끝까지 노예로서 자부심을 가지며 후회 없이 자살할 것인지 그 여부까지 묘사됐더라면 이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고차원의 예술로 승화되지 않았을까? 지금 이 상태로는 외설적인 성격이 강한 채로만 끝이 나 아무래도 감상에 제한이 걸려버리게 된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니 후속작이라도 꼭 출간됐으면 좋겠는데,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역자가 후기에서 이 작품이 충분한 각광을 받아 속편까지 완역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날은 아주 요원해 보인다. 19금 판정을 괜히 받은 작품이 아닌 지라 아마 이대로 각광을 받지 못한 채 묻힐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참 아쉽다. 이렇게 몰입되고 결말이 궁금한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눈치는 보이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294페이지가 아니라 2940페이지였어도 괜찮았을 만큼 몰입도 하나는 압도적이었는데, 이는 내가 남성 독자니까 할 수 있는 말일 듯하다. 

하느님이 주는 시련을 신자들이 오히려 감사해하듯, 그녀는 자신을 함부로 취급하는 걸 즐기는 애인의 뜻을 충실히 배려하면서 마냥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 120~121p



살아 계신 신의 손 안에 떨어지는 것이 무섭도다

‘천만의 말씀! 정말 무서운 건 살아 계신 신의 손 밖으로 떨어져나가는 것이지...... - 138p



즉, 고문을 당한다는 생각 자체가 즐겁다가도, 막상 고문을 당하는 순간에는 그걸 면하기 위해 온 세상을 팔아 치워도 시원찮을 것 같다가, 급기야 고문이 끝나면 모든 걸 견뎌낸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데, 그 기분은 고문이 잔혹하고 길어질수록 배가되기 마련이다. -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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