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차별, 처벌 - 혐오와 불평등에 맞서는 법
이민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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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저자가 차별을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차별에 대한 책은 존재 자체만으로 부담스럽게 다가오곤 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후기가 무척 진솔하게 다가온 듯하다. 저자 스스로 밝히길 자신은 딱히 드라마틱하게 차별을 당한 적도 없고, 오히려 차별을 당하기 힘든 외적 조건을 누려왔음에도 차별의 부당함에 대해 얘기할 자격이나 있는지 토로하는데 그렇기에 본문의 글을 고민하고 고민하며 쓴 흔적이 엿보이는 후기였다. 개인적으로 서문 못지않게 후기 역시 내가 지금껏 읽은 차별에 관한 책 중 가장 인상 깊게 읽혔다. 

 더군다나 본문도 상당 부분 동의하며 읽었다. 책의 분량이 짧아 혹여 수박 겉 핥기에 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길게 얘기한다고 해도 무조건 좋은 글이냐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닌 지라 분량과 깊이는 다른 개념이라 여기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이 작품은 외모 차별을 자주 언급하고 뉴욕 차별금지법 소송 전문 변호사라는 저자의 약력에 걸맞게 미국의 사례를 예시로 많이 든다. 이 책이 종종 받는 지적 중 하나가 들고 있는 예시의 범위가 비교적 좁다는 걸 들 수 있고 나 역시도 어느 정도 합당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외모 차별이 모든 차별을 대표할 만한 차별이 아니라고 쳐도 작가가 외모 차별을 예시로 들면서 차별의 핵심을 제법 괜찮게 짚어내고 있어 한정된 예시가 과연 깊이가 부족하다고 꼬집을 만한 단점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서 외모는 단순히 아름다움과 추함의 개념만이 아닌 피부색이나 비만의 유무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저자는 주로 외모로 인해 같은 선에서 출발할 기회의 평등조차 주어지지 않는 불평등을 지적한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부분은 고용주가 외무를 차별하게 되는 입장도 살펴본 것인데, 저자의 논지를 모두 긍정하긴 힘들어도 우리가 차별을 이야기하느라 간과하는 현실적 요인을 다시 짚어볼 수 있던 것만으로 꽤 의미 있는 접근이지 않은가 싶었다. 예를 들어 카페 점주라면 아무래도 용모 단정한 직원을 뽑길 원하고 그러한 카페 점주의 영업 방침에까지 차별 금지법을 들이댄다면 그것 역시 다른 의미에서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같다는 논지는 솔직히 공감이 많이 갔다. 

 한편으로 샘 오취리를 비롯해 한국인으로서 바로 와 닿기 힘든 차별 이슈에 대해 언급하는데, 차별이라는 개념이 지적하는 입장의 논리만 듣고 바로 법에까지 적용하기엔 인식의 문제나 입장의 문제, 그리고 차별적인 언행을 했다고 지적당한 당사자의 의도성을 고려 않고 엄벌을 놓기에도 까다로운 등 차별적 언행에 대한 처벌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쉽지 않음을 저자는 현실적인 차원에 입각해 강조한다. 읽고 있노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척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하고 이 모든 가치관을 수용하기란 꿈만 같은 일이며 어쩌면 그 꿈은 꿈속에서도 이루기 쉽지 않다는 비관에 이르게 된다. 그만큼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난 저자의 의도가 이렇게 읽혔다.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하자. 차이와 차별은 다르고 모두 제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제공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불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엇보다 차별은 나쁘고 차별을 당했다는 당사자의 얘기에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얘기를 일일이 다 들어주면 자가당착에 빠지거나 산으로 갈 수 있다. 즉 도의적으로 잘못됐다고 여기는 것과 법적인 처벌 사이엔 간극이 크며 차별적 언행이 곧 법적인 처벌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차분한 태도로 심사숙고하며 다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법조인이기에 할 수 있는 냉정한 태도가 아니었나 싶다. 

 책의 제목에 무려 처벌이 들어가서 차별하는 자는 무조건 처벌하자는 논지의 책인 줄 알았는데, 도리어 그런 논지와는 거리가 먼 책이라 의외기도 했고 생각 이상으로 흥미로운 독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차이와 차별의 근본적인 차이를 가늠해볼 수 있던 것도 흥미로웠고 차별을 처벌하는 미국의 사례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던 것도 적잖이 유익했다. 가끔 차별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가는 솔직하되 감정적으로 굴지 않아 끝까지 차분하게 읽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의 이러한 태도가 진정 멋있게 다가왔다. 

이처럼 인간은 타인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생성되어 있는 사회적 고정 관념과 연결해, 타인을 판단하는 ‘예측 출발‘을 범한다. 물론 육상 경기와는 달리 아무도 이를 부정 출발로 간주하지 않는다. - 50p



기회와 결과의 평등을 실현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행복과 만족의 측면에서는 영원히 평등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 점에서 만큼은 우리 모두 평등하다. - 92p



정리하자면, 부당한 차별을 구별할 때는 그 발언이나 행동에 의도가 있는지, 대상과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적절한 상황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 132~133p



문제는 차별금지법의 대상의 범위가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가가 아니다. 핵심은 그 판단 기준이 늘 일괄적으로 적용되는가이다. - 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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