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스페인
최지수 지음 / 참좋은날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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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내가 마침 서른 살이기도 하고, 올해 3월에 진지하게 스페인 여행을 생각했었기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던 책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의 온갖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화풍이 완벽하게 녹아든 20일간의 스페인 여행기였는데, 비록 그림에 비해 인문학적 깊이는 떨어진 건 아쉬웠으나 오히려 그런 부족함이 개성으로 작용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꼭 남들 다 가는 여행지, 역사적 의미가 큰 관광지가 아니라, 꼭 극적인 전개가 아니더라도 크게 멋부리지 않은 - 멋부린 것은 오직 그림뿐 - 일상적인 여행기였던 터라 참 편하게 읽혔다. 내가 과연 다음에 해외여행을 간다면 이렇게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어느 나라가 됐든 해외의 공기가 적잖이 갈증났던 만큼 뽕을 뽑으려고 마구 돌아다니려고 할 것 같다. 처음 해외여행에 재미를 붙였던 20대 초반과는 달리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 

 책을 다 읽은 직후엔 특별히 '서른'이란 나이가 주는 느낌을 잘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일찍이 서른을 경험한 작가가 그 나이대의 여행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20대 초반엔 '다음은 없다'는 생각에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돌아다녔지만 서른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은 여유롭게 일정을 짜고 언젠가 다시 오겠지 란 생각에 오히려 지금 놓친 것을 다음 여행을 위한 일종의 계기로 여기곤 했다. 아까 말했듯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지 3년째라서 다음 해외여행 때 이런 태도가 그대로 유지될는지 미지수지만... 전보다 여유롭고 서두르지 않는 여행법을 고수하게 될 듯하다. 어쩌면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할 지라도 말이다. 


 이 책을 읽은 어떤 독자는 나처럼 텍스트와 깊이의 부족함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한편으론 스페인이란 나라를 표현하는 일에 있어서 그림의 힘을, 시각 매체를 활용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스페인에 가고 싶은 사람보다 스페인에 가본 적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책인 듯하다.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백 번 효과적인 나라라니, 그전까지 미술관이나 요리에 더 관심이 갔었는데, 이젠 아예 스페인이란 나라의 풍경 그 자체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참 안타까운 것은, 풍경이란 내 경험에 의하면 TV나 인터넷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성질의 요소가 아니란 것이다. 현장감. 그 현장에 직접 있어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언젠가 꼭 스페인에 가서 직접 풍경을 봐야겠다. 그날이 왠지 이젠 머지않아 보이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련다. 

흑인 아이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만든 테이블이 있다. 정성껏 만들었다는 점이 그 테이블을 더 낡아 보이게 했다. 창작물은 시간의 흐름을 붙잡아 놓는다. 그 점이 무섭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다시 돌아본 내 작업도 어딘가 부끄러운 꼴을 할 것이다.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어렵다. - 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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