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9.0 







 2편에서 드러난 이 작품의 전개 방식을 생각하면 1편은 사실상 캐릭터 소개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다음 작품인 <벌집을 발로 찬 소녀>를 생각한다면 1권의 내용은 이질적인 편이다. 1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약간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느낌을 선사했다면 2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부터 하드보일드 그 자체다. 물론 기자 출신인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사회 문제,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묘사는 건재하다. 오히려 더욱 진화한 느낌이다. 특히 미카엘이 아닌 리스베트가 이야기의 주역으로 본격적으로 교체됨으로써 그러한 경향이 훨씬 짙어졌다. 

 이 소설의 배경, 그러니까 작가가 소설을 집필하던 당시는 2000년대 초반으로 아직까지 스웨덴이 매춘과 관련된 사회 문제와 전쟁을 벌이던 시점이었다. 역자의 주에 따르면 현재에 이르러선 포주들과 성매매 남성들을 철저히 벌하면서 제법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지만 - 그런데 이 말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는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성매매 산업은 남성의 그 죽일 놈의 성욕 때문에 필요악이랍시고 자취를 감추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자가 말한 '현재'란 2010년대다. 지금은 어떠려나. - 어쨌든 저자가 집필하던 당시엔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정부의 정책의 성공 여부에 회의적인 사람도 적잖았고 저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총 세 가지 종류의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리스베트가 누명을 쓰는 사건이 벌어짐으로써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 리스베트의 무고함을 믿는 지인들과 리스베트를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사회 부적응자라는 정부의 기록 때문에 선입견을 갖고 수사에 임하는 경찰들 사이의 대립, 그리고 주변에서 부는 피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홀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리스베트의 독주가 흥미롭게 얽히며 전개된다. 이야기의 발동은 전편보다 더 늦게 걸려 인내심이 요구됐지만 그래도 중반부부터, 1권 후반부부터는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저자가 초반에 지루하게 전개시킨 초반부가 대단히 촘촘했다거나 필수불가결했다거나 하다 못해 빌드 업이 잘 이뤄졌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만회를 잘하지 않았나 싶다. 결말은 대놓고 3편을 읽고는 못 베길 정도로 감질나지만 3편의 분량이 2편보다 긴 걸 떠올리면 오히려 적절한 끝맺음이란 생각도 든다. 3편도 다시 읽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읽을 날이 기다려진다. 

 대놓고 감질나는 결말이었다는 말은 사실상 본편에서의 갈등이 상당수 갈무리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리스베트는 누명을 벗지 못하고 사건의 진상을 쫓는 리스베트의 지인이나 경찰들은 아직까지 이야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실상 리스베트의 원맨쇼에 가까운 등 단일 작품으로서 아쉬운 결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뭐 아무튼 전편의 주역인 미카엘조차 이 작품에선 완벽한 조연에 머무르는데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묘하게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인 터라 - 기자 정신을 강조하는 모습은 그래도 멋지긴 하다. - 이러한 작가의 취급이 퍽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이럴 거면 1편에서부터 리스베트 단독 주인공으로 설정하면 어땠을까 싶지만, 작가가 강조하고픈 기자 정신이라든가 사건을 합법적인 부분에서 접근하려는 어딘지 순진하지만 정의롭기 그지없는 캐릭터 역시 이 세계관엔 필요한 터라 묘하게 정이 가지 않는 것과 별개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오는 여자 막지 않고 여자들이 알아서 달라붙는 마성의 남자라는 캐릭터성은 10년 전에나 10년이 지난 지금에나 헛웃음을 유발하지만 말이다. 


 한때 '성인들의 해리 포터'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밀레니엄' 시리즈는 미카엘이나 리스베트나 성인은 돼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파격적인 캐릭터성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에서라면 몰라도 아시아권에선 여자 주인공이 양성애자라거나 남자 주인공은 불륜을 저질러 이혼당했다는 설정은 2000년대 초반에선 쉽게 접하기 힘들었고 지금이라고 아주 쉽게 받아들여지는 설정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시리즈의 분위기나 컨셉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그야말로 모두가 쉬쉬하지만 어쨌든지 간에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많은 아웃사이더들, 사회 부적응자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국가 최대 규모의 범죄 집단, 성매매라는 이름의 비즈니스에 맞서 싸운다는 시리즈의 컨셉은 그 자체로 정제되지 않았으면서 독한 기운의 주제의식으로 중무장했다. 그렇기에 호불호를 떠나 일정 수준 이상의 쾌감이 보장되고 선사되는 것일 테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 두껍고 진입 장벽 높고 인내심이 요구되는 지루한 도입부의 소설이 큰 인기를 끈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단순히 노벨상 수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비롯해 수많은 독자가 추천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따라 읽었다기엔 이 작품만의 분위기나 설정, 주제의식은 확실히 독보적인 구석이 있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얕볼 수 없는 시리즈란 생각이 들었다. 


 자꾸 얕볼 수 없다느니 설명이 안 된다느니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이번 2편의 도입부가 참 인내심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 아마 1편을 건너뛰고 2편 먼저 읽은 것이었다면 50페이지 안에 때려쳤을 정도로 지루했다. 내가 원체 싫증을 잘 느끼는 편이지만 이건 좀... - 그에 반해 결말은 후속작 기대하기 딱 좋은 결말인 터라 어지간하면 포기하지 않고 완독하길 바란다. 게다가 중반부부터 액션, 가령 권투 장면이나 총격 장면도 많이 묘사되는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많다. 물론 액션 때문에 보는 작품도 아니고 그 장면들도 곰곰이 생각하면 허술하고 개연성 떨어지게 전개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은 점에서나 예측 불허한 부분도 많았기에 이래저래 실보다 득이 많았다. 내 기억엔 이런 액션 장면이 3권에선 더 적어지는데... 작가가 표현하고픈 하드보일드한 액션을 이 작품 중후반부에 몰아서 묘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3편 <벌집을 발로 찬 소녀>에선 국가 규모의 압박과 고통이 쉴 틈 없이 리스베트를 향해 끊임없이 쏟아진다. 태생적으로 거기에 아랑곳할 리스베트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도 홀로 살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진 사람은 극히 적은 법. 리스베트는 지인들에게 큰 도움을 받고 성매매로 인한 피해자들도 완벽하지 않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구원을 받는다. 2권 중반부부터 미흡하게 묘사된 감이 있던 주제의식,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더욱 직접적으로 잘 드러난 수작인 터라 다시 읽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3편은 꼭 스웨덴에 여행갔을 때 읽고 싶은데... 이런 낙관적인 바람을 언급하는 것도 점점 지친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미래는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설마 코로나 이상으로 절망적인 시국이 펼쳐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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