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 산책 - 파리, 런던, 뉴욕을 잇는 최고의 예술 여행 미술관 산책 시리즈
최경화 지음 / 시공아트 / 201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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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일전에 읽은 <런던 미술관 산책>이 생각 이상으로 좋아서 당연히 <스페인 미술관 산책>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페인의 미술관 중 몇 곳은 내가 버킷 리스트에 넣은 곳이기도 해 저자가 그곳의 대표작을 어떻게 소개해줄는지, 그리고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명화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미술관엔 어떤 작품이 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알기론 스페인은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거의 자국 화가의 작품으로 미술관을 꾸린 것에 자부심이 있는 나라다. <런던 미술관 산책>에서 내가 모르고 지냈던 좋은 영국 화가, 영국 그림을 소개받았듯 이 책도 내가 몰랐던 신세계를 선사해주지 않을까 하며 적잖이 기대를 품었다. 

 허나 같은 시리즈에 속했을 뿐 저자도 다르고 저자의 전공도 엄밀히 말해 미술 쪽도 아니고 무엇보다 두 책의 방향성이 달라 내 기대는 상당 부분 어긋났다. 내가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런던 미술관 산책>을 그토록 기대했을까 하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책의 제목을 차라리 '마드리드 미술관 산책'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로 마드리드에 있는 미술관에 비해 바르셀로나나 빌바오에 있는 미술관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내가 몰랐던 신세계에 대한 갈망은 채워지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카탈루냐 미술관이나 미로 재단, 빌바오에 있는 그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엔 어떤 대표작이 있을지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도 그 미술관은 그냥 미술관 자체가 더 유명하단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저자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작에 대한 소개는 어땠느냐면, 말 그대로 그 미술관의 대표작과 그 그림들을 그린 화가를 소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마찬가지로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다. 프라도 미술관이 책의 초반을 장식하는데도 처음부터 흥미가 반감된 채로 읽게 된 셈이다. 계속 비교하는 게 저자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새삼 <런던 미술관 산책>이 대단히 뛰어난 미술 서적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책에선 해당 미술관의 대표작 여부를 떠나서 런던, 나아가 영국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 위주로 소개해 굉장히 신선했고 - 누가 영국 미술관에서 'made in 영국'은 건물과 경비원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건 틀린 말이었다. - 그럼에도 대표작들을 차마 소개하지 않고는 못 지나가겠는지 뒤에 따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이라고 소개하는 걸 놓치지 않아 구성적으로 매우 풍부하고 다채로웠던 기억이 난다. 

 <런던 미술관 산책>은 2010년에, 이 책 <스페인 미술관 산책>은 3년 뒤인 2013년에 출간돼 저자가 같은 시리즈의 이전 책을 참고할 만도 했는데... 이 특성이 미처 이어지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비롯해 여러 스페인의 명화는 확대도 하고 긴 시간을 들여 설명을 곁들이는 등 가독성을 높인 점과 왜 이 작품들이 명화라 칭송받는지 그 이유를 저자가 원래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자기도 몰랐었는데 하고 운을 떼는 점은 사뭇 인상적이었지만 말이다. 이 책으로 스페인의 미술 세계를 처음 접할 독자에겐 좋은 입문작이자 길라잡이가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진입 장벽도 굉장히 낮아서 읽는 데엔 여러모로 부담이 없었다. 이는 그만큼 깊이가 얕다는 말과도 같지만...... 생각해보니 이와 비슷한 감상을 작가의 다른 책인 <포르투갈, 시간이 머무는 곳>의 포스팅에도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진입 장벽이 낮은 길라잡이 책을 집필하는 것에 특화된 작가인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이 책을 실컷 까긴 했지만, 달리 보면 진입 장벽이 낮고 길라잡이가 될 만한 책을 쓰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재주인 만큼 분야가 다르긴 해도 작가를 지망하는 내가 함부로 씹고 뜯을 만한 작가가 아니란 생각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쉽게 읽히는 문체를 얕잡아 본 적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이 포스팅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어딘지 '주제 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자존감이 낮은 탓이겠지? 그래서 매우 뜬금없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참,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참 많은 것 같다. 당장 이 책에 관련된 이유만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나 고야의 <1808년 5월 3일>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건축물들과 피카소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시녀들>을, 소로야 미술관에서 소로야의 작품들과 미로 재단에서 미로의 작품들을, 그리고 책에서 다뤄지지 않았지만 달리 미술관에서 달리의 작품들을 감상해야 하니까 말이다. 시국을 떠나서 내게 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그리고 착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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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1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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