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5 






 도진기 작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완독하지 못할 뻔한 작품이다. 진구의 과거가 드러나는 작품이라기에 기대하고 책장을 펼쳤는데 도입부부터 중반부까지 지루하고 식상하기 이를 데 없어 결국 한 번 포기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진기 작가인데 이대로 포기하기엔 뭔가 아쉬워 시간을 두고 다시 읽었는데... 여지없이 중반부까진 지루했지만 그 이후로 속도가 붙어 완독에 성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작가의 작품 중 괜히 읽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진구와 그의 학창 시절 친구 연부의 묘한 관계와 둘 사이를 멀어지게 한 과거의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나는 작품인데 과연 작품의 설정이 모두 적절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적절한지 아닌지를 막론하고 일단 대기업 회장이 자기 아들의 여자친구한테 너희 집안과 우리 집안은 급이 안 맞다며 퇴짜를 놓는다는 전개부터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진구의 과거가 드러나는 중국 사막 탐사 부분은 뜬금없을 뿐더러 지루한 나머지 작가의 팬이 아니라면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 정도였다. 솔직히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만큼 이 책을 읽는 예상 독자들은 작가의 열렬한 팬일 가능성이 높을 텐데, 설마 팬들을 믿고서 이토록 안일하게 설정과 전개를 짠 건 아닌지 의심까지 했다. 


 사실 마냥 안일하다고 깎아내리긴 힘든 것이, 사막 탐사에 관한 공들인 묘사나 모래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더하려는 건 작가에게 있어 새로운 시도였고 관련 자료를 참고하는 등 노력하며 집필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루하다고는 했지만 오히려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말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부분의 뜬금없음이나 지루함 보단 이러한 진구와 연부의 과거가 후반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후반부의 반전은 나름대로 충격적이지만 그 반전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전혀 상관 없는 부분만 묘사하고 있다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어느 정도 공정한 추리소설이었던 것과 다르게 <모래바람>은 상당히 불공정했다. 일종의 서술트릭 때문이 아니라 - 말이 나와서 말인데 범인의 비중도 너무 아쉽다. 가장 많은 비중을 할애해야 하는 인물이 아니었는지... - 범죄를 공모하거나 가담하는 인물들의 행동의 개연성을 전부 '바로 그 사람다운 행동', '그 사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하며 설명을 퉁치니 독자가 상상을 발휘할 여지가 적었다. 그렇다 보니 진구나 연부 등 여러 캐릭터들이 무슨 정신 세계를 갖고 있지는 알겠는데 내가 머릿속에서 능동적으로 구상해가며 캐릭터성이 구축된 느낌이 아니라 작가가 필사적으로 주입한 느낌이라 이래저래 정이 가지 않았다. 


 다 떠나서 추리소설적으로 대단히 재미없는 소설인 것이 이 작품의 가장 실망스런 부분이었다. 까놓고 말해 반전은 놀랍기는커녕 황당할 뿐이고 진구가 어렸을 적에 발휘한 트릭이나 그로 인해 죄책감을 갖게 됐다는 것 등이 이론으로나 그럴싸하지 이야기의 처절함을 강조하기엔 사막이라는 배경이나 손 안 대고 살인하는 트릭이나 하는 것들이 너무 과한 측면이 있어 현실감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상 씨 일가가 너무 볼품없고 재미없는 캐릭터들인 나머지 몰입이 되지 않았고 또 연부도 생각보다 분위기가 있지도 않고 대단히 악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두뇌 플레이에 특출난 것도 아니라 이 캐릭터가 뭘 하든 딱히 관심이 가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이 작가가 필력이 왜 이렇게 떨어졌지? 데뷔작만 해도 재기 넘쳤고 가독성도 대박이었고 결말까지 완벽했는데... 점점히 필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 작품은 뭐랄까, 쓰고 싶어서 썼다기 보다 빨리 뭔가 써야 하니까 꾸역꾸역 스토리를 토해낸 느낌이라 전반적으로 구성이나 마무리까지 깔끔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보다 좋아했는데 갑자기 네 번째 작품이 너무 수준 미달의 옥의 티라서 시리즈 전체에 대한 좋은 이미지까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다섯 번째 작품이 벌써 출간됐던데 그 작품도 별로 기대되지 않을 지경이다. 읽긴 읽을 텐데 그 작품도 별로일까봐 지금으로선 솔직히 불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