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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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전편보다 늘어난 용의자, 용의자 모두 '내가 그를 죽였다'고 믿는 복잡하고 골때리는 상황 설정, 죽여 마땅한 피해자, 끝날 때까지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 획기적인 마무리,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추리의 향연... 이렇게 보면 꽤 괜찮은 추리소설로 기억될 만했지만 사실상 범인이 밝혀지지 않아 독자가 직접 추리해야 하는 부분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가독성이 좋단 점을 제외하면 <내가 그를 죽였다>는 매력이나 흡입력은 떨어지는 작품이다. 다른 걸 떠나서 두 번째 요소, 세 명의 용의자에게 피해자를 죽일 동기가 있고 모두 저마다 자신이 죽였다고 믿는 점 때문에 결말이 별로 궁금해지지 않았다. 작중 인물인 미와코의 말을 빌리자면 누가 범인이어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독성이 좋은 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가독성을 놓고 봤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을 따라올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전에 읽었을 땐 다카히로와 미와코 남매의 관계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읽으니 미와코는 속내를 알기 힘들어 어딘지 매력이 잘 와 닿지 않는 재미없는 캐릭터였고 다카히로는 다른 두 명의 용의자에 비해 동기가 약하고 또 좀스러워 비호감이었다. 반면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던 스루가와 유키자사의 이야기, 그들이 호다카한테 살의를 품게 된 계기는 아주 흥미로웠다. 피해자 호다카가 - 묘하게 <악의>의 피해자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직업이나 됨됨이나...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 얼마나 죽여 마땅한 인물인지를 묘사하는 것은 이 작품 최고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어쩔 수 없이 살인범을 응원하게 되는 이 소설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딱 호다카가 죽기 전까지가 제일 재밌었다. 


 엄연히 '가가 형사' 시리즈에 속했음에도 가가 형사의 매력이나 활약이 극히 적은 것도 아쉬웠고 후반부를 제외하면 전개 속도도 느리고 최후반부에 추리 장면을 집약시킨 것도 불만스런 부분이었다. 전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는 형사가 범인을 추적하는 전개였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범인이 주인공인 도서 추리물이자 세 명 모두 자신이 죽였다고 믿는 복잡한 서술트릭이 있어 읽는 입장에서 - 그래서 가가의 비중이 적은 것과 최후반부에 추리 장면을 집약시킨 게 납득은 갔다. - 참으로 까다로웠다. 뭐, 쓰는 사람은 더 까다로웠을 테지만 문제는 그런 보람도 없이 이야기 자체가 상술했듯 누가 범인이어도 상관없는 터라 가가의 추리로 사건의 전말이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어도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추리를 통해 사건의 전말이 더 상세히 드러날수록 결국 모든 용의자에게 책임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누가 범인이어도 이 점은 변하지 않으니 과정이 아무리 정교한들 당최 능동적으로 추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작 작중에선 '누가 범인이어도 상관없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해석되는데, 그 해석이 이 작품의 매력을 더 높여주진 못했다. '미와코가 근친상간을 한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고 미래의 신랑이 살해당한 비련한 여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누가 범인인지는 근본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는 유키자사의 해석은 흥미롭지만 문제는 그 해석이 정말 막판에 나왔다는 것이다. 거기서 더 파고들면 재밌는 묘사나 해석이 됐을 테지만 이렇게 겉만 핥아서야 막판까지 까먹고 있다가 급하게 추가한 것 같은 꼴이라 도리어 작품의 깊이가 죽는 느낌까지 받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의 매력은 극한의 가독성과 대중성이 있는 한편으로 간혹 무시할 수 없는 날카로움과 깊이 또한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작품에선 그 매력이 잘 발휘되지 못했다. 시리즈 작품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초중반부만 놓고 보면 정말 괜찮았는데... 시리즈의 최고 작품인 <악의>, <붉은 손가락>, 그리고 <신참자>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도입부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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